‘싼 게 비지떡’ 플라스틱 선박…바다 오염 어쩌나?

입력 2021.03.0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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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강화 플라스틱’ 선박(부산 강서구 송정동) 버려진 ‘강화 플라스틱’ 선박(부산 강서구 송정동)

■ 해안·뭍에 그냥 버리고, 바닥 뚫어 가라앉히기도…

부산 신항 인근 해안가. 얼마나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을까? 온통 따개비로 뒤덮인 작은 배 한 척이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돈이 되는 엔진은 사라졌고, 배 이름과 번호도 지워지고 없습니다. 인근 어촌계를 수소문하고, 공고해 배 주인을 찾고 있지만, 한 달 넘게 나서는 이가 없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몰래 배를 버리고 달아난 겁니다.

버려진 이 배는 지은 지 20~30년은 넘은 'FRP 선박'입니다. '유리섬유 강화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배입니다. 깨진 자리마다 잘게 쪼개져 흩날릴 듯 삭고 있습니다. 미세 플라스틱입니다. 이렇게 버려진 배가 부산 연안에만 현재 20대 정돕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대가 '강화 플라스틱' 선박입니다. 이대로 두면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 바다 오염의 또 다른 주범이 됩니다. 또 아무 데나 버리고 간 배는 운항을 방해하고, 양식장까지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 버려지는 '강화 플라스틱' 배…비싼 '폐선 처리 비용' 탓

쓰레기도 종량제에 버려야 하듯, 특히 강화 플라스틱 선박은 처리하는 데 돈이 많이 듭니다. 낚싯배로 사서 즐기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버리고 떠나는 이유입니다. 육지에 끌어다 놓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바다에 덩그러니 버려두면 인양 비용까지 어마어마합니다. 인양한 배를 처리할 때도 법에 따라 불태워야 하는데요, 이 큰 배를 잘게 쪼개서 일일이 소각로에 넣고 태워 처리해야 하니 전문업체를 통해야 합니다.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 들기도 합니다.

환경 오염 문제도 있고, 민원도 생기니까 정부나 일선 구·군이 직권으로 거둬들여 처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금으로 말이죠. 비양심 시민을 찾을 길이 지금으로썬 딱히 없습니다. 뱃길따라 CCTV(폐쇄 회로)를 달 수도 없고 말이죠. 수거비는 둘째치고, 환경 피해라도 줄여야 할 텐데, 방법이 없을까요?

■ 친환경 폐선 처리·재활용 기술 개발…현장 보급 활성화 '시급'

강화 플라스틱 선박은 버릴 때 '재활용'할 게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강철로 만든 선박은 폐선 처리를 할 때도 고철 비를 건질 수 있는 것과 달리, 그야말로 '폐기물 덩어리'인 셈입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강화 플라스틱 선박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 앞다퉈 도입됩니다. 목선이 대부분이던 당시, 정부가 선질 개량사업을 벌인 건데요, 가격이 싼 데다 가볍고 가공이 쉬워 사용량이 꾸준히 늘었습니다.

'싼 게 비지떡이다.' 옛말은 진리입니다. 싸고 편해서 좋았던 강화 플라스틱 선박은 코로나19 시대, '미세 플라스틱'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습니다. 지정 폐기물로 나뉘어 매립도 안 되는 데다, 폐선 업체도 유리섬유가 분진시설을 훼손해 처리를 꺼리고 있습니다. 2017년 기준, 국내 등록어선 가운데 95%인 6만 3천 대가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폐선 처리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 열을 가해서 유리섬유와 수지를 나눠 유리섬유는 따로 재활용하고, 수지는 모아서 고체로 연료화할 수 있는 연구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장 적용이 가능한' 기술이어야 합니다.

 해양수산부 차세대 ‘알루미늄’ 선박 해양수산부 차세대 ‘알루미늄’ 선박

■ '알루미늄·탄소 선박', 플라스틱 대안으로 떠오르다!

'친환경 선박 소재 개발'은 노후화로 버려진 강화 플라스틱 선박 처리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해양수산부는 차세대 어선 개발로 올해까지 알루미늄 연안 어선 5척을 건조합니다. 4척은 이미 운항에 성공했습니다. 알루미늄은 무게를 줄이면서도 강도가 높아 연료비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80% 이상을 재활용할 수 있어 폐선 처리도 손쉬워집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강화 플라스틱보다 소재 부분에서 알루미늄은 1.3배 이상 비쌉니다. 아직은 선주들이 굳이 알루미늄 배를 건조할 이유가 없는 셈입니다. 알루미늄 소재 선박을 대중화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목선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듯, 알루미늄이나 탄소로도 바뀔 수 있는 겁니다. '위험 비용'까지 따졌을 때, 원전이 결코 싼 에너지가 아니듯, 플라스틱 선박도 더는 싸기만 한 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검출된 미세 플라스틱은 지중해와 북태평양의 10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경고했듯, 친환경 소재 선박으로의 전환도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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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싼 게 비지떡’ 플라스틱 선박…바다 오염 어쩌나?
    • 입력 2021-03-08 10:12:16
    취재K
 버려진 ‘강화 플라스틱’ 선박(부산 강서구 송정동)
■ 해안·뭍에 그냥 버리고, 바닥 뚫어 가라앉히기도…

부산 신항 인근 해안가. 얼마나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을까? 온통 따개비로 뒤덮인 작은 배 한 척이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돈이 되는 엔진은 사라졌고, 배 이름과 번호도 지워지고 없습니다. 인근 어촌계를 수소문하고, 공고해 배 주인을 찾고 있지만, 한 달 넘게 나서는 이가 없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몰래 배를 버리고 달아난 겁니다.

버려진 이 배는 지은 지 20~30년은 넘은 'FRP 선박'입니다. '유리섬유 강화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배입니다. 깨진 자리마다 잘게 쪼개져 흩날릴 듯 삭고 있습니다. 미세 플라스틱입니다. 이렇게 버려진 배가 부산 연안에만 현재 20대 정돕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1대가 '강화 플라스틱' 선박입니다. 이대로 두면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 바다 오염의 또 다른 주범이 됩니다. 또 아무 데나 버리고 간 배는 운항을 방해하고, 양식장까지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 버려지는 '강화 플라스틱' 배…비싼 '폐선 처리 비용' 탓

쓰레기도 종량제에 버려야 하듯, 특히 강화 플라스틱 선박은 처리하는 데 돈이 많이 듭니다. 낚싯배로 사서 즐기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버리고 떠나는 이유입니다. 육지에 끌어다 놓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바다에 덩그러니 버려두면 인양 비용까지 어마어마합니다. 인양한 배를 처리할 때도 법에 따라 불태워야 하는데요, 이 큰 배를 잘게 쪼개서 일일이 소각로에 넣고 태워 처리해야 하니 전문업체를 통해야 합니다.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 들기도 합니다.

환경 오염 문제도 있고, 민원도 생기니까 정부나 일선 구·군이 직권으로 거둬들여 처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금으로 말이죠. 비양심 시민을 찾을 길이 지금으로썬 딱히 없습니다. 뱃길따라 CCTV(폐쇄 회로)를 달 수도 없고 말이죠. 수거비는 둘째치고, 환경 피해라도 줄여야 할 텐데, 방법이 없을까요?

■ 친환경 폐선 처리·재활용 기술 개발…현장 보급 활성화 '시급'

강화 플라스틱 선박은 버릴 때 '재활용'할 게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강철로 만든 선박은 폐선 처리를 할 때도 고철 비를 건질 수 있는 것과 달리, 그야말로 '폐기물 덩어리'인 셈입니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강화 플라스틱 선박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 앞다퉈 도입됩니다. 목선이 대부분이던 당시, 정부가 선질 개량사업을 벌인 건데요, 가격이 싼 데다 가볍고 가공이 쉬워 사용량이 꾸준히 늘었습니다.

'싼 게 비지떡이다.' 옛말은 진리입니다. 싸고 편해서 좋았던 강화 플라스틱 선박은 코로나19 시대, '미세 플라스틱'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습니다. 지정 폐기물로 나뉘어 매립도 안 되는 데다, 폐선 업체도 유리섬유가 분진시설을 훼손해 처리를 꺼리고 있습니다. 2017년 기준, 국내 등록어선 가운데 95%인 6만 3천 대가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폐선 처리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 열을 가해서 유리섬유와 수지를 나눠 유리섬유는 따로 재활용하고, 수지는 모아서 고체로 연료화할 수 있는 연구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장 적용이 가능한' 기술이어야 합니다.

 해양수산부 차세대 ‘알루미늄’ 선박
■ '알루미늄·탄소 선박', 플라스틱 대안으로 떠오르다!

'친환경 선박 소재 개발'은 노후화로 버려진 강화 플라스틱 선박 처리의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해양수산부는 차세대 어선 개발로 올해까지 알루미늄 연안 어선 5척을 건조합니다. 4척은 이미 운항에 성공했습니다. 알루미늄은 무게를 줄이면서도 강도가 높아 연료비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80% 이상을 재활용할 수 있어 폐선 처리도 손쉬워집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강화 플라스틱보다 소재 부분에서 알루미늄은 1.3배 이상 비쌉니다. 아직은 선주들이 굳이 알루미늄 배를 건조할 이유가 없는 셈입니다. 알루미늄 소재 선박을 대중화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목선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듯, 알루미늄이나 탄소로도 바뀔 수 있는 겁니다. '위험 비용'까지 따졌을 때, 원전이 결코 싼 에너지가 아니듯, 플라스틱 선박도 더는 싸기만 한 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검출된 미세 플라스틱은 지중해와 북태평양의 10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경고했듯, 친환경 소재 선박으로의 전환도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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