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농어촌 외국인 가건물 숙소만 금지하면 인권보장 되나?

입력 2021.03.08 (10:41) 수정 2021.03.0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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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의 비닐하우스에서는 막바지 출하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열무를 뽑고 다듬어 박스에 포장하는 건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네팔보다 7배 넘는 월 200만 원대의 월급을 받습니다. 최대한 아껴서 조금이라도 더 고향에 보내는 게 목표입니다. 우리나라 농어촌 노동력을 사실상 지탱하고 있는 이들. 주거환경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동사는 아니라지만...불붙은 주거인권 논란

계기는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속헹씨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숙소에서 속헹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숙소는 비닐하우스 안에 지은 임시 건물이었습니다. 난방이 제대로 안 돼 동사했을 거란 얘기가 나왔습니다. 부검 결과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이 사인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평소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건강을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그러자 고용노동부가 곧바로 '농어업 외국인 근로자 주거환경 개선방안'을 내놨습니다. 이에 따라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주에게는 1월부터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한, 이런 시설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2월부터 사업장 변경을 허용해주기로 했습니다.

속헹씨가 지냈던 숙소의 모습.속헹씨가 지냈던 숙소의 모습.

주거인권 보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현실성 있는 조치가 필요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취재진이 만난 포천시의 많은 농업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정부 방안은 탁상행정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농촌의 현실을 볼까요? 한밤중이라도 갑자기 많은 비가 오면 배수로를 내야 하고 눈이 내리면 치워야 합니다. 소가 아프면 바로 돌봐줘야 합니다. 농어촌의 많은 숙소가 현장 근처에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현장은 농지입니다. 일체의 건축행위를 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불법과 편법의 경계에서 비닐하우스 속 임시 건물 숙소나 컨테이너 집을 마련할 수밖에 없습니다. 농사짓는 것만을 상정한 땅이니 수도나 정화조를 설치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가스나 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수를 파고 임시 정화조를 묻어서 근근이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그동안은 이런 시설로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받아왔습니다. 정부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준 거죠. 그런데 사망사고 이후 갑자기 기준이 바뀌어버렸습니다. 농업인들은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고 항의합니다.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속 임시 건물 숙소. 에어컨, 냉장고, 화장실, 주방 등 모든 시설이 완비됐습니다.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속 임시 건물 숙소. 에어컨, 냉장고, 화장실, 주방 등 모든 시설이 완비됐습니다.

"여기에 돈 내야 하면 네팔에 돈 많이 보낼 수 없잖아요."

농장에 숙소를 마련할 수 없다면 농장 밖에서 집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트나 원룸을 빌려서 숙소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일까요? 취재진이 찾은 포천시 일동면 일대에 변변찮은 주거용 건물이라고는 전방부대 군인 아파트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욱더 먼 포천 시내로 가면 일반 주택이 있습니다. 하지만 집주인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임대하는 것을 꺼립니다. 요리할 때 기름을 많이 쓰는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 집을 망쳐놓는다는 겁니다. 씁쓸한 현실 앞에 농업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난감합니다. 네팔에서 온 수르아르씨. 4년 넘게 한 열무 농장에서 먹고 자며 일하고 있는데, 농장 밖 숙소로 이사 가기 싫다고 합니다.

수르아르씨는 "한 달에 200만 원 벌면 50만 원이나 60만 원 돈 (외부숙소에) 내야 하면 네팔에 돈 많이 보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여기 살면 좋아요."라고 말합니다.

농장의 임시주거시설에 살 때는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급여의 13%만 숙식비로 공제하면 됐는데, 밖에 나가면 관리비에 전기세, 인터넷 통신료, 출퇴근 비용 등등 쓸 돈이 늘어납니다.

역시 네팔에서 와 4년째 일하고 있는 오속씨도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오속씨는 "(시내) 아파트 힘들어요. 사고 날 수도 있어요. 오토바이 운전하고 다니면..."이라고 말했습니다. 변변한 대중교통 수단이 없는 농촌에서는 출퇴근하는 게 더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포천시 일동면 일대 외국인 노동자 200여 명은 최근 주거 환경에 문제가 있는 숙소에 대해서만 환경 개선을 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국회와 고용노동부, 경기도청과 포천시청에 제출했습니다. 아직 답은 못 받았습니다.

포천 일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출한 탄원서포천 일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출한 탄원서

3월 이면 3배 빨리 자라는데 모두 갈아엎을 판

반발이 잇따르자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의 주거환경 개선 이행기간을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9월 1일까지 6개월간 유예기간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농업인들 반응은 싸늘합니다. 위에서 나온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이 끊겼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농어촌은 비상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행된 이번 대책은 농업인들에겐 이중고입니다.

한 농민은 "3월이 되면 열무가 겨울보다 3배 빨리 자란다. 외국인 노동자 일손이 없으면 자식 같은 열무를 결국 다 갈아엎을 수밖에 없다. 농번기가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농업인들은 우선 무조건 금지보다 양성화를 요구합니다. 불법 시설물일 수밖에 없는 기존의 건물을 무조건 쓰지 말라고 하지 말고, 현장조사를 거쳐서 열악한 주거 시설에 시정조치를 하라는 겁니다. 개선될 때까지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허락하지 않으면 주거권이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건축법과 농지법을 완화해 주거 환경에 문제가 없는 기존 가설 건축물은 2~3년 정도 허가를 내주고 이후 다시 재연장 절차를 밟아달라고 요구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농민의 글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농민의 글

경기도에서 양돈농장을 하는 한 축산인은 "문의를 했더니 고용노동부에서는 기숙사를 제공 안 하는 조건으로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받은 다음, 편법으로 숙소를 제공하라고 안내했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인권단체, 농림축산식품부는 고용노동부, 지자체는 중앙정부 핑계를 대며 누구 하나 농촌 현실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월 한 농민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에서 "제발.. 몇몇 불법 체류자들과 몇몇 농가들의 형태만 보시고 문제점을 잘못 파악하지 말아주십시요.." 라고 글을 맺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인권과 농어민들의 상생방안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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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농어촌 외국인 가건물 숙소만 금지하면 인권보장 되나?
    • 입력 2021-03-08 10:41:23
    • 수정2021-03-08 10:41:30
    취재후·사건후
경기도 포천의 비닐하우스에서는 막바지 출하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열무를 뽑고 다듬어 박스에 포장하는 건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입니다. 네팔보다 7배 넘는 월 200만 원대의 월급을 받습니다. 최대한 아껴서 조금이라도 더 고향에 보내는 게 목표입니다. 우리나라 농어촌 노동력을 사실상 지탱하고 있는 이들. 주거환경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동사는 아니라지만...불붙은 주거인권 논란

계기는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속헹씨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숙소에서 속헹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숙소는 비닐하우스 안에 지은 임시 건물이었습니다. 난방이 제대로 안 돼 동사했을 거란 얘기가 나왔습니다. 부검 결과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이 사인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평소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건강을 챙기지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그러자 고용노동부가 곧바로 '농어업 외국인 근로자 주거환경 개선방안'을 내놨습니다. 이에 따라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주에게는 1월부터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한, 이런 시설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2월부터 사업장 변경을 허용해주기로 했습니다.

속헹씨가 지냈던 숙소의 모습.
주거인권 보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현실성 있는 조치가 필요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취재진이 만난 포천시의 많은 농업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정부 방안은 탁상행정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농촌의 현실을 볼까요? 한밤중이라도 갑자기 많은 비가 오면 배수로를 내야 하고 눈이 내리면 치워야 합니다. 소가 아프면 바로 돌봐줘야 합니다. 농어촌의 많은 숙소가 현장 근처에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현장은 농지입니다. 일체의 건축행위를 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불법과 편법의 경계에서 비닐하우스 속 임시 건물 숙소나 컨테이너 집을 마련할 수밖에 없습니다. 농사짓는 것만을 상정한 땅이니 수도나 정화조를 설치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가스나 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수를 파고 임시 정화조를 묻어서 근근이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그동안은 이런 시설로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받아왔습니다. 정부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준 거죠. 그런데 사망사고 이후 갑자기 기준이 바뀌어버렸습니다. 농업인들은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고 항의합니다.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속 임시 건물 숙소. 에어컨, 냉장고, 화장실, 주방 등 모든 시설이 완비됐습니다.
"여기에 돈 내야 하면 네팔에 돈 많이 보낼 수 없잖아요."

농장에 숙소를 마련할 수 없다면 농장 밖에서 집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트나 원룸을 빌려서 숙소를 마련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일까요? 취재진이 찾은 포천시 일동면 일대에 변변찮은 주거용 건물이라고는 전방부대 군인 아파트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욱더 먼 포천 시내로 가면 일반 주택이 있습니다. 하지만 집주인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임대하는 것을 꺼립니다. 요리할 때 기름을 많이 쓰는 동남아 출신 노동자들이 집을 망쳐놓는다는 겁니다. 씁쓸한 현실 앞에 농업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난감합니다. 네팔에서 온 수르아르씨. 4년 넘게 한 열무 농장에서 먹고 자며 일하고 있는데, 농장 밖 숙소로 이사 가기 싫다고 합니다.

수르아르씨는 "한 달에 200만 원 벌면 50만 원이나 60만 원 돈 (외부숙소에) 내야 하면 네팔에 돈 많이 보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여기 살면 좋아요."라고 말합니다.

농장의 임시주거시설에 살 때는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급여의 13%만 숙식비로 공제하면 됐는데, 밖에 나가면 관리비에 전기세, 인터넷 통신료, 출퇴근 비용 등등 쓸 돈이 늘어납니다.

역시 네팔에서 와 4년째 일하고 있는 오속씨도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오속씨는 "(시내) 아파트 힘들어요. 사고 날 수도 있어요. 오토바이 운전하고 다니면..."이라고 말했습니다. 변변한 대중교통 수단이 없는 농촌에서는 출퇴근하는 게 더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포천시 일동면 일대 외국인 노동자 200여 명은 최근 주거 환경에 문제가 있는 숙소에 대해서만 환경 개선을 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국회와 고용노동부, 경기도청과 포천시청에 제출했습니다. 아직 답은 못 받았습니다.

포천 일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출한 탄원서
3월 이면 3배 빨리 자라는데 모두 갈아엎을 판

반발이 잇따르자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의 주거환경 개선 이행기간을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9월 1일까지 6개월간 유예기간을 준다는 내용입니다. 농업인들 반응은 싸늘합니다. 위에서 나온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이 끊겼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농어촌은 비상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행된 이번 대책은 농업인들에겐 이중고입니다.

한 농민은 "3월이 되면 열무가 겨울보다 3배 빨리 자란다. 외국인 노동자 일손이 없으면 자식 같은 열무를 결국 다 갈아엎을 수밖에 없다. 농번기가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농업인들은 우선 무조건 금지보다 양성화를 요구합니다. 불법 시설물일 수밖에 없는 기존의 건물을 무조건 쓰지 말라고 하지 말고, 현장조사를 거쳐서 열악한 주거 시설에 시정조치를 하라는 겁니다. 개선될 때까지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허락하지 않으면 주거권이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건축법과 농지법을 완화해 주거 환경에 문제가 없는 기존 가설 건축물은 2~3년 정도 허가를 내주고 이후 다시 재연장 절차를 밟아달라고 요구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농민의 글
경기도에서 양돈농장을 하는 한 축산인은 "문의를 했더니 고용노동부에서는 기숙사를 제공 안 하는 조건으로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받은 다음, 편법으로 숙소를 제공하라고 안내했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인권단체, 농림축산식품부는 고용노동부, 지자체는 중앙정부 핑계를 대며 누구 하나 농촌 현실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월 한 농민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에서 "제발.. 몇몇 불법 체류자들과 몇몇 농가들의 형태만 보시고 문제점을 잘못 파악하지 말아주십시요.." 라고 글을 맺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인권과 농어민들의 상생방안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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