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분의 1’ 유전자 단짝에 새 삶 선물한 공무원

입력 2021.03.10 (07:03) 수정 2021.03.1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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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혈모세포를 기증한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최현지 주무관.조혈모세포를 기증한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최현지 주무관.

■ 2만 분의 1 확률…가족보다 가까운 '운명의 단짝'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세포를 이식할 정도로 유전자형이 일치할 확률, 얼마나 될까요?

한국 조혈모세포 은행협회에 따르면 그 확률은 0.005%, 2만분의 1 수준입니다.

심지어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일치할 확률은 5%에 불과하고, 형제·자매 간에는 25% 정도라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치료를 위해 해외에서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렇게 희박한 확률에도 유전자형이 일치한다면 '운명의 단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7년 기다림 끝에 '운명의 단짝'에 새 삶 선물한 새내기 공무원

최근 이런 '운명의 단짝'을 찾아 혈액암 치료를 도운 새내기 공무원이 있습니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에 근무하는 최현지 주무관입니다.

최 주무관은 대학교에 다니던 2014년, 한국 조혈모세포 은행협회에 '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로 등록했습니다.

조혈모세포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 다양한 혈액세포를 만드는 줄기세포입니다. 혈액을 만드는 '어머니 세포'라고도 합니다.

혈액암이나 백혈병과 같은 난치성 혈액질환치료하려면 건강한 조혈모세포의 이식이 필요합니다.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려면 앞에서 본 것처럼 유전자형이 일치해야 하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조직적합성항원(HLA)' 유전자형이 일치해야 합니다. 조직적합성항원은 체세포의 표면에 있는 단백질로, 이 항원의 유전자형이 일치하지 않으면 건강한 세포를 이식해도 몸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수천 명의 난치성 혈액질환 환자들이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2만분의 1 확률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2014년 2,761명이던 조혈모세포 이식 대기자 2018년 4,497명으로 62.9%나 증가했습니다.

평소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최 주무관도 대학생 시절, 이런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로 등록했습니다. 하지만 최 주무관의 바람과 달리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환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는데요.

기증 희망자로 등록한 지 7년여 만인 지난해 말, 한국 조혈모세포 은행협회로부터 반가운 연락을 받았습니다. 최 주무관과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혈액암 환자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최 주무관은 망설이지 않고 기증에 최종 동의했고, 건강검진과 조혈모세포 채취를 무사히 마치고 지난달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했습니다.

최 주무관은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는 과정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면서 " 누군가가 새 삶을 얻고 ,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신청을 받는 모습. (사진제공 : 한국 조혈모세포 은행협회)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신청을 받는 모습. (사진제공 : 한국 조혈모세포 은행협회)

■ 비혈연 조혈모세포 이식, 한 해 300여 명 불과…'막연한 두려움' 극복해야

최 주무관은 운명의 짝을 찾아 기증했지만, 아직도 수천 명의 난치병 환자가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기증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선 통계에서 보듯 조혈모세포 이식 대기자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신규 기증희망자2019년 20,996명에서 지난해 13,907명으로 줄었습니다. 이렇게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가 감소하는 이유는 '막연한 두려움'이나 '무관심'의 영향도 적지 않아 보이는데요.

질병관리청이 지난 2019년 전국의 만 19세 이상~60세 미만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혈모세포·제대혈 기증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6.9%는 '조혈모세포 기증 의향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막연한 두려움'이 40.9%로 가장 많았고, '무엇인지 몰라서'(32.8%), '주변에 실제 기증 사례를 접한 적이 없어서'(14.9%), '조혈모세포 기증희망등록 절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9.1%) 순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게다가 조혈모세포 기증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 중에서도 실제 등록한 비율은 11.6%에 불과했는데요. 의향이 있음에도 기증 희망 등록을 하지 않은 이유로는 ' 방법을 알지 못해서'가 38.8%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 실제로 등록하려니 주저하게 됨'(31.3%), ' 건강이 염려돼서'(15.9%) 등의 답변도 있었습니다.

실제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은 어렵지 않습니다. 한국 조혈모세포 은행협회 가톨릭 조혈모세포 은행, 대한적십자사, 생명나눔실천본부,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등 관련 기관에 상담한 뒤, 조직적합성항원 검사를 위해 3~5ml의 혈액을 채취하면 등록이 끝납니다.

최 주무관의 사례처럼 혈연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사례는 1년에 300여 건 정도입니다. 이식 대기자의 90% 이상은 해를 넘기며 '2만분의 1' 확률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최 주무관처럼 '운명의 단짝'에게 새 삶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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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만 분의 1’ 유전자 단짝에 새 삶 선물한 공무원
    • 입력 2021-03-10 07:03:33
    • 수정2021-03-10 13:44:40
    취재K
조혈모세포를 기증한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최현지 주무관.
■ 2만 분의 1 확률…가족보다 가까운 '운명의 단짝'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세포를 이식할 정도로 유전자형이 일치할 확률, 얼마나 될까요?

한국 조혈모세포 은행협회에 따르면 그 확률은 0.005%, 2만분의 1 수준입니다.

심지어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일치할 확률은 5%에 불과하고, 형제·자매 간에는 25% 정도라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치료를 위해 해외에서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렇게 희박한 확률에도 유전자형이 일치한다면 '운명의 단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7년 기다림 끝에 '운명의 단짝'에 새 삶 선물한 새내기 공무원

최근 이런 '운명의 단짝'을 찾아 혈액암 치료를 도운 새내기 공무원이 있습니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에 근무하는 최현지 주무관입니다.

최 주무관은 대학교에 다니던 2014년, 한국 조혈모세포 은행협회에 '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로 등록했습니다.

조혈모세포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 다양한 혈액세포를 만드는 줄기세포입니다. 혈액을 만드는 '어머니 세포'라고도 합니다.

혈액암이나 백혈병과 같은 난치성 혈액질환치료하려면 건강한 조혈모세포의 이식이 필요합니다.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려면 앞에서 본 것처럼 유전자형이 일치해야 하는데요. 정확히 말하면 '조직적합성항원(HLA)' 유전자형이 일치해야 합니다. 조직적합성항원은 체세포의 표면에 있는 단백질로, 이 항원의 유전자형이 일치하지 않으면 건강한 세포를 이식해도 몸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수천 명의 난치성 혈액질환 환자들이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2만분의 1 확률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2014년 2,761명이던 조혈모세포 이식 대기자 2018년 4,497명으로 62.9%나 증가했습니다.

평소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최 주무관도 대학생 시절, 이런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로 등록했습니다. 하지만 최 주무관의 바람과 달리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환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는데요.

기증 희망자로 등록한 지 7년여 만인 지난해 말, 한국 조혈모세포 은행협회로부터 반가운 연락을 받았습니다. 최 주무관과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혈액암 환자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최 주무관은 망설이지 않고 기증에 최종 동의했고, 건강검진과 조혈모세포 채취를 무사히 마치고 지난달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했습니다.

최 주무관은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는 과정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면서 " 누군가가 새 삶을 얻고 ,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신청을 받는 모습. (사진제공 : 한국 조혈모세포 은행협회)
■ 비혈연 조혈모세포 이식, 한 해 300여 명 불과…'막연한 두려움' 극복해야

최 주무관은 운명의 짝을 찾아 기증했지만, 아직도 수천 명의 난치병 환자가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기증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선 통계에서 보듯 조혈모세포 이식 대기자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신규 기증희망자2019년 20,996명에서 지난해 13,907명으로 줄었습니다. 이렇게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가 감소하는 이유는 '막연한 두려움'이나 '무관심'의 영향도 적지 않아 보이는데요.

질병관리청이 지난 2019년 전국의 만 19세 이상~60세 미만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혈모세포·제대혈 기증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6.9%는 '조혈모세포 기증 의향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막연한 두려움'이 40.9%로 가장 많았고, '무엇인지 몰라서'(32.8%), '주변에 실제 기증 사례를 접한 적이 없어서'(14.9%), '조혈모세포 기증희망등록 절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9.1%) 순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게다가 조혈모세포 기증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 중에서도 실제 등록한 비율은 11.6%에 불과했는데요. 의향이 있음에도 기증 희망 등록을 하지 않은 이유로는 ' 방법을 알지 못해서'가 38.8%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 실제로 등록하려니 주저하게 됨'(31.3%), ' 건강이 염려돼서'(15.9%) 등의 답변도 있었습니다.

실제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은 어렵지 않습니다. 한국 조혈모세포 은행협회 가톨릭 조혈모세포 은행, 대한적십자사, 생명나눔실천본부,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등 관련 기관에 상담한 뒤, 조직적합성항원 검사를 위해 3~5ml의 혈액을 채취하면 등록이 끝납니다.

최 주무관의 사례처럼 혈연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사례는 1년에 300여 건 정도입니다. 이식 대기자의 90% 이상은 해를 넘기며 '2만분의 1' 확률을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최 주무관처럼 '운명의 단짝'에게 새 삶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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