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돌다리도 두들기라는데…무단으로 남한강 다리 건넌 ‘197톤 화물차’

입력 2021.03.10 (12:01) 수정 2021.03.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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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속담입니다. 안전해 보여도 다시 한 번 점검해보라는 말인데요.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가 나면 그만큼 피해가 크기 때문이겠죠.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겪은 한국에선 과거는 물론 지금도 유념해야 할 말입니다.

하지만 최근 교량 설계 하중보다 5배 가까이 무거운 화물차량 3대가 남한강의 한 다리를 무단으로 건너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해당 화물차들은 인근의 다른 교량도 건너 다녔는데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안전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지난 3월 5일 새벽 2시 40분쯤, 변압기를 실은 197톤 화물차가 경기도 여주시 이포대교를 건너고 있는 모습지난 3월 5일 새벽 2시 40분쯤, 변압기를 실은 197톤 화물차가 경기도 여주시 이포대교를 건너고 있는 모습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 오늘 이포대교를 건넌다"

지난 4일, 한 시민이 "허가받지 않은 고중량 화물차가 오늘 자정 넘어 남한강 다리를 건널 예정이다"라고 제보해왔습니다. 위치는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이포대교였습니다.

제보를 듣고 직접 현장에 가봤습니다. 실제 자정이 넘은 5일 새벽 2시 40분쯤. 도로 표지판이 설치된 높이 정도의 화물을 실은 화물차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한 대씩 한 대씩 이포대교를 건너갔습니다.

날이 밝은 뒤 이포대교 인근의 한 공터에서 이 화물차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는 화물차이고, 무게는 얼마일까?

화물차의 정확한 무게도 날이 밝은 다음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시공업체, 운송업체 등에 확인해 보니 차량에 실린 내용물은 인근 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 들어가는 변압기였고 차량과 차량에 실린 변압기의 무게는 모두 합해 197톤이었습니다. 교량의 하중도 확인해보니, 약 40톤이었습니다.

■"배로 허가해줬다"

날이 밝은 뒤 바로 여주시청에 확인해봤습니다. 여주시청은 KBS 취재진이 묻기 전까지 해당 변압기가 이포대교를 통해 강을 건너간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포대교가 아니라 강에다가 배를 띄워 변압기를 옮기는 걸로 허가해줬다는 시청의 답변은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업체에 자세한 정황을 확인한 후 법률 검토를 거쳐 조치를 취한다는 답변도 함께 받았습니다. 이후 이틀이 지난 뒤에는 운송업체에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업체는 왜 배가 아닌 이포대교를 이용했을까.

운송업체 측은 "하천 점용에 대한 부분이 늦어지면서 사건이 발생했다"라며 "일정도 (정해져) 있었고, 변압기에 대한 부분은 (이미) 출발을 해버렸기 때문에 이포대교를 이용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전에 더 무거운 화물도 지나갔고 (그때 허가를 받으면서) 안전하다는 건 확보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단은 그쪽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법적으로 우리가 잘못한 건 맞다"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여주시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 화물차와 화물을 모두 합해 227.2톤인 발전소 기자재도 이포대교를 통과하게 해줬습니다. 이번 사건에 관계된 운송 업체와 화력발전소 시공사, 변압기 설치 회사 등을 취재해 보니 200톤이 넘는 기자재도 수십 번 이포대교를 건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만 변압기 운반에 관여한 또 다른 운송업체 관계자는 "저희는 일반 운송 차량이 아니라 특수 차량, 바퀴가 많이 달린 차량을 이용한다"라며 "특수 차량을 이용하면 일반 차량에 걸리는 하중보다 훨씬 적은 하중이 (다리에) 걸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계측을 꾸준히 하고 있고, (이전 227.2톤짜리의 경우) 정당하게 허가를 받아서 건넜다. 다리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3월 5일 촬영된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천서교 보강재 사진 지난 3월 5일 촬영된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천서교 보강재 사진
■"보강재는 원래 휘어지는 것"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197톤 변압기가 이포대교만 지나간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확인해보니 해당 화물차들은 인근에 있는 천서교 등도 지나갔고, 업체가 설치한 천서교 지지대 상당수는 휘어져 있었습니다.

시청 관계자는 "보강재는 업체가 평소 공사 차량 통행을 위해 하중을 계산하고 설치한 것"이라며 "원래부터 있던 교량구조물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취재진이 "지지대가 휘어져 있는데 혹시 봤는지"라고 묻자 시청 관계자는 "봤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보강재 놓는 이유가 교량 대신 휘어지라고 갖다 놓는 거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김상효 교수는 "만약에 제대로 된 지지대였다면 중차량이 지나간 뒤에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야 된다"라며 "지지대가 손상이 되는 순간부터 지지대 역할을 못 했기 때문에 교량이 지지대 없이 중차량을 통과시킨 걸로 예상된다. 당연히 교량에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3월 5일 차들이 이포대교를 건너고 있는 모습지난 3월 5일 차들이 이포대교를 건너고 있는 모습
■"정밀 점검 나서겠다"

해당 교량의 안전 검사 등을 책임지고 있는 경기도 건설본부는 KBS 취재가 시작된 뒤 이포대교에 대해 정밀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경기도 건설본부 관계자는 "총중량이 설계 하중을 넘어서면 다리에 보강재를 설치하든지 아니면 실험 등을 통해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라며 "보통의 경우 안전성 허가 신청이 들어오면 약속한 보강재를 제대로 설치했는지, 실험 등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현장에 나가서 확인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허가받지 않고 지나간 차량이 있어, 여주시에 공문을 보낸 뒤 운송회사 부담으로 정밀 점검을 선제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선 다리에 무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경기도 차원에서 정밀 점검에 나선다지만, 시민들은 불안한 마음입니다.

이포대교 바로 근처에서 몇 년째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C 씨는 "큰 차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면 조금 불안하다.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땐 건물이 흔들리는 게 느껴질 정도"라며 "다리 밑에 있을 땐 다리에서 소음이 '쿵쿵쿵' 심하게 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중량을 넘어선 차들이 이포대교를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많이 불안하다. 넓은 다리도 아니고 왔다 갔다 하는 (2)차선밖에 없는 데 불안한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전하다고 지레짐작이 되면 허가 없이 다리를 건너도 되는 걸까요? 또, '이전에 갔는데 별일 없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다리를 건너도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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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돌다리도 두들기라는데…무단으로 남한강 다리 건넌 ‘197톤 화물차’
    • 입력 2021-03-10 12:01:44
    • 수정2021-03-10 15:49:52
    취재후·사건후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속담입니다. 안전해 보여도 다시 한 번 점검해보라는 말인데요.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가 나면 그만큼 피해가 크기 때문이겠죠.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겪은 한국에선 과거는 물론 지금도 유념해야 할 말입니다.

하지만 최근 교량 설계 하중보다 5배 가까이 무거운 화물차량 3대가 남한강의 한 다리를 무단으로 건너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해당 화물차들은 인근의 다른 교량도 건너 다녔는데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안전에는 문제가 없을까요?

지난 3월 5일 새벽 2시 40분쯤, 변압기를 실은 197톤 화물차가 경기도 여주시 이포대교를 건너고 있는 모습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 오늘 이포대교를 건넌다"

지난 4일, 한 시민이 "허가받지 않은 고중량 화물차가 오늘 자정 넘어 남한강 다리를 건널 예정이다"라고 제보해왔습니다. 위치는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이포대교였습니다.

제보를 듣고 직접 현장에 가봤습니다. 실제 자정이 넘은 5일 새벽 2시 40분쯤. 도로 표지판이 설치된 높이 정도의 화물을 실은 화물차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한 대씩 한 대씩 이포대교를 건너갔습니다.

날이 밝은 뒤 이포대교 인근의 한 공터에서 이 화물차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는 화물차이고, 무게는 얼마일까?

화물차의 정확한 무게도 날이 밝은 다음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시공업체, 운송업체 등에 확인해 보니 차량에 실린 내용물은 인근 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 들어가는 변압기였고 차량과 차량에 실린 변압기의 무게는 모두 합해 197톤이었습니다. 교량의 하중도 확인해보니, 약 40톤이었습니다.

■"배로 허가해줬다"

날이 밝은 뒤 바로 여주시청에 확인해봤습니다. 여주시청은 KBS 취재진이 묻기 전까지 해당 변압기가 이포대교를 통해 강을 건너간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포대교가 아니라 강에다가 배를 띄워 변압기를 옮기는 걸로 허가해줬다는 시청의 답변은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업체에 자세한 정황을 확인한 후 법률 검토를 거쳐 조치를 취한다는 답변도 함께 받았습니다. 이후 이틀이 지난 뒤에는 운송업체에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렇다면 업체는 왜 배가 아닌 이포대교를 이용했을까.

운송업체 측은 "하천 점용에 대한 부분이 늦어지면서 사건이 발생했다"라며 "일정도 (정해져) 있었고, 변압기에 대한 부분은 (이미) 출발을 해버렸기 때문에 이포대교를 이용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전에 더 무거운 화물도 지나갔고 (그때 허가를 받으면서) 안전하다는 건 확보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단은 그쪽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법적으로 우리가 잘못한 건 맞다"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여주시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 화물차와 화물을 모두 합해 227.2톤인 발전소 기자재도 이포대교를 통과하게 해줬습니다. 이번 사건에 관계된 운송 업체와 화력발전소 시공사, 변압기 설치 회사 등을 취재해 보니 200톤이 넘는 기자재도 수십 번 이포대교를 건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만 변압기 운반에 관여한 또 다른 운송업체 관계자는 "저희는 일반 운송 차량이 아니라 특수 차량, 바퀴가 많이 달린 차량을 이용한다"라며 "특수 차량을 이용하면 일반 차량에 걸리는 하중보다 훨씬 적은 하중이 (다리에) 걸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계측을 꾸준히 하고 있고, (이전 227.2톤짜리의 경우) 정당하게 허가를 받아서 건넜다. 다리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3월 5일 촬영된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천서교 보강재 사진 ■"보강재는 원래 휘어지는 것"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197톤 변압기가 이포대교만 지나간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확인해보니 해당 화물차들은 인근에 있는 천서교 등도 지나갔고, 업체가 설치한 천서교 지지대 상당수는 휘어져 있었습니다.

시청 관계자는 "보강재는 업체가 평소 공사 차량 통행을 위해 하중을 계산하고 설치한 것"이라며 "원래부터 있던 교량구조물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취재진이 "지지대가 휘어져 있는데 혹시 봤는지"라고 묻자 시청 관계자는 "봤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보강재 놓는 이유가 교량 대신 휘어지라고 갖다 놓는 거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따라서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김상효 교수는 "만약에 제대로 된 지지대였다면 중차량이 지나간 뒤에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야 된다"라며 "지지대가 손상이 되는 순간부터 지지대 역할을 못 했기 때문에 교량이 지지대 없이 중차량을 통과시킨 걸로 예상된다. 당연히 교량에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3월 5일 차들이 이포대교를 건너고 있는 모습 ■"정밀 점검 나서겠다"

해당 교량의 안전 검사 등을 책임지고 있는 경기도 건설본부는 KBS 취재가 시작된 뒤 이포대교에 대해 정밀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경기도 건설본부 관계자는 "총중량이 설계 하중을 넘어서면 다리에 보강재를 설치하든지 아니면 실험 등을 통해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라며 "보통의 경우 안전성 허가 신청이 들어오면 약속한 보강재를 제대로 설치했는지, 실험 등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현장에 나가서 확인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허가받지 않고 지나간 차량이 있어, 여주시에 공문을 보낸 뒤 운송회사 부담으로 정밀 점검을 선제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일각에선 다리에 무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경기도 차원에서 정밀 점검에 나선다지만, 시민들은 불안한 마음입니다.

이포대교 바로 근처에서 몇 년째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C 씨는 "큰 차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면 조금 불안하다.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땐 건물이 흔들리는 게 느껴질 정도"라며 "다리 밑에 있을 땐 다리에서 소음이 '쿵쿵쿵' 심하게 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중량을 넘어선 차들이 이포대교를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많이 불안하다. 넓은 다리도 아니고 왔다 갔다 하는 (2)차선밖에 없는 데 불안한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전하다고 지레짐작이 되면 허가 없이 다리를 건너도 되는 걸까요? 또, '이전에 갔는데 별일 없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다리를 건너도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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