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순간] ‘봄’의 두 얼굴…슈만 vs 스트라빈스키

입력 2021.03.11 (06: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단골 소재 '봄'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봄'의 1악장 선율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경쾌하고 화사하게 표현한 바로크 음악의 걸작으로,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도 없이 사용된 덕분에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도 <사계>만큼 친숙한 곡입니다. 베토벤이 '봄'이라는 제목을 직접 붙이지는 않았다고 알려졌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주고받는 1악장의 첫 번째 주제를 듣고 있으면 그 따스한 분위기에 저절로 봄을 연상하게 됩니다. 왈츠의 황제로 불렸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 역시 생동감 넘치는 선율로 가득해, 매년 1월 1일 열리는 빈 신년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가 됐습니다.

이렇게 사계절 가운데 유독 '봄'을 다룬 작품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작곡가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겨울과 대비되는 봄의 상징성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합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나, 쇼팽의 에튀드 <겨울 바람>처럼 겨울을 내세운 작품들은 고통과 시련, 사색의 시간으로 계절을 묘사한 반면, '봄'을 다룬 작품들은 희망과 설렘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4월로 접어들며 급격히 온화해지는 날씨의 변화, 그 변화에 따른 내면의 감흥이 음악적 영감으로 이어졌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슈만과 클라라슈만과 클라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간직한 음악, 슈만 교향곡 1번 '봄'

하지만 '봄'의 의미를 보다 넓게 해석한 음악들도 있습니다. 바로 로베르트 슈만의 첫 번째 교향곡 '봄'이 그렇습니다. 슈만은 30대로 접어든 1840년, 유럽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비크와 결혼했습니다. 클라라보다 9살 연상이었던 슈만은 당시 심각한 손가락 부상으로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포기한 전업 작곡가였고, 반면 클라라는 천재적인 재능과 출중한 미모로 유럽에서 화려한 명성을 누리는 초특급 스타였습니다. 슈만은 두 사람의 결합을 완강히 반대한 클라라 집안과의 소송 끝에 결혼에 성공했고, 결혼 1년 만에 1번 교향곡을 발표했습니다.

이 교향곡은 슈만의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멘델스존의 지휘로, 1841년 3월 31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80년 전입니다. 봄을 알리는 듯한 트럼펫과 호른의 화려한 '팡파르'로 시작하는 이 음악은 당시 슈만의 감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온통 진한 행복감과 짙은 생동감에 도취해 있습니다. 슈만은 애초 네 개의 악장에 각각 '봄의 시작' '저녁' 즐거운 놀이' '만개'라는 소제목을 달았다가, 악보를 출판할 때 제목을 모두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모든 '새로움'을 상징하는 계절..."바꾸어라, 당신의 모든 것을. 봄이 가까이 왔다."

슈만은 이 곡이 시인 아돌프 뵈트거의 시 가운데 한 구절인 "바꾸어라, 당신의 모든 것을. 봄이 가까이 왔다." 에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때 봄에 대한 열망을 오케스트라에 조금이라도 불어넣어 주면 좋겠다." "봄과 관련된 모든 것이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요컨대 슈만의 봄은 단지 4계절의 시작이 아니라, '새로움'을 상징하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슈만의 작품세계에서 '봄'과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1번 교향곡의 성공적인 초연 이후 슈만은 <2번 교향곡>과 <만프레드 서곡>, 오페라 <게노베바> 등을 통해 베토벤의 계보를 잇는 독일 관현악의 거장으로서 입지를 굳혔습니다. 말년에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라인 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하고 정신병원에 갇히는 등 불행한 시간을 보냈지만, 슈만의 <교향곡 1번 '봄'>에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짧은 시간이 오래된 스냅 사진처럼 선명히 담겨 있습니다.


음악사 최악의 소동...'봄의 제전' 초연 무대

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는 20세기 음악사 최악의 소동으로 꼽히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신작 발레 음악 <봄의 제전> 초연 무대였습니다. '춤의 신'이라 불렸던 러시아 무용가 바츨라프 니진스키가 안무했고, 세계적인 지휘자 피에르 몽퇴가 지휘봉을 잡은, 그야말로 '드림팀'의 공연이었습니다. 유럽 음악계의 시선이 일제히 파리에 쏠린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합당한 현상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 "내 뒤에서 '닥쳐'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무대의 막이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국이 시작됐습니다. 유례가 없었던 오케스트라의 거친 불협화음과 극장 전체를 뒤흔들 듯한 타악기 연타, 무용수들의 원시적인 발구르기와 기괴한 손동작에 관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잠시 뒤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거친 관현악과 객석의 야유가 뒤섞인 샹젤리제 극장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객석에 앉아 있었던 스트라빈스키는 이날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공연 시작부터 작은 저항이 일어났다. 커튼이 올라가고 긴 머리에 안짱다리를 한 소녀들이 뛰어다니자 소동이 일어났다. 내 뒤에서 '닥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중략) 홀에서는 혼란이 계속되었고 나는 화가 나서 자리를 떴다. 그렇게 화난 적은 다시 없었다. 음악은 익숙했고 마음에 들었다. 나는 왜 사람들이 듣기도 전에 도발부터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급기야 관객들이 무대로 의자를 집어 던지는 지경에 이르자 경찰까지 출동했습니다. 이 파국이 끝난 뒤에도 평론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혹평을 퍼부었고, 제목 <봄의 제전>을 비꼬아 '봄의 학살'이란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파리와 런던에서 단 8차례 공연을 거친 뒤 사라진 이 음악,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관현악의 새로운 지평을 연 걸작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 음악의 어떤 점이 당대의 청중을 그토록 불편하게 만들었을까요?


'봄의 신'을 예찬하기 위한 이교도들의 의식...기괴하고도 역동적인 에너지

<봄의 제전>은 '봄의 신'을 예찬하기 위해 산 제물을 바치는 이교도들의 의식을 그린 작품입니다. 늙은 현자를 중심에 두고 둘러앉은 이교도들이 제물로 간택된 소녀의 춤을 지켜보는 과정을 묘사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봄'을 다룬 음악들이 선율과 악상으로 봄을 맞은 설렘을 드러냈다면, 이 작품은 기괴하고 역동적이면서 비릿한 원시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대지와 풍요, 다산을 상징하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예술적인 혁신에 관대했던 파리지앵 들조차 야유했던 생경한 음색과 파격적인 곡 전개는 전대미문의 충격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지휘를 했던 피에르 몽퇴조차 초연에 앞서 피아노로 <봄의 제전>을 들은 뒤 아내에게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나는 스트라빈스키가 그리 멀리 나가기도 전에 그가 미쳤다고 확신했어. 사정없이 내리치는 소리에 벽이 흔들렸고 그 친구는 발을 연신 구르며 앉았다 뛰어올랐지."

 앙리 마티스 〈춤〉 앙리 마티스 〈춤〉

대조적인 작품에서 드러난 봄의 '두 얼굴'

봄은 이렇게 서로 다른 얼굴로 음악에 녹아들었습니다. 새로운 시작과 설렘, 희망이라는 전통적인 상징으로 영감을 불어넣는가 하면, 원초적인 생명력으로 시대와 불화하며 음악사의 혁신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기사에서 소개한 두 작품, 슈만의 <교향곡 1번 '봄'>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서로 극명히 대조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음악이지만,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는 자연의 순환을 새로운 경지로 재해석한 위대한 작품들입니다. 이제 막 접어든 봄의 길목에서 한 번쯤 들어봄 직한 인류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예술의 순간] ‘봄’의 두 얼굴…슈만 vs 스트라빈스키
    • 입력 2021-03-11 06:01:40
    취재K
클래식 음악의 단골 소재 '봄'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도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봄'의 1악장 선율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경쾌하고 화사하게 표현한 바로크 음악의 걸작으로,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도 없이 사용된 덕분에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도 <사계>만큼 친숙한 곡입니다. 베토벤이 '봄'이라는 제목을 직접 붙이지는 않았다고 알려졌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주고받는 1악장의 첫 번째 주제를 듣고 있으면 그 따스한 분위기에 저절로 봄을 연상하게 됩니다. 왈츠의 황제로 불렸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왈츠> 역시 생동감 넘치는 선율로 가득해, 매년 1월 1일 열리는 빈 신년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가 됐습니다.

이렇게 사계절 가운데 유독 '봄'을 다룬 작품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작곡가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겨울과 대비되는 봄의 상징성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합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나, 쇼팽의 에튀드 <겨울 바람>처럼 겨울을 내세운 작품들은 고통과 시련, 사색의 시간으로 계절을 묘사한 반면, '봄'을 다룬 작품들은 희망과 설렘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4월로 접어들며 급격히 온화해지는 날씨의 변화, 그 변화에 따른 내면의 감흥이 음악적 영감으로 이어졌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슈만과 클라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간직한 음악, 슈만 교향곡 1번 '봄'

하지만 '봄'의 의미를 보다 넓게 해석한 음악들도 있습니다. 바로 로베르트 슈만의 첫 번째 교향곡 '봄'이 그렇습니다. 슈만은 30대로 접어든 1840년, 유럽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비크와 결혼했습니다. 클라라보다 9살 연상이었던 슈만은 당시 심각한 손가락 부상으로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포기한 전업 작곡가였고, 반면 클라라는 천재적인 재능과 출중한 미모로 유럽에서 화려한 명성을 누리는 초특급 스타였습니다. 슈만은 두 사람의 결합을 완강히 반대한 클라라 집안과의 소송 끝에 결혼에 성공했고, 결혼 1년 만에 1번 교향곡을 발표했습니다.

이 교향곡은 슈만의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멘델스존의 지휘로, 1841년 3월 31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80년 전입니다. 봄을 알리는 듯한 트럼펫과 호른의 화려한 '팡파르'로 시작하는 이 음악은 당시 슈만의 감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온통 진한 행복감과 짙은 생동감에 도취해 있습니다. 슈만은 애초 네 개의 악장에 각각 '봄의 시작' '저녁' 즐거운 놀이' '만개'라는 소제목을 달았다가, 악보를 출판할 때 제목을 모두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모든 '새로움'을 상징하는 계절..."바꾸어라, 당신의 모든 것을. 봄이 가까이 왔다."

슈만은 이 곡이 시인 아돌프 뵈트거의 시 가운데 한 구절인 "바꾸어라, 당신의 모든 것을. 봄이 가까이 왔다." 에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때 봄에 대한 열망을 오케스트라에 조금이라도 불어넣어 주면 좋겠다." "봄과 관련된 모든 것이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요컨대 슈만의 봄은 단지 4계절의 시작이 아니라, '새로움'을 상징하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슈만의 작품세계에서 '봄'과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1번 교향곡의 성공적인 초연 이후 슈만은 <2번 교향곡>과 <만프레드 서곡>, 오페라 <게노베바> 등을 통해 베토벤의 계보를 잇는 독일 관현악의 거장으로서 입지를 굳혔습니다. 말년에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라인 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하고 정신병원에 갇히는 등 불행한 시간을 보냈지만, 슈만의 <교향곡 1번 '봄'>에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짧은 시간이 오래된 스냅 사진처럼 선명히 담겨 있습니다.


음악사 최악의 소동...'봄의 제전' 초연 무대

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는 20세기 음악사 최악의 소동으로 꼽히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신작 발레 음악 <봄의 제전> 초연 무대였습니다. '춤의 신'이라 불렸던 러시아 무용가 바츨라프 니진스키가 안무했고, 세계적인 지휘자 피에르 몽퇴가 지휘봉을 잡은, 그야말로 '드림팀'의 공연이었습니다. 유럽 음악계의 시선이 일제히 파리에 쏠린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합당한 현상이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 "내 뒤에서 '닥쳐'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무대의 막이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국이 시작됐습니다. 유례가 없었던 오케스트라의 거친 불협화음과 극장 전체를 뒤흔들 듯한 타악기 연타, 무용수들의 원시적인 발구르기와 기괴한 손동작에 관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잠시 뒤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거친 관현악과 객석의 야유가 뒤섞인 샹젤리제 극장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당시 객석에 앉아 있었던 스트라빈스키는 이날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공연 시작부터 작은 저항이 일어났다. 커튼이 올라가고 긴 머리에 안짱다리를 한 소녀들이 뛰어다니자 소동이 일어났다. 내 뒤에서 '닥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중략) 홀에서는 혼란이 계속되었고 나는 화가 나서 자리를 떴다. 그렇게 화난 적은 다시 없었다. 음악은 익숙했고 마음에 들었다. 나는 왜 사람들이 듣기도 전에 도발부터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급기야 관객들이 무대로 의자를 집어 던지는 지경에 이르자 경찰까지 출동했습니다. 이 파국이 끝난 뒤에도 평론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혹평을 퍼부었고, 제목 <봄의 제전>을 비꼬아 '봄의 학살'이란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파리와 런던에서 단 8차례 공연을 거친 뒤 사라진 이 음악,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관현악의 새로운 지평을 연 걸작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 음악의 어떤 점이 당대의 청중을 그토록 불편하게 만들었을까요?


'봄의 신'을 예찬하기 위한 이교도들의 의식...기괴하고도 역동적인 에너지

<봄의 제전>은 '봄의 신'을 예찬하기 위해 산 제물을 바치는 이교도들의 의식을 그린 작품입니다. 늙은 현자를 중심에 두고 둘러앉은 이교도들이 제물로 간택된 소녀의 춤을 지켜보는 과정을 묘사했습니다. 앞서 소개한 '봄'을 다룬 음악들이 선율과 악상으로 봄을 맞은 설렘을 드러냈다면, 이 작품은 기괴하고 역동적이면서 비릿한 원시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대지와 풍요, 다산을 상징하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예술적인 혁신에 관대했던 파리지앵 들조차 야유했던 생경한 음색과 파격적인 곡 전개는 전대미문의 충격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지휘를 했던 피에르 몽퇴조차 초연에 앞서 피아노로 <봄의 제전>을 들은 뒤 아내에게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나는 스트라빈스키가 그리 멀리 나가기도 전에 그가 미쳤다고 확신했어. 사정없이 내리치는 소리에 벽이 흔들렸고 그 친구는 발을 연신 구르며 앉았다 뛰어올랐지."

 앙리 마티스 〈춤〉
대조적인 작품에서 드러난 봄의 '두 얼굴'

봄은 이렇게 서로 다른 얼굴로 음악에 녹아들었습니다. 새로운 시작과 설렘, 희망이라는 전통적인 상징으로 영감을 불어넣는가 하면, 원초적인 생명력으로 시대와 불화하며 음악사의 혁신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기사에서 소개한 두 작품, 슈만의 <교향곡 1번 '봄'>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서로 극명히 대조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음악이지만,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는 자연의 순환을 새로운 경지로 재해석한 위대한 작품들입니다. 이제 막 접어든 봄의 길목에서 한 번쯤 들어봄 직한 인류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