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님, LH 의혹 ‘패가망신’급 처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입력 2021.03.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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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무척 화가 난 듯합니다. 그제(11일) 정 총리는 "국민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패가망신'시켜야 한다는 강도 높은 발언도 쏟아냈습니다. 땅으로 추락한 부동산 대책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든 회복해 보려는 심정일 겁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어제(12일) 결국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LH 직원들에 대한 '패가망신급' 처벌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형법에 '부동산투기죄' 같은 건 없습니다. 노후를 위한 투자인지,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투기인지를 구분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왜 그런지 살펴보고 앞으로 어떤 수사가 필요한 건지 알아보겠습니다.

1. 부패방지법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LH 직원 13명이 경찰에 입건된 혐의인 '부패방지법'을 먼저 보겠습니다.

제7조의2(공직자의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 공직자는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려면 이들이 알게 된 개발 정보가 '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만약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이익을 취했다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그런데 이를 입증하는 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LH 신도시 지정업무는 경남 진주 LH 본사의 사업계획실이 주관합니다. 신도시나 공공택지 지구지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에, 광명 시흥을 3기 신도시로 지정하겠다는 계획이 있어도 LH 광명시흥본부 직원들이 '공식적으로는' 그 사실을 알기 힘듭니다. . 본사에서 신도시 지정업무를 하는 직원들만 암행출장을 다니면서 신도시 지정을 검토합니다. (물론 여러 정황상 개발 정보를 몰랐다는 이들의 항변을 국민들이 믿어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긴 합니다.)

2. 한국토지주택공사법
제22조(비밀누설금지 등) 공사의 임원 또는 직원이나 그 직에 있었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도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6조(미공개정보 이용행위의 금지) ① 공사의 임원 및 직원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아니한 업무와 관련된 정보를 이용하여 공사가 공급하는 주택이나 토지 등을 자기 또는 제3자가 공급받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법을 볼까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공사가 공급하는 주택이나 토지를 취득하게 되면 최대 5년의 징역과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이 법을 어겨서 처벌받은 직원은 한 명도 없습니다.

3. 공공주택 특별법
제9조 ② 다음 각 호의 기관 또는 업체에 종사하였거나 종사하는 자는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주택지구 지정 또는 지정 제안과 관련한 정보를 주택지구 지정 또는 지정 제안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해서는 아니 된다.
1. 국토교통부
2. 제6조제2항에 따라 주택지구의 지정을 제안하거나 제안하려고 하는 공공주택사업자
3. 제6조제5항 및 제8조제1항에 따라 협의하는 관계 중앙행정기관, 관할 지방자치단체, 지방공사 등 관계기관

공공주택특별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 직원들이 "광명 시흥이 개발될 거라는 건 일반인도 아는 사실"이라며 그냥 본인의 투자 '촉'으로 샀다고 주장한다면 적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KBS가 접촉한 간부급 직원도 "민간 개발을 기대하고 산 것이지, 신도시 지정될 줄 알았으면 안 샀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떠돌던 풍문을 술자리에서 들었다."라고 주장한다면?

결국, 어느 법을 적용하더라도 직무관련성이 관건입니다.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LH 직원들이 신도시 지정이나 개발정보를 직접 다루는 업무를 했다면 직무 관련성이 인정됩니다. 해당 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내부 문서나 휴대폰 압수수색 등으로 확인되면 더욱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땅을 산 직원들 대부분이 해당 업무와 자신은 상관이 없다, 풍문으로 들었다고 주장할 겁니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개발 정보를 술자리에서 들었다"고 주장할 경우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이 성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예컨대 LH 총무과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른 부서에서 추진하는 개발 정보를 우연히 술자리에서 듣고 이를 가족에게 말했거나 토지를 샀다면 그건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른 현직 간부급 검사도 "증권범죄나 부동산범죄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게 무척 까다로워 꼼꼼한 법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관련 수사 경험이 많고 전문성을 가진 수사인력을 투입해 검경 간 수사 협업이 최대한 잘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대출 사기나 차명 거래로 일단 잡을 수밖에

LH 직원들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무척 높기 때문에 합동수사본부는 어떻게든 이들을 처벌할 방법을 찾으려고 할 겁니다. 신도시 업무와 상관없는 직원이 땅을 사들인 것으로 드러나 직무 관련성 입증이 어려울 경우엔 결국 다른 쪽으로 처벌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게 행위 과정을 '쪼개서' 처벌하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대출 과정을 살펴봐 대출을 불법으로 받아낸 사실을 밝혀내거나, 차명 거래를 밝혀내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겁니다. 미공개 정보를 누설했거나 이를 통해 이득을 취했다는 '본질'이 아닌 '곁가지'로 처벌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농지법 위반은 가능할까?

해당 의혹을 처음 폭로한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는 현재로선 농지법 위반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허위로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해 농지를 취득한 혐의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농업경영계획서에 쓴 것과는 다른 작물을 심었다고 해서 농지법 위반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농지에 심은 작물이 '용버들'인지 '벼'인지보다, 자경 여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농업경영계획서에 스스로 농사를 짓겠다고 써놓고 다른 이들이 농사를 대신 짓게 시켰다면 이는 허위가 인정됩니다. 혹은 농사를 짓겠다고 해놓고 농지를 취득한 뒤 바로 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봤다면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농지법 위반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입니다.

처벌 만능주의의 함정

여당은 처벌을 강화한 'LH 5법' 통과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미공개 정보로 투기했을 경우 최대 무기징역에 처하자는 법안을 발의했고, 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특검 수사를 제안했습니다. 철저한 수사와 처벌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LH만 잡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변창흠 장관까지 사의를 표명하면서 당분간 부동산 정책의 혼선도 우려됩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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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리님, LH 의혹 ‘패가망신’급 처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 입력 2021-03-13 07:00:56
    취재K

정세균 국무총리가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에 무척 화가 난 듯합니다. 그제(11일) 정 총리는 "국민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패가망신'시켜야 한다는 강도 높은 발언도 쏟아냈습니다. 땅으로 추락한 부동산 대책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든 회복해 보려는 심정일 겁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어제(12일) 결국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LH 직원들에 대한 '패가망신급' 처벌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형법에 '부동산투기죄' 같은 건 없습니다. 노후를 위한 투자인지,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투기인지를 구분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왜 그런지 살펴보고 앞으로 어떤 수사가 필요한 건지 알아보겠습니다.

1. 부패방지법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LH 직원 13명이 경찰에 입건된 혐의인 '부패방지법'을 먼저 보겠습니다.

제7조의2(공직자의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 공직자는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부패방지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려면 이들이 알게 된 개발 정보가 '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합니다. 만약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이익을 취했다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그런데 이를 입증하는 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LH 신도시 지정업무는 경남 진주 LH 본사의 사업계획실이 주관합니다. 신도시나 공공택지 지구지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에, 광명 시흥을 3기 신도시로 지정하겠다는 계획이 있어도 LH 광명시흥본부 직원들이 '공식적으로는' 그 사실을 알기 힘듭니다. . 본사에서 신도시 지정업무를 하는 직원들만 암행출장을 다니면서 신도시 지정을 검토합니다. (물론 여러 정황상 개발 정보를 몰랐다는 이들의 항변을 국민들이 믿어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긴 합니다.)

2. 한국토지주택공사법
제22조(비밀누설금지 등) 공사의 임원 또는 직원이나 그 직에 있었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도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26조(미공개정보 이용행위의 금지) ① 공사의 임원 및 직원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아니한 업무와 관련된 정보를 이용하여 공사가 공급하는 주택이나 토지 등을 자기 또는 제3자가 공급받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법을 볼까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거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공사가 공급하는 주택이나 토지를 취득하게 되면 최대 5년의 징역과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하지만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이 법을 어겨서 처벌받은 직원은 한 명도 없습니다.

3. 공공주택 특별법
제9조 ② 다음 각 호의 기관 또는 업체에 종사하였거나 종사하는 자는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주택지구 지정 또는 지정 제안과 관련한 정보를 주택지구 지정 또는 지정 제안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해서는 아니 된다.
1. 국토교통부
2. 제6조제2항에 따라 주택지구의 지정을 제안하거나 제안하려고 하는 공공주택사업자
3. 제6조제5항 및 제8조제1항에 따라 협의하는 관계 중앙행정기관, 관할 지방자치단체, 지방공사 등 관계기관

공공주택특별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 직원들이 "광명 시흥이 개발될 거라는 건 일반인도 아는 사실"이라며 그냥 본인의 투자 '촉'으로 샀다고 주장한다면 적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KBS가 접촉한 간부급 직원도 "민간 개발을 기대하고 산 것이지, 신도시 지정될 줄 알았으면 안 샀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떠돌던 풍문을 술자리에서 들었다."라고 주장한다면?

결국, 어느 법을 적용하더라도 직무관련성이 관건입니다.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LH 직원들이 신도시 지정이나 개발정보를 직접 다루는 업무를 했다면 직무 관련성이 인정됩니다. 해당 정보를 유출한 사실이 내부 문서나 휴대폰 압수수색 등으로 확인되면 더욱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땅을 산 직원들 대부분이 해당 업무와 자신은 상관이 없다, 풍문으로 들었다고 주장할 겁니다. 한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개발 정보를 술자리에서 들었다"고 주장할 경우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이 성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예컨대 LH 총무과에서 일하는 사람이 다른 부서에서 추진하는 개발 정보를 우연히 술자리에서 듣고 이를 가족에게 말했거나 토지를 샀다면 그건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른 현직 간부급 검사도 "증권범죄나 부동산범죄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게 무척 까다로워 꼼꼼한 법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관련 수사 경험이 많고 전문성을 가진 수사인력을 투입해 검경 간 수사 협업이 최대한 잘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대출 사기나 차명 거래로 일단 잡을 수밖에

LH 직원들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무척 높기 때문에 합동수사본부는 어떻게든 이들을 처벌할 방법을 찾으려고 할 겁니다. 신도시 업무와 상관없는 직원이 땅을 사들인 것으로 드러나 직무 관련성 입증이 어려울 경우엔 결국 다른 쪽으로 처벌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게 행위 과정을 '쪼개서' 처벌하는 방식입니다. 예컨대 대출 과정을 살펴봐 대출을 불법으로 받아낸 사실을 밝혀내거나, 차명 거래를 밝혀내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겁니다. 미공개 정보를 누설했거나 이를 통해 이득을 취했다는 '본질'이 아닌 '곁가지'로 처벌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농지법 위반은 가능할까?

해당 의혹을 처음 폭로한 참여연대 김남근 변호사는 현재로선 농지법 위반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허위로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해 농지를 취득한 혐의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농업경영계획서에 쓴 것과는 다른 작물을 심었다고 해서 농지법 위반이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농지에 심은 작물이 '용버들'인지 '벼'인지보다, 자경 여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농업경영계획서에 스스로 농사를 짓겠다고 써놓고 다른 이들이 농사를 대신 짓게 시켰다면 이는 허위가 인정됩니다. 혹은 농사를 짓겠다고 해놓고 농지를 취득한 뒤 바로 팔아 막대한 시세차익을 봤다면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농지법 위반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입니다.

처벌 만능주의의 함정

여당은 처벌을 강화한 'LH 5법' 통과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미공개 정보로 투기했을 경우 최대 무기징역에 처하자는 법안을 발의했고, 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특검 수사를 제안했습니다. 철저한 수사와 처벌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LH만 잡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변창흠 장관까지 사의를 표명하면서 당분간 부동산 정책의 혼선도 우려됩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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