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10년②…표류하는 ‘탈원전’ 논의, 과제는?

입력 2021.03.13 (15:12) 수정 2021.03.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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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폭발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 주변 모습 (사진:도쿄전력)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폭발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 주변 모습 (사진: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0년이 지났습니다.

이후 우리나라도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탈원전 정책을 시작한 지 어느덧 4년이 지났는데요.

그러나 관련 논의는 사회적 갈등만 부추기며 표류하고 있습니다.

■ '탈원전' 정책 어디까지 왔나…'장기적 목표 제시했지만 뚜렷한 변화 없어'

지난 2017년 6월, 현 정부는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을 선언했습니다.

 2017년 6월 19일 문 대통령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기념사 “탈핵 시대 선언” 2017년 6월 19일 문 대통령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기념사 “탈핵 시대 선언”

이후 같은 해 12월 30.3%인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2030년까지 23.9%로 축소한다는 내용이 담긴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했고요.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는 한국판 뉴딜 사업의 한 축인 '그린 뉴딜'에 73조를 투입하고,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이 0인 탄소 중립 사회를 만들겠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러나 세부 계획이 없는 공허한 선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위 전력수급기본계획이나 국제사회에 제출된 장기 저탄소발전전략을 살펴봐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없기 때문인데요.

이전 정부와 비교해서 설비용량도 줄지 않았습니다. 현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2년 이후에야 노후 원전 폐쇄로 인한 설비용량 감축이 예상되는 데다, 이마저도 지난해 확정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감축 시점이 2022년에서 2024년으로 미뤄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9차 전력수급계획」 원전 전망, 산업통상자원부 「9차 전력수급계획」 원전 전망, 산업통상자원부

■ 탈원전 '엇박자' 속 원전 지역 불만 '최고조'

이처럼 탈원전 정책이 제대로 달성되지 못하면서 원전 지역 현장의 혼란과 반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원전 부지로 지정됐다가 최근 해제된 경북 영덕의 경우 원전 유치 특별지원금 380억 원을 반납해야 할 처지가 됐는데요.

백지화 발표 이후 지난 9년간 개발 계획과 이주 대책 무산 등으로 갈등과 분쟁이 이어졌지만, 피해 보상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희진 / 영덕군수
"해당 지역에 대한 배려 없는 국가정책의 변동으로 인구 4만이 조금 안되는 우리 군에 모든 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경북 울진에서도 원전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신한울 3, 4호기의 경우 지난 2017년 건설 중단 결정으로 이미 지난 2월 인가 기간이 종료돼야 했지만, 지역과 원전산업계 등의 반발이 잇따르면서 인가 기간이 2023년 말까지 연장됐습니다.

탈원전 정책과는 상반된 결정. 이렇다 보니 찬반 양측의 공방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상경 시위 등 크고 작은 잡음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 갈등 해결 위한 '공론화' 이후에도…갈등 '여전'

이 같은 원전 갈등을 줄이고 소통과 합의를 이끌기 위해 국민 의견을 듣고 사회적 갈등 현안을 해결하는 '공론화' 방식이 도입됐는데요.

앞서 정부는 지난 2017년 6월, 찬반이 뜨겁던 신고리 5, 6호기 건설 여부를 공론 조사를 통해 결론 낸 바 있습니다.

3개월에 걸쳐 진행된 공론 조사 결과, 신고리 5, 6호기 건설은 재개, 탈원전 정책은 그대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공론화를 통한 의사 결정을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 공론화 과정을 갈등 해결의 모델로 삼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후 원전 찬반 양측에서 공론화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법적 소송과 감사 청구 등에 나서면서 갈등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지난 2019년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를 위해 출범한 재검토 위원회에서도 파행이 빚어졌는데요. 시작부터 환경단체가 이해당사자가 배제됐다는 이유로 탈퇴한 데 이어, 이후 위원장까지 사임하는 등 갈등이 격화된 바 있습니다.

2020년 10월 20일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증설 결정 이후에도 벌어진 갈등 현장2020년 10월 20일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증설 결정 이후에도 벌어진 갈등 현장

결국, 이해 당사자들이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 공론화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고, 파행을 거듭해온 게 여태까지의 공론화입니다.

뫼비우스의 띠 40년…공정한 결론과 수용을 위한 과제는?

공론화 도입에도 원전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 공론화가 문제 해결이 아닌 명분 쌓기용으로 진행된 탓이란 지적입니다.

이승협/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탈원전이 다른 나라에서는 환경과 기후변화의 문제, 에너지 전환의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안보 문제와 엮여 있고 또 이 안보라고 하는 건 결국 이념적 대결이라고 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선택적인 자기 선호를 가지고 결론을 정해놓은 공론장에 누가 들어가려고 하느냐, 싸우러 간다라는 거죠. 합의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따라서 공론화 첫 단계부터 시민 배심원제 등 이해 당사자 특성에 맞는 조사 방법을 동원하고, 공론 형성과 파악은 공론화위원회가, 이해당사자 간 조정과 공론 추진은 정부가 하는 등 책임과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더불어 원자력산업 전반의 허가나 안전을 관리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기구인 것처럼, 공론화 기구의 지위도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노진철/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공론화위원회를 그냥 여는 것이 해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결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구속성을 갖게 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고."

단순 다수결이나 여론조사 형태를 넘어 다양한 차원의 공공 토론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한국갈등학회장
"한편으로는 전국적 단위에서, 또 한편으로는 원전이 소재한 각 지역 단위로 조정회의를 거쳐서 답안을 만들어 낸다면 충분히 우리도 지금처럼 싸우지 않고."

무엇보다 공론화의 성패 여부는 정치 논리나 속도가 아닌 투명성과 공정성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인데요.

원전의 역사만큼 오래된 갈등의 역사, 이제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아 원전 분야 공론화에도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요?

[연관기사]
[후쿠시마 10년]① 후쿠시마 원전사고 10년…원전 안전 현주소는?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34302&ref=A
[후쿠시마 10년]② 떠나려는 자도, 남으려는 자도…“살고 싶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35325&ref=A
[후쿠시마 10년]③ 탈원전 ‘엇박자’…경북은 소외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36388&ref=A
[후쿠시마 10년]④ 탈원전 4년…지역 혼란은 현재진행형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37111&ref=A
[후쿠시마 10년]⑤ 뫼비우스의 띠 40년…공정한 결론과 수용 위한 과제는?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37977&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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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쿠시마 10년②…표류하는 ‘탈원전’ 논의, 과제는?
    • 입력 2021-03-13 15:12:45
    • 수정2021-03-13 15:14:52
    취재K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폭발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 주변 모습 (사진: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0년이 지났습니다.

이후 우리나라도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탈원전 정책을 시작한 지 어느덧 4년이 지났는데요.

그러나 관련 논의는 사회적 갈등만 부추기며 표류하고 있습니다.

■ '탈원전' 정책 어디까지 왔나…'장기적 목표 제시했지만 뚜렷한 변화 없어'

지난 2017년 6월, 현 정부는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을 선언했습니다.

 2017년 6월 19일 문 대통령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기념사 “탈핵 시대 선언”
이후 같은 해 12월 30.3%인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2030년까지 23.9%로 축소한다는 내용이 담긴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했고요.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는 한국판 뉴딜 사업의 한 축인 '그린 뉴딜'에 73조를 투입하고,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이 0인 탄소 중립 사회를 만들겠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러나 세부 계획이 없는 공허한 선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위 전력수급기본계획이나 국제사회에 제출된 장기 저탄소발전전략을 살펴봐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없기 때문인데요.

이전 정부와 비교해서 설비용량도 줄지 않았습니다. 현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2년 이후에야 노후 원전 폐쇄로 인한 설비용량 감축이 예상되는 데다, 이마저도 지난해 확정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감축 시점이 2022년에서 2024년으로 미뤄졌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9차 전력수급계획」 원전 전망, 산업통상자원부
■ 탈원전 '엇박자' 속 원전 지역 불만 '최고조'

이처럼 탈원전 정책이 제대로 달성되지 못하면서 원전 지역 현장의 혼란과 반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원전 부지로 지정됐다가 최근 해제된 경북 영덕의 경우 원전 유치 특별지원금 380억 원을 반납해야 할 처지가 됐는데요.

백지화 발표 이후 지난 9년간 개발 계획과 이주 대책 무산 등으로 갈등과 분쟁이 이어졌지만, 피해 보상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희진 / 영덕군수
"해당 지역에 대한 배려 없는 국가정책의 변동으로 인구 4만이 조금 안되는 우리 군에 모든 피해가 증가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경북 울진에서도 원전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신한울 3, 4호기의 경우 지난 2017년 건설 중단 결정으로 이미 지난 2월 인가 기간이 종료돼야 했지만, 지역과 원전산업계 등의 반발이 잇따르면서 인가 기간이 2023년 말까지 연장됐습니다.

탈원전 정책과는 상반된 결정. 이렇다 보니 찬반 양측의 공방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상경 시위 등 크고 작은 잡음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 갈등 해결 위한 '공론화' 이후에도…갈등 '여전'

이 같은 원전 갈등을 줄이고 소통과 합의를 이끌기 위해 국민 의견을 듣고 사회적 갈등 현안을 해결하는 '공론화' 방식이 도입됐는데요.

앞서 정부는 지난 2017년 6월, 찬반이 뜨겁던 신고리 5, 6호기 건설 여부를 공론 조사를 통해 결론 낸 바 있습니다.

3개월에 걸쳐 진행된 공론 조사 결과, 신고리 5, 6호기 건설은 재개, 탈원전 정책은 그대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공론화를 통한 의사 결정을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 공론화 과정을 갈등 해결의 모델로 삼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후 원전 찬반 양측에서 공론화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법적 소송과 감사 청구 등에 나서면서 갈등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지난 2019년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를 위해 출범한 재검토 위원회에서도 파행이 빚어졌는데요. 시작부터 환경단체가 이해당사자가 배제됐다는 이유로 탈퇴한 데 이어, 이후 위원장까지 사임하는 등 갈등이 격화된 바 있습니다.

2020년 10월 20일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증설 결정 이후에도 벌어진 갈등 현장
결국, 이해 당사자들이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 공론화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고, 파행을 거듭해온 게 여태까지의 공론화입니다.

뫼비우스의 띠 40년…공정한 결론과 수용을 위한 과제는?

공론화 도입에도 원전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 공론화가 문제 해결이 아닌 명분 쌓기용으로 진행된 탓이란 지적입니다.

이승협/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탈원전이 다른 나라에서는 환경과 기후변화의 문제, 에너지 전환의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안보 문제와 엮여 있고 또 이 안보라고 하는 건 결국 이념적 대결이라고 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선택적인 자기 선호를 가지고 결론을 정해놓은 공론장에 누가 들어가려고 하느냐, 싸우러 간다라는 거죠. 합의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따라서 공론화 첫 단계부터 시민 배심원제 등 이해 당사자 특성에 맞는 조사 방법을 동원하고, 공론 형성과 파악은 공론화위원회가, 이해당사자 간 조정과 공론 추진은 정부가 하는 등 책임과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더불어 원자력산업 전반의 허가나 안전을 관리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기구인 것처럼, 공론화 기구의 지위도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노진철/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공론화위원회를 그냥 여는 것이 해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결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구속성을 갖게 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고."

단순 다수결이나 여론조사 형태를 넘어 다양한 차원의 공공 토론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한국갈등학회장
"한편으로는 전국적 단위에서, 또 한편으로는 원전이 소재한 각 지역 단위로 조정회의를 거쳐서 답안을 만들어 낸다면 충분히 우리도 지금처럼 싸우지 않고."

무엇보다 공론화의 성패 여부는 정치 논리나 속도가 아닌 투명성과 공정성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인데요.

원전의 역사만큼 오래된 갈등의 역사, 이제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아 원전 분야 공론화에도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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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34302&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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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10년]③ 탈원전 ‘엇박자’…경북은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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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10년]④ 탈원전 4년…지역 혼란은 현재진행형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37111&ref=A
[후쿠시마 10년]⑤ 뫼비우스의 띠 40년…공정한 결론과 수용 위한 과제는?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37977&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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