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中 한한령’ 풀려면 이렇게?…제작자에게 직접 들었다

입력 2021.03.14 (07:00) 수정 2021.03.1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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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라면 오늘(14일)은 중국 극장에 엑소 세훈이 주인공을 맡은 '캣맨(아애묘성인)'이 개봉되는 날입니다.

중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명당', '챔피언'의 박희곤 감독이 촬영하고, 그룹 엑소의 세훈이 주인공을 맡은 이른바 '한중 합작품'입니다.

마법에 걸려 고양이로 변신하는 남자 주인공 세훈이, 좋아하는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습니다. 촬영은 2016년부터 시작돼 2017년 끝났는데요. 그로부터 무려 4년이 지난 뒤 '개봉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4년간의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영화는 또다시 개봉이 연기된 상태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 촬영은 2016년, 개봉은 2021년?…왜?

2016년 하반기, 중국은 우리나라에서 사드 배치 논의가 이뤄지면서부터 공공연히 '징벌'과 '처벌'을 언급했습니다. 실제 2017년 3월부터 중국인 한국 단체여행이 중단됐고요.

사드가 전격 배치된 4월부터는 우리가 '한한령'이라고 불리는 중국내 한류 금지령의 분위기가 널리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 바람에 그 무렵 한중 합작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됐거나 제작 중이었던 영화·드라마 등이 전격 취소되거나 중단됐습니다. 영화 '캣맨'은 바로 '한한령'에 타격을 입은 대표작이 된 셈이죠.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 당시 제작됐던 남녀 주인공 가운데 최소 1명이 한국인인 한중 합작 영화나 드라마는 현재까지도 45개가 상영 보류돼 있습니다.

 한국인 여자 조연이 얼굴이 컴퓨터 그래픽 작업으로 바뀐 뒤 방영된 중국 드라마 ‘좋은 아내’ 한국인 여자 조연이 얼굴이 컴퓨터 그래픽 작업으로 바뀐 뒤 방영된 중국 드라마 ‘좋은 아내’

심지어 제작을 이미 완료했지만 사라질 위기에 놓인 드라마 '호처자(好妻子·좋은 아내)'는 원래 한국인 여자 조연의 얼굴을 AI 그래픽 기술로 모두 바꾼 뒤에야 방영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 "이번에는 개봉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지난해 11월부터 한한령 해제를 암시하는 소식들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한중 두 나라 외교장관들이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을 계기로 2021년과 2022년을 '한중 문화 교류의 해'로 지정하면서부터입니다.

올 초 두 나라 정상 역시 전화통화를 하며 문화 교류를 활성화하자고 뜻을 모은 데 이어, 2월 국회 외교부 업무보고에서는 "양국 교류·협력을 전면 복원"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엑소 세훈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 ‘캣맨’의 한 장면 (출처: 영화 배급사 SNS) 엑소 세훈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 ‘캣맨’의 한 장면 (출처: 영화 배급사 SNS)

이런 분위기 속에 개봉이 예고된 영화 '캣맨', 그래서 이 영화는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개봉 소식이 전해진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개봉이 잠정 중단된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중국 영화 표 예매 사이트 등에서는 영상과 포스터가 삭제됐고 왜 개봉이 미뤄졌는지, 언제 다시 개봉하는지 등의 공지도 현재 없는 상태인데요.

인터넷상에는 일부 애국주의자들이 한국인 주인공 등을 문제 삼아 '영화를 고발하면서 개봉이 연기된 것 아니냐'는 추측성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중국 SNS 웨이보에 올라온 개봉 연기 관련 글들 (출처: 웨이보) 중국 SNS 웨이보에 올라온 개봉 연기 관련 글들 (출처: 웨이보)

한편으로는 '한한령' 해제를 기다리고 있는 중국인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계기도 됐는데요.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던 영화의 개봉이 돌연 연기되면서 한한령이 곧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은 다시 한풀 꺾인 상황입니다.

한한령 풀려면 이렇게?…한중 합작 제작자에게 직접 들었다

한중 합작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윤창업 '문와쳐' 제작사 대표에게 이번 일과 관련해 질문했습니다.

윤 대표는 개봉 연기에 관해 이야기 하기 전에 '한한령'의 시작부터 꺼냈는데요.


그는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한령을 내린 적이 없다는 점을 먼저 언급했습니다.

윤 대표는 "한한령을 한 적이 없는데 영화가 개봉하면 '한한령이 해제됐구나!'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한한령을 내린 적이 없는데, 이번 개봉이 해제라고 한다면 중국으로서는 한한령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죠.

특히 엑소 세훈이라는 아이돌의 출연과 한국 감독이 촬영했다는 점 때문에 한중 두 나라 모두에서 관심이 쏠리면서 부담은 더 커졌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윤 대표는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영화든지 드라마가 허용되면 그러려니 하면서" 주목을 덜 받게 해 중국인들의 정서를 건들지 않는 것이 한한령 해제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한중 교류가 이전에는 활발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활발하게 해봅시다.' 이렇게 한한령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진행되면 중국으로서는 덜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겁니다.

특히 "이번 일로 '그러면 그렇지!', '또 안되는구나!' 식의 이분법적인 시각보다는 자연스럽게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그의 말처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교류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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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中 한한령’ 풀려면 이렇게?…제작자에게 직접 들었다
    • 입력 2021-03-14 07:00:44
    • 수정2021-03-14 15:18:49
    특파원 리포트

예정대로라면 오늘(14일)은 중국 극장에 엑소 세훈이 주인공을 맡은 '캣맨(아애묘성인)'이 개봉되는 날입니다.

중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명당', '챔피언'의 박희곤 감독이 촬영하고, 그룹 엑소의 세훈이 주인공을 맡은 이른바 '한중 합작품'입니다.

마법에 걸려 고양이로 변신하는 남자 주인공 세훈이, 좋아하는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습니다. 촬영은 2016년부터 시작돼 2017년 끝났는데요. 그로부터 무려 4년이 지난 뒤 '개봉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4년간의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영화는 또다시 개봉이 연기된 상태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 촬영은 2016년, 개봉은 2021년?…왜?

2016년 하반기, 중국은 우리나라에서 사드 배치 논의가 이뤄지면서부터 공공연히 '징벌'과 '처벌'을 언급했습니다. 실제 2017년 3월부터 중국인 한국 단체여행이 중단됐고요.

사드가 전격 배치된 4월부터는 우리가 '한한령'이라고 불리는 중국내 한류 금지령의 분위기가 널리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 바람에 그 무렵 한중 합작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됐거나 제작 중이었던 영화·드라마 등이 전격 취소되거나 중단됐습니다. 영화 '캣맨'은 바로 '한한령'에 타격을 입은 대표작이 된 셈이죠.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 당시 제작됐던 남녀 주인공 가운데 최소 1명이 한국인인 한중 합작 영화나 드라마는 현재까지도 45개가 상영 보류돼 있습니다.

 한국인 여자 조연이 얼굴이 컴퓨터 그래픽 작업으로 바뀐 뒤 방영된 중국 드라마 ‘좋은 아내’
심지어 제작을 이미 완료했지만 사라질 위기에 놓인 드라마 '호처자(好妻子·좋은 아내)'는 원래 한국인 여자 조연의 얼굴을 AI 그래픽 기술로 모두 바꾼 뒤에야 방영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 "이번에는 개봉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지난해 11월부터 한한령 해제를 암시하는 소식들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한중 두 나라 외교장관들이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을 계기로 2021년과 2022년을 '한중 문화 교류의 해'로 지정하면서부터입니다.

올 초 두 나라 정상 역시 전화통화를 하며 문화 교류를 활성화하자고 뜻을 모은 데 이어, 2월 국회 외교부 업무보고에서는 "양국 교류·협력을 전면 복원"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엑소 세훈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 ‘캣맨’의 한 장면 (출처: 영화 배급사 SNS)
이런 분위기 속에 개봉이 예고된 영화 '캣맨', 그래서 이 영화는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개봉 소식이 전해진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개봉이 잠정 중단된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중국 영화 표 예매 사이트 등에서는 영상과 포스터가 삭제됐고 왜 개봉이 미뤄졌는지, 언제 다시 개봉하는지 등의 공지도 현재 없는 상태인데요.

인터넷상에는 일부 애국주의자들이 한국인 주인공 등을 문제 삼아 '영화를 고발하면서 개봉이 연기된 것 아니냐'는 추측성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중국 SNS 웨이보에 올라온 개봉 연기 관련 글들 (출처: 웨이보)
한편으로는 '한한령' 해제를 기다리고 있는 중국인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계기도 됐는데요.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던 영화의 개봉이 돌연 연기되면서 한한령이 곧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은 다시 한풀 꺾인 상황입니다.

한한령 풀려면 이렇게?…한중 합작 제작자에게 직접 들었다

한중 합작으로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윤창업 '문와쳐' 제작사 대표에게 이번 일과 관련해 질문했습니다.

윤 대표는 개봉 연기에 관해 이야기 하기 전에 '한한령'의 시작부터 꺼냈는데요.


그는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한령을 내린 적이 없다는 점을 먼저 언급했습니다.

윤 대표는 "한한령을 한 적이 없는데 영화가 개봉하면 '한한령이 해제됐구나!' 인식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한한령을 내린 적이 없는데, 이번 개봉이 해제라고 한다면 중국으로서는 한한령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죠.

특히 엑소 세훈이라는 아이돌의 출연과 한국 감독이 촬영했다는 점 때문에 한중 두 나라 모두에서 관심이 쏠리면서 부담은 더 커졌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윤 대표는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영화든지 드라마가 허용되면 그러려니 하면서" 주목을 덜 받게 해 중국인들의 정서를 건들지 않는 것이 한한령 해제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한중 교류가 이전에는 활발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활발하게 해봅시다.' 이렇게 한한령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진행되면 중국으로서는 덜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겁니다.

특히 "이번 일로 '그러면 그렇지!', '또 안되는구나!' 식의 이분법적인 시각보다는 자연스럽게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그의 말처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교류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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