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조합 가입?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어요”

입력 2021.03.15 (07:00) 수정 2021.03.1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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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택조합 가입 계약 신중히 판단하세요”

서울 은평구의 한 사거리에 걸린 현수막엔 이런 경고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지역주택조합 관련 피해 문의가 이어지자 관할구청이 안내에 나선 겁니다. 현수막 주변 주택가는 2년 전, 한 지역주택조합이 3백 세대 규모 아파트를 짓겠다며 사업을 추진 중인 곳입니다.

2년 전, 조합이 운영하는 홍보관을 찾은 백기수 씨는 1~2차 계약금 5천만 원을 내고 조합에 가입했습니다. 당시 분양 직원은 “사업 부지의 절반 정도 확보했다”면서 “부지에 안에 있는 상가를 매입했기 때문에 늦어도 2021년엔 착공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역세권인데도 주변 시세보다 20% 저렴하게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데, 지금 가입해야 동·호수를 지정할 수 있다는 말에 백 씨는 서둘러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당시 조합 측은 ①계약서에 명시된 분담금 외에 추가 분담금은 없다 (일부 조건 예외) ②사업 계획 불가 시 납부금 전액 100% 환불보장 이라고 적힌 ‘안심보장증서’를 줬습니다.

단순 변심으로 탈퇴할 경우에도 업무대행비 2천 5백만 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돈은 환불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백 씨는 뉴스에서 보던 지역주택조합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착공한단 말만 믿었는데”…조합원들, 검찰에 고소장 제출

하지만 백 씨의 기대와 달리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계약금도 지금까지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백 씨와 함께 찾아간 조합 사무실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백 씨는 “계약금을 일부라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조합 추진위원장은 연락을 안 받고, 시행사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며 환불을 거절했다”면서 “피땀흘려 번 돈인데 너무 분하고, 누가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한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결국 백 씨 등 조합원 130명은 추진위원장과 시행사 관계자 2명을 사기와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했습니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조합 가입계약을 체결할 당시 들었던 설명과 달리 상가는 소송이 진행중이고, 교회도 사업에 참여한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했다”면서 “토지 확보 비율을 속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가입계약을 할 때 동·호수를 지정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면서 “조합 측이 제공한 자료를 보면 환불을 해줄 수 있을 정도의 계약금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고소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 사건을 직접 수사 중인 검찰은 내일(16일) 고소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시행사 측 “일부 조합원이 사실관계 왜곡…사업 정상 추진”

시행사 측 관계자는 KBS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일부 조합원이 의도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면서 “토지 매입과 환불 조치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은평구청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지역주택조합사업 구역현황’을 보면, 지난 1월 기준 해당 조합의 토지 동의율은 16%입니다. 구청 관계자는 “등기부등본 등을 토대로 확인한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행사 측은 “관할 구청에 조합원 모집 신고를 할 때 35% 정도 토지 사용권을 확보했다고 신고했고, 구청도 이를 받아들였다”면서 “ 지난해 상반기까지 동의 및 소유권 이전하기로 계약한 것까지 합치면 현재 60%정도 토지를 확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조합원들이 계약에 따라 내야 할 계약금을 내지 않아서 상가 매입 중도금을 못 냈다”고 덧붙였습니다.

시행사 측은 또, “환불은 공식 절차에 따라서 진행되고 있다”면서 “계약서에는 업무대행비를 제외하고 환불한다고 했는데 전액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회사도 사업 시작 전에 투입한 금액이 있고, 조합원들과 함께 진행하는 사업인만큼 협조가 중요하다”면서 “조합원에게 공개한 ‘계약금 사용 내역’을 토대로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실제 토지 확보 비율 확인해야”

사업구역이 확정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과 달리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들이 아파트가 들어설 부지에 있는 건물과 토지 주인들을 설득하고 적당한 가격으로 매입해야 합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사업마다 제각각입니다.

[연관기사] “내 집 마련 꿈꿨는데”…땅은 사라지고 빚만 남은 지역주택조합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25684

2019년, KBS가 각 지자체에 등록된 전국 지역주택조합 현황을 분석한 결과, 690개 지역주택조합(추진위 포함) 가운데 170개(24.6%)만이 아파트를 지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합 설립 인가를 받고도 2년이 지나도록 땅 매입조차 마무리하지 못한 곳은 92개나 됐습니다.

때문에 지역주택조합이 광고하는 토지확보비율을 그대로 믿지 말고, 관할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는 것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전문가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역주택조합 관련 기준이 계속 강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면서 “신중하게 조합 가입을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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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15 07:00:44
    • 수정2021-03-15 15:14:47
    취재K

“지역주택조합 가입 계약 신중히 판단하세요”

서울 은평구의 한 사거리에 걸린 현수막엔 이런 경고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지역주택조합 관련 피해 문의가 이어지자 관할구청이 안내에 나선 겁니다. 현수막 주변 주택가는 2년 전, 한 지역주택조합이 3백 세대 규모 아파트를 짓겠다며 사업을 추진 중인 곳입니다.

2년 전, 조합이 운영하는 홍보관을 찾은 백기수 씨는 1~2차 계약금 5천만 원을 내고 조합에 가입했습니다. 당시 분양 직원은 “사업 부지의 절반 정도 확보했다”면서 “부지에 안에 있는 상가를 매입했기 때문에 늦어도 2021년엔 착공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역세권인데도 주변 시세보다 20% 저렴하게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데, 지금 가입해야 동·호수를 지정할 수 있다는 말에 백 씨는 서둘러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당시 조합 측은 ①계약서에 명시된 분담금 외에 추가 분담금은 없다 (일부 조건 예외) ②사업 계획 불가 시 납부금 전액 100% 환불보장 이라고 적힌 ‘안심보장증서’를 줬습니다.

단순 변심으로 탈퇴할 경우에도 업무대행비 2천 5백만 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돈은 환불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백 씨는 뉴스에서 보던 지역주택조합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착공한단 말만 믿었는데”…조합원들, 검찰에 고소장 제출

하지만 백 씨의 기대와 달리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계약금도 지금까지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백 씨와 함께 찾아간 조합 사무실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백 씨는 “계약금을 일부라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조합 추진위원장은 연락을 안 받고, 시행사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며 환불을 거절했다”면서 “피땀흘려 번 돈인데 너무 분하고, 누가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한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결국 백 씨 등 조합원 130명은 추진위원장과 시행사 관계자 2명을 사기와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했습니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조합 가입계약을 체결할 당시 들었던 설명과 달리 상가는 소송이 진행중이고, 교회도 사업에 참여한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했다”면서 “토지 확보 비율을 속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가입계약을 할 때 동·호수를 지정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면서 “조합 측이 제공한 자료를 보면 환불을 해줄 수 있을 정도의 계약금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고소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 사건을 직접 수사 중인 검찰은 내일(16일) 고소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시행사 측 “일부 조합원이 사실관계 왜곡…사업 정상 추진”

시행사 측 관계자는 KBS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일부 조합원이 의도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다”면서 “토지 매입과 환불 조치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은평구청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지역주택조합사업 구역현황’을 보면, 지난 1월 기준 해당 조합의 토지 동의율은 16%입니다. 구청 관계자는 “등기부등본 등을 토대로 확인한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행사 측은 “관할 구청에 조합원 모집 신고를 할 때 35% 정도 토지 사용권을 확보했다고 신고했고, 구청도 이를 받아들였다”면서 “ 지난해 상반기까지 동의 및 소유권 이전하기로 계약한 것까지 합치면 현재 60%정도 토지를 확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조합원들이 계약에 따라 내야 할 계약금을 내지 않아서 상가 매입 중도금을 못 냈다”고 덧붙였습니다.

시행사 측은 또, “환불은 공식 절차에 따라서 진행되고 있다”면서 “계약서에는 업무대행비를 제외하고 환불한다고 했는데 전액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회사도 사업 시작 전에 투입한 금액이 있고, 조합원들과 함께 진행하는 사업인만큼 협조가 중요하다”면서 “조합원에게 공개한 ‘계약금 사용 내역’을 토대로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실제 토지 확보 비율 확인해야”

사업구역이 확정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과 달리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들이 아파트가 들어설 부지에 있는 건물과 토지 주인들을 설득하고 적당한 가격으로 매입해야 합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사업마다 제각각입니다.

[연관기사] “내 집 마련 꿈꿨는데”…땅은 사라지고 빚만 남은 지역주택조합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25684

2019년, KBS가 각 지자체에 등록된 전국 지역주택조합 현황을 분석한 결과, 690개 지역주택조합(추진위 포함) 가운데 170개(24.6%)만이 아파트를 지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합 설립 인가를 받고도 2년이 지나도록 땅 매입조차 마무리하지 못한 곳은 92개나 됐습니다.

때문에 지역주택조합이 광고하는 토지확보비율을 그대로 믿지 말고, 관할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는 것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전문가들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역주택조합 관련 기준이 계속 강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면서 “신중하게 조합 가입을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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