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귀가하다 경찰에 살해돼” 영국 뒤흔드는 여성 인권 논란

입력 2021.03.15 (10:36) 수정 2021.03.1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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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저녁 런던 남부 글랩햄에서 친구 집을 나와 집으로 가던 33살 여성 사라 에버라드가 실종됩니다. 마케팅 전문가인 에버라드는 밤길을 걸어, 약 50분 정도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에버라드는 일주일쯤 지나 집에서 80km가 떨어진 런던 남동부 한 숲에서 시신으로 발견됐고, 경찰은 9일 웨인 쿠전스(48살)를 납치와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쿠전스는 의회와 외교 관련 건물을 순찰하는 현직 경찰관입니다.

밤길을 가던 여성이 현직 경찰에 의해 납치 살해된 사건에 영국은 경악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SNS에 '그녀는 집에 가는 중이었다(#shewaswalkinghome)'와 같은 해시태그를 달며 현직 경찰에 의해 살해된 에버라드를 추모하고 밤거리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 등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라 에버라드를 위한 추모제도 기획됐습니다.

사라 에버라드를 추모하는 사람들, 영국 런던 남부 클래팸커먼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사라 에버라드를 추모하는 사람들, 영국 런던 남부 클래팸커먼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경찰관에 의한 살해 사건의 경찰 대응, "여성들 밤길 외출 조심"

문제는 이후 경찰의 대응이었습니다. 사건 초기 여성이 밤늦게 혼자 외출하지 말라는 경고를 해 여성들의 비난을 받은 경찰은 여성단체들이 주도하는 추모제에 대해 코로나 19조치 위반에 해당한다며 1만 파운드(약 1,5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화난 영국 여성들은 "그녀는 남자친구와 통화하고, 밝은 옷을 입고, 조명이 켜진 큰길을 걷고, 자정 전인데도 살해당했다"고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13일 에버라드를 추모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는 이른바 '거리 되찾기' 행사는 전국적으로 많은 인파가 참여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에버라드 추모예배에서 경찰에 검거되는 여성 [사진 출처 : 로이터=연합뉴스]에버라드 추모예배에서 경찰에 검거되는 여성 [사진 출처 : 로이터=연합뉴스]

추모제 해산 나선 경찰과 시민 충돌...아수라장 되다

에버라드가 목격된 런던 남부 클래펌의 임시 추모공간에는 수천 명이 운집했습니다. 경찰이 집회 해산을 촉구하자 경찰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 "너 자신이나 체포하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결국 경찰의 진압 작전이 시작됐고,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이 뒤엉키는 충돌 끝에 4명의 참석자가 수갑이 채워져 체포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에버라드를 애도하기 위한 꽃과 촛불들이 짓밟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여성 인권 논란 확산...경찰, 관료, 정치인 전전긍긍

경찰의 해산 작전에 전국적인 비난이 쏟아지면서 이를 본 정치인들이 경찰의 대응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가 추모 공간에 참석해 "결혼 전 밤에 런던을 돌아다녔던 기분을 기억한다"며 에버라드의 죽음을 애도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에버라드 추모한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왼쪽) 사임 압력 받는 크레시다 딕 런던광역경찰청장에버라드 추모한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왼쪽) 사임 압력 받는 크레시다 딕 런던광역경찰청장

경찰은 성명을 통해 "해산 작전은 코로나19 위험을 막기 위한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경찰의 대응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비판했고,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은 경찰의 체포 장면 영상을 보면서 "갑갑했다"고 말했습니다. 논란이 가열되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거리를 안전하게 하고 여성과 소녀들이 괴롭힘이나 학대를 당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민들의 분노는 런던 광역경찰청을 향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현 런던 광역경찰청은 여성인 크레시다 딕씨가 청장입니다. 그녀는 이번 일로 자신이 사임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성 인권 문제로 확산하고 있는 이번 사건의 진통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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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귀가하다 경찰에 살해돼” 영국 뒤흔드는 여성 인권 논란
    • 입력 2021-03-15 10:36:22
    • 수정2021-03-15 22:11:52
    특파원 리포트
지난 3일 저녁 런던 남부 글랩햄에서 친구 집을 나와 집으로 가던 33살 여성 사라 에버라드가 실종됩니다. 마케팅 전문가인 에버라드는 밤길을 걸어, 약 50분 정도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에버라드는 일주일쯤 지나 집에서 80km가 떨어진 런던 남동부 한 숲에서 시신으로 발견됐고, 경찰은 9일 웨인 쿠전스(48살)를 납치와 살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쿠전스는 의회와 외교 관련 건물을 순찰하는 현직 경찰관입니다.

밤길을 가던 여성이 현직 경찰에 의해 납치 살해된 사건에 영국은 경악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SNS에 '그녀는 집에 가는 중이었다(#shewaswalkinghome)'와 같은 해시태그를 달며 현직 경찰에 의해 살해된 에버라드를 추모하고 밤거리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 등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라 에버라드를 위한 추모제도 기획됐습니다.

사라 에버라드를 추모하는 사람들, 영국 런던 남부 클래팸커먼 [사진 출처 : EPA=연합뉴스]
경찰관에 의한 살해 사건의 경찰 대응, "여성들 밤길 외출 조심"

문제는 이후 경찰의 대응이었습니다. 사건 초기 여성이 밤늦게 혼자 외출하지 말라는 경고를 해 여성들의 비난을 받은 경찰은 여성단체들이 주도하는 추모제에 대해 코로나 19조치 위반에 해당한다며 1만 파운드(약 1,5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화난 영국 여성들은 "그녀는 남자친구와 통화하고, 밝은 옷을 입고, 조명이 켜진 큰길을 걷고, 자정 전인데도 살해당했다"고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13일 에버라드를 추모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는 이른바 '거리 되찾기' 행사는 전국적으로 많은 인파가 참여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에버라드 추모예배에서 경찰에 검거되는 여성 [사진 출처 : 로이터=연합뉴스]
추모제 해산 나선 경찰과 시민 충돌...아수라장 되다

에버라드가 목격된 런던 남부 클래펌의 임시 추모공간에는 수천 명이 운집했습니다. 경찰이 집회 해산을 촉구하자 경찰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 "너 자신이나 체포하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결국 경찰의 진압 작전이 시작됐고,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이 뒤엉키는 충돌 끝에 4명의 참석자가 수갑이 채워져 체포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에버라드를 애도하기 위한 꽃과 촛불들이 짓밟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여성 인권 논란 확산...경찰, 관료, 정치인 전전긍긍

경찰의 해산 작전에 전국적인 비난이 쏟아지면서 이를 본 정치인들이 경찰의 대응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가 추모 공간에 참석해 "결혼 전 밤에 런던을 돌아다녔던 기분을 기억한다"며 에버라드의 죽음을 애도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에버라드 추모한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왼쪽) 사임 압력 받는 크레시다 딕 런던광역경찰청장
경찰은 성명을 통해 "해산 작전은 코로나19 위험을 막기 위한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은 트위터를 통해 "경찰의 대응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비판했고,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은 경찰의 체포 장면 영상을 보면서 "갑갑했다"고 말했습니다. 논란이 가열되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거리를 안전하게 하고 여성과 소녀들이 괴롭힘이나 학대를 당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민들의 분노는 런던 광역경찰청을 향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현 런던 광역경찰청은 여성인 크레시다 딕씨가 청장입니다. 그녀는 이번 일로 자신이 사임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성 인권 문제로 확산하고 있는 이번 사건의 진통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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