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들 실수라더니…11년 만에 드러난 軍의 잘못

입력 2021.03.15 (21:30) 수정 2021.03.1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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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는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이 가야만 하는 군대가 과연 갈 만한 모습인가 라는 질문을 담아 기획보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군은 안전한가'라는 차원에서 군 내 사고 실태와 보상 문제를 짚은데 이어, 오늘(15일)은 사고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들여다 보겠습니다.

군 부대 축구 골대에 매달렸다가 사고가 나 숨진 고 이강일 상병 사연부터 살펴봅니다.

당시 군이 사고 원인은 본인 부주의라고 한 판단이 11년 만에 뒤집혔습니다.

군의 사고 조사, 뭐가 문제였던건지 어떻게 보완돼야 할지 짚어봅니다.

신선민, 조빛나 기자입니다.

[리포트]

[故 이강일 상병 어머니 : “녹슨 봉고차에다가 덩치 이만한 백 킬로그램이 넘는 애를 덜그덕덜그덕 거리고… (그 모습을 보고) 나 치고 가라고 했어요.”]

2009년 그날 군으로부터 걸려온 청천벽력 같은 전화, 군대 간 아들이 숨졌다고 했습니다.

대민 지원 때문에 다른 부대로 파견 갔던 이강일 상병, 운전병이라 차량을 이동시키러 가다 부대 내 축구 골대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골대가 갑자기 넘어지며 머리에 부딪혔습니다.

순간이었고, 이 상병은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故 이강일 상병 어머니 : “이렇게 피가 흘러가지고 이게 눈으로 봤는데 내가 어떡하냐고….”]

군사 경찰의 조사를 토대로 고 이 상병은 순직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보훈처는 ‘본인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故 이강일 상병 어머니 : “그게 쓰러져서 내 아들을 잃었는데 용납이 되겠어요? 이 나라 잘 지키라고 아들을 보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서 내 품 안에 데려다 줘야지….”]

부모는 군 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재조사를 요청했고, 몰랐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사고 골대가 규격에 맞지 않는 부대가 자체 제작한 경량 골대였다는 것, 무게 중심을 잡는 받침대도 없었고, 연결 부위는 용접이 떨어져 끊겨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100kg의 청년이 그저 운 없게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진상규명위원회의 전문가들은 골대가 버틸 수 있는 하중을 45kg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엔 눕혀놓거나 철골로 고정해 뒀는데, 파견 와서 알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치명적 결함이 있던 골대가 직접적인 원인이고, 부대가 파견 병력을 관리 못 한 점도 확인됐다고 판단했습니다.

[故 이강일 상병 아버지 : ”군의 처음의 수사가 너무 형식적이지 않았느냐 진짜 죽음의 가치를 더 심도 있게 평가를 하고 유족의 아픔을 더 간절하게 생각했었다면….“]

부모가 아들의 사고 원인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사고 뒤 11년 만이었습니다.

KBS 뉴스 신선민입니다.

‘본인 과실’이 ‘인재’로 바뀐 이유…조사 주체가 바뀌었다

[리포트]

고 이강일 상병 가족이 군에서 받은 사망확인서입니다.

사망 원인 13줄, 골대를 고정하는 안전핀이 제거된 걸 모르고 매달렸다는 취지입니다.

진상 규명이 이뤄진 건 다른 기관을 통해서였습니다.

군사 경찰이 맡았던 조사와 달리, 공학 교수, 축구 골대 제작사 등이 조사에 참여했습니다.

조사 주체와 방식이 바뀌니, ‘주의 소홀’이라던 데에서 나아가 그 뒤에 있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비슷한 유형의 사고를 방치해 발생한 ‘인재’라고 본 겁니다.

[손주희/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 ”아직도 많은 부대에서는 자체 제작한 운동 시설물이라든지 노후화된 시설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들을 다시 한 번 우리가 인지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원인을 제대로 찾아야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고, 군 사고 조사에 전문성 확보가 시급한 이유입니다.

군에서 사고 조사를 맡는 조직의 객관성, 독립성 확보도 필요합니다.

[오정일/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 : ”어떤 사고가 나면 누가 잘못했는지 처벌이 뒤따라야 하니까 다 숨기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군사경찰은 일선에서 조금 물러나게 하고 전문가 집단에서 조사해서 ‘처벌이 중요한 게 아니고 사고의 근본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거죠.“]

국방부는 최근 5년간 생긴 안전사고의 80%를 개인 부주의 탓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개별 사고들이 남긴 교훈을 그동안 지나친 건 아닌지, 축구 골대에 숨진 고 이강일 상병 사례가 묻고 있습니다.

KBS 뉴스 조빛나입니다.

촬영기자:오범석/영상편집:이윤진 최근혁/그래픽:김석훈 채상우 최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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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아들 실수라더니…11년 만에 드러난 軍의 잘못
    • 입력 2021-03-15 21:30:26
    • 수정2021-03-15 21: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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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는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이 가야만 하는 군대가 과연 갈 만한 모습인가 라는 질문을 담아 기획보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군은 안전한가'라는 차원에서 군 내 사고 실태와 보상 문제를 짚은데 이어, 오늘(15일)은 사고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들여다 보겠습니다.

군 부대 축구 골대에 매달렸다가 사고가 나 숨진 고 이강일 상병 사연부터 살펴봅니다.

당시 군이 사고 원인은 본인 부주의라고 한 판단이 11년 만에 뒤집혔습니다.

군의 사고 조사, 뭐가 문제였던건지 어떻게 보완돼야 할지 짚어봅니다.

신선민, 조빛나 기자입니다.

[리포트]

[故 이강일 상병 어머니 : “녹슨 봉고차에다가 덩치 이만한 백 킬로그램이 넘는 애를 덜그덕덜그덕 거리고… (그 모습을 보고) 나 치고 가라고 했어요.”]

2009년 그날 군으로부터 걸려온 청천벽력 같은 전화, 군대 간 아들이 숨졌다고 했습니다.

대민 지원 때문에 다른 부대로 파견 갔던 이강일 상병, 운전병이라 차량을 이동시키러 가다 부대 내 축구 골대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골대가 갑자기 넘어지며 머리에 부딪혔습니다.

순간이었고, 이 상병은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故 이강일 상병 어머니 : “이렇게 피가 흘러가지고 이게 눈으로 봤는데 내가 어떡하냐고….”]

군사 경찰의 조사를 토대로 고 이 상병은 순직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보훈처는 ‘본인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故 이강일 상병 어머니 : “그게 쓰러져서 내 아들을 잃었는데 용납이 되겠어요? 이 나라 잘 지키라고 아들을 보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서 내 품 안에 데려다 줘야지….”]

부모는 군 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재조사를 요청했고, 몰랐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사고 골대가 규격에 맞지 않는 부대가 자체 제작한 경량 골대였다는 것, 무게 중심을 잡는 받침대도 없었고, 연결 부위는 용접이 떨어져 끊겨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100kg의 청년이 그저 운 없게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진상규명위원회의 전문가들은 골대가 버틸 수 있는 하중을 45kg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엔 눕혀놓거나 철골로 고정해 뒀는데, 파견 와서 알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치명적 결함이 있던 골대가 직접적인 원인이고, 부대가 파견 병력을 관리 못 한 점도 확인됐다고 판단했습니다.

[故 이강일 상병 아버지 : ”군의 처음의 수사가 너무 형식적이지 않았느냐 진짜 죽음의 가치를 더 심도 있게 평가를 하고 유족의 아픔을 더 간절하게 생각했었다면….“]

부모가 아들의 사고 원인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사고 뒤 11년 만이었습니다.

KBS 뉴스 신선민입니다.

‘본인 과실’이 ‘인재’로 바뀐 이유…조사 주체가 바뀌었다

[리포트]

고 이강일 상병 가족이 군에서 받은 사망확인서입니다.

사망 원인 13줄, 골대를 고정하는 안전핀이 제거된 걸 모르고 매달렸다는 취지입니다.

진상 규명이 이뤄진 건 다른 기관을 통해서였습니다.

군사 경찰이 맡았던 조사와 달리, 공학 교수, 축구 골대 제작사 등이 조사에 참여했습니다.

조사 주체와 방식이 바뀌니, ‘주의 소홀’이라던 데에서 나아가 그 뒤에 있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비슷한 유형의 사고를 방치해 발생한 ‘인재’라고 본 겁니다.

[손주희/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 ”아직도 많은 부대에서는 자체 제작한 운동 시설물이라든지 노후화된 시설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들을 다시 한 번 우리가 인지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원인을 제대로 찾아야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고, 군 사고 조사에 전문성 확보가 시급한 이유입니다.

군에서 사고 조사를 맡는 조직의 객관성, 독립성 확보도 필요합니다.

[오정일/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 : ”어떤 사고가 나면 누가 잘못했는지 처벌이 뒤따라야 하니까 다 숨기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군사경찰은 일선에서 조금 물러나게 하고 전문가 집단에서 조사해서 ‘처벌이 중요한 게 아니고 사고의 근본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거죠.“]

국방부는 최근 5년간 생긴 안전사고의 80%를 개인 부주의 탓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개별 사고들이 남긴 교훈을 그동안 지나친 건 아닌지, 축구 골대에 숨진 고 이강일 상병 사례가 묻고 있습니다.

KBS 뉴스 조빛나입니다.

촬영기자:오범석/영상편집:이윤진 최근혁/그래픽:김석훈 채상우 최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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