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LH 핵심인물 지인에게 땅 판 매도인 “아직 경찰 연락 못 받아”

입력 2021.03.17 (07:00) 수정 2021.03.1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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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돈이 오가는 부동산 거래에서 계약서를 다시 쓰는 '수고'까지 감수하며 매도인도 아닌 매수인이 잔금일을 두 달 가까이 앞당기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수억, 수십억의 잔금을 갑작스럽게 마련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광명시흥 신도시 발표 직전 이를 알았다는 듯이 두 달 가까이 잔금일을 당겨 5일 만에 18억 원을 마련해 신도시 지정 지구 내 토지를 사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 두 달 앞당겨진 잔금일, 5일 만에 마련한 18억 원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의 5000㎡ 규모의 농지. 각종 나무와 농작물이 심어져 있는 이 땅은 지난 1월 말 손바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매도인은 매수인 측이 이상한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1월 초 계약서를 쓸 때만 해도 3월 말 잔금을 치르고 땅을 넘기기로 했는데 매수인 측이 1월 23일 잔금일을 당기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 겁니다.

매수인 측이 제시한 날짜는 1월 28일로, 전체 21억 원 가운데 중도금을 제외한 18억 원을 5일 만에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도 안 돼 2월 24일 과림동은 광명시흥 신도시로 발표됐습니다.


기존 땅 주인들은 이러한 계약 변경이 갑작스러웠다고 떠올렸습니다.

공동 소유주 중 한 명이었던 A 씨는 "중도금을 받으러 부동산에 갔더니 잔금일을 당기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라며 "워낙 갑작스러워 옮기지 못한 농작물과 나무들이 아직 그곳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소유주였던 B 씨도 "왜 그렇게 서둘러 계약하나 했더니 LH 사태를 보고 분명 관련이 있겠다 싶었다"라며 "소소하게 가꾸던 텃밭을 몸이 안 좋아 팔았더니 투기꾼들에게 좋은 일 해준 꼴이 됐다"라고 토로했습니다.

■ 땅을 산 신도시 주민 대표, 'LH 사태' 강 모 씨 지인?

땅을 사들인 사람들은 누굴까.

KBS 취재진은 등기부등본을 통해 총 5명이 1000㎡씩 지분을 쪼개 소유권을 나눈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 주소지는 5명 중 4명이 모두 과천이었고, 가족이나 친인척으로 추정되는 3명 중 2명은 쌍둥이로 보이는 30대 초반 남성들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들은 'LH 사태'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인 강 모 씨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신도시 주민 임 모 씨의 가족과 지인들이었습니다.


강 씨는 LH에서 보상 담당 직원으로, 지인들과 광명·시흥 내 토지를 사들여 참여연대에서 최초로 고발한 14명 중 한 사람입니다. 임 씨는 과천 주안지구 뉴스테이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 대표로 활동한 적이 있어 강 씨와 인연이 닿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도시 발표 직전 해당 계약을 앞당긴 것은 임 씨였습니다.

농협 비상임감사로도 활동했던 임 씨는 매도인에게 자신을 '농협 임원'으로 소개하며 아들들과 함께 땅을 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약일을 앞당겼다는 겁니다.

KBS 취재진이 임 씨가 계약을 앞당긴 이유를 듣기 위해 당시 거래를 담당했던 부동산들을 찾았지만, '개인정보'라고 함구하거나 아예 자리를 비운 채 답변을 피했습니다.

매도인에 따르면, 임 씨는 해당 토지를 갈아엎고 외래종 나무를 심겠다고도 말했습니다. 원예업체를 운영하는 임 씨의 지인이 계약서에 이름을 올린 이유로 추정됩니다.

'지분 쪼개기'에 이어 '나무 심기'까지 모두 LH 직원들이 토지 보상금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방법들입니다. 계약 과정을 들여다볼수록 신도시 지정을 알았다는 듯이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인 정확들이 포착됐습니다.


■ 커지는 정보 유출 의혹…2월 전 소유권 이전 노렸나

비슷한 시기 임 씨가 강 씨와 함께 직접 사들인 땅이 있습니다. 광명시흥 지구 바로 옆, 시흥시 매화동에 있는 2600㎡ 규모의 땅인데 이 역시 잔금일이 1월 29일입니다.

계약 일자는 앞선 과림동 땅과 똑같은 1월 8일이었는데 계약서를 쓴지 한 달도 안 되어 잔금을 치른 점이 유사합니다. 임 씨가 1월말 촉박하게 잔금을 맞춘 거래가 광명, 시흥 내에서만 두 곳인 겁니다.

2월 신도시 발표를 앞두고 어떻게든 1월 내에 소유권을 이전하려 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드는 이유입니다.

경찰은 국수본을 구성해 관련 의혹 수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매도인들은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기는 커녕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체감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A 씨는 "땅을 판 사실이 바뀔 수 없는 것은 알지만, 앞으로 이러한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B 씨 역시 "너무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라며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한 것이라면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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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LH 핵심인물 지인에게 땅 판 매도인 “아직 경찰 연락 못 받아”
    • 입력 2021-03-17 07:00:54
    • 수정2021-03-17 11:49:50
    취재후·사건후

큰돈이 오가는 부동산 거래에서 계약서를 다시 쓰는 '수고'까지 감수하며 매도인도 아닌 매수인이 잔금일을 두 달 가까이 앞당기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수억, 수십억의 잔금을 갑작스럽게 마련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광명시흥 신도시 발표 직전 이를 알았다는 듯이 두 달 가까이 잔금일을 당겨 5일 만에 18억 원을 마련해 신도시 지정 지구 내 토지를 사들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 두 달 앞당겨진 잔금일, 5일 만에 마련한 18억 원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의 5000㎡ 규모의 농지. 각종 나무와 농작물이 심어져 있는 이 땅은 지난 1월 말 손바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매도인은 매수인 측이 이상한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1월 초 계약서를 쓸 때만 해도 3월 말 잔금을 치르고 땅을 넘기기로 했는데 매수인 측이 1월 23일 잔금일을 당기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 겁니다.

매수인 측이 제시한 날짜는 1월 28일로, 전체 21억 원 가운데 중도금을 제외한 18억 원을 5일 만에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도 안 돼 2월 24일 과림동은 광명시흥 신도시로 발표됐습니다.


기존 땅 주인들은 이러한 계약 변경이 갑작스러웠다고 떠올렸습니다.

공동 소유주 중 한 명이었던 A 씨는 "중도금을 받으러 부동산에 갔더니 잔금일을 당기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라며 "워낙 갑작스러워 옮기지 못한 농작물과 나무들이 아직 그곳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소유주였던 B 씨도 "왜 그렇게 서둘러 계약하나 했더니 LH 사태를 보고 분명 관련이 있겠다 싶었다"라며 "소소하게 가꾸던 텃밭을 몸이 안 좋아 팔았더니 투기꾼들에게 좋은 일 해준 꼴이 됐다"라고 토로했습니다.

■ 땅을 산 신도시 주민 대표, 'LH 사태' 강 모 씨 지인?

땅을 사들인 사람들은 누굴까.

KBS 취재진은 등기부등본을 통해 총 5명이 1000㎡씩 지분을 쪼개 소유권을 나눈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 주소지는 5명 중 4명이 모두 과천이었고, 가족이나 친인척으로 추정되는 3명 중 2명은 쌍둥이로 보이는 30대 초반 남성들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들은 'LH 사태'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인 강 모 씨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신도시 주민 임 모 씨의 가족과 지인들이었습니다.


강 씨는 LH에서 보상 담당 직원으로, 지인들과 광명·시흥 내 토지를 사들여 참여연대에서 최초로 고발한 14명 중 한 사람입니다. 임 씨는 과천 주안지구 뉴스테이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 대표로 활동한 적이 있어 강 씨와 인연이 닿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신도시 발표 직전 해당 계약을 앞당긴 것은 임 씨였습니다.

농협 비상임감사로도 활동했던 임 씨는 매도인에게 자신을 '농협 임원'으로 소개하며 아들들과 함께 땅을 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약일을 앞당겼다는 겁니다.

KBS 취재진이 임 씨가 계약을 앞당긴 이유를 듣기 위해 당시 거래를 담당했던 부동산들을 찾았지만, '개인정보'라고 함구하거나 아예 자리를 비운 채 답변을 피했습니다.

매도인에 따르면, 임 씨는 해당 토지를 갈아엎고 외래종 나무를 심겠다고도 말했습니다. 원예업체를 운영하는 임 씨의 지인이 계약서에 이름을 올린 이유로 추정됩니다.

'지분 쪼개기'에 이어 '나무 심기'까지 모두 LH 직원들이 토지 보상금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방법들입니다. 계약 과정을 들여다볼수록 신도시 지정을 알았다는 듯이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인 정확들이 포착됐습니다.


■ 커지는 정보 유출 의혹…2월 전 소유권 이전 노렸나

비슷한 시기 임 씨가 강 씨와 함께 직접 사들인 땅이 있습니다. 광명시흥 지구 바로 옆, 시흥시 매화동에 있는 2600㎡ 규모의 땅인데 이 역시 잔금일이 1월 29일입니다.

계약 일자는 앞선 과림동 땅과 똑같은 1월 8일이었는데 계약서를 쓴지 한 달도 안 되어 잔금을 치른 점이 유사합니다. 임 씨가 1월말 촉박하게 잔금을 맞춘 거래가 광명, 시흥 내에서만 두 곳인 겁니다.

2월 신도시 발표를 앞두고 어떻게든 1월 내에 소유권을 이전하려 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드는 이유입니다.

경찰은 국수본을 구성해 관련 의혹 수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매도인들은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기는 커녕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체감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A 씨는 "땅을 판 사실이 바뀔 수 없는 것은 알지만, 앞으로 이러한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B 씨 역시 "너무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라며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한 것이라면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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