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홀로코스트 부정주의자가 남긴 교훈…램지어 교수는?
입력 2021.03.18 (15:04)
수정 2021.03.1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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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어빙(David Irving)이라는 영국의 역사학자가 있다. 올해 82세, 홀로코스트 부정주의자다. 어빙은 히틀러가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히틀러의 전쟁' 등 30여 권의 저서를 냈다.
어빙은 강제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대인 수가 과장됐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유대인 대부분은 독가스가 아니라 발진티푸스 같은 질병으로 죽었다고 주장했다. 학계의 연구와 국제사회의 동의, 관련자 처벌 등 2차 대전 이후 진행된 일련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진실을 뒤엎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어빙은 독일 뿐만 아니라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거주하는 것이 금지됐고, 국제 수배령도 내려졌다.
그런 어빙은 2005년 11월 11일 오스트리아 남부 슈티리아주에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11개국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을 범죄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형법은 홀로코스트 부인 범죄에 대해 최고 징역 10년 형을 선고하도록 정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법원은 2006년 어빙에게 징역 3년 형을 선고했다. 어빙은 법정에서 "나치에 의해 수백만 명이 살해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부인한 것은 명백한 실수"라고 그간의 주장을 뒤집는 진술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가 자신의 견해를 바꾸었다는 고백이 진실해 보이지 않아 정상을 참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1996년 데이비드 어빙은 미국의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와 홀로코스트를 두고 법정 다툼도 벌였다. 2000년 끝난 이 재판에서도 어빙은 패배했다. 이 재판을 다룬 실화 영화 '나는 부정한다(Denial, 2016)'에서 립스타트 교수역으로 열연한 레이첼 와이즈는 영화에서 모든 의견이 다 동등한 것은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나는 언론(학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걸 남용하고자 했던 누군가로부터 자유를 보호하고자 했다. 언론(학문, 표현)의 자유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것에는 책임이 따르며,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거짓말이다. 모든 의견이 다 동등한 것은 아니다."
두 달째 이어지는 <램지어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인식도 딱 이 지점에 있다.
우리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오늘 <램지어 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사연구회,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정의기억연대 등 48개 단체가 참여했다. 우리 역사학계와 시민단체가 <램지어 사태>와 관련해 입장을 내놓은 건 지난 12일 '램지어 사태를 통해 본 아카데미 역사부정론'이라는 주제의 긴급토론회에 이어 두 번째다.
"램지어 주장은 학문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는, 의도적인 역사 부정이자 혐오다."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성명서에서 '위안부'가 아니라 '매춘부'라는 램지어의 주장은 일본 극우의 위안부 혐오, 소수자 혐오 담론의 공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역사는 동일 사안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합당한 근거에 기반을 둬야 한다면서, 램지어의 주장은 그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학계가 밝혀온 성과와 합의를 '근거 없이'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고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한 영국의 데이비드 어빙 사례와 같이, 학문적 진실성을 훼손하고, 인류 보편 가치를 무시하는 글이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발표되고 유통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램지어 논문은 학술 논문이 지켜야 할 연구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했다."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램지어가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사료를 선택적으로 활용하거나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본인 자신도 논문의 핵심 논거인 '위안소' 계약 관계를 뒷받침할 한국인 위안부 계약서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시인했다고 지적했다.
또 램지어가 많은 수입을 올린 것으로 왜곡한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도 '위안부 부정론'의 시각으로 필요한 부분만 절취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했다.
문옥주 증언의 실체가 담긴 책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이를 인용하지 않고 역사부정주의자 블로그에 있는 왜곡된 내용만 인용한 것에서 램지어의 의도가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이는 연구자가 마땅히 준수해야 하는 학문적 성실성을 훼손한 심각한 연구 부정행위라고 역사학계는 지적했다.
"역사부정주의 日-美-韓 네트워크의 음모"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램지어 교수 한 명의 일탈에 그치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램지어 사태>가 그동안 미국을 주전장(主戰場, main battle ground)으로 삼아온 일본과 미국, 한국의 역사부정주의자 네트워크의 공개적 활동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역사학계는 역사부정자들은 참과 거짓에 상관없이 신념이나 감정에 따라 주장을 내세워 왔다면서 <램지어 사태>는 실증적 자료를 제시하는 것처럼 가장해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여론을 호도하는 전형적인 '탈진실'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를 더 깊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역사학계는 이번 사태를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축적해 가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는 비단 역사학계 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어빙은 강제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대인 수가 과장됐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유대인 대부분은 독가스가 아니라 발진티푸스 같은 질병으로 죽었다고 주장했다. 학계의 연구와 국제사회의 동의, 관련자 처벌 등 2차 대전 이후 진행된 일련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진실을 뒤엎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어빙은 독일 뿐만 아니라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거주하는 것이 금지됐고, 국제 수배령도 내려졌다.
그런 어빙은 2005년 11월 11일 오스트리아 남부 슈티리아주에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11개국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을 범죄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형법은 홀로코스트 부인 범죄에 대해 최고 징역 10년 형을 선고하도록 정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법원은 2006년 어빙에게 징역 3년 형을 선고했다. 어빙은 법정에서 "나치에 의해 수백만 명이 살해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부인한 것은 명백한 실수"라고 그간의 주장을 뒤집는 진술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가 자신의 견해를 바꾸었다는 고백이 진실해 보이지 않아 정상을 참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 Denial, 2016’ 미국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 역의 주인공 레이첼 와이즈
앞서 1996년 데이비드 어빙은 미국의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와 홀로코스트를 두고 법정 다툼도 벌였다. 2000년 끝난 이 재판에서도 어빙은 패배했다. 이 재판을 다룬 실화 영화 '나는 부정한다(Denial, 2016)'에서 립스타트 교수역으로 열연한 레이첼 와이즈는 영화에서 모든 의견이 다 동등한 것은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나는 언론(학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걸 남용하고자 했던 누군가로부터 자유를 보호하고자 했다. 언론(학문, 표현)의 자유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것에는 책임이 따르며,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거짓말이다. 모든 의견이 다 동등한 것은 아니다."
두 달째 이어지는 <램지어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인식도 딱 이 지점에 있다.
우리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오늘 <램지어 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사연구회,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정의기억연대 등 48개 단체가 참여했다. 우리 역사학계와 시민단체가 <램지어 사태>와 관련해 입장을 내놓은 건 지난 12일 '램지어 사태를 통해 본 아카데미 역사부정론'이라는 주제의 긴급토론회에 이어 두 번째다.
"램지어 주장은 학문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는, 의도적인 역사 부정이자 혐오다."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성명서에서 '위안부'가 아니라 '매춘부'라는 램지어의 주장은 일본 극우의 위안부 혐오, 소수자 혐오 담론의 공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역사는 동일 사안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합당한 근거에 기반을 둬야 한다면서, 램지어의 주장은 그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학계가 밝혀온 성과와 합의를 '근거 없이'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고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한 영국의 데이비드 어빙 사례와 같이, 학문적 진실성을 훼손하고, 인류 보편 가치를 무시하는 글이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발표되고 유통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램지어 논문은 학술 논문이 지켜야 할 연구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했다."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램지어가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사료를 선택적으로 활용하거나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본인 자신도 논문의 핵심 논거인 '위안소' 계약 관계를 뒷받침할 한국인 위안부 계약서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시인했다고 지적했다.
또 램지어가 많은 수입을 올린 것으로 왜곡한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도 '위안부 부정론'의 시각으로 필요한 부분만 절취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했다.
문옥주 증언의 실체가 담긴 책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이를 인용하지 않고 역사부정주의자 블로그에 있는 왜곡된 내용만 인용한 것에서 램지어의 의도가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이는 연구자가 마땅히 준수해야 하는 학문적 성실성을 훼손한 심각한 연구 부정행위라고 역사학계는 지적했다.
"역사부정주의 日-美-韓 네트워크의 음모"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램지어 교수 한 명의 일탈에 그치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램지어 사태>가 그동안 미국을 주전장(主戰場, main battle ground)으로 삼아온 일본과 미국, 한국의 역사부정주의자 네트워크의 공개적 활동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역사학계는 역사부정자들은 참과 거짓에 상관없이 신념이나 감정에 따라 주장을 내세워 왔다면서 <램지어 사태>는 실증적 자료를 제시하는 것처럼 가장해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여론을 호도하는 전형적인 '탈진실'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를 더 깊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역사학계는 이번 사태를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축적해 가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는 비단 역사학계 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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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어빙(David Irving)이라는 영국의 역사학자가 있다. 올해 82세, 홀로코스트 부정주의자다. 어빙은 히틀러가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히틀러의 전쟁' 등 30여 권의 저서를 냈다.
어빙은 강제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대인 수가 과장됐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유대인 대부분은 독가스가 아니라 발진티푸스 같은 질병으로 죽었다고 주장했다. 학계의 연구와 국제사회의 동의, 관련자 처벌 등 2차 대전 이후 진행된 일련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진실을 뒤엎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어빙은 독일 뿐만 아니라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거주하는 것이 금지됐고, 국제 수배령도 내려졌다.
그런 어빙은 2005년 11월 11일 오스트리아 남부 슈티리아주에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11개국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을 범죄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형법은 홀로코스트 부인 범죄에 대해 최고 징역 10년 형을 선고하도록 정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법원은 2006년 어빙에게 징역 3년 형을 선고했다. 어빙은 법정에서 "나치에 의해 수백만 명이 살해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부인한 것은 명백한 실수"라고 그간의 주장을 뒤집는 진술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가 자신의 견해를 바꾸었다는 고백이 진실해 보이지 않아 정상을 참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1996년 데이비드 어빙은 미국의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와 홀로코스트를 두고 법정 다툼도 벌였다. 2000년 끝난 이 재판에서도 어빙은 패배했다. 이 재판을 다룬 실화 영화 '나는 부정한다(Denial, 2016)'에서 립스타트 교수역으로 열연한 레이첼 와이즈는 영화에서 모든 의견이 다 동등한 것은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나는 언론(학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걸 남용하고자 했던 누군가로부터 자유를 보호하고자 했다. 언론(학문, 표현)의 자유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것에는 책임이 따르며,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거짓말이다. 모든 의견이 다 동등한 것은 아니다."
두 달째 이어지는 <램지어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인식도 딱 이 지점에 있다.
우리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오늘 <램지어 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사연구회,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정의기억연대 등 48개 단체가 참여했다. 우리 역사학계와 시민단체가 <램지어 사태>와 관련해 입장을 내놓은 건 지난 12일 '램지어 사태를 통해 본 아카데미 역사부정론'이라는 주제의 긴급토론회에 이어 두 번째다.
"램지어 주장은 학문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는, 의도적인 역사 부정이자 혐오다."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성명서에서 '위안부'가 아니라 '매춘부'라는 램지어의 주장은 일본 극우의 위안부 혐오, 소수자 혐오 담론의 공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역사는 동일 사안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합당한 근거에 기반을 둬야 한다면서, 램지어의 주장은 그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학계가 밝혀온 성과와 합의를 '근거 없이'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고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한 영국의 데이비드 어빙 사례와 같이, 학문적 진실성을 훼손하고, 인류 보편 가치를 무시하는 글이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발표되고 유통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램지어 논문은 학술 논문이 지켜야 할 연구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했다."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램지어가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사료를 선택적으로 활용하거나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본인 자신도 논문의 핵심 논거인 '위안소' 계약 관계를 뒷받침할 한국인 위안부 계약서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시인했다고 지적했다.
또 램지어가 많은 수입을 올린 것으로 왜곡한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도 '위안부 부정론'의 시각으로 필요한 부분만 절취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했다.
문옥주 증언의 실체가 담긴 책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이를 인용하지 않고 역사부정주의자 블로그에 있는 왜곡된 내용만 인용한 것에서 램지어의 의도가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이는 연구자가 마땅히 준수해야 하는 학문적 성실성을 훼손한 심각한 연구 부정행위라고 역사학계는 지적했다.
"역사부정주의 日-美-韓 네트워크의 음모"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램지어 교수 한 명의 일탈에 그치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램지어 사태>가 그동안 미국을 주전장(主戰場, main battle ground)으로 삼아온 일본과 미국, 한국의 역사부정주의자 네트워크의 공개적 활동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역사학계는 역사부정자들은 참과 거짓에 상관없이 신념이나 감정에 따라 주장을 내세워 왔다면서 <램지어 사태>는 실증적 자료를 제시하는 것처럼 가장해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여론을 호도하는 전형적인 '탈진실'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를 더 깊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역사학계는 이번 사태를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축적해 가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는 비단 역사학계 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어빙은 강제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대인 수가 과장됐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유대인 대부분은 독가스가 아니라 발진티푸스 같은 질병으로 죽었다고 주장했다. 학계의 연구와 국제사회의 동의, 관련자 처벌 등 2차 대전 이후 진행된 일련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진실을 뒤엎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어빙은 독일 뿐만 아니라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거주하는 것이 금지됐고, 국제 수배령도 내려졌다.
그런 어빙은 2005년 11월 11일 오스트리아 남부 슈티리아주에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11개국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을 범죄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형법은 홀로코스트 부인 범죄에 대해 최고 징역 10년 형을 선고하도록 정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법원은 2006년 어빙에게 징역 3년 형을 선고했다. 어빙은 법정에서 "나치에 의해 수백만 명이 살해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부인한 것은 명백한 실수"라고 그간의 주장을 뒤집는 진술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가 자신의 견해를 바꾸었다는 고백이 진실해 보이지 않아 정상을 참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1996년 데이비드 어빙은 미국의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와 홀로코스트를 두고 법정 다툼도 벌였다. 2000년 끝난 이 재판에서도 어빙은 패배했다. 이 재판을 다룬 실화 영화 '나는 부정한다(Denial, 2016)'에서 립스타트 교수역으로 열연한 레이첼 와이즈는 영화에서 모든 의견이 다 동등한 것은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나는 언론(학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걸 남용하고자 했던 누군가로부터 자유를 보호하고자 했다. 언론(학문, 표현)의 자유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것에는 책임이 따르며,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거짓말이다. 모든 의견이 다 동등한 것은 아니다."
두 달째 이어지는 <램지어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인식도 딱 이 지점에 있다.
우리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오늘 <램지어 사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사연구회,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정의기억연대 등 48개 단체가 참여했다. 우리 역사학계와 시민단체가 <램지어 사태>와 관련해 입장을 내놓은 건 지난 12일 '램지어 사태를 통해 본 아카데미 역사부정론'이라는 주제의 긴급토론회에 이어 두 번째다.
"램지어 주장은 학문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는, 의도적인 역사 부정이자 혐오다."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성명서에서 '위안부'가 아니라 '매춘부'라는 램지어의 주장은 일본 극우의 위안부 혐오, 소수자 혐오 담론의 공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역사는 동일 사안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합당한 근거에 기반을 둬야 한다면서, 램지어의 주장은 그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학계가 밝혀온 성과와 합의를 '근거 없이'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고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한 영국의 데이비드 어빙 사례와 같이, 학문적 진실성을 훼손하고, 인류 보편 가치를 무시하는 글이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발표되고 유통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램지어 논문은 학술 논문이 지켜야 할 연구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했다."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램지어가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사료를 선택적으로 활용하거나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본인 자신도 논문의 핵심 논거인 '위안소' 계약 관계를 뒷받침할 한국인 위안부 계약서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시인했다고 지적했다.
또 램지어가 많은 수입을 올린 것으로 왜곡한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도 '위안부 부정론'의 시각으로 필요한 부분만 절취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했다.
문옥주 증언의 실체가 담긴 책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이를 인용하지 않고 역사부정주의자 블로그에 있는 왜곡된 내용만 인용한 것에서 램지어의 의도가 드러난다고 비판했다. 이는 연구자가 마땅히 준수해야 하는 학문적 성실성을 훼손한 심각한 연구 부정행위라고 역사학계는 지적했다.
"역사부정주의 日-美-韓 네트워크의 음모"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램지어 교수 한 명의 일탈에 그치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램지어 사태>가 그동안 미국을 주전장(主戰場, main battle ground)으로 삼아온 일본과 미국, 한국의 역사부정주의자 네트워크의 공개적 활동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역사학계는 역사부정자들은 참과 거짓에 상관없이 신념이나 감정에 따라 주장을 내세워 왔다면서 <램지어 사태>는 실증적 자료를 제시하는 것처럼 가장해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여론을 호도하는 전형적인 '탈진실'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를 더 깊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역사학계는 이번 사태를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축적해 가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는 비단 역사학계 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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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봉 기자 beeb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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