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언론계 ‘미투’…“꼰대로 매도됐다”는 피고인

입력 2021.03.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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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곳곳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터져 나오던 2018년, 언론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27살이던 변영건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경제지 수습기자 시절 겪었던 성추행 피해를 폭로했습니다.

변 씨가 막 입사했을 당시 부장급 간부였던 조 모 씨는, 2015년 12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신입 수습기자들의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회식이 잦았고, 그때마다 변 씨는 조 씨의 옆자리에 앉아야 했습니다.

조 씨가 이야기를 한다면서 수시로 자신의 등과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2016년 1월 한 회식 자리에선 테이블 밑으로 손을 넣어 손바닥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지그시 눌러 만졌다는 게 변 씨의 주장입니다.

조 씨는 끝까지 부인했지만, 2018년 3월 회사는 조 씨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습니다. 변 씨의 고소로 수사에 나선 검찰은, 2019년 7월 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조 씨를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3년이 지났지만 싸움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정성완 부장판사는 오늘(19일), 조 씨에 대한 결심공판을 열었습니다.

■ "천부당만부당한 주장…악감정에 '미투'"

내내 혐의를 부인해왔던 조 씨는 마지막 재판에서도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도덕적으로 무결한 건 아니지만, 인생을 그렇게 함부로 살아오진 않았다"며 운을 뗀 뒤, 변 씨 주장이 모두 잘못됐다고 했습니다.

"상대에게 이성적인 관심을 가졌다든지, 성적 대상으로 삼아서 추행했다는 주장은 정말 저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천부당만부당한 주장입니다. 제가 만약,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사적인 자리를 만들었을 거고 그런 메시지를 보냈을 것입니다. 저는 단 한 차례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조 씨가 생각한 '미투' 폭로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2박 3일간 열리는 합숙면접 당시 변 씨가 속했던 조의 조장이었던 조 씨는, 입사 초기 친근감에 변 씨를 따뜻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칭찬도 마다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습교육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변 씨가 지각을 자주 하고 수습일지를 내지 않는 등 잘못을 거듭하자 여러 차례 강하게 질책했고, 이에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변 씨가 자신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된 거라는 겁니다. 그동안엔 불편함과 불쾌함을 한 차례도 표시하지 않다가, 나중에 와서 '가해자 프레임'을 씌웠다고도 주장했습니다.

■ "기자 만들려고 헌신했는데 '갑질하는 꼰대'로 매도"

조 씨는 기소 이후 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변 씨 수습기자 동기들의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을 보고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없는 자기들만의 카톡방에서 저를 그렇게 '갑질하는 꼰대'로 조롱할 줄 차마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제가 업무시간 쪼개서 자기들을 기자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음에도 저를 매도한 것에 정말 억울함을 느끼고 분노했습니다."

이번에도 조 씨는 나름의 해석을 내놨습니다. 자신이 후배들을 일부러 강하게 질책하며 힘들게 교육한 탓에, 이들이 반감을 품게 됐다는 겁니다. 사내에선 요직에 있던 자신을 겨냥해 근거 없는 나쁜 소문이 떠돌았고, 이들이 그 소문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변 씨 측이 제출한 카카오톡 증거는 '악마의 편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긴 고통의 터널을 벗어나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조 씨. 마지막으로 "후배들의 눈높이를 못 맞춰 결국 '세대차이'를 극복 못 한 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악감정과 세대차이, 조 씨가 이번 사건을 해석한 두 가지 키워드입니다.

■ "언론계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검찰, 징역 1년 구형

하지만 검찰은 조 씨에게 징역 1년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 5년간 취업제한 명령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검찰은 "피해자가 범행 일시를 특정한 과정이 자연스럽고, 피해 진술이 전체적으로 구체적이며 신빙성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해당 회사 전·현직 기자들이 피해자의 진술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조 씨가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검찰은 "무엇보다 이 사건은 회사 조직 내에서 벌어진 범죄일 뿐 아니라 언론계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한 것이므로, 재발하여서는 절대 안 되는 범죄인 점도 감안해달라"고 덧붙였습니다.

■ "잠시라도 몸담았던 언론계가 달라지길"

오늘 재판에선 피해자 변호사가 변 씨의 입장문을 대독했습니다. 이제 언론계를 완전히 떠나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변 씨는 "끝까지 재판을 이어가는 것은 잠시라도 몸담았던 언론계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달라지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나이가 어린, 연차가 낮은 여성이 조직의 '꽃'이 되기를 기대하며 서슴없이 이뤄지는 말과 행동은 그 어느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비뚤어진 시선과 인식, 언행이 그간 줄어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언론계 내에 여전히 수많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본 재판이 향후 언론계와 그 종사자들에게 미칠 영향은 매우 큽니다. 잠시나마 애정을 갖고 몸담았던 언론계에 다시는 저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엄중한 처벌을 부탁드립니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방청석에 앉아 조 씨를 지켜봤던 변 씨는, 오늘 재판이 끝난 뒤에도 기자를 만나 당황스러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변 씨는 "상대 측 최후 변론을 듣고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어서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다"며 "어불성설을 듣고 있자니 다시 그동안의 지난한 과정이 떠올라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변 씨는 "제가 지치지 않고 계속 싸워나가야 할 이유를 준 것 같아 역설적이지만 고마운 마음"이라며 "부디 재판이 합리적으로 마무리되고 언론계와 우리 사회 전반이 다시 한 번 미투 이슈에 피로감이 아닌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다음 달 28일, 조 씨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열기로 했습니다.

한편 조 씨는 변 씨의 미투 폭로가 허위라며, 2018년 10월 변 씨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사건은 현재 서울서부지검에서 수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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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에 선 언론계 ‘미투’…“꼰대로 매도됐다”는 피고인
    • 입력 2021-03-19 15:30:38
    취재K

사회 곳곳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터져 나오던 2018년, 언론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27살이던 변영건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경제지 수습기자 시절 겪었던 성추행 피해를 폭로했습니다.

변 씨가 막 입사했을 당시 부장급 간부였던 조 모 씨는, 2015년 12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신입 수습기자들의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회식이 잦았고, 그때마다 변 씨는 조 씨의 옆자리에 앉아야 했습니다.

조 씨가 이야기를 한다면서 수시로 자신의 등과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2016년 1월 한 회식 자리에선 테이블 밑으로 손을 넣어 손바닥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지그시 눌러 만졌다는 게 변 씨의 주장입니다.

조 씨는 끝까지 부인했지만, 2018년 3월 회사는 조 씨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습니다. 변 씨의 고소로 수사에 나선 검찰은, 2019년 7월 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조 씨를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3년이 지났지만 싸움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정성완 부장판사는 오늘(19일), 조 씨에 대한 결심공판을 열었습니다.

■ "천부당만부당한 주장…악감정에 '미투'"

내내 혐의를 부인해왔던 조 씨는 마지막 재판에서도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도덕적으로 무결한 건 아니지만, 인생을 그렇게 함부로 살아오진 않았다"며 운을 뗀 뒤, 변 씨 주장이 모두 잘못됐다고 했습니다.

"상대에게 이성적인 관심을 가졌다든지, 성적 대상으로 삼아서 추행했다는 주장은 정말 저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천부당만부당한 주장입니다. 제가 만약,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사적인 자리를 만들었을 거고 그런 메시지를 보냈을 것입니다. 저는 단 한 차례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조 씨가 생각한 '미투' 폭로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2박 3일간 열리는 합숙면접 당시 변 씨가 속했던 조의 조장이었던 조 씨는, 입사 초기 친근감에 변 씨를 따뜻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칭찬도 마다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습교육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변 씨가 지각을 자주 하고 수습일지를 내지 않는 등 잘못을 거듭하자 여러 차례 강하게 질책했고, 이에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변 씨가 자신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된 거라는 겁니다. 그동안엔 불편함과 불쾌함을 한 차례도 표시하지 않다가, 나중에 와서 '가해자 프레임'을 씌웠다고도 주장했습니다.

■ "기자 만들려고 헌신했는데 '갑질하는 꼰대'로 매도"

조 씨는 기소 이후 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변 씨 수습기자 동기들의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을 보고도 깜짝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없는 자기들만의 카톡방에서 저를 그렇게 '갑질하는 꼰대'로 조롱할 줄 차마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제가 업무시간 쪼개서 자기들을 기자로 만들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음에도 저를 매도한 것에 정말 억울함을 느끼고 분노했습니다."

이번에도 조 씨는 나름의 해석을 내놨습니다. 자신이 후배들을 일부러 강하게 질책하며 힘들게 교육한 탓에, 이들이 반감을 품게 됐다는 겁니다. 사내에선 요직에 있던 자신을 겨냥해 근거 없는 나쁜 소문이 떠돌았고, 이들이 그 소문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변 씨 측이 제출한 카카오톡 증거는 '악마의 편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긴 고통의 터널을 벗어나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조 씨. 마지막으로 "후배들의 눈높이를 못 맞춰 결국 '세대차이'를 극복 못 한 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악감정과 세대차이, 조 씨가 이번 사건을 해석한 두 가지 키워드입니다.

■ "언론계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검찰, 징역 1년 구형

하지만 검찰은 조 씨에게 징역 1년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 5년간 취업제한 명령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검찰은 "피해자가 범행 일시를 특정한 과정이 자연스럽고, 피해 진술이 전체적으로 구체적이며 신빙성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해당 회사 전·현직 기자들이 피해자의 진술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조 씨가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검찰은 "무엇보다 이 사건은 회사 조직 내에서 벌어진 범죄일 뿐 아니라 언론계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한 것이므로, 재발하여서는 절대 안 되는 범죄인 점도 감안해달라"고 덧붙였습니다.

■ "잠시라도 몸담았던 언론계가 달라지길"

오늘 재판에선 피해자 변호사가 변 씨의 입장문을 대독했습니다. 이제 언론계를 완전히 떠나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변 씨는 "끝까지 재판을 이어가는 것은 잠시라도 몸담았던 언론계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달라지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나이가 어린, 연차가 낮은 여성이 조직의 '꽃'이 되기를 기대하며 서슴없이 이뤄지는 말과 행동은 그 어느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비뚤어진 시선과 인식, 언행이 그간 줄어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언론계 내에 여전히 수많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본 재판이 향후 언론계와 그 종사자들에게 미칠 영향은 매우 큽니다. 잠시나마 애정을 갖고 몸담았던 언론계에 다시는 저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엄중한 처벌을 부탁드립니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방청석에 앉아 조 씨를 지켜봤던 변 씨는, 오늘 재판이 끝난 뒤에도 기자를 만나 당황스러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변 씨는 "상대 측 최후 변론을 듣고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어서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다"며 "어불성설을 듣고 있자니 다시 그동안의 지난한 과정이 떠올라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변 씨는 "제가 지치지 않고 계속 싸워나가야 할 이유를 준 것 같아 역설적이지만 고마운 마음"이라며 "부디 재판이 합리적으로 마무리되고 언론계와 우리 사회 전반이 다시 한 번 미투 이슈에 피로감이 아닌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다음 달 28일, 조 씨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열기로 했습니다.

한편 조 씨는 변 씨의 미투 폭로가 허위라며, 2018년 10월 변 씨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사건은 현재 서울서부지검에서 수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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