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연봉 2,000만 원 인상·신혼집은 한강변’ IT개발업자 몸값 뛰는 이유

입력 2021.03.20 (08:14) 수정 2021.03.2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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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연봉 상승으로 신혼집은 한강 근처로 알아보고 있어”
“경력직보다 오히려 신입 사원 연봉 높아져… 게임 회사로 이직 준비 중”

3월 19일 신분당선 판교역에 설치된  구인광고.3월 19일 신분당선 판교역에 설치된 구인광고.

지난 19일 오전 10시,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의 지하철역.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인파 사이로 기둥에 크게 붙은 구인광고가 눈에 띈다.

‘개발자 업계 최고대우’, ‘최대 1억 사이닝(연봉 외 보너스)’


한 부동산 플랫폼 기업이 내건 경력직 개발자 대규모 채용 광고다. 파격적인 조건에 사람들은 기둥에 붙은 광고를 슬쩍 보고 가거나 아예 멈춰서 광고 문구를 읽기도 했다.


■ 넥슨이 불붙인 연봉 인상, 업계 전반으로 확산


올 초 게임업체 넥슨에서 시작한 개발자 연봉인상 릴레이가 업계 전반으로 번지며, 판교 일대 훈풍이 불고 있다.
넥슨은 전 직원 연봉을 800만 원 일괄 인상해 개발자 신입 연봉을 5,000만 원으로 조정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어 넷마블과 게임빌, 컴투스가 전 직원 연봉을 800만 원 올렸고, 크래프톤은 개발자의 연봉을 2,000만 원 일괄 인상했다. 엔씨소프트는 개발자 연봉을 최소 1,300만 원 올려주기로 했다.

개발자 연봉 인상은 게임업계뿐 아니라 IT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금융 스타트업인 토스와 핀다는 경력 개발자를 채용하며 '1억 원 스톡옵션'을 내걸었고, 당근마켓은 개발자 연봉을 최저 5,000만 원으로 설정했다. 쿠팡은 지난해 경력직 개발자에게 사이닝 보너스 5,000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판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IT업계 종사자는 올해에 받은 성과급으로 차량 구매금액 정산을 마쳤다. 그는 "부모님 통해 무이자로 현금을 빌려 차를 구매해 죄송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에 천만 원 이상의 성과급을 받아 바로 갚았다"며 후련한 마음을 내비쳤다.

내년에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신랑인 그는 "연봉이 올해만 오르는 게 아니라 내년에도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있으니, 신혼집도 좀 더 좋은 한강 근처로 알아보고 있다"며, "대출에 있어 부담이 덜해지고 결혼에 대한 금전적인 부담이 많이 완화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 게임회사 관계자는 "연봉인상뿐 아니라 복지혜택도 관심 사안"이라며 "우리 회사는 5년 단위로 30일짜리 휴가를 준다"고 말했다.

변화의 바람은 부동산 업계서도 느끼고 있다.

판교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A 씨는 “이 근처 회사에서 직장인에게 월세를 지원해주거나 집을 대여해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종사자들의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판교 BMW 매장의 한 수입차 딜러는 "네이버나 판교에서 근무하는 IT 기업 직장인분들이 최근 많이 방문하고, 실제 구매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늘었다"며, "요즘은 한 달에 200대 가까이 출고되고 있어, 매장 순위가 전국 상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출고 가능한 재고가 없을 지경"이라고 전했다.


■ 개발자 품귀 현상 속 '양극화' 우려도
3월 19일 판교역 인근의 회사원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개천 주변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 3월 19일 판교역 인근의 회사원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개천 주변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

개발자 몸값이 '금값'이 된 이유는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개발 인력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판교의 한 개발자는 “IT 산업은 영업/마케팅, 원자재 등 여타 산업에 필수적인 제반 사항의 비중이 적은 만큼, 일하는 사람의 능력이 중요하다"며 "기업별로 IT 인재 채용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IT '공룡'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업계의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주목하고 있다.

이미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 체계를 갖추고 있던 두 회사는 지난해 연말 노사 협상을 통해 임금을 6~7%가량 인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연봉 인상안을 확정한 상황에서, 추가 연봉 인상 요구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카카오에 근무중인 5년 차 개발자는 “경력직이 신입보다 연봉이 낮은 경우가 있어, ‘돈을 많이 주는 신입 직원으로 이직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든다”며, “일 년 정도 게임에 대한 기술 스택을 익혀 게임 회사에 신입 공채 개발자로 이직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종사자는 “‘XX 만 원 올린다’라는 일괄적인 연봉인상의 흐름이 과연 회사로서 지속 가능한 복지인지는 의문”이라고 밝히며 “중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이 같은 연봉 인상 릴레이가 업계의 개발자 '양극화'로 이어지리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상대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벤처 업체는 연봉 인상을 통한 개발자 끌어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 업계 쪽에만 해당하는 거 아니냐. 나도 IT 회사에 근무하고 있지만,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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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연봉 2,000만 원 인상·신혼집은 한강변’ IT개발업자 몸값 뛰는 이유
    • 입력 2021-03-20 08:14:56
    • 수정2021-03-20 16:25:36
    취재K
“연봉 상승으로 신혼집은 한강 근처로 알아보고 있어”<br />“경력직보다 오히려 신입 사원 연봉 높아져… 게임 회사로 이직 준비 중”<br />
3월 19일 신분당선 판교역에 설치된  구인광고.
지난 19일 오전 10시,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의 지하철역.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인파 사이로 기둥에 크게 붙은 구인광고가 눈에 띈다.

‘개발자 업계 최고대우’, ‘최대 1억 사이닝(연봉 외 보너스)’


한 부동산 플랫폼 기업이 내건 경력직 개발자 대규모 채용 광고다. 파격적인 조건에 사람들은 기둥에 붙은 광고를 슬쩍 보고 가거나 아예 멈춰서 광고 문구를 읽기도 했다.


■ 넥슨이 불붙인 연봉 인상, 업계 전반으로 확산


올 초 게임업체 넥슨에서 시작한 개발자 연봉인상 릴레이가 업계 전반으로 번지며, 판교 일대 훈풍이 불고 있다.
넥슨은 전 직원 연봉을 800만 원 일괄 인상해 개발자 신입 연봉을 5,000만 원으로 조정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어 넷마블과 게임빌, 컴투스가 전 직원 연봉을 800만 원 올렸고, 크래프톤은 개발자의 연봉을 2,000만 원 일괄 인상했다. 엔씨소프트는 개발자 연봉을 최소 1,300만 원 올려주기로 했다.

개발자 연봉 인상은 게임업계뿐 아니라 IT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금융 스타트업인 토스와 핀다는 경력 개발자를 채용하며 '1억 원 스톡옵션'을 내걸었고, 당근마켓은 개발자 연봉을 최저 5,000만 원으로 설정했다. 쿠팡은 지난해 경력직 개발자에게 사이닝 보너스 5,000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판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IT업계 종사자는 올해에 받은 성과급으로 차량 구매금액 정산을 마쳤다. 그는 "부모님 통해 무이자로 현금을 빌려 차를 구매해 죄송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에 천만 원 이상의 성과급을 받아 바로 갚았다"며 후련한 마음을 내비쳤다.

내년에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신랑인 그는 "연봉이 올해만 오르는 게 아니라 내년에도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있으니, 신혼집도 좀 더 좋은 한강 근처로 알아보고 있다"며, "대출에 있어 부담이 덜해지고 결혼에 대한 금전적인 부담이 많이 완화된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 게임회사 관계자는 "연봉인상뿐 아니라 복지혜택도 관심 사안"이라며 "우리 회사는 5년 단위로 30일짜리 휴가를 준다"고 말했다.

변화의 바람은 부동산 업계서도 느끼고 있다.

판교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A 씨는 “이 근처 회사에서 직장인에게 월세를 지원해주거나 집을 대여해주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종사자들의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판교 BMW 매장의 한 수입차 딜러는 "네이버나 판교에서 근무하는 IT 기업 직장인분들이 최근 많이 방문하고, 실제 구매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늘었다"며, "요즘은 한 달에 200대 가까이 출고되고 있어, 매장 순위가 전국 상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출고 가능한 재고가 없을 지경"이라고 전했다.


■ 개발자 품귀 현상 속 '양극화' 우려도
3월 19일 판교역 인근의 회사원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개천 주변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
개발자 몸값이 '금값'이 된 이유는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개발 인력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판교의 한 개발자는 “IT 산업은 영업/마케팅, 원자재 등 여타 산업에 필수적인 제반 사항의 비중이 적은 만큼, 일하는 사람의 능력이 중요하다"며 "기업별로 IT 인재 채용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IT '공룡'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업계의 파격적인 연봉 인상을 주목하고 있다.

이미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 체계를 갖추고 있던 두 회사는 지난해 연말 노사 협상을 통해 임금을 6~7%가량 인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연봉 인상안을 확정한 상황에서, 추가 연봉 인상 요구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카카오에 근무중인 5년 차 개발자는 “경력직이 신입보다 연봉이 낮은 경우가 있어, ‘돈을 많이 주는 신입 직원으로 이직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든다”며, “일 년 정도 게임에 대한 기술 스택을 익혀 게임 회사에 신입 공채 개발자로 이직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종사자는 “‘XX 만 원 올린다’라는 일괄적인 연봉인상의 흐름이 과연 회사로서 지속 가능한 복지인지는 의문”이라고 밝히며 “중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이 같은 연봉 인상 릴레이가 업계의 개발자 '양극화'로 이어지리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상대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벤처 업체는 연봉 인상을 통한 개발자 끌어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 업계 쪽에만 해당하는 거 아니냐. 나도 IT 회사에 근무하고 있지만,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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