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으세요?” 양육비 밀린 전남편 사진 SNS 올려 벌금형

입력 2021.03.24 (09:58) 수정 2021.03.2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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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전 남편의 사진을 SNS에 게시한 40대 여성에게 벌금형이 선고됐습니다.

대전지법 형사12부는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전 남편의 사진 등을 자신의 SNS에 게시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45살 A 씨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다만 일부 공소는 무죄 판결이 났는데요. 재판부는 A 씨가 이혼한 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배드파더스' 주소를 지인에게 공유한 사실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양육비 두 달 밀린 전남편 온라인 신상 공개…국민참여재판서 유죄

"당신의 아이들을 위한 양육비 지급을 촉구합니다. 당신은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세요?"

2019년 7월 A 씨가 전남편의 사진과 함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입니다. 당시 A 씨는 2018년 5월 전남편 B 씨와 이혼한 뒤 2달 동안 양육비 4백만 원을 받지 못한 상태였는데요.

B 씨는 같은 해 3월 A 씨에게 재정사정이 좋지 않아 양육비 지급이 조금 늦어질 수 있으니 기다려달라는 취지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게시글을 올릴 당시 A 씨는 홀로 고등학생인 두 아들을 기르면서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는데요. 게시글을 올리기 전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서도 B 씨에게 지급을 촉구했지만, 제때 양육비를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A 씨의 SNS에 본인의 사진 등이 게시된 사실을 알게 된 전남편 B 씨는 한꺼번에 밀린 양육비를 지급한 뒤 A 씨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습니다.

이후 검찰은 A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2백만 원에 약식 기소했는데요. A 씨는 정식 재판을 요청했고 이후 국민 참여재판에 넘겨졌습니다.

■ "신상정보 공개될 필요 없었다" vs "아동 생존권 위협하는 문제"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의 주요 쟁점은 'A 씨에게 비방의 목적이 있었는지'와 'A 씨의 행위가 사회 상규에 벗어나는지'였는데요.

검찰은 "피해자는 계속 양육비를 주다 사업이 어려워지자 미리 양해를 구하고 딱 두 달 치를 제때 지급하지 못한 것"이라며 "신상정보와 사진이 모두 공개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인의 변호인 측은 "고등학생인 자녀 두 명에게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갈 때 피고인은 양육비 때문에 대출까지 받던 상황" 이라며 "사실을 적시한 피고인을 처벌하는 게 과연 맞는지 국민 여러분께 묻고 싶다"고 반박했습니다.

변호인 측은 또 게시글을 올린 동기가 전남편을 비방할 목적이 아닌 공익적 목적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전남편의 양육비 미지급 행위는 아동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로 단순한 개인 간의 채무불이행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씨가 해당 게시글을 올린 목적을 전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으려는 것으로 판단했는데요.

또 페이스북 사이트의 특성상 B씨를 직접 아는 제한적인 사람 말고도 A 씨의 친구로 등록된 많은 사람이 해당 글을 보고 B 씨가 '배드파더스'에 올라온 사실을 알 수 있게 된 점을 고려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남편 B 씨가 그동안 양육비를 지급했지만, 일부 양육비를 미지급한 이유 등을 해명할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 거라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해당 게시글은 양육비를 주지 않은 전남편을 수치심의 주체로 삼고 비난하고 있다"며 "공공의 이익보다는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게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A 씨의 행위가 "사회윤리나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봤습니다.

배심원 7명 가운데 5명은 유죄, 2명은 무죄로 평결했는데요. 양형 평의에서는 만장일치로 벌금 100만 원을 평결했습니다. 재판부는 배심원의 평의에 따라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다만 A 씨가 해당 게시글을 올린 데는 다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는 점 등을 양형 이유로 밝혔습니다.


■ 지인에게 '배드파더스' 링크 보낸 행위는 무죄

재판부는 A 씨가 2019년 7월 지인 수십 명에게 메시지를 통해 "양육비 미지급한 사람들을 신상 공개하는 사이트예요"라는 내용과 함께 '배드파더스' 사이트 링크 주소를 보낸 것은 무죄로 판결했습니다.

배심원 7명도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발송 대상이 친척이나 지인으로 한정됐고 B 씨가 수신자에게 그간의 양육비 지급상황과 일부 미지급한 이유 등을 해명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아동의 생존권보다는 어른의 명예를 더 중시한 판결"이라며 "홀로 아이를 기르는 양육자와 양육비 미지급 피해 가정이 피해의 목소리를 내는 데 위축될 수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다만 이를 계기로 양육비 지급을 미루는 무책임한 배우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A 씨의 항소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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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끄럽지 않으세요?” 양육비 밀린 전남편 사진 SNS 올려 벌금형
    • 입력 2021-03-24 09:58:44
    • 수정2021-03-24 18:34:28
    취재K

자녀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전 남편의 사진을 SNS에 게시한 40대 여성에게 벌금형이 선고됐습니다.

대전지법 형사12부는 양육비를 제때 지급하지 않은 전 남편의 사진 등을 자신의 SNS에 게시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45살 A 씨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다만 일부 공소는 무죄 판결이 났는데요. 재판부는 A 씨가 이혼한 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를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배드파더스' 주소를 지인에게 공유한 사실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양육비 두 달 밀린 전남편 온라인 신상 공개…국민참여재판서 유죄

"당신의 아이들을 위한 양육비 지급을 촉구합니다. 당신은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으세요?"

2019년 7월 A 씨가 전남편의 사진과 함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입니다. 당시 A 씨는 2018년 5월 전남편 B 씨와 이혼한 뒤 2달 동안 양육비 4백만 원을 받지 못한 상태였는데요.

B 씨는 같은 해 3월 A 씨에게 재정사정이 좋지 않아 양육비 지급이 조금 늦어질 수 있으니 기다려달라는 취지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게시글을 올릴 당시 A 씨는 홀로 고등학생인 두 아들을 기르면서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는데요. 게시글을 올리기 전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서도 B 씨에게 지급을 촉구했지만, 제때 양육비를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A 씨의 SNS에 본인의 사진 등이 게시된 사실을 알게 된 전남편 B 씨는 한꺼번에 밀린 양육비를 지급한 뒤 A 씨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했습니다.

이후 검찰은 A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2백만 원에 약식 기소했는데요. A 씨는 정식 재판을 요청했고 이후 국민 참여재판에 넘겨졌습니다.

■ "신상정보 공개될 필요 없었다" vs "아동 생존권 위협하는 문제"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의 주요 쟁점은 'A 씨에게 비방의 목적이 있었는지'와 'A 씨의 행위가 사회 상규에 벗어나는지'였는데요.

검찰은 "피해자는 계속 양육비를 주다 사업이 어려워지자 미리 양해를 구하고 딱 두 달 치를 제때 지급하지 못한 것"이라며 "신상정보와 사진이 모두 공개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피고인의 변호인 측은 "고등학생인 자녀 두 명에게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갈 때 피고인은 양육비 때문에 대출까지 받던 상황" 이라며 "사실을 적시한 피고인을 처벌하는 게 과연 맞는지 국민 여러분께 묻고 싶다"고 반박했습니다.

변호인 측은 또 게시글을 올린 동기가 전남편을 비방할 목적이 아닌 공익적 목적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전남편의 양육비 미지급 행위는 아동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문제로 단순한 개인 간의 채무불이행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씨가 해당 게시글을 올린 목적을 전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으려는 것으로 판단했는데요.

또 페이스북 사이트의 특성상 B씨를 직접 아는 제한적인 사람 말고도 A 씨의 친구로 등록된 많은 사람이 해당 글을 보고 B 씨가 '배드파더스'에 올라온 사실을 알 수 있게 된 점을 고려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남편 B 씨가 그동안 양육비를 지급했지만, 일부 양육비를 미지급한 이유 등을 해명할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 거라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해당 게시글은 양육비를 주지 않은 전남편을 수치심의 주체로 삼고 비난하고 있다"며 "공공의 이익보다는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게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A 씨의 행위가 "사회윤리나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봤습니다.

배심원 7명 가운데 5명은 유죄, 2명은 무죄로 평결했는데요. 양형 평의에서는 만장일치로 벌금 100만 원을 평결했습니다. 재판부는 배심원의 평의에 따라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다만 A 씨가 해당 게시글을 올린 데는 다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는 점 등을 양형 이유로 밝혔습니다.


■ 지인에게 '배드파더스' 링크 보낸 행위는 무죄

재판부는 A 씨가 2019년 7월 지인 수십 명에게 메시지를 통해 "양육비 미지급한 사람들을 신상 공개하는 사이트예요"라는 내용과 함께 '배드파더스' 사이트 링크 주소를 보낸 것은 무죄로 판결했습니다.

배심원 7명도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했습니다.

재판부는 발송 대상이 친척이나 지인으로 한정됐고 B 씨가 수신자에게 그간의 양육비 지급상황과 일부 미지급한 이유 등을 해명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아동의 생존권보다는 어른의 명예를 더 중시한 판결"이라며 "홀로 아이를 기르는 양육자와 양육비 미지급 피해 가정이 피해의 목소리를 내는 데 위축될 수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다만 이를 계기로 양육비 지급을 미루는 무책임한 배우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A 씨의 항소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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