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남] 대법 “‘기레기’는 모욕적 표현”…모욕죄 처벌은?

입력 2021.03.25 (11:56) 수정 2021.03.25 (15:2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 중 '기레기'란 표현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기자와 '쓰레기'라는 단어를 합성한 비하적 표현인데, 특정 기사에 불만을 표현하며 그 기사를 쓴 기자를 비난하는 겁니다. 기사 댓글에 이런 표현을 썼다면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습니다.

■ "기업 일방적 옹호"…'기레기' 댓글

사건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포털 사이트 다음의 자동차 핫이슈란에는 자동차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인 'MDPS'의 장점 등에 관하여 작성된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를 본 남성 이모 씨는 일방적인 홍보성 기사로 판단하고 "이런 걸 기레기라고 하죠?"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에 해당 기사를 썼던 기자는 이 씨를 고소했고, 이 씨는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형법 제 311조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모욕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 하급심 "기레기는 사회적 평가 저하 표현…모욕죄 맞아"

이 씨는 '기레기'라는 댓글을 쓴 사실은 있지만, 홍보성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지칭하는 말이었고, 해당 댓글이 당시 기사를 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라며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심인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은 이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 씨가 수사기관에서 진술하고 있듯이 기레기라고 함은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누군가를 쓰레기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이는 단지 그 단어 뒤에 물음표를 달았다는 사정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를 모욕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이 씨에게 벌금 3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2심 법원 역시 "기레기라는 표현은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기자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는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모욕죄 성립을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그러면서 "이 사건 댓글이 작성되기 전에도 이미 '흉기레기 기자야', '기레기야'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여러 개의 댓글이 게시되어 있었던 점에 비춰, 피고인은 다른 독자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댓글들에 동조하면서 이 사건 댓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고 모욕죄 유죄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 대법원 "기레기는 모욕적 표현이지만…"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대법원(주심 대법관 노정희)은 우선 "피고인이 이 사건 댓글에서 기재한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서 자극적인 제목이나 내용 등으로 홍보성 기사를 작성하는 행위 등을 하는 기자들 또는 기자들의 행태를 비하한 용어이므로 기자인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하급심 판단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이 이 사건 댓글을 작성한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며 모욕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봤습니다.

댓글이 모욕적 표현을 담고 있더라도, 그 댓글이 객관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사실을 전제로 해 그 사실관계나 판단 등이 합당한가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된 것에 불과하다면, 이른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한 겁니다.

대법원은 "당시 MDPS(Motor Driven Power Steering)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많은 가운데 기사는 MDPS를 옹호하는 제목으로 게시되었지만, 기사 내용의 많은 부분은 일반적인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EPS, Electric Power Steering)의 장점을 밝히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피고인이 일반적인 EPS의 장점에 기대 MDPS를 옹호하거나 홍보하는 듯한 이 사건 기사의 제목과 내용, 이를 작성한 피해자의 행위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담긴 댓글을 게시했는데, 이러한 의견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타당성 있는 사정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 댓글의 내용, 작성 시기와 위치, 이 사건 댓글 전후로 게시된 다른 댓글의 내용과 흐름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댓글은 그 전후에 게시된 다른 댓글들과 같은 견지에서 기사의 제목과 내용, 이를 작성한 피해자의 행위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을 강조하거나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이 사건 댓글의 표현이 지나치게 악의적이라고 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판결남] 대법 “‘기레기’는 모욕적 표현”…모욕죄 처벌은?
    • 입력 2021-03-25 11:56:03
    • 수정2021-03-25 15:29:51
    취재K

기사에 달리는 댓글 중 '기레기'란 표현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기자와 '쓰레기'라는 단어를 합성한 비하적 표현인데, 특정 기사에 불만을 표현하며 그 기사를 쓴 기자를 비난하는 겁니다. 기사 댓글에 이런 표현을 썼다면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습니다.

■ "기업 일방적 옹호"…'기레기' 댓글

사건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포털 사이트 다음의 자동차 핫이슈란에는 자동차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인 'MDPS'의 장점 등에 관하여 작성된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를 본 남성 이모 씨는 일방적인 홍보성 기사로 판단하고 "이런 걸 기레기라고 하죠?"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에 해당 기사를 썼던 기자는 이 씨를 고소했고, 이 씨는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형법 제 311조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모욕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 하급심 "기레기는 사회적 평가 저하 표현…모욕죄 맞아"

이 씨는 '기레기'라는 댓글을 쓴 사실은 있지만, 홍보성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지칭하는 말이었고, 해당 댓글이 당시 기사를 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라며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1심인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은 이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 씨가 수사기관에서 진술하고 있듯이 기레기라고 함은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누군가를 쓰레기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이는 단지 그 단어 뒤에 물음표를 달았다는 사정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를 모욕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이 씨에게 벌금 3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2심 법원 역시 "기레기라는 표현은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기자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는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모욕죄 성립을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그러면서 "이 사건 댓글이 작성되기 전에도 이미 '흉기레기 기자야', '기레기야'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여러 개의 댓글이 게시되어 있었던 점에 비춰, 피고인은 다른 독자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댓글들에 동조하면서 이 사건 댓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고 모욕죄 유죄 판단을 유지했습니다.

■ 대법원 "기레기는 모욕적 표현이지만…"

대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요?

대법원(주심 대법관 노정희)은 우선 "피고인이 이 사건 댓글에서 기재한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서 자극적인 제목이나 내용 등으로 홍보성 기사를 작성하는 행위 등을 하는 기자들 또는 기자들의 행태를 비하한 용어이므로 기자인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하급심 판단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이 이 사건 댓글을 작성한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며 모욕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봤습니다.

댓글이 모욕적 표현을 담고 있더라도, 그 댓글이 객관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사실을 전제로 해 그 사실관계나 판단 등이 합당한가 등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된 것에 불과하다면, 이른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한 겁니다.

대법원은 "당시 MDPS(Motor Driven Power Steering)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많은 가운데 기사는 MDPS를 옹호하는 제목으로 게시되었지만, 기사 내용의 많은 부분은 일반적인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EPS, Electric Power Steering)의 장점을 밝히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피고인이 일반적인 EPS의 장점에 기대 MDPS를 옹호하거나 홍보하는 듯한 이 사건 기사의 제목과 내용, 이를 작성한 피해자의 행위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담긴 댓글을 게시했는데, 이러한 의견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타당성 있는 사정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 댓글의 내용, 작성 시기와 위치, 이 사건 댓글 전후로 게시된 다른 댓글의 내용과 흐름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댓글은 그 전후에 게시된 다른 댓글들과 같은 견지에서 기사의 제목과 내용, 이를 작성한 피해자의 행위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을 강조하거나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이 사건 댓글의 표현이 지나치게 악의적이라고 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