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중국 왜 싫어하는데!?”…불타는 나이키에서 드러난 속내는?

입력 2021.03.28 (08:03) 수정 2021.03.2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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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나이키 제품) 안 사면 된다."

한 중국 네티즌이 SNS에 나이키 신발을 불태우는 동영상을 올리며 한 말입니다.

"중국 밥을 먹으면서 중국 솥을 깨뜨리려는 생각은 하지마!

스웨덴 의류업체 H&M을 향한 중국인들의 비난도 거셉니다.

 중국 청두 한 쇼핑몰에서 H&M 현수막을 뜯어내는 모습 (출처: 중국 웨이보 ) 중국 청두 한 쇼핑몰에서 H&M 현수막을 뜯어내는 모습 (출처: 중국 웨이보 )

H&M의 광고 간판을 당장 뗀 쇼핑몰이 있는가 하면,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아예 검색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아디다스, CK, 뉴발란스 등도 불매 운동 대상에 올랐는데요.

나이키 아디다스 주가는 내리고 대신 리닝과 안타같은 중국 스포츠 브랜드들은 홍콩 증시에서 주가가 올라가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연예인들을 포함해 수십여 명이 중국 스타들도 불매 대상이 된 기업들에 빠르게 등을 돌렸습니다.




도대체 이 기업들이 무엇을 했길래 중국인들은 이토록 화가 났을까요?


■ 한 회사의 게시물이 부른 불매 운동

이번 불매 운동의 시작은 사실 지난해 H&M이 올린 한 게시글에서 비롯됐습니다.

"BCI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믿을 만한 실사를 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이 지역에서 BCI 면화 인증(라이선스)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이말은 우리(H&M)도 더 이상 이 지역에서 나오는 면화를 조달받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여기서 BCI, Better Cotton Initiative(더 나은 면화를 위한 계획)라는 비영리 단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단체명에서 보듯 '더 나은 면화'를 위해서 "환경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면화를 생산하고, 농민들은 안전과 복지를 지원하는 노동 원칙을 준수한다"는 걸 기준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이 기준을 맞춘 면화는 BCI 인증을 해주는 것이죠.

그런데 BCI가 '신장·위구르 지역을 제대로 조사하기 어려워서 기준을 맞추고 있는지 모르겠으니 더는 BCI 인증을 못하겠다.'고 하자 회원사인 H&M도 이 지역 솜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겁니다.

이미 지난해 발표됐던 이 게시글은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이 24일 중국 대표 SNS에 올리면서 급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이 24일 H&M의 공지글을 게시하며 쓴 글 (출처: 공청단 공식 웨이보 계정)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이 24일 H&M의 공지글을 게시하며 쓴 글 (출처: 공청단 공식 웨이보 계정)

최근 유럽연합이 신장 인권 문제를 이유로 중국에 대한 제재에 나서자 뒤늦게 이 게시글을 재조명한 걸로 해석됩니다.

그러자 중국 SNS가 들끓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에는 신장과 목화 관련 검색어가 온종일 실시간 검색 상위권에 올라왔고요.



곧이어 H&M, 나이키, 아디다스, 갭 등과 같이 신장·위구르 목화를 쓰지 않겠다고 밝힌 기업들 명단들이 인터넷에 공개됐습니다.

여기에 중국 CCTV와 인민일보 등 관영 언론들도 비판에 힘을 보탰는데요.

신장·위구르 지역의 목화 생산 과정에서 강제 노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건 거짓이고 여기에 속아 이 지역 목화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대응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목화 농장 노예' 주장 사진까지 등장

급기야 외교부 대변인은 25일 사진 한 장을 들고 브리핑에 나섰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25일 '미국 노예 사진'이라며 신장 관련 발언을 하는 모습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25일 '미국 노예 사진'이라며 신장 관련 발언을 하는 모습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의 노예로 팔려간 흑인들이 목화솜을 따는 사진이라고 말하며 미국이 "역사적으로 100년 넘게 실제로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자기식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미국의 한 유명 사진작가가 1968년 텍사스의 퍼거슨 교도소 죄수들이 목화밭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화춘잉 대변인은 " 신장 지역에서 강제 노동이 이뤄졌다는 주장은 반중 세력이 악의적으로 날조한 거짓말로, 중국의 이미지에 먹칠하고 중국의 발전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네티즌·언론·정부까지 한목소리…속내는?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무엇보다 '반중 세력'입니다.

지금 신장·위구르 면화를 문제 삼는 세력은 그야말로 '중국을 싫어하고' 또 '중국에 대항하고 있다'는 시각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25일 텅빈 중국 시안의 한 H&M 매장 (출처: 펑파이) 25일 텅빈 중국 시안의 한 H&M 매장 (출처: 펑파이)

앞서 BCI와 H&M, 나이키 등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 환경 보호·농민 안전과 복지' 를 지키며 목화를 재배하고 있는 건지 묻고 있는데, 정작 중국은 '그 지적 자체가 잘못됐고 중국이 싫어서 그러는 것 아니냐'고 반박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쪽은 '인권과 기업 윤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중국은 '반중국'이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분노 기저에는 '애국주의·민족주의' 활활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시각은 네티즌들의 반응과 언론 기사에서도 그대로 확인됩니다.

인민일보는 26일 "소위 강제 노동과 소수 민족 차별은 거짓말"이라는 기사와 함께 '결백한 면화에 먹칠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를 담은 그래픽을 넣었습니다.

 인민일보가 제작한 신장 면화 관련 문구 (출처: 인민일보) 인민일보가 제작한 신장 면화 관련 문구 (출처: 인민일보)

H&M을 정확히 반대로 뒤집어 M&H로 '면화'와 '먹칠'이라는 단어를 넣어 만든 문구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신장·위구르 지역을 모욕하지 말라'는 뜻이자 곧 '중국을 모욕하지 말라'는 경고로 읽힙니다.

네티즌들은 오늘도 이 문구를 널리 공유하면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불매 운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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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중국 왜 싫어하는데!?”…불타는 나이키에서 드러난 속내는?
    • 입력 2021-03-28 08:03:21
    • 수정2021-03-28 21:09:23
    특파원 리포트

"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나이키 제품) 안 사면 된다."

한 중국 네티즌이 SNS에 나이키 신발을 불태우는 동영상을 올리며 한 말입니다.

"중국 밥을 먹으면서 중국 솥을 깨뜨리려는 생각은 하지마!

스웨덴 의류업체 H&M을 향한 중국인들의 비난도 거셉니다.

 중국 청두 한 쇼핑몰에서 H&M 현수막을 뜯어내는 모습 (출처: 중국 웨이보 )
H&M의 광고 간판을 당장 뗀 쇼핑몰이 있는가 하면,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아예 검색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아디다스, CK, 뉴발란스 등도 불매 운동 대상에 올랐는데요.

나이키 아디다스 주가는 내리고 대신 리닝과 안타같은 중국 스포츠 브랜드들은 홍콩 증시에서 주가가 올라가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연예인들을 포함해 수십여 명이 중국 스타들도 불매 대상이 된 기업들에 빠르게 등을 돌렸습니다.




도대체 이 기업들이 무엇을 했길래 중국인들은 이토록 화가 났을까요?


■ 한 회사의 게시물이 부른 불매 운동

이번 불매 운동의 시작은 사실 지난해 H&M이 올린 한 게시글에서 비롯됐습니다.

"BCI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믿을 만한 실사를 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이 지역에서 BCI 면화 인증(라이선스)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이말은 우리(H&M)도 더 이상 이 지역에서 나오는 면화를 조달받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여기서 BCI, Better Cotton Initiative(더 나은 면화를 위한 계획)라는 비영리 단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단체명에서 보듯 '더 나은 면화'를 위해서 "환경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면화를 생산하고, 농민들은 안전과 복지를 지원하는 노동 원칙을 준수한다"는 걸 기준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이 기준을 맞춘 면화는 BCI 인증을 해주는 것이죠.

그런데 BCI가 '신장·위구르 지역을 제대로 조사하기 어려워서 기준을 맞추고 있는지 모르겠으니 더는 BCI 인증을 못하겠다.'고 하자 회원사인 H&M도 이 지역 솜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겁니다.

이미 지난해 발표됐던 이 게시글은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이 24일 중국 대표 SNS에 올리면서 급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이 24일 H&M의 공지글을 게시하며 쓴 글 (출처: 공청단 공식 웨이보 계정)
최근 유럽연합이 신장 인권 문제를 이유로 중국에 대한 제재에 나서자 뒤늦게 이 게시글을 재조명한 걸로 해석됩니다.

그러자 중국 SNS가 들끓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에는 신장과 목화 관련 검색어가 온종일 실시간 검색 상위권에 올라왔고요.



곧이어 H&M, 나이키, 아디다스, 갭 등과 같이 신장·위구르 목화를 쓰지 않겠다고 밝힌 기업들 명단들이 인터넷에 공개됐습니다.

여기에 중국 CCTV와 인민일보 등 관영 언론들도 비판에 힘을 보탰는데요.

신장·위구르 지역의 목화 생산 과정에서 강제 노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건 거짓이고 여기에 속아 이 지역 목화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대응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목화 농장 노예' 주장 사진까지 등장

급기야 외교부 대변인은 25일 사진 한 장을 들고 브리핑에 나섰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25일 '미국 노예 사진'이라며 신장 관련 발언을 하는 모습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의 노예로 팔려간 흑인들이 목화솜을 따는 사진이라고 말하며 미국이 "역사적으로 100년 넘게 실제로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자기식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진은 미국의 한 유명 사진작가가 1968년 텍사스의 퍼거슨 교도소 죄수들이 목화밭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화춘잉 대변인은 " 신장 지역에서 강제 노동이 이뤄졌다는 주장은 반중 세력이 악의적으로 날조한 거짓말로, 중국의 이미지에 먹칠하고 중국의 발전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네티즌·언론·정부까지 한목소리…속내는?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무엇보다 '반중 세력'입니다.

지금 신장·위구르 면화를 문제 삼는 세력은 그야말로 '중국을 싫어하고' 또 '중국에 대항하고 있다'는 시각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25일 텅빈 중국 시안의 한 H&M 매장 (출처: 펑파이)
앞서 BCI와 H&M, 나이키 등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 환경 보호·농민 안전과 복지' 를 지키며 목화를 재배하고 있는 건지 묻고 있는데, 정작 중국은 '그 지적 자체가 잘못됐고 중국이 싫어서 그러는 것 아니냐'고 반박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쪽은 '인권과 기업 윤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중국은 '반중국'이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분노 기저에는 '애국주의·민족주의' 활활

이 같은 중국 정부의 시각은 네티즌들의 반응과 언론 기사에서도 그대로 확인됩니다.

인민일보는 26일 "소위 강제 노동과 소수 민족 차별은 거짓말"이라는 기사와 함께 '결백한 면화에 먹칠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를 담은 그래픽을 넣었습니다.

 인민일보가 제작한 신장 면화 관련 문구 (출처: 인민일보)
H&M을 정확히 반대로 뒤집어 M&H로 '면화'와 '먹칠'이라는 단어를 넣어 만든 문구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신장·위구르 지역을 모욕하지 말라'는 뜻이자 곧 '중국을 모욕하지 말라'는 경고로 읽힙니다.

네티즌들은 오늘도 이 문구를 널리 공유하면서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불매 운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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