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또래집단 ‘정서 학폭’ 급증

입력 2021.03.2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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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폭력을 가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긴 단체 대화방신체 폭력을 가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긴 단체 대화방

"학교 근처로 가지도 못해요. 진짜 피눈물 났죠."

괴롭힘의 시작은 단체 대화방이었습니다. 20명이 넘는 대화방에서 특정 학생을 비난하는 내용이 쉴새없이 올라왔습니다.

그 아이가 SNS로 친구 맺기를 한 행동, 말투 하나하나 모두 헐뜯었습니다. 말리는 사람은 없었고, 급기야 언어폭력도 모자라 신체적 폭력을 하고 싶다는 조롱도 계속됐습니다.

대화방에 있던 한 친구가 피해 사실을 알리려 하자 '후회할 짓 하지 마라'는 협박도 이어졌습니다. 당시 학교 측은 괴롭힘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 3명의 학생에게 봉사활동 5일 처분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봉사활동 후에도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고, 피해 학생은 자그마치 2년을 고통받아야만 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도 대학 1년만에 결국 휴학까지 하게 됐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원격수업이 진행됐던 지난해, 이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24시간 울리는 대화방과 SNS, 그 속에서 아이들은 쉴새없이 다쳤습니다.

사이버 공간의 정서 폭력 급증…"24시간, 더 은밀하게"

부산경찰청과 부산교육청의 조사 결과, 지난해 학교폭력으로 검거된 가해 학생 수는 전년 대비 30% 가까이 줄어든 710명입니다. 기존의 폭행과 상해 등 신체 폭력이 45%나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형별로 살펴보면, 모욕과 명예훼손 등 언어폭력 중심의 학교 폭력은 최대 230%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언어폭력이나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을 '정서적 폭력'이라고 일컫습니다. 괴롭힘은 더 은밀하게 이뤄집니다. 단체 대화방에서 언어 폭력을 가하고, 피해 학생이 방을 나가면 끊임없이 초대하는 '채팅 감옥'부터, 피해 학생의 SNS 계정을 빼앗아 유료 결제 등을 하는 범죄행위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으로 괴롭힘 양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 수업이 원격수업으로 대체됐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사이버 공간에서 교류를 하자, 괴롭힘도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갔기 때문인데요.

장은선 부산광역시 청소년지원센터 소장은 "비대면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감 이런걸 SNS로 분출하면서 사이버 폭력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괴롭힘이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다보니까 벗어날 수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자료사진자료사진

코로나19 확산에 무너지는 또래 모임…학교폭력 대책 바뀌어야

교육청은 또래상담자 등을 육성해 내부 공동체의 분위기를 쇄신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는데요. 문제는 이같은 괴롭힘을 막아야 하는 학교와 학부모의 역할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사이버 공간의 괴롭힘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학교에서 디지털 피해 예방 교육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또 10대 청소년의 스마트폰 보유율이 95%에 달하지만 미디어 교육도 부실한데요.

전문가들은 자녀들이 처음 미디어를 접하는 시점부터 미디어 이용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 교육이 필수인데요. 미디어 사용 시간, 이용 패턴 등을 가르치고 괴롭힘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도록 사용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겁니다.

부산에서는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늘면서 학생 확진자도 잇따라 발생해 학교들이 다시 원격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개학 이후 친구를 인터넷 게임으로 사귀었다가 몇 개월 만에 처음 얼굴을 봤다는 웃지 못할 경우도 있었는데요. 사이버 공간에서의 또래 모임이 끔찍한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모두가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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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S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또래집단 ‘정서 학폭’ 급증
    • 입력 2021-03-29 16:10:50
    취재K
신체 폭력을 가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긴 단체 대화방
"학교 근처로 가지도 못해요. 진짜 피눈물 났죠."

괴롭힘의 시작은 단체 대화방이었습니다. 20명이 넘는 대화방에서 특정 학생을 비난하는 내용이 쉴새없이 올라왔습니다.

그 아이가 SNS로 친구 맺기를 한 행동, 말투 하나하나 모두 헐뜯었습니다. 말리는 사람은 없었고, 급기야 언어폭력도 모자라 신체적 폭력을 하고 싶다는 조롱도 계속됐습니다.

대화방에 있던 한 친구가 피해 사실을 알리려 하자 '후회할 짓 하지 마라'는 협박도 이어졌습니다. 당시 학교 측은 괴롭힘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 3명의 학생에게 봉사활동 5일 처분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봉사활동 후에도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고, 피해 학생은 자그마치 2년을 고통받아야만 했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도 대학 1년만에 결국 휴학까지 하게 됐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원격수업이 진행됐던 지난해, 이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24시간 울리는 대화방과 SNS, 그 속에서 아이들은 쉴새없이 다쳤습니다.

사이버 공간의 정서 폭력 급증…"24시간, 더 은밀하게"

부산경찰청과 부산교육청의 조사 결과, 지난해 학교폭력으로 검거된 가해 학생 수는 전년 대비 30% 가까이 줄어든 710명입니다. 기존의 폭행과 상해 등 신체 폭력이 45%나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형별로 살펴보면, 모욕과 명예훼손 등 언어폭력 중심의 학교 폭력은 최대 230%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이처럼 언어폭력이나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을 '정서적 폭력'이라고 일컫습니다. 괴롭힘은 더 은밀하게 이뤄집니다. 단체 대화방에서 언어 폭력을 가하고, 피해 학생이 방을 나가면 끊임없이 초대하는 '채팅 감옥'부터, 피해 학생의 SNS 계정을 빼앗아 유료 결제 등을 하는 범죄행위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이버 공간으로 괴롭힘 양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 수업이 원격수업으로 대체됐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사이버 공간에서 교류를 하자, 괴롭힘도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갔기 때문인데요.

장은선 부산광역시 청소년지원센터 소장은 "비대면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감 이런걸 SNS로 분출하면서 사이버 폭력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괴롭힘이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다보니까 벗어날 수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자료사진
코로나19 확산에 무너지는 또래 모임…학교폭력 대책 바뀌어야

교육청은 또래상담자 등을 육성해 내부 공동체의 분위기를 쇄신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는데요. 문제는 이같은 괴롭힘을 막아야 하는 학교와 학부모의 역할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사이버 공간의 괴롭힘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학교에서 디지털 피해 예방 교육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또 10대 청소년의 스마트폰 보유율이 95%에 달하지만 미디어 교육도 부실한데요.

전문가들은 자녀들이 처음 미디어를 접하는 시점부터 미디어 이용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 교육이 필수인데요. 미디어 사용 시간, 이용 패턴 등을 가르치고 괴롭힘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도록 사용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겁니다.

부산에서는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늘면서 학생 확진자도 잇따라 발생해 학교들이 다시 원격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개학 이후 친구를 인터넷 게임으로 사귀었다가 몇 개월 만에 처음 얼굴을 봤다는 웃지 못할 경우도 있었는데요. 사이버 공간에서의 또래 모임이 끔찍한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모두가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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