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 옆 ‘지뢰지대’…해제한다더니 20년째 제자리

입력 2021.03.30 (14:45) 수정 2021.03.3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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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마을에서 발견된 M14지뢰.지난해 여름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마을에서 발견된 M14지뢰.

지난해 여름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강원도 철원 이길리 마을에서 'M14' 지뢰 30발이 발견됐습니다. 주변 지뢰지대에 묻혀있던 지뢰가 빗물에 휩쓸려 마을까지 내려온 겁니다.

얼마 뒤 경기도 고양시 한강 변에서도 M14 지뢰 1발이 발견돼 군 당국이 수거했습니다. 이를 포함해 지난해 강원도와 경기도 접경지역에서 발견된 유실 지뢰는 250여 발에 이릅니다.

이런 뉴스를 보다 보면 지뢰 문제를 접경지역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서울 우면산, 대구 최정산, 나주 금성산 등 도심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도 '지뢰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전남 나주 금성산에 설치된 지뢰 경고 표지판. 금성산 일대에는 아직 M14지뢰 68발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전남 나주 금성산에 설치된 지뢰 경고 표지판. 금성산 일대에는 아직 M14지뢰 68발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후방지역 지뢰지대' 전국 37곳에 3천 발 남아

군 당국은 지난해부터 전남 나주 금성산 일대에서 지뢰 제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벌써 4번째 작업입니다. 이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 M14 지뢰 1,853발이 매설됐습니다. 정상에 있는 방공기지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진행된 제거 작업으로 매설 지뢰 대부분을 제거했지만, 아직 68발 가량이 금성산 일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군 당국은 당초 지난해까지 이 지역에 대한 지뢰제거 작업을 끝낼 계획이었는데 작업 기간이 올해 11월까지 연장됐습니다. 지난해 유독 비가 자주 내린 영향도 있지만, 작업 구간 바깥에서도 지뢰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수도권에서도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 우면산 등산로를 따라 30분가량 올라가다 보면, 지뢰지대를 알리는 표지판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아직 지뢰 20여 발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곳들을 포함해 전국의 후방지역 방공진지 37곳에는 지뢰 3천 발이 남아있습니다.

앞서 군 당국은 지난 2001년 이 지역들에 대해 전략적 필요성이 사라졌다며 2006년까지 지뢰를 모두 제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지켜지지 않았고, 군 당국은 2019년 이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지적되자, 인력과 장비를 대폭 보완해 2021년 10월까지 지뢰 제거 작업을 마치겠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시민단체 녹색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군 당국이 '지뢰제거작전'을 통해 제거한 지뢰는 430여 발입니다. 현재 속도라면 목표 달성은 사실상 어려워 보입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지뢰 제거 작전은 정상 추진 중이며, 코로나19와 지난해 집중호우로 인해 유실된 지뢰 제거작전에 병력이 투입돼, 작전이 일부 지연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작전 종료 후 지자체와 토지 소유주 등과 지뢰지대 개방 등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우면산에 설치된 ‘과거지뢰지대’ 팻말.  서울 우면산에 설치된 ‘과거지뢰지대’ 팻말.

'과거지뢰지대'에는 지뢰가 있을까? 없을까?

금성산과 우면산 등에는 '과거지뢰지대'라는 팻말이 설치돼 있습니다. 지뢰가 있다면 '지뢰 지대'이고, 제거 작업이 다 끝났다면 표지판을 설치할 이유는 없는데 '과거지뢰지대'는 무슨 뜻일까요?

바로 군 당국이 제거 작업을 벌였지만, 혹시 확인되지 않은 지뢰로 인한 사고 발생 위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현장을 함께 찾은 이지수 녹색연합 활동가는 "군 당국이 혹시 모를 사고에 책임을 지기 싫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뢰를 제거했으면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거 작업을 끝내도 활용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나주시는 금성산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지뢰 제거 작업이 끝나고 정상부를 시민들에게 개방하려는 계획이 포함돼 있습니다.

나주시 관계자는 "제거 작업이 끝나도 지뢰지대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반쪽짜리 도립공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시민단체 "국제 기준 맞는 지뢰제거시스템 도입해야"

지난 20년 동안 지뢰 문제를 공론화해 온 녹색연합은"군 당국의 독자적인 지뢰제거 작업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군 당국이 전략적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발표한 만큼, 이 지역들에 대해선 '안보'가 아닌 '안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녹색연합은 국제 사회가 해결 지침으로 내놓은 국제지뢰행동표준(IMAS)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대인지뢰 금지협약인 오타와협약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IMAS는 지뢰제거뿐만 아니라 환경과 피해자 지원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 부처 간의 협력, 민관 협력,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녹색연합은 "그동안 지뢰 문제가 분단으로 인해 당연히 감내해야 할 국가 안보의 영역으로 인식되면서 큰 진전 없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면서 "이제라도 IMAS를 도입하고 전담 기구를 설립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철원 이길리 주민들도 지난해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부대가 탐지를 하고 지나간 자리에서 민간 전문가가 대인지뢰 3발을 발견했다"면서 "국방부에 의존한 기존의 지뢰제거작업에는 한계가 있다"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이지수 녹색연합 활동가는 "지금 속도라면 우리나라 지뢰지대를 해제하는 데 최대 5백 년이 걸린다는 예측도 있다"면서 "IMAS를 통해 지뢰를 제거하면 속도도 빠르고 지뢰지대 해제도 확실하게 일어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지뢰가 곳곳에 많이 있는 캄보디아는 1991년 IMAS를 도입해 지금까지 100만 발이 넘는 지뢰를 제거했습니다. 2019년 한 해에만 7만 여 발제거하고, 130㎢의 지뢰·불발탄 지대를 해제했습니다.

이 활동가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은 지뢰지대가 124㎢인데, 그것보다 넓은 지역을 1년 만에 해제했다"면서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국제지뢰행동표준(IMAS)을 국내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짧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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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책로 옆 ‘지뢰지대’…해제한다더니 20년째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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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1-03-30 16:51:00
    취재K
지난해 여름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마을에서 발견된 M14지뢰.
지난해 여름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강원도 철원 이길리 마을에서 'M14' 지뢰 30발이 발견됐습니다. 주변 지뢰지대에 묻혀있던 지뢰가 빗물에 휩쓸려 마을까지 내려온 겁니다.

얼마 뒤 경기도 고양시 한강 변에서도 M14 지뢰 1발이 발견돼 군 당국이 수거했습니다. 이를 포함해 지난해 강원도와 경기도 접경지역에서 발견된 유실 지뢰는 250여 발에 이릅니다.

이런 뉴스를 보다 보면 지뢰 문제를 접경지역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서울 우면산, 대구 최정산, 나주 금성산 등 도심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도 '지뢰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전남 나주 금성산에 설치된 지뢰 경고 표지판. 금성산 일대에는 아직 M14지뢰 68발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후방지역 지뢰지대' 전국 37곳에 3천 발 남아

군 당국은 지난해부터 전남 나주 금성산 일대에서 지뢰 제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벌써 4번째 작업입니다. 이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 M14 지뢰 1,853발이 매설됐습니다. 정상에 있는 방공기지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진행된 제거 작업으로 매설 지뢰 대부분을 제거했지만, 아직 68발 가량이 금성산 일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군 당국은 당초 지난해까지 이 지역에 대한 지뢰제거 작업을 끝낼 계획이었는데 작업 기간이 올해 11월까지 연장됐습니다. 지난해 유독 비가 자주 내린 영향도 있지만, 작업 구간 바깥에서도 지뢰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수도권에서도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 우면산 등산로를 따라 30분가량 올라가다 보면, 지뢰지대를 알리는 표지판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아직 지뢰 20여 발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곳들을 포함해 전국의 후방지역 방공진지 37곳에는 지뢰 3천 발이 남아있습니다.

앞서 군 당국은 지난 2001년 이 지역들에 대해 전략적 필요성이 사라졌다며 2006년까지 지뢰를 모두 제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지켜지지 않았고, 군 당국은 2019년 이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지적되자, 인력과 장비를 대폭 보완해 2021년 10월까지 지뢰 제거 작업을 마치겠다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시민단체 녹색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군 당국이 '지뢰제거작전'을 통해 제거한 지뢰는 430여 발입니다. 현재 속도라면 목표 달성은 사실상 어려워 보입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지뢰 제거 작전은 정상 추진 중이며, 코로나19와 지난해 집중호우로 인해 유실된 지뢰 제거작전에 병력이 투입돼, 작전이 일부 지연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작전 종료 후 지자체와 토지 소유주 등과 지뢰지대 개방 등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우면산에 설치된 ‘과거지뢰지대’ 팻말.
'과거지뢰지대'에는 지뢰가 있을까? 없을까?

금성산과 우면산 등에는 '과거지뢰지대'라는 팻말이 설치돼 있습니다. 지뢰가 있다면 '지뢰 지대'이고, 제거 작업이 다 끝났다면 표지판을 설치할 이유는 없는데 '과거지뢰지대'는 무슨 뜻일까요?

바로 군 당국이 제거 작업을 벌였지만, 혹시 확인되지 않은 지뢰로 인한 사고 발생 위험이 있다는 뜻입니다.

현장을 함께 찾은 이지수 녹색연합 활동가는 "군 당국이 혹시 모를 사고에 책임을 지기 싫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뢰를 제거했으면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거 작업을 끝내도 활용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나주시는 금성산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려고 하는데, 여기에는 지뢰 제거 작업이 끝나고 정상부를 시민들에게 개방하려는 계획이 포함돼 있습니다.

나주시 관계자는 "제거 작업이 끝나도 지뢰지대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반쪽짜리 도립공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시민단체 "국제 기준 맞는 지뢰제거시스템 도입해야"

지난 20년 동안 지뢰 문제를 공론화해 온 녹색연합은"군 당국의 독자적인 지뢰제거 작업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군 당국이 전략적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발표한 만큼, 이 지역들에 대해선 '안보'가 아닌 '안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녹색연합은 국제 사회가 해결 지침으로 내놓은 국제지뢰행동표준(IMAS)을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대인지뢰 금지협약인 오타와협약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IMAS는 지뢰제거뿐만 아니라 환경과 피해자 지원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 부처 간의 협력, 민관 협력,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게 주요 내용입니다.

녹색연합은 "그동안 지뢰 문제가 분단으로 인해 당연히 감내해야 할 국가 안보의 영역으로 인식되면서 큰 진전 없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면서 "이제라도 IMAS를 도입하고 전담 기구를 설립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철원 이길리 주민들도 지난해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부대가 탐지를 하고 지나간 자리에서 민간 전문가가 대인지뢰 3발을 발견했다"면서 "국방부에 의존한 기존의 지뢰제거작업에는 한계가 있다"고 즉각적인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이지수 녹색연합 활동가는 "지금 속도라면 우리나라 지뢰지대를 해제하는 데 최대 5백 년이 걸린다는 예측도 있다"면서 "IMAS를 통해 지뢰를 제거하면 속도도 빠르고 지뢰지대 해제도 확실하게 일어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지뢰가 곳곳에 많이 있는 캄보디아는 1991년 IMAS를 도입해 지금까지 100만 발이 넘는 지뢰를 제거했습니다. 2019년 한 해에만 7만 여 발제거하고, 130㎢의 지뢰·불발탄 지대를 해제했습니다.

이 활동가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은 지뢰지대가 124㎢인데, 그것보다 넓은 지역을 1년 만에 해제했다"면서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국제지뢰행동표준(IMAS)을 국내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짧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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