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 코드 꿈도 못 꿔요”…코로나 시국에 더 고립된 장애인

입력 2021.04.02 (08:00) 수정 2021.04.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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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상황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식당이나 카페에 갈 때마다 ‘QR코드’ 인증을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방문자 명부’에 직접 개인정보를 써야 할 때도 잦습니다.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면서, 카카오톡은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한 뒤 휴대폰을 흔들기만 하면 QR코드가 바로 실행되는 편리한 기능까지 선보이고 있죠.

누군가에겐 점점 더 편리해지는 이런 기능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QR코드가 시각장애인들에게 바로 그런 기능입니다.

 수기방명록과 QR코드 수기방명록과 QR코드

“QR은 시각장애인을 100% 이해하지 못한 결과…안 보이는데 어떻게 초록색 네모 안에 딱 맞추나요?”

QR코드는 특정 정보를 정사각형 이미지로 표현한 것으로, ‘정보를 담은 특별한 무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최근 식당 등에서 손님들의 출입 기록을 남기기 위해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겐 이 QR코드가 코로나 상황에서 또 다른 ‘벽’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의 김병수 소장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김 소장은 “QR코드는 시각장애인을 100% 이해하지 못한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나 시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검은색 정사각형을 또 다른 스크린 속 조그만 초록색 네모 안에 넣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음성 안내 서비스나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자신의 휴대폰으로 QR코드를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실제로 현장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김 소장은 “특정 위치에 휴대폰 받침대가 있어서 그 부분에 휴대폰을 가져다 대거나 꽂았다 빼면 인증되는 형태라면 시각장애인도 QR코드를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QR코드 인증이 어려우면 다른 방식을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QR만큼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수기 방명록’입니다. 김 소장은 “비장애인들도 글자 쓰는 칸이 너무 비좁아 불편할 때가 있다고 하던데, 그런 수기 방명록 또한 시각장애인들에겐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 소장은 오히려 좀 더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휴대폰으로 특정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 인증하는 ‘안심콜’이라고 불리는 인증 방식입니다. 이미 몇몇 공공 기관에서 사용 중인 방식이기도 합니다.

김 소장은 “최근 방문했던 곳에서 사용해봤는데 정말 편리했다”면서 “전화를 걸고 받는 것은 나이와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접근하기 쉬운 방법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 불안한 코로나 시국 …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 더욱 불안한 사람들

안 그래도 불안한 상황에서,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대답을 제대로 들을 수도 없다면 얼마나 불안할까요? 청각장애인들도 그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온갖 걱정을 하면서 도착한 선별진료소에서 말 한마디 속 시원하게 못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물론 안내문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은 글씨로 쓰거나 손짓과 발짓으로 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외국어를 할 수 있어도 모국어인 한국어로 의사소통할 때 느끼는 편리한 만큼이나 청각장애인들에게 수어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 지난달 말부터 각 지자체에 태블릿 PC 등의 장비를 보급해 영상 수어 통역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청각장애인들에게 정말 기쁜 소식이었을 겁니다.

물론 장애인단체에서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선별진료소 등에 수어통역을 제공해달라고 진정한 지 1년 만에야 시작된 변화라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할 부분입니다. 게다가 아직도 전국 모든 곳에서 이용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경기도에서는 수어통역 서비스 대신 ‘그림·글자판, 시각지원판’을 통해 의사소통하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의 선별진료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상 통화를 이용한 수어 통역 영상 통화를 이용한 수어 통역

수어 통역이 제공되기 전 양천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이용했던 양지윤 씨는 수어 통역 서비스가 시작됐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양 씨는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부모들도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결과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처음 해보는 코로나19 검사에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불안한 마음으로 선별진료소를 찾았는데, 수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불안한 마음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영상 통화를 직접 사용해 본 김미경 씨에게도 사용 소감을 물어봤습니다. 청각장애가 있는 김 씨는 “수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신이 날 정도로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최근에는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사람들의 표정이나 입술 모양을 읽을 수 없어 답답했었는데, 그런 부분까지 해소되니 좋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지역 사회에서 청각장애인들도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이런 지원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갑자기 시작된 코로나 시국에 장애를 이유로 갈 수 없는 곳이 생기고 의사소통마저 원활하게 할 수 없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선 안 됩니다. 서로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만 다를 뿐 불안한 마음을 느끼는 것은 모두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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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R 코드 꿈도 못 꿔요”…코로나 시국에 더 고립된 장애인
    • 입력 2021-04-02 08:00:34
    • 수정2021-04-02 10:18:40
    취재K

코로나19 상황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식당이나 카페에 갈 때마다 ‘QR코드’ 인증을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됐습니다.

‘방문자 명부’에 직접 개인정보를 써야 할 때도 잦습니다.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면서, 카카오톡은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한 뒤 휴대폰을 흔들기만 하면 QR코드가 바로 실행되는 편리한 기능까지 선보이고 있죠.

누군가에겐 점점 더 편리해지는 이런 기능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QR코드가 시각장애인들에게 바로 그런 기능입니다.

 수기방명록과 QR코드
“QR은 시각장애인을 100% 이해하지 못한 결과…안 보이는데 어떻게 초록색 네모 안에 딱 맞추나요?”

QR코드는 특정 정보를 정사각형 이미지로 표현한 것으로, ‘정보를 담은 특별한 무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최근 식당 등에서 손님들의 출입 기록을 남기기 위해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겐 이 QR코드가 코로나 상황에서 또 다른 ‘벽’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의 김병수 소장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김 소장은 “QR코드는 시각장애인을 100% 이해하지 못한 결과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나 시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검은색 정사각형을 또 다른 스크린 속 조그만 초록색 네모 안에 넣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음성 안내 서비스나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자신의 휴대폰으로 QR코드를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실제로 현장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김 소장은 “특정 위치에 휴대폰 받침대가 있어서 그 부분에 휴대폰을 가져다 대거나 꽂았다 빼면 인증되는 형태라면 시각장애인도 QR코드를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QR코드 인증이 어려우면 다른 방식을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코로나 상황에서 QR만큼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수기 방명록’입니다. 김 소장은 “비장애인들도 글자 쓰는 칸이 너무 비좁아 불편할 때가 있다고 하던데, 그런 수기 방명록 또한 시각장애인들에겐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 소장은 오히려 좀 더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휴대폰으로 특정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어 인증하는 ‘안심콜’이라고 불리는 인증 방식입니다. 이미 몇몇 공공 기관에서 사용 중인 방식이기도 합니다.

김 소장은 “최근 방문했던 곳에서 사용해봤는데 정말 편리했다”면서 “전화를 걸고 받는 것은 나이와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접근하기 쉬운 방법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 불안한 코로나 시국 …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 더욱 불안한 사람들

안 그래도 불안한 상황에서,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대답을 제대로 들을 수도 없다면 얼마나 불안할까요? 청각장애인들도 그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온갖 걱정을 하면서 도착한 선별진료소에서 말 한마디 속 시원하게 못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물론 안내문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은 글씨로 쓰거나 손짓과 발짓으로 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외국어를 할 수 있어도 모국어인 한국어로 의사소통할 때 느끼는 편리한 만큼이나 청각장애인들에게 수어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 지난달 말부터 각 지자체에 태블릿 PC 등의 장비를 보급해 영상 수어 통역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청각장애인들에게 정말 기쁜 소식이었을 겁니다.

물론 장애인단체에서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선별진료소 등에 수어통역을 제공해달라고 진정한 지 1년 만에야 시작된 변화라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할 부분입니다. 게다가 아직도 전국 모든 곳에서 이용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경기도에서는 수어통역 서비스 대신 ‘그림·글자판, 시각지원판’을 통해 의사소통하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의 선별진료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상 통화를 이용한 수어 통역
수어 통역이 제공되기 전 양천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이용했던 양지윤 씨는 수어 통역 서비스가 시작됐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양 씨는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부모들도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결과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처음 해보는 코로나19 검사에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불안한 마음으로 선별진료소를 찾았는데, 수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니 그것만으로도 불안한 마음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영상 통화를 직접 사용해 본 김미경 씨에게도 사용 소감을 물어봤습니다. 청각장애가 있는 김 씨는 “수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신이 날 정도로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때문에 최근에는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사람들의 표정이나 입술 모양을 읽을 수 없어 답답했었는데, 그런 부분까지 해소되니 좋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지역 사회에서 청각장애인들도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이런 지원이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갑자기 시작된 코로나 시국에 장애를 이유로 갈 수 없는 곳이 생기고 의사소통마저 원활하게 할 수 없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선 안 됩니다. 서로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방법’만 다를 뿐 불안한 마음을 느끼는 것은 모두가 똑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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