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가 서명을?” 풍력발전 주민동의서 조작 의혹

입력 2021.04.0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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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에 풍력발전 사업 허가를 받은 개발업체가 '주민 동의서'를 조작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입니다.

동의서에는 반대 주민이 찬성으로 바뀌었고, 10여 년 전 사망자도 찬성 명단에 올라 있었습니다.

검찰은 사문서 위조 혐의에 대해 수사에 나섰습니다.

■ "사망자가 서명을?" 동의서 조작 의혹

지난 3월 15일 전남 화순군청 앞에서 열린 풍력발전 반대 집회 모습.지난 3월 15일 전남 화순군청 앞에서 열린 풍력발전 반대 집회 모습.

2년째 풍력발전 사업에 주민들이 맞서고 있는 전남 화순 동복면 일대. ○○에너지라는 업체가 3년 전 이곳에 발전사업 허가를 받으면서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업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정부에 제출된 '주민 동의서'가 조작된 정황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지난 2018년 11월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주민 동의서 문건에는 5개 마을 이장과 주민 62명이 인적사항을 적고 서명한 걸로 돼 있는데, 문건을 들여다보니 조작이 의심되는 부분이 다수 발견된 겁니다.

김창수 화순 동복면 가수2리 이장은 ‘마을 이장 동의서’에 적힌 서명이 본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김창수 화순 동복면 가수2리 이장은 ‘마을 이장 동의서’에 적힌 서명이 본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직 이장 김창수(화순 동복면 가수2리 이장) 씨는 최근에야 동의서에 이름이 적힌 것을 알게 됐습니다.

김 씨는 "주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장이 동의서에 서명했겠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필체도 본인 것이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명단에 오른 이장 5명 가운데 2명은 당시 이장도 아니었지만, '마을 이장 동의서'에 서명돼 있습니다.

지난 2017년을 끝으로 임기를 마친 나성수(화순 동복면 신율2리 前 이장) 씨는 "문건에 서명한 기억이 없다"면서 "2018년에는 다른 분이 이장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주민 문남선 씨와 김길선 씨는 동의서에 적힌 주소지와 필체, 서명이 본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망자인 윤공석 씨의 서명이 들어간 ‘주민 동의서’. 오른쪽 네모 안은 윤공식 씨의 제적 등본에 기재된 사망 일시.사망자인 윤공석 씨의 서명이 들어간 ‘주민 동의서’. 오른쪽 네모 안은 윤공식 씨의 제적 등본에 기재된 사망 일시.

심지어 사망자까지 동의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 2006년 숨진 윤공석 씨. 동의서에는 광주에 거주하고 있다는 부연 설명까지 달렸습니다.

'화순군 풍력발전 저지 주민대책위' 박종곤 씨는 "개발업체가 주민 동의서를 조작해서 산업통상자원부를 기만하고, 주민 수용성을 확보한 것처럼 보이게 해 허가를 받은 걸로 의심된다"고 주장했습니다.

■ 개발업체 "사업 인수받아 모르겠다"

산업통상자원부 외경.산업통상자원부 외경.

조작이 의심되는 주민 동의서는 그대로 정부기관에 제출됐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는 2018년 11월 해당 주민 동의서를 제출받은 뒤 ○○에너지에 발전사업 허가를 내줬습니다.

주민 동의서는 허가를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심의 과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전기위원회는 허가를 내주기 전인 2018년 4월 ○○에너지의 발전사업에 대해 '지역 수용성의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한 차례 보류했습니다.

업체가 주민 동의서 확보를 위한 작업에 나선 이유로 여겨집니다.

조작 의혹에 대한 ○○에너지 측의 입장을 직접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허가를 받은 업체와 현재 사업을 추진하는 업체가 달라 이전 상황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본인들도 피해자라고 호소했습니다.

○○에너지 관계자는 "2018년 11월 허가를 받고 그 직후인 12월쯤에 사업을 인수받았다"며 "이미 허가 과정에서 주민 수용성이 확보된 걸로 알았는데, 주민 반대로 수백억 원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민들은 사문서 위조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동의서 조작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허위 자료 제출로 사업 허가가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 풍력발전을 둘러싼 갈등이 어떻게 일단락 될 지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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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망자가 서명을?” 풍력발전 주민동의서 조작 의혹
    • 입력 2021-04-02 14:17:52
    취재K

전남 화순에 풍력발전 사업 허가를 받은 개발업체가 '주민 동의서'를 조작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입니다.

동의서에는 반대 주민이 찬성으로 바뀌었고, 10여 년 전 사망자도 찬성 명단에 올라 있었습니다.

검찰은 사문서 위조 혐의에 대해 수사에 나섰습니다.

■ "사망자가 서명을?" 동의서 조작 의혹

지난 3월 15일 전남 화순군청 앞에서 열린 풍력발전 반대 집회 모습.
2년째 풍력발전 사업에 주민들이 맞서고 있는 전남 화순 동복면 일대. ○○에너지라는 업체가 3년 전 이곳에 발전사업 허가를 받으면서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업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정부에 제출된 '주민 동의서'가 조작된 정황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지난 2018년 11월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주민 동의서 문건에는 5개 마을 이장과 주민 62명이 인적사항을 적고 서명한 걸로 돼 있는데, 문건을 들여다보니 조작이 의심되는 부분이 다수 발견된 겁니다.

김창수 화순 동복면 가수2리 이장은 ‘마을 이장 동의서’에 적힌 서명이 본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현직 이장 김창수(화순 동복면 가수2리 이장) 씨는 최근에야 동의서에 이름이 적힌 것을 알게 됐습니다.

김 씨는 "주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이장이 동의서에 서명했겠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필체도 본인 것이 아니라고 단언했습니다.

명단에 오른 이장 5명 가운데 2명은 당시 이장도 아니었지만, '마을 이장 동의서'에 서명돼 있습니다.

지난 2017년을 끝으로 임기를 마친 나성수(화순 동복면 신율2리 前 이장) 씨는 "문건에 서명한 기억이 없다"면서 "2018년에는 다른 분이 이장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주민 문남선 씨와 김길선 씨는 동의서에 적힌 주소지와 필체, 서명이 본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망자인 윤공석 씨의 서명이 들어간 ‘주민 동의서’. 오른쪽 네모 안은 윤공식 씨의 제적 등본에 기재된 사망 일시.
심지어 사망자까지 동의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 2006년 숨진 윤공석 씨. 동의서에는 광주에 거주하고 있다는 부연 설명까지 달렸습니다.

'화순군 풍력발전 저지 주민대책위' 박종곤 씨는 "개발업체가 주민 동의서를 조작해서 산업통상자원부를 기만하고, 주민 수용성을 확보한 것처럼 보이게 해 허가를 받은 걸로 의심된다"고 주장했습니다.

■ 개발업체 "사업 인수받아 모르겠다"

산업통상자원부 외경.
조작이 의심되는 주민 동의서는 그대로 정부기관에 제출됐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는 2018년 11월 해당 주민 동의서를 제출받은 뒤 ○○에너지에 발전사업 허가를 내줬습니다.

주민 동의서는 허가를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심의 과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전기위원회는 허가를 내주기 전인 2018년 4월 ○○에너지의 발전사업에 대해 '지역 수용성의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한 차례 보류했습니다.

업체가 주민 동의서 확보를 위한 작업에 나선 이유로 여겨집니다.

조작 의혹에 대한 ○○에너지 측의 입장을 직접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허가를 받은 업체와 현재 사업을 추진하는 업체가 달라 이전 상황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본인들도 피해자라고 호소했습니다.

○○에너지 관계자는 "2018년 11월 허가를 받고 그 직후인 12월쯤에 사업을 인수받았다"며 "이미 허가 과정에서 주민 수용성이 확보된 걸로 알았는데, 주민 반대로 수백억 원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민들은 사문서 위조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동의서 조작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허위 자료 제출로 사업 허가가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 풍력발전을 둘러싼 갈등이 어떻게 일단락 될 지 관심이 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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