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일본 시민단체는?

입력 2021.04.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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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중공업 본사가 있는 도쿄에서 활동 중인 ‘나고야 소송지원회’ 회원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미쓰비시중공업 본사가 있는 도쿄에서 활동 중인 ‘나고야 소송지원회’ 회원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일본 도쿄 '시나가와 역' 앞, 한 일본인 남성이 곁을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남성의 목에 흑백사진 한 장이 걸려 있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으로 강제동원됐던 한국의 10대 어린 소녀들이 미쓰비시 작업복을 입고 있는 사진입니다. 일본 시민들에게 근로정신대 사건이 담긴 전단을 나눠주며 미쓰비시의 자발적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는 겁니다.
이 일본인 남성은 도대체 누구길래, 한국 근로정신대 사진을 목에 걸고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걸까요?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나고야 소송지원회’ 공동대표 다카하시 마코토 씨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나고야 소송지원회’ 공동대표 다카하시 마코토 씨

오랜 시간 한국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연대해온 일본 시민단체가 있습니다.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나고야 소송지원회) 입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미쓰비시중공업 본사가 있는 도쿄에서 '금요행동'을 열었습니다. '근로정신대' 피해에 대한 미쓰비시의 사죄를 촉구하기 위해섭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금요집회를 열 수 없게 되자, 최근엔 '엽서 보내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미쓰비시에 사죄를 촉구하는 내용의 엽서를 보내는 건데, 보낸 엽서만 천장이 넘습니다.

이들은 1999년부터 10년간 한국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도왔습니다.

29차례가 넘는 변론을 무료로 지원하고, 재판 때마다 일본을 방문하는 원고들의 항공료와 교통비, 숙박비 등 모든 체류비용을 부담했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주식 천 주를 사 주주총회 참가자격을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모두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자국의 올바른 사죄를 얻어내기 위해서입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는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이 소개된 한국사 교과서 3종. 왼쪽부터 <해냄에듀>, <동아출판>, <천재교육>.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는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이 소개된 한국사 교과서 3종. 왼쪽부터 <해냄에듀>, <동아출판>, <천재교육>.

일본에서 한국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에 앞장서온 단체는 또 있습니다. '호쿠리쿠연락회' 입니다. 이들도 '나고야 소송지원회'와 마찬가지로 일본 전범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해왔고, 한국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소송도 도왔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근로정신대 투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두 단체가 지원한 소송이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판결을 받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다양한 증거자료와 역사적 사실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축적한 증거와 경험들은 이후 한국에서 시작된 근로정신대 소송의 최종 승소 판결에 밑거름이 됐습니다.

이제 한국 고등학생들도 이들의 활동을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게 됐습니다. 이들의 활동이 한국사 교과서에 소개됐기 때문인데요. 어떤 내용인지 함께 살펴볼까요?

‘나고야 소송지원회’가 소개된 <해냄에듀> 한국사 교과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나고야 소송지원회’가 소개된 <해냄에듀> 한국사 교과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 한국과 일본을 가깝게 하는 사람들….'나고야 소송지원회'·'호쿠리쿠연락회'

<해냄에듀> 한국사 교과서 312쪽에는 '한국과 일본을 가깝게 하는 사람과 노력'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여기서 '나고야 소송지원회'가 소개됩니다. 책에선 '나고야 소송지원회' 의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와 고이데 유타카 사무국장을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피해 구제를 위해 노력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설명 오른쪽에는 두 사람이 광주광역시로부터 명예 시민증을 받는 사진도 함께 실렸습니다.

'나고야 소송지원회'가 소개된 <동아출판> 한국사 교과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나고야 소송지원회'가 소개된 <동아출판> 한국사 교과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나고야 소송지원회'는 <동아출판>이 펴낸 한국사 교과서 302쪽에도 소개됐습니다. '역사 화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라는 주제 아래 독일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캐나다 사례와 함께 일본의 사례가 소개된 겁니다.

'나고야 소송지원회'를 "1998년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시민 단체"로 소개하며,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금요행동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진을 함께 게재했습니다.

일본 시민단체 ‘호쿠리쿠연락회’가 소개된 <천재교육> 한국사 교과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일본 시민단체 ‘호쿠리쿠연락회’가 소개된 <천재교육> 한국사 교과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한국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일본 시민단체 '호쿠리쿠연락회'가 공동으로 연 집회도 소개됐습니다. <천재교육>이 펴낸 한국사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호쿠리쿠연락회'는 일본 전범 기업 중 하나인 '후지코시'에 맞서 활동해온 시민단체입니다.

2020년 1월, ‘나고야 소송지원회’가 금요행동 500회를 맞아 한국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공동으로 개최한 집회.2020년 1월, ‘나고야 소송지원회’가 금요행동 500회를 맞아 한국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공동으로 개최한 집회.

■ "국경 뛰어넘은 일본 시민단체 활동...한국사회에 잔잔한 울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대표는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구체적으로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이 국경을 뛰어넘어 한국 사회에도 잔잔한 울림이 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는데요.

최근 일본이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주장을 강화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축소한 고교 교과서를 승인해 논란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한국사 교과서 3종에 일본 시민단체의 활약상이 소개됐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한국사 교과서에 일본 시민단체 활동을 소개한 소식을 접한 ‘나고야 소송 지원회’ 고이데 유타카
사무국장은 “이번 소식이 우리단체 활동에는 큰 격려가 될 것 같다”면서 “한일 시민단체와의 연대가 더욱 진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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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일본 시민단체는?
    • 입력 2021-04-05 16:19:07
    취재K
미쓰비시중공업 본사가 있는 도쿄에서 활동 중인 ‘나고야 소송지원회’ 회원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일본 도쿄 '시나가와 역' 앞, 한 일본인 남성이 곁을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남성의 목에 흑백사진 한 장이 걸려 있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으로 강제동원됐던 한국의 10대 어린 소녀들이 미쓰비시 작업복을 입고 있는 사진입니다. 일본 시민들에게 근로정신대 사건이 담긴 전단을 나눠주며 미쓰비시의 자발적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는 겁니다.
이 일본인 남성은 도대체 누구길래, 한국 근로정신대 사진을 목에 걸고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걸까요?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나고야 소송지원회’ 공동대표 다카하시 마코토 씨
오랜 시간 한국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연대해온 일본 시민단체가 있습니다.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나고야 소송지원회) 입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미쓰비시중공업 본사가 있는 도쿄에서 '금요행동'을 열었습니다. '근로정신대' 피해에 대한 미쓰비시의 사죄를 촉구하기 위해섭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금요집회를 열 수 없게 되자, 최근엔 '엽서 보내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미쓰비시에 사죄를 촉구하는 내용의 엽서를 보내는 건데, 보낸 엽서만 천장이 넘습니다.

이들은 1999년부터 10년간 한국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도왔습니다.

29차례가 넘는 변론을 무료로 지원하고, 재판 때마다 일본을 방문하는 원고들의 항공료와 교통비, 숙박비 등 모든 체류비용을 부담했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주식 천 주를 사 주주총회 참가자격을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모두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자국의 올바른 사죄를 얻어내기 위해서입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는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이 소개된 한국사 교과서 3종. 왼쪽부터 <해냄에듀>, <동아출판>, <천재교육>.
일본에서 한국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에 앞장서온 단체는 또 있습니다. '호쿠리쿠연락회' 입니다. 이들도 '나고야 소송지원회'와 마찬가지로 일본 전범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해왔고, 한국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소송도 도왔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근로정신대 투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두 단체가 지원한 소송이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판결을 받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다양한 증거자료와 역사적 사실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축적한 증거와 경험들은 이후 한국에서 시작된 근로정신대 소송의 최종 승소 판결에 밑거름이 됐습니다.

이제 한국 고등학생들도 이들의 활동을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게 됐습니다. 이들의 활동이 한국사 교과서에 소개됐기 때문인데요. 어떤 내용인지 함께 살펴볼까요?

‘나고야 소송지원회’가 소개된 <해냄에듀> 한국사 교과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 한국과 일본을 가깝게 하는 사람들….'나고야 소송지원회'·'호쿠리쿠연락회'

<해냄에듀> 한국사 교과서 312쪽에는 '한국과 일본을 가깝게 하는 사람과 노력'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여기서 '나고야 소송지원회'가 소개됩니다. 책에선 '나고야 소송지원회' 의 다카하시 마코토 공동대표와 고이데 유타카 사무국장을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피해 구제를 위해 노력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설명 오른쪽에는 두 사람이 광주광역시로부터 명예 시민증을 받는 사진도 함께 실렸습니다.

'나고야 소송지원회'가 소개된 <동아출판> 한국사 교과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나고야 소송지원회'는 <동아출판>이 펴낸 한국사 교과서 302쪽에도 소개됐습니다. '역사 화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라는 주제 아래 독일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캐나다 사례와 함께 일본의 사례가 소개된 겁니다.

'나고야 소송지원회'를 "1998년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시민 단체"로 소개하며,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금요행동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진을 함께 게재했습니다.

일본 시민단체 ‘호쿠리쿠연락회’가 소개된 <천재교육> 한국사 교과서.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한국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일본 시민단체 '호쿠리쿠연락회'가 공동으로 연 집회도 소개됐습니다. <천재교육>이 펴낸 한국사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호쿠리쿠연락회'는 일본 전범 기업 중 하나인 '후지코시'에 맞서 활동해온 시민단체입니다.

2020년 1월, ‘나고야 소송지원회’가 금요행동 500회를 맞아 한국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공동으로 개최한 집회.
■ "국경 뛰어넘은 일본 시민단체 활동...한국사회에 잔잔한 울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대표는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구체적으로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이 국경을 뛰어넘어 한국 사회에도 잔잔한 울림이 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는데요.

최근 일본이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주장을 강화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축소한 고교 교과서를 승인해 논란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한국사 교과서 3종에 일본 시민단체의 활약상이 소개됐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한국사 교과서에 일본 시민단체 활동을 소개한 소식을 접한 ‘나고야 소송 지원회’ 고이데 유타카
사무국장은 “이번 소식이 우리단체 활동에는 큰 격려가 될 것 같다”면서 “한일 시민단체와의 연대가 더욱 진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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