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아리는 분쇄기로…수퇘지는 마취 없이 거세

입력 2021.04.05 (21:29) 수정 2021.04.0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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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수컷은 쓸모가 없어. 알도 못 낳고 맛도 없어."

올해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미나리'에 나오는 대사인데요.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는 주인공이 아들에게 수평아리만 골라 죽이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지난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에서 잔혹한 동물 사육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다뤘죠.

봉 감독은 동물을 가족 같이 대하면서도 생산성을 최대한 높여 판매하는 상품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KBS는 오늘(5일)과 내일(6일) 이런 공장식 사육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축산 동물의 복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인간이 먹는 축산 동물이 태어나자마자 겪게 되는 현실을 문예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달걀 껍질.

이 사이에서 갓 태어난 수평아리들이 두리번댑니다.

하지만 벨트 끝에서 만나는 날카로운 분쇄기 칼날에 곧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사라지고 맙니다.

호주의 한 동물단체가 공개한 이 영상은 알을 낳는 품종의 병아리가 수컷으로 태어나면 바로 잔혹하게 죽고 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국내 양계 농가의 경우도 대부분 마찬가지입니다.

[양계업계 관계자/음성변조 : "일반 퇴비장에 넣게 되면 분해되는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그러니까 잘게 분쇄를 해서 분해시키는 거죠."]

그나마 살아남은 암컷은 공책만한 넓이의 닭장에서 1년 반 동안 쉴 새 없이 4백 개가 넘는 달걀을 낳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하게 되면 수평아리처럼 분쇄기에서 갈려 죽거나 마리당 몇 백원에 가공육 재료 등으로 팔립니다.

국내 한 양돈 농가에서 갓 태어난 수컷 돼지의 생식기를 칼로 떼어 냅니다.

자라면서 생기는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입니다.

이빨과 꼬리도 자릅니다.

좁은 우리에서 살면 스트레스를 받아 다른 돼지를 공격하게 되는데 상처가 생기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수의사도 마취도 없이 이뤄집니다.

[양돈업계 관계자/음성변조 : "통상 태어나자마자 하거든요. 그래서 별로 통증을 잘 못 느끼고, 순간적으로 이뤄지는 거고 아주 어렸을 때 이뤄지는 상황이라서..."]

하지만 실제는 생식기가 잘린 새끼 돼지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고, 심하면 곧바로 죽기도 합니다.

축산용으로 사육되는 동물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겪습니다.

죽기 직전 전기나 가스를 이용해 기절시키지만 10마리 중 1마리는 다시 깨어난 채 죽는 걸로 추정됩니다.

사람이 먹기 위해 기르는 동물이라지만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불필요한 고통은 줄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조희경/동물자유연대 대표 : "오직 생산성 개념에서 그 기준에 의해서만 사육하는 것, 사육되는 동물의 입장을 우리가 고려해 보면 정말 끔찍한 감옥생활인 거고…"]

지난해 국내에서 소와 돼지, 닭과 오리 등 식용 목적으로 도축된 동물은 11억 5천만 마리가 넘습니다.

KBS 뉴스 문예슬입니다.

촬영기자:조창훈/영상편집:김형기/영상제공:호주 동물권 단체 'farm transparency project'

[앵커]

갓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축산 동물들이 이렇게 잔혹한 상황에 처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물론 축산업계는 비용 등 현실적인 이유로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방준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식용 흑돼지를 키우는 박복용 씨.

갓 태어난 수퇘지를 마취도 없이 거세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농장주가 직접 마취를 하는 건 기술적으로 어렵고, 그렇다고 수의사를 부르면 수십만 원의 비용이 들어 이 또한 부담이라는 겁니다.

[박복용/양돈농가 대표 : "돼지는 우리가 애완동물이 아니고 경제성으로 따지다 보니까, 견치(송곳니 발치)도 하고 거세도 하고 꽁지(꼬리) 자르기도 하고..."]

양계농가들도 비슷한 하소연을 합니다.

달걀을 낳는 목적으로 키우는 산란계 병아리의 경우 수컷의 경제성이 암컷보다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어릴 때 죽이는 게 비용이 덜 든다는 겁니다.

[양계업계 관계자/음성변조 : "(산란계 수평아리는) 체중이 올라가는 비율이 작으니까. 육계 같은 경우에는 사료 1킬로를 먹으면 30일 만에 1.5킬로로 크는데 산란계 수컷이나 암컷은 1킬로 먹어도 1킬로 될까 말까..."]

도살을 하더라도 병아리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게 원칙이지만 기술이나 비용 문제로 산 채로 죽이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런 행위를 이미 법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2010년 '브뤼셀 선언'을 통해 수퇘지의 물리적 거세를 2018년부터 금지하도록 하고 회원국에 동참을 촉구했습니다.

스위스는 지난해 초 수평아리 분쇄 도살을 법으로 금지했고, 프랑스와 독일은 달걀 상태에서 미리 성별을 구별해 수평아리의 도살을 사전에 막는 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윤진현 교수/전남대 동물자원학부 : "동물복지의 선진국이라 하면 유럽국가들인데, 유럽에서는 1950년대부터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또 그때부터 연구활동들이 활발히 진행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국회에 발의된 동물 관련 법안은 50여 개나 되지만 대부분 반려 동물 관련입니다.

축산동물의 복지와 관련해서는 의식 있는 상태에서 도살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 단 하나만 발의돼 있습니다.

KBS 뉴스 방준원입니다.

촬영기자:조창훈/영상편집:차정남/그래픽: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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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평아리는 분쇄기로…수퇘지는 마취 없이 거세
    • 입력 2021-04-05 21:29:36
    • 수정2021-04-06 09:40:13
    뉴스 9
[앵커]

"수컷은 쓸모가 없어. 알도 못 낳고 맛도 없어."

올해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미나리'에 나오는 대사인데요.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는 주인공이 아들에게 수평아리만 골라 죽이는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지난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은 영화 '옥자'에서 잔혹한 동물 사육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다뤘죠.

봉 감독은 동물을 가족 같이 대하면서도 생산성을 최대한 높여 판매하는 상품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KBS는 오늘(5일)과 내일(6일) 이런 공장식 사육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축산 동물의 복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인간이 먹는 축산 동물이 태어나자마자 겪게 되는 현실을 문예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달걀 껍질.

이 사이에서 갓 태어난 수평아리들이 두리번댑니다.

하지만 벨트 끝에서 만나는 날카로운 분쇄기 칼날에 곧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사라지고 맙니다.

호주의 한 동물단체가 공개한 이 영상은 알을 낳는 품종의 병아리가 수컷으로 태어나면 바로 잔혹하게 죽고 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국내 양계 농가의 경우도 대부분 마찬가지입니다.

[양계업계 관계자/음성변조 : "일반 퇴비장에 넣게 되면 분해되는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그러니까 잘게 분쇄를 해서 분해시키는 거죠."]

그나마 살아남은 암컷은 공책만한 넓이의 닭장에서 1년 반 동안 쉴 새 없이 4백 개가 넘는 달걀을 낳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하게 되면 수평아리처럼 분쇄기에서 갈려 죽거나 마리당 몇 백원에 가공육 재료 등으로 팔립니다.

국내 한 양돈 농가에서 갓 태어난 수컷 돼지의 생식기를 칼로 떼어 냅니다.

자라면서 생기는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입니다.

이빨과 꼬리도 자릅니다.

좁은 우리에서 살면 스트레스를 받아 다른 돼지를 공격하게 되는데 상처가 생기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수의사도 마취도 없이 이뤄집니다.

[양돈업계 관계자/음성변조 : "통상 태어나자마자 하거든요. 그래서 별로 통증을 잘 못 느끼고, 순간적으로 이뤄지는 거고 아주 어렸을 때 이뤄지는 상황이라서..."]

하지만 실제는 생식기가 잘린 새끼 돼지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고, 심하면 곧바로 죽기도 합니다.

축산용으로 사육되는 동물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겪습니다.

죽기 직전 전기나 가스를 이용해 기절시키지만 10마리 중 1마리는 다시 깨어난 채 죽는 걸로 추정됩니다.

사람이 먹기 위해 기르는 동물이라지만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불필요한 고통은 줄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조희경/동물자유연대 대표 : "오직 생산성 개념에서 그 기준에 의해서만 사육하는 것, 사육되는 동물의 입장을 우리가 고려해 보면 정말 끔찍한 감옥생활인 거고…"]

지난해 국내에서 소와 돼지, 닭과 오리 등 식용 목적으로 도축된 동물은 11억 5천만 마리가 넘습니다.

KBS 뉴스 문예슬입니다.

촬영기자:조창훈/영상편집:김형기/영상제공:호주 동물권 단체 'farm transparency project'

[앵커]

갓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축산 동물들이 이렇게 잔혹한 상황에 처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물론 축산업계는 비용 등 현실적인 이유로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방준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식용 흑돼지를 키우는 박복용 씨.

갓 태어난 수퇘지를 마취도 없이 거세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농장주가 직접 마취를 하는 건 기술적으로 어렵고, 그렇다고 수의사를 부르면 수십만 원의 비용이 들어 이 또한 부담이라는 겁니다.

[박복용/양돈농가 대표 : "돼지는 우리가 애완동물이 아니고 경제성으로 따지다 보니까, 견치(송곳니 발치)도 하고 거세도 하고 꽁지(꼬리) 자르기도 하고..."]

양계농가들도 비슷한 하소연을 합니다.

달걀을 낳는 목적으로 키우는 산란계 병아리의 경우 수컷의 경제성이 암컷보다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어릴 때 죽이는 게 비용이 덜 든다는 겁니다.

[양계업계 관계자/음성변조 : "(산란계 수평아리는) 체중이 올라가는 비율이 작으니까. 육계 같은 경우에는 사료 1킬로를 먹으면 30일 만에 1.5킬로로 크는데 산란계 수컷이나 암컷은 1킬로 먹어도 1킬로 될까 말까..."]

도살을 하더라도 병아리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게 원칙이지만 기술이나 비용 문제로 산 채로 죽이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런 행위를 이미 법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2010년 '브뤼셀 선언'을 통해 수퇘지의 물리적 거세를 2018년부터 금지하도록 하고 회원국에 동참을 촉구했습니다.

스위스는 지난해 초 수평아리 분쇄 도살을 법으로 금지했고, 프랑스와 독일은 달걀 상태에서 미리 성별을 구별해 수평아리의 도살을 사전에 막는 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윤진현 교수/전남대 동물자원학부 : "동물복지의 선진국이라 하면 유럽국가들인데, 유럽에서는 1950년대부터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또 그때부터 연구활동들이 활발히 진행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국회에 발의된 동물 관련 법안은 50여 개나 되지만 대부분 반려 동물 관련입니다.

축산동물의 복지와 관련해서는 의식 있는 상태에서 도살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 단 하나만 발의돼 있습니다.

KBS 뉴스 방준원입니다.

촬영기자:조창훈/영상편집:차정남/그래픽: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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