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자오쯔양 가족 퇴거”…‘톈안먼 흔적’ 역사 속으로

입력 2021.04.06 (07:00) 수정 2021.04.0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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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청명절 명절이면 성묘를 하고 조상과 국가에 기여한 사람들을 추념합니다. 올해는 4월 4일이 청명절로 중국인들은 5일(월)까지 청명절 연휴를 보냅니다.

그런데 중국 본토와 달리 홍콩과 타이완 등 다른 중화권 매체들이 청명절을 맞아 특별히 주목한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자오쯔양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유족이 그동안 머물던 베이징 왕푸징 인근 옛집을 떠난다는 소식입니다.


■ 자오쯔양 유족, 베이징 사저 퇴거 준비

계기가 된 것은 독립언론인 가오위의 트위터였습니다. 가오위는 청명절 당일 자오쯔양 사저가 짐을 싸는 모습을 과거 자오쯔양 유족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올렸습니다.

자오쯔양 일가가 조만간 사저에서 떠나기 위해 이삿짐을 싸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가오위는 원로 여성 언론인으로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직후 6년간 수감됐고, 이후 중국 정부의 언론 조치를 담은 문건을 폭로해 다시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자오쯔양 전 공산당 총서기의 사저가 퇴거 준비에 들어간 모습(사진 출처=가오위 트위터)자오쯔양 전 공산당 총서기의 사저가 퇴거 준비에 들어간 모습(사진 출처=가오위 트위터)

언론인 가오위(왼쪽 두번째)가 자오쯔양의 유족들과 함께 2018년 자오쯔양 기일에 찍은 사진(사진 출처=가오위 트위터)언론인 가오위(왼쪽 두번째)가 자오쯔양의 유족들과 함께 2018년 자오쯔양 기일에 찍은 사진(사진 출처=가오위 트위터)

자오쯔양 전 총서기는 2005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기일인 1월 17일과 생일, 청명절, 6.4 톈안먼 민주화운동 기념일 등이면 적지 않은 지지자와 추모객이 그의 사저를 찾았습니다.

고인의 푸창후퉁 집 서재에는 고인의 사진과 기록물 등을 포함한 작은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고인의 유해도 이 집에 안치돼 있다가 2019년 사망 14년만에 부인의 유해와 함께 베이징의 한 민간묘지에 안장됐습니다.


■ 자오쯔양, 톈안먼 시위 강경 진압 반대하다 실각...사후 회고록 발간

톈안먼 민주화 운동은 1989년 4월 개혁파 후야오방 전 총서기가 사망하자 이를 추모하는 무리들이 그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톈안먼 광장에 몰려들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공산당 총서기였던 자오쯔양은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을 반대하다 실각했습니다.

자오쯔양의 실각 이유에 대해 서울대 국제대학원 조영남 교수는 저서「톈안먼 사건」 등을 통해 자오쯔양이 공산당 최고지도부의 분열을 야기하고 당시 중국을 방문 중이던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에게 덩샤오핑의 지위와 방침을 누설해 원로그룹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오쯔양 전 총서기는 30분 가량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남겼습니다. 이는 그의 사후 회고록 「국가의 죄수」로 발간됐습니다.

이 책에서 자오 전 총서기는 보수파 리펑이 당지도부 내부 모임 발언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실리도록 배후 역할을 해 시위가 격화됐고, 덩샤오핑이 권력을 상실할까 조바심을 내 민주화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을 강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오쯔양 전 총서기의 사후 회고록 「국가의 죄수」표지.자오쯔양 전 총서기의 사후 회고록 「국가의 죄수」표지.

자오 전 총서기는 이른바 개혁파로서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꼽혀왔기에 실각의 정치적 파장은 더욱 컸습니다. 이후 6월 4일 무력 진압이 현실화됐고 자오쯔양 전 총서기는 가택 연금됐다 2005년 별세했습니다.


■ 홍콩 명보 "(사저에서) 자오쯔양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는 뜻"

홍콩 명보는 자오쯔양 가족들이 푸창후퉁의 사합원(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이 네방면에서 둘러싸는 중국의 전통적인 주택 양식) 집을 떠난다는 것은, 이 옛집의 자오쯔양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습니다.

그의 가족이 떠나면 푸창후퉁 6호 주택은 공산당에 귀속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오쯔양의 기일과 청명절 등에 사람들이 그의 흔적을 찾아 애도하며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는 일도 사라질 것입니다.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흔적은 지금 중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중국 본토 인터넷을 검색하면 자오쯔양 옛집 퇴거 소식은 찾을 수 없습니다. 중국 당국이 AI(인공지능)를 활용해 톈안문 운동 관련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통제하고 있다는 로이터 통신 보도도 나온 바 있습니다.

자오쯔양 전 총서기가 연금됐다 세상을 떠난 베이징 푸창후퉁 6호.  과거 청명절이면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자오쯔양 일가 퇴거 소식이 전해진 청명절 다음 날이자 연휴 마지막 날인 2021년 4월 5일, 사저 문이 굳게 닫혀있다. (사진 조성원 기자)자오쯔양 전 총서기가 연금됐다 세상을 떠난 베이징 푸창후퉁 6호. 과거 청명절이면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자오쯔양 일가 퇴거 소식이 전해진 청명절 다음 날이자 연휴 마지막 날인 2021년 4월 5일, 사저 문이 굳게 닫혀있다. (사진 조성원 기자)

자오쯔양 전 총서기 가족의 퇴거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청명절 연휴 마지막인 4월 5일 푸창후퉁 6호 사합원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문은 굳게 닫혀있고 인기척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외관 사진을 찍으려 하자 공안 관계자가 곧바로 나타나 제지하며 떠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웃들 역시 퇴거 소식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자오쯔양의 반대편에서 광장의 요구보다 중국과 공산당의 안정을 우선시했던 세력의 정치적 유산이 오늘날 시진핑 주석으로 상징되는 중국 최고지도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 전 부총리는 1980년대 후반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발단이 된 후야오방 총서기와 한편에 섰다 톈안먼 민주화 운동 이후 권력 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났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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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자오쯔양 가족 퇴거”…‘톈안먼 흔적’ 역사 속으로
    • 입력 2021-04-06 07:00:41
    • 수정2021-04-08 16:36:53
    특파원 리포트

중국은 청명절 명절이면 성묘를 하고 조상과 국가에 기여한 사람들을 추념합니다. 올해는 4월 4일이 청명절로 중국인들은 5일(월)까지 청명절 연휴를 보냅니다.

그런데 중국 본토와 달리 홍콩과 타이완 등 다른 중화권 매체들이 청명절을 맞아 특별히 주목한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자오쯔양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유족이 그동안 머물던 베이징 왕푸징 인근 옛집을 떠난다는 소식입니다.


■ 자오쯔양 유족, 베이징 사저 퇴거 준비

계기가 된 것은 독립언론인 가오위의 트위터였습니다. 가오위는 청명절 당일 자오쯔양 사저가 짐을 싸는 모습을 과거 자오쯔양 유족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올렸습니다.

자오쯔양 일가가 조만간 사저에서 떠나기 위해 이삿짐을 싸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가오위는 원로 여성 언론인으로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직후 6년간 수감됐고, 이후 중국 정부의 언론 조치를 담은 문건을 폭로해 다시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자오쯔양 전 공산당 총서기의 사저가 퇴거 준비에 들어간 모습(사진 출처=가오위 트위터)
언론인 가오위(왼쪽 두번째)가 자오쯔양의 유족들과 함께 2018년 자오쯔양 기일에 찍은 사진(사진 출처=가오위 트위터)
자오쯔양 전 총서기는 2005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기일인 1월 17일과 생일, 청명절, 6.4 톈안먼 민주화운동 기념일 등이면 적지 않은 지지자와 추모객이 그의 사저를 찾았습니다.

고인의 푸창후퉁 집 서재에는 고인의 사진과 기록물 등을 포함한 작은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고인의 유해도 이 집에 안치돼 있다가 2019년 사망 14년만에 부인의 유해와 함께 베이징의 한 민간묘지에 안장됐습니다.


■ 자오쯔양, 톈안먼 시위 강경 진압 반대하다 실각...사후 회고록 발간

톈안먼 민주화 운동은 1989년 4월 개혁파 후야오방 전 총서기가 사망하자 이를 추모하는 무리들이 그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톈안먼 광장에 몰려들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공산당 총서기였던 자오쯔양은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을 반대하다 실각했습니다.

자오쯔양의 실각 이유에 대해 서울대 국제대학원 조영남 교수는 저서「톈안먼 사건」 등을 통해 자오쯔양이 공산당 최고지도부의 분열을 야기하고 당시 중국을 방문 중이던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에게 덩샤오핑의 지위와 방침을 누설해 원로그룹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오쯔양 전 총서기는 30분 가량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남겼습니다. 이는 그의 사후 회고록 「국가의 죄수」로 발간됐습니다.

이 책에서 자오 전 총서기는 보수파 리펑이 당지도부 내부 모임 발언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실리도록 배후 역할을 해 시위가 격화됐고, 덩샤오핑이 권력을 상실할까 조바심을 내 민주화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을 강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오쯔양 전 총서기의 사후 회고록 「국가의 죄수」표지.
자오 전 총서기는 이른바 개혁파로서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꼽혀왔기에 실각의 정치적 파장은 더욱 컸습니다. 이후 6월 4일 무력 진압이 현실화됐고 자오쯔양 전 총서기는 가택 연금됐다 2005년 별세했습니다.


■ 홍콩 명보 "(사저에서) 자오쯔양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는 뜻"

홍콩 명보는 자오쯔양 가족들이 푸창후퉁의 사합원(마당을 중심으로 건물이 네방면에서 둘러싸는 중국의 전통적인 주택 양식) 집을 떠난다는 것은, 이 옛집의 자오쯔양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습니다.

그의 가족이 떠나면 푸창후퉁 6호 주택은 공산당에 귀속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오쯔양의 기일과 청명절 등에 사람들이 그의 흔적을 찾아 애도하며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는 일도 사라질 것입니다.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흔적은 지금 중국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중국 본토 인터넷을 검색하면 자오쯔양 옛집 퇴거 소식은 찾을 수 없습니다. 중국 당국이 AI(인공지능)를 활용해 톈안문 운동 관련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통제하고 있다는 로이터 통신 보도도 나온 바 있습니다.

자오쯔양 전 총서기가 연금됐다 세상을 떠난 베이징 푸창후퉁 6호.  과거 청명절이면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자오쯔양 일가 퇴거 소식이 전해진 청명절 다음 날이자 연휴 마지막 날인 2021년 4월 5일, 사저 문이 굳게 닫혀있다. (사진 조성원 기자)
자오쯔양 전 총서기 가족의 퇴거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 청명절 연휴 마지막인 4월 5일 푸창후퉁 6호 사합원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문은 굳게 닫혀있고 인기척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외관 사진을 찍으려 하자 공안 관계자가 곧바로 나타나 제지하며 떠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웃들 역시 퇴거 소식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자오쯔양의 반대편에서 광장의 요구보다 중국과 공산당의 안정을 우선시했던 세력의 정치적 유산이 오늘날 시진핑 주석으로 상징되는 중국 최고지도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 전 부총리는 1980년대 후반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발단이 된 후야오방 총서기와 한편에 섰다 톈안먼 민주화 운동 이후 권력 일선에서 사실상 물러났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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