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심각성 알린 조혜연 9단 “노원 세모녀 사건, 남일 같지 않다”

입력 2021.04.09 (17:03) 수정 2021.04.0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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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일) KBS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조혜연 9단오늘(9일) KBS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조혜연 9단

"노원 세 모녀 사건 듣고 이틀간 울었어요. 지금도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프로바둑기사 조혜연 9단은 오늘(9일) 취재진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조 씨는 지난해 4월 KBS 보도를 통해 1년간의 스토킹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바둑 대회 하루 전날까지 조 씨를 스토킹한 40대 남성은 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입니다.

[연관기사] [단독] 바둑여제 조혜연 9단이 겪은 스토킹…“하루하루가 지옥”(2020.4.24)

보도 이후 1년여간 조 씨는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힘써왔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토킹 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청원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조 씨였기에, 노원 일가족 살해 사건은 남 일 같지 않습니다.


■ "노원 세 모녀 사건 끔찍… 가해자만 남은 현실 참담"

노원 일가족을 살해한 김태현은 오늘(9일) 오전 검찰에 넘겨지기 전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김태현의 모습을 보며 조 씨는 "스토킹을 당해 본 입장에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 이번 사건"이라며 "가해자만 있고 피해자의 목소리가 없어진 현실이 참담하다"고 말했습니다.

김태현의 혐의엔 살인과 주거침입을 비롯해 경범죄처벌법 위반(지속적 괴롭힘) 혐의가 포함됐습니다.

지난달 스토킹 처벌법이 어렵게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 법은 오는 9월부터 시행됩니다. 이 때문에 김태현이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는 경범죄처벌법 가운데 '지속적 괴롭힘' 혐의로 적용됐습니다.

조 씨는 "스토킹 처벌법이 통과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일상에서의 스토킹 범죄가 뿌리 뽑히지 않는 이상 처벌이 강화되어도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구치소에 복역중인 스토커가 지난 2월 조혜연 9단에게 보낸 편지현재 구치소에 복역중인 스토커가 지난 2월 조혜연 9단에게 보낸 편지

■ "출소 뒤 찾아가겠다" 고통은 현재진행형

조 씨의 스토킹 피해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과거 조 씨가 운영하는 학원에 수시로 찾아오고 외벽에 협박 문구를 적었던 스토커는 복역 중인 상태에서 조 씨 앞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엔 "출소 뒤에 찾아가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편지를 보고 충격을 받은 조 씨는 경찰에 다시 스토커를 신고한 상태입니다. 조 씨는 "스토커가 출소 뒤 다시 찾아올까 봐 두려워서 이사도 가고 운영하던 학원도 옮긴 상태"라며 "만약 출소 뒤 스토커가 또 학원에 찾아온다면 이제 더는 학원 운영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토킹 피해를 최초로 신고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이 여전히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잘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조 씨를 불안하게 합니다.

조 씨는 "구치소에서 온 편지를 경찰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는데, 경찰은 스토커가 사과하려고 찾아오려는 것 아니냐"며 가볍게 치부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스토커가 조혜연 9단의 학원 외벽에 남긴 협박 메모와 스토킹 당시 모습스토커가 조혜연 9단의 학원 외벽에 남긴 협박 메모와 스토킹 당시 모습

■ 스토킹 처벌법 통과됐지만…"피해자 보호 조치 부족"

지난달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스토킹은 징역형을 살 수 있는 범죄로 명문화됐습니다. 10만 원 이하의 경범죄 정도로 분류됐던 과거보다 진일보한 법안입니다.

스토킹 처벌법 제정에 누구보다 앞장서왔던 조 씨, 기쁨만큼 아쉬움도 크다고 말합니다.

조 씨는 "스토킹 처벌법안이 통과됐단 소식을 듣고 아주 기뻤다"면서도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들여다볼수록 아쉬운 점이 많은 반쪽짜리 법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법안에서 피해자 보호 조항이 대거 빠지게 된 점이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스토킹 처벌법 최초 발의안에서는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보호 명령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이 조항은 법안 심사 과정에서 빠지게 됐습니다.

조 씨는 "나 역시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고려한 적이 있는데, 수사기관이 신청하고 법원이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하루라도 빨리 보호받고 싶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 과정을 기다리는 시간도 고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 '반의사 불벌죄'인 점도 한계로 짚었습니다.

조 씨는 "스토킹 피해자가 보복이 두려워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며 "법안이 개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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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토킹 심각성 알린 조혜연 9단 “노원 세모녀 사건, 남일 같지 않다”
    • 입력 2021-04-09 17:03:28
    • 수정2021-04-09 17:17:38
    취재K
오늘(9일) KBS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조혜연 9단
"노원 세 모녀 사건 듣고 이틀간 울었어요. 지금도 눈이 퉁퉁 부었습니다."

프로바둑기사 조혜연 9단은 오늘(9일) 취재진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조 씨는 지난해 4월 KBS 보도를 통해 1년간의 스토킹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바둑 대회 하루 전날까지 조 씨를 스토킹한 40대 남성은 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입니다.

[연관기사] [단독] 바둑여제 조혜연 9단이 겪은 스토킹…“하루하루가 지옥”(2020.4.24)

보도 이후 1년여간 조 씨는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힘써왔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스토킹 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청원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조 씨였기에, 노원 일가족 살해 사건은 남 일 같지 않습니다.


■ "노원 세 모녀 사건 끔찍… 가해자만 남은 현실 참담"

노원 일가족을 살해한 김태현은 오늘(9일) 오전 검찰에 넘겨지기 전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김태현의 모습을 보며 조 씨는 "스토킹을 당해 본 입장에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 이번 사건"이라며 "가해자만 있고 피해자의 목소리가 없어진 현실이 참담하다"고 말했습니다.

김태현의 혐의엔 살인과 주거침입을 비롯해 경범죄처벌법 위반(지속적 괴롭힘) 혐의가 포함됐습니다.

지난달 스토킹 처벌법이 어렵게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 법은 오는 9월부터 시행됩니다. 이 때문에 김태현이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는 경범죄처벌법 가운데 '지속적 괴롭힘' 혐의로 적용됐습니다.

조 씨는 "스토킹 처벌법이 통과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일상에서의 스토킹 범죄가 뿌리 뽑히지 않는 이상 처벌이 강화되어도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구치소에 복역중인 스토커가 지난 2월 조혜연 9단에게 보낸 편지
■ "출소 뒤 찾아가겠다" 고통은 현재진행형

조 씨의 스토킹 피해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과거 조 씨가 운영하는 학원에 수시로 찾아오고 외벽에 협박 문구를 적었던 스토커는 복역 중인 상태에서 조 씨 앞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엔 "출소 뒤에 찾아가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편지를 보고 충격을 받은 조 씨는 경찰에 다시 스토커를 신고한 상태입니다. 조 씨는 "스토커가 출소 뒤 다시 찾아올까 봐 두려워서 이사도 가고 운영하던 학원도 옮긴 상태"라며 "만약 출소 뒤 스토커가 또 학원에 찾아온다면 이제 더는 학원 운영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토킹 피해를 최초로 신고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이 여전히 스토킹 범죄의 심각성을 잘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조 씨를 불안하게 합니다.

조 씨는 "구치소에서 온 편지를 경찰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는데, 경찰은 스토커가 사과하려고 찾아오려는 것 아니냐"며 가볍게 치부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스토커가 조혜연 9단의 학원 외벽에 남긴 협박 메모와 스토킹 당시 모습
■ 스토킹 처벌법 통과됐지만…"피해자 보호 조치 부족"

지난달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스토킹은 징역형을 살 수 있는 범죄로 명문화됐습니다. 10만 원 이하의 경범죄 정도로 분류됐던 과거보다 진일보한 법안입니다.

스토킹 처벌법 제정에 누구보다 앞장서왔던 조 씨, 기쁨만큼 아쉬움도 크다고 말합니다.

조 씨는 "스토킹 처벌법안이 통과됐단 소식을 듣고 아주 기뻤다"면서도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들여다볼수록 아쉬운 점이 많은 반쪽짜리 법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법안에서 피해자 보호 조항이 대거 빠지게 된 점이 가장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스토킹 처벌법 최초 발의안에서는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보호 명령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이 조항은 법안 심사 과정에서 빠지게 됐습니다.

조 씨는 "나 역시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고려한 적이 있는데, 수사기관이 신청하고 법원이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하루라도 빨리 보호받고 싶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 과정을 기다리는 시간도 고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 '반의사 불벌죄'인 점도 한계로 짚었습니다.

조 씨는 "스토킹 피해자가 보복이 두려워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며 "법안이 개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반영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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