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장난감 하나 줬을 뿐인데…더 건강해진 돼지?!

입력 2021.04.11 (09:00) 수정 2021.04.1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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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도 장난감을 좋아합니다"

동물복지 취재를 하면서 들은 말 중에 가장 신선했습니다. 사실 축산동물인 돼지에게 장난감을 준다는 생각은 못 해봤습니다. 장난감은 강아지나 고양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겼습니다.

돼지들의 장난감. 특별한 것도 없었습니다. 나무토막, 밧줄, 지푸라기 등 단순했습니다. 취재해보니 이런 것만 넣어줘도 돼지의 삶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동물복지는 사람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제공하면서도 줄곧 행복하지 못했던 돼지 등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식탁에 올라오는 돼지들의 삶,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셨나요? 축산동물들은 살아있을 때만이라도 행복하게 살면 안 되는 걸까요?

■ "돼지가 건강하게 자라는 거 같아요"

경상남도 거창에서 동물복지 인증 돼지 농장을 운영하는 김문조 씨. 김 씨는 이곳에서 돼지 2천5백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일반농가 기준이라면 김 씨 농가 면적에서는 돼지 4천5백 마리를 키울 수 있는데 거의 절반가량의 돼지만 키우는 겁니다. 다시 말해 김 씨 농장의 돼지들에겐 더 넓은 공간이 제공되는 겁니다.

김 씨는 "돼지의 본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면적을 제공할 때, (돼지) 고유 본능들이 발휘되는 거 같다"라며 "그중에서 청결성이 있는데, (면적이 넓으니 돼지가) 잠자리와 분변 자리를 구분해서 생활한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돼지들이 시원한 장소도 알아서 찾아가고, 더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 씨는 "돼지들이 스트레스가 줄다 보니 면역력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항생제를 거의 쓰지 않고 있다"라며 "출하 전에 돼지들이 죽는 비율이 다른 농가와 비교했을 때 줄어들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사육두수가 줄어 매출은 줄었지만, 돼지들은 건강하다는 뜻입니다.

김 씨의 농장 바닥에는 왕겨와 보릿짚도 깔려 있습니다. 호기심 많은 돼지들이 언제든 '땅 파는 행동'을 할 수 있게 한 배려입니다. 대부분 일반 농가의 경우 돼지의 배변이 바닥 아래로 떨어져 모이게 하고 있습니다. 돼지가 생활하는 땅바닥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건데요. 그렇기 때문에 왕겨와 보릿짚 등을 깔 수 없습니다.


■ 장난감을 주면 돼지 꼬리를 안 잘라도 된다?

갓 태어난 돼지들은 통상 5일 안에 꼬리가 잘립니다. 꼬리를 자르는 이유는 꼬리가 보이면 돼지들끼리 물어버리기 때문인데요. 이런 경우 돼지들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육환경을 넓혀주고, 장난감을 주면 꼬리를 안 잘라도 된다고 말합니다.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는 "돼지가 살아가는 공간을 넓혀주고, 돼지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등을 넣어줬을 때 꼬리 자르기만큼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라며 "어렸을 때부터 동료의 꼬리를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게 유도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새끼 돼지들은 송곳니도 잘려왔습니다. 어미 돼지의 젖에 상처를 낼 우려가 있기 때문인데요. 이에 대해 윤 교수는 "어미 젖에서 새끼들이 젖을 빨다가 상처를 낸 것이 보이면 그때 큰 애들을 위주로 어떤 애가 물었는지를 보고 관리해주면 된다"라며 "유럽연합이나 미국, 캐나다는 2000년대 이후부터 통상적인 견치(송곳니 자르기)를 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기준 및 인증 등에 관한 세부실시요령’에 따른 양돈농가 동물복지 인증 기준 중 일부.‘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기준 및 인증 등에 관한 세부실시요령’에 따른 양돈농가 동물복지 인증 기준 중 일부.

■ "갈 길 먼 동물복지"

김 씨의 농장에서 자란 돼지들은 '동물복지' 인증 표시가 붙어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동물복지' 인증 돼지고기를 보신 분들을 얼마 없을 것 같습니다. 파는 곳이 그만큼 적기 때문입니다. 한 대형마트의 경우 서울 시내 20개 점포 가운데 동물복지 인증 돼지고기를 파는 곳은 단 5곳에 불과했습니다. 이 마트의 경우 동물복지 인증 닭고기는 아예 팔지 않고 있습니다.

동물복지 인증 육류를 보기 힘든 이유는 인증 농가가 그만큼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육계 농장은 전체의 8.1%, 돼지 농장은 0.3%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한우, 육우, 오리 농장은 인증 받은 곳이 아예 없습니다.

2020년 기준 동물복지 농장수와 사육두수(통계청 2019 4/4분기 가축동향조사 결과)2020년 기준 동물복지 농장수와 사육두수(통계청 2019 4/4분기 가축동향조사 결과)

동물복지 인증 농장이 적은 이유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인증 기준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어떤 시설을 갖췄느냐를 두고 평가하는 항목이 많아 그에 따라 기존 농가들이 시설을 바꿔야 하는데, 그러면 비용 측면에서 큰 부담이 된다는 겁니다.

한 일반 돼지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는 "아예 처음 농장을 시작할 때만 지원이 조금 있다"라며 "기존 농장을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려면 지원이 아니라 융자를 받아야 한다. 그건 다 빚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일반 농장을 동물복지 인증 농장으로 전환하려면 평수를 늘리고 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증·개축 허가도 잘 안 난다.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농가를 동물복지 기준에 맞춰도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현행 동물복지 인증은 농가뿐 아니라 이송차량에 도축장까지 동물복지에 맞아야 동물복지 제품으로 인증해줍니다. 동물복지 도축장은 이동 과정에서 몽둥이나 전기를 활용해 강압적으로 몰지도 않고 죽이기 전 동공반사를 통해 의식이 회복됐는지도 확인합니다. 죽는 순간의 스트레스와 공포를 최소화하도록 한 겁니다.

문제는 이 중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도축장은 전국 3곳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농가 입장에서는 가까운 일반 도축장을 두고 멀리 있는 동물복지 도축장까지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돼지농가 관계자는 "일반 수송차량으로 단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가축에게 스트레스가 클지, 복지인증 된 무진동 차량으로 (동물복지 인증 도축장까지) 장거리를 이동하는 게 스트레스가 클지"를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동물복지 인증 육류가 일반 돼지고기에 비해 크게 비싼 것도 아닙니다. KBS 취재진이 마트를 둘러본 결과 동물복지 인증 돼지고기와 일반 돼지고기의 가격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사육 두수도 줄고, 지원도 거의 없으니 일반 농가 입장에선 빚을 내서까지 투자할 요인이 없는 겁니다.

동물복지가 결국엔 육류의 가격을 인상시켜 국내 축산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현규 도드람양돈연구소장은 "(동물복지 인증 농가가 많아지면) 사육두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 원가는 올라가게 된다"라며 "수입고기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확 떨어져 국내 산업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동물복지 인증 표시. 동물복지 농장에서 자란 육류에는 이런 인증표시가 붙어 있다.동물복지 인증 표시. 동물복지 농장에서 자란 육류에는 이런 인증표시가 붙어 있다.

■ 반려동물만 행복해야 하나요?

돼지와 병아리도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 동물입니다. 하지만, 축산동물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산부터 큰 차이가 납니다. 농식품부는 올해 반려동물 복지 분야 예산으로 88억 원을 배정했지만, 축산동물 관련 예산은 4억 원에 불과합니다. 법안은 어떨까요? 현재 국회에 발의된 동물 관련 50여 개 법안 중 대부분이 반려동물 관련입니다. 축산동물 관련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도살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자는 내용의 법한 하나만 발의돼 있습니다.

관심 대부분이 반려동물에게 쏠려 있는 겁니다.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동물복지는 그냥 캠페인이나 운동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며 "이것은 과학이다. 유럽 쪽에선 동물복지를 위해 많은 학자가 어떻게 하면 비용을 낮추면서도 동물복지를 향상할 수 있을까 많은 투자ㆍ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연구가 활발해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정부, 축산업계, 소비자 등 우리 사회가 머리를 모아 축산동물에 대한 복지를 논의해야 축산동물들이 살아있을 때만큼은 행복할 수 있는 겁니다.

동물복지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KBS 보도 이후 수평아리 분쇄와 수퇘지 거세에 대해 관련 단체와 업계, 학계의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조사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동물복지 제품의 판로를 확대하고 더 홍보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 UNEP, "집약식축산, 팬데믹 시대에 지속 어려워"

한편 최근엔 감염병 예방을 위해서라도 동물에 대한 복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인 코로나19와 메르스가 전 세계를 휩쓸었기 때문입니다.

UN환경계획과 국제축산연구소는 지난해 'PREVENTING THE NEXT PANDEMIC'이라는 보고서에서 관련 위험성을 지적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바이러스를 가진 야생동물과 축산동물들이 접촉하고, 축산동물이 사람과 접촉하면서 병이 옮겨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공장식 축산 등 집약식 축산이 펜데믹 시대에는 더 지속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바이러스의 숙주가 많으면 전염과 변이가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동물복지가 동물만을 위한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동물뿐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도 필요한 동물복지. 축산동물 복지에 대한 고민, 더 뒤로 미뤄도 되는 걸까요?

[참고]
☞ 클릭 :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기준 및 인증 등에 관한 세부실시요령
위 하단 별지에서 양돈, 산란계 등에 대한 동물복지 인증 기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 일부 포털 사이트에서는 클릭 시 링크 연결이 안되니 KBS뉴스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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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장난감 하나 줬을 뿐인데…더 건강해진 돼지?!
    • 입력 2021-04-11 09:00:49
    • 수정2021-04-12 09:41:29
    취재후·사건후

■ "돼지도 장난감을 좋아합니다"

동물복지 취재를 하면서 들은 말 중에 가장 신선했습니다. 사실 축산동물인 돼지에게 장난감을 준다는 생각은 못 해봤습니다. 장난감은 강아지나 고양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겼습니다.

돼지들의 장난감. 특별한 것도 없었습니다. 나무토막, 밧줄, 지푸라기 등 단순했습니다. 취재해보니 이런 것만 넣어줘도 돼지의 삶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동물복지는 사람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제공하면서도 줄곧 행복하지 못했던 돼지 등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식탁에 올라오는 돼지들의 삶,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셨나요? 축산동물들은 살아있을 때만이라도 행복하게 살면 안 되는 걸까요?

■ "돼지가 건강하게 자라는 거 같아요"

경상남도 거창에서 동물복지 인증 돼지 농장을 운영하는 김문조 씨. 김 씨는 이곳에서 돼지 2천5백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일반농가 기준이라면 김 씨 농가 면적에서는 돼지 4천5백 마리를 키울 수 있는데 거의 절반가량의 돼지만 키우는 겁니다. 다시 말해 김 씨 농장의 돼지들에겐 더 넓은 공간이 제공되는 겁니다.

김 씨는 "돼지의 본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면적을 제공할 때, (돼지) 고유 본능들이 발휘되는 거 같다"라며 "그중에서 청결성이 있는데, (면적이 넓으니 돼지가) 잠자리와 분변 자리를 구분해서 생활한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돼지들이 시원한 장소도 알아서 찾아가고, 더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말합니다.

김 씨는 "돼지들이 스트레스가 줄다 보니 면역력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항생제를 거의 쓰지 않고 있다"라며 "출하 전에 돼지들이 죽는 비율이 다른 농가와 비교했을 때 줄어들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사육두수가 줄어 매출은 줄었지만, 돼지들은 건강하다는 뜻입니다.

김 씨의 농장 바닥에는 왕겨와 보릿짚도 깔려 있습니다. 호기심 많은 돼지들이 언제든 '땅 파는 행동'을 할 수 있게 한 배려입니다. 대부분 일반 농가의 경우 돼지의 배변이 바닥 아래로 떨어져 모이게 하고 있습니다. 돼지가 생활하는 땅바닥에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건데요. 그렇기 때문에 왕겨와 보릿짚 등을 깔 수 없습니다.


■ 장난감을 주면 돼지 꼬리를 안 잘라도 된다?

갓 태어난 돼지들은 통상 5일 안에 꼬리가 잘립니다. 꼬리를 자르는 이유는 꼬리가 보이면 돼지들끼리 물어버리기 때문인데요. 이런 경우 돼지들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육환경을 넓혀주고, 장난감을 주면 꼬리를 안 잘라도 된다고 말합니다.

윤진현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는 "돼지가 살아가는 공간을 넓혀주고, 돼지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등을 넣어줬을 때 꼬리 자르기만큼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라며 "어렸을 때부터 동료의 꼬리를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게 유도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새끼 돼지들은 송곳니도 잘려왔습니다. 어미 돼지의 젖에 상처를 낼 우려가 있기 때문인데요. 이에 대해 윤 교수는 "어미 젖에서 새끼들이 젖을 빨다가 상처를 낸 것이 보이면 그때 큰 애들을 위주로 어떤 애가 물었는지를 보고 관리해주면 된다"라며 "유럽연합이나 미국, 캐나다는 2000년대 이후부터 통상적인 견치(송곳니 자르기)를 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기준 및 인증 등에 관한 세부실시요령’에 따른 양돈농가 동물복지 인증 기준 중 일부.
■ "갈 길 먼 동물복지"

김 씨의 농장에서 자란 돼지들은 '동물복지' 인증 표시가 붙어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동물복지' 인증 돼지고기를 보신 분들을 얼마 없을 것 같습니다. 파는 곳이 그만큼 적기 때문입니다. 한 대형마트의 경우 서울 시내 20개 점포 가운데 동물복지 인증 돼지고기를 파는 곳은 단 5곳에 불과했습니다. 이 마트의 경우 동물복지 인증 닭고기는 아예 팔지 않고 있습니다.

동물복지 인증 육류를 보기 힘든 이유는 인증 농가가 그만큼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육계 농장은 전체의 8.1%, 돼지 농장은 0.3%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한우, 육우, 오리 농장은 인증 받은 곳이 아예 없습니다.

2020년 기준 동물복지 농장수와 사육두수(통계청 2019 4/4분기 가축동향조사 결과)
동물복지 인증 농장이 적은 이유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인증 기준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어떤 시설을 갖췄느냐를 두고 평가하는 항목이 많아 그에 따라 기존 농가들이 시설을 바꿔야 하는데, 그러면 비용 측면에서 큰 부담이 된다는 겁니다.

한 일반 돼지 농장을 운영하는 농장주는 "아예 처음 농장을 시작할 때만 지원이 조금 있다"라며 "기존 농장을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하려면 지원이 아니라 융자를 받아야 한다. 그건 다 빚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일반 농장을 동물복지 인증 농장으로 전환하려면 평수를 늘리고 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증·개축 허가도 잘 안 난다.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농가를 동물복지 기준에 맞춰도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현행 동물복지 인증은 농가뿐 아니라 이송차량에 도축장까지 동물복지에 맞아야 동물복지 제품으로 인증해줍니다. 동물복지 도축장은 이동 과정에서 몽둥이나 전기를 활용해 강압적으로 몰지도 않고 죽이기 전 동공반사를 통해 의식이 회복됐는지도 확인합니다. 죽는 순간의 스트레스와 공포를 최소화하도록 한 겁니다.

문제는 이 중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도축장은 전국 3곳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농가 입장에서는 가까운 일반 도축장을 두고 멀리 있는 동물복지 도축장까지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돼지농가 관계자는 "일반 수송차량으로 단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가축에게 스트레스가 클지, 복지인증 된 무진동 차량으로 (동물복지 인증 도축장까지) 장거리를 이동하는 게 스트레스가 클지"를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동물복지 인증 육류가 일반 돼지고기에 비해 크게 비싼 것도 아닙니다. KBS 취재진이 마트를 둘러본 결과 동물복지 인증 돼지고기와 일반 돼지고기의 가격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사육 두수도 줄고, 지원도 거의 없으니 일반 농가 입장에선 빚을 내서까지 투자할 요인이 없는 겁니다.

동물복지가 결국엔 육류의 가격을 인상시켜 국내 축산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현규 도드람양돈연구소장은 "(동물복지 인증 농가가 많아지면) 사육두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 원가는 올라가게 된다"라며 "수입고기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확 떨어져 국내 산업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동물복지 인증 표시. 동물복지 농장에서 자란 육류에는 이런 인증표시가 붙어 있다.
■ 반려동물만 행복해야 하나요?

돼지와 병아리도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 동물입니다. 하지만, 축산동물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산부터 큰 차이가 납니다. 농식품부는 올해 반려동물 복지 분야 예산으로 88억 원을 배정했지만, 축산동물 관련 예산은 4억 원에 불과합니다. 법안은 어떨까요? 현재 국회에 발의된 동물 관련 50여 개 법안 중 대부분이 반려동물 관련입니다. 축산동물 관련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도살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자는 내용의 법한 하나만 발의돼 있습니다.

관심 대부분이 반려동물에게 쏠려 있는 겁니다.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동물복지는 그냥 캠페인이나 운동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며 "이것은 과학이다. 유럽 쪽에선 동물복지를 위해 많은 학자가 어떻게 하면 비용을 낮추면서도 동물복지를 향상할 수 있을까 많은 투자ㆍ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연구가 활발해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정부, 축산업계, 소비자 등 우리 사회가 머리를 모아 축산동물에 대한 복지를 논의해야 축산동물들이 살아있을 때만큼은 행복할 수 있는 겁니다.

동물복지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KBS 보도 이후 수평아리 분쇄와 수퇘지 거세에 대해 관련 단체와 업계, 학계의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조사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동물복지 제품의 판로를 확대하고 더 홍보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 UNEP, "집약식축산, 팬데믹 시대에 지속 어려워"

한편 최근엔 감염병 예방을 위해서라도 동물에 대한 복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인 코로나19와 메르스가 전 세계를 휩쓸었기 때문입니다.

UN환경계획과 국제축산연구소는 지난해 'PREVENTING THE NEXT PANDEMIC'이라는 보고서에서 관련 위험성을 지적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바이러스를 가진 야생동물과 축산동물들이 접촉하고, 축산동물이 사람과 접촉하면서 병이 옮겨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공장식 축산 등 집약식 축산이 펜데믹 시대에는 더 지속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바이러스의 숙주가 많으면 전염과 변이가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동물복지가 동물만을 위한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동물뿐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도 필요한 동물복지. 축산동물 복지에 대한 고민, 더 뒤로 미뤄도 되는 걸까요?

[참고]
☞ 클릭 :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기준 및 인증 등에 관한 세부실시요령
위 하단 별지에서 양돈, 산란계 등에 대한 동물복지 인증 기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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