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가출 했는데 스타가 됐다!…中 할머니의 ‘이유있는 방랑기’

입력 2021.04.11 (10:01) 수정 2021.04.1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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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57살이 된 쑤민 할머니가 능숙한 솜씨로 자동차 위에 텐트를 칩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자동차 여행 중에 자신의 침실이자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입니다.

쑤민 할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 차 지붕 위에는 텐트를 설치했다. (출처 : 중국 매체 펑파이)쑤민 할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 차 지붕 위에는 텐트를 설치했다. (출처 : 중국 매체 펑파이)

오늘도 식사는 주차장에서 해결합니다. 트렁크에서 요리 도구와 쌀을 꺼내고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그녀의 옆에는 십여 명의 여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여성 : "'50세 아주머니의 드라이브', 당신이에요?"
쑤민 : "저를 팔로우하고 있나요?"
여성 : "저 구독자에요."



이제 할머니가 가는 곳마다 팬들이 몰려든다. (출처  :  펑파이)이제 할머니가 가는 곳마다 팬들이 몰려든다. (출처 : 펑파이)

1960년대 태어나 한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온 쑤민 할머니는 현재 중국 SNS 스타입니다.

짧은 동영상을 주로 올리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은 구독자 수가 35만여 명, 다른 SNS 구독자까지 합치면 80만 명 정도가 그녀가 올리는 여행 영상을 구독하고 있는데요.


우울증 끝에 홀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다

지난해 9월만 하더라도 쑤민 할머니는 대다수 5, 60대 중국 여성들처럼 평생을 '인내'라는 두 글자를 새기며 살았습니다.

(출처 : 펑파이)(출처 : 펑파이)

첫째 딸이었던 그녀는 엄격했던 부모님, 어린 동생들을 위해 어려서부터 돈을 벌어야 했고 지긋지긋했던 고향 살이, 티베트를 떠나고 싶어서 선택한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큰 '족쇄'가 됐습니다.

30년 넘는 결혼생활 동안 남편의 폭력과 무관심을 견뎌야 했고, 딸을 낳은 뒤에는 또 묵묵히 홀로 양육을 떠맡았습니다.

딸이 결혼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쌍둥이를 낳고 산후 우울증이 생긴 딸을 위해 손자들까지 돌봐주게 됐기 때문인데요.


■ 평범한 주부에서 인터넷 스타 되기까지

평생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나 자신'을 내려놓고 살았던 쑤 할머니에게 2년 전 불현듯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쑤 할머니는 그러다 한 블로거의 영상을 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되는데요.

"한 번은 어떻게 찾았는지 혼자 자동차 여행을 하는 영상이 나왔어요. 나중에는 틈만 나면 여행 영상을 보기 시작했어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 중에서)

'손자들이 유치원에 입학하는 순간, 나도 자동차 여행을 떠나자!'

딸은 처음부터 완강히 반대했고 남편은 그녀의 계획을 비웃었습니다. 혼자서 자동차를 몰고 여행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할머니는 1년 가까이 묵묵히 자동차 여행을 준비합니다. 자동차 지붕에 설치할 텐트, 사물함과 작은 냉장고, 요리 도구와 쌀, 태양광 배터리까지.

(왼쪽) 할머니  트렁크에 실린 각종 생필품  (오른쪽) 텐트 내부의 모습 (출처 :  블로그 작가 인셩린)(왼쪽) 할머니 트렁크에 실린 각종 생필품 (오른쪽) 텐트 내부의 모습 (출처 : 블로그 작가 인셩린)

2020년 9월 24일 아침, 쑤 할머니는 '돌아오지 말라'는 남편의 막말을 뒤로하고 정저우 집을 떠납니다.

쑤 할머니는 병마용이 있는 역사의 도시 시안부터 옛 마을이 운집해 있는 리장 등 중국 대륙을 가로 질렀습니다. 밤에는 무료 캠프장을 찾아 차 지붕에 텐트를 쳤고, 아침이면 세탁한 옷가지 등을 뒷좌석에 널고 또 그렇게 길을 달렸습니다.

쑤 할머니가 운전하는 모습 (출처 : 펑파이)쑤 할머니가 운전하는 모습 (출처 : 펑파이)

그렇게 여행길에 오른 지 한 달여 뒤,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올라온 쑤 할머니의 한 영상이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내가 왜 자동차 여행을 하려고 할까요? ……남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스트레스입니다, 바로 스트레스. 정말 스트레스에요. 나는 스트레스가 쌓여가요." (지난해 10월 올린 영상 중에서)

수백만 명의 네티즌들을 사로잡은 건 멋진 풍경 영상이 아니라 왜 집을 떠나게 됐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녀의 마음이었습니다.


■ 수백만이 함께 울고 웃다…이제는 '주체적인 여성'의 상징

지금은 쑤 할머니가 올리는 영상마다 동시대 태어나 비슷한 삶을 살아온 중국 여성들 뿐만 아니라 딸 나이의 여성들까지 부러움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거나 같은 아픔을 털어놓고 있는데요.


특히 나이가 비슷한 여성들은 쑤 할머니에게 그녀의 이야기가 얼마나 자신의 삶과 비슷한지 메시지를 보내거나 과일이나 집에서 만든 식사를 갖고 쑤 할머니가 여행하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기도 합니다.

젊은 여성들은 쑤 할머니에게 결혼에 대해 문의하거나 육아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영상을 올릴 수 있는 인터넷 환경과 중국 여성들의 바뀐 시각이 쑤 할머니라는 스타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중국 여성들이 그녀와 같은 삶을 갈망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해외 유명 인터넷 업체가 기획한 ‘세계 여성의 날’ 공익 광고해외 유명 인터넷 업체가 기획한 ‘세계 여성의 날’ 공익 광고

실제 수많은 여성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쑤 할머니는 지난달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 기업이 기획한 공익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집을 떠난 지 6개월여, 그 사이 계절은 3번 바뀌었고 주행 거리는 13,000킬로미터가 됐습니다. 각종 사고로 교통 벌점이 제법 쌓였고 가져온 경비도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할머니는 몇 년 만에 가장 많이 웃었다고 말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쑤 할머니는 아직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습니다. 딸이 남편을 부양하게 될까 봐 이혼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쑤민 할머니가 쓰촨성 이빈시 관광 지역을 여행하는 모습 (출처 : 블로그 작가 인셩린)쑤민 할머니가 쓰촨성 이빈시 관광 지역을 여행하는 모습 (출처 : 블로그 작가 인셩린)

그저 자신이 새로 누리게 된 자유를 마음껏 영상으로 제작해 올리고 많은 여성과 울고 웃으며, 그렇게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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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11 10:01:04
    • 수정2021-04-11 10:03:39
    특파원 리포트

올해로 57살이 된 쑤민 할머니가 능숙한 솜씨로 자동차 위에 텐트를 칩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자동차 여행 중에 자신의 침실이자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입니다.

쑤민 할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 차 지붕 위에는 텐트를 설치했다. (출처 : 중국 매체 펑파이)
오늘도 식사는 주차장에서 해결합니다. 트렁크에서 요리 도구와 쌀을 꺼내고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그녀의 옆에는 십여 명의 여성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여성 : "'50세 아주머니의 드라이브', 당신이에요?"
쑤민 : "저를 팔로우하고 있나요?"
여성 : "저 구독자에요."



이제 할머니가 가는 곳마다 팬들이 몰려든다. (출처  :  펑파이)
1960년대 태어나 한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온 쑤민 할머니는 현재 중국 SNS 스타입니다.

짧은 동영상을 주로 올리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은 구독자 수가 35만여 명, 다른 SNS 구독자까지 합치면 80만 명 정도가 그녀가 올리는 여행 영상을 구독하고 있는데요.


우울증 끝에 홀로 자동차 여행을 떠나다

지난해 9월만 하더라도 쑤민 할머니는 대다수 5, 60대 중국 여성들처럼 평생을 '인내'라는 두 글자를 새기며 살았습니다.

(출처 : 펑파이)
첫째 딸이었던 그녀는 엄격했던 부모님, 어린 동생들을 위해 어려서부터 돈을 벌어야 했고 지긋지긋했던 고향 살이, 티베트를 떠나고 싶어서 선택한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큰 '족쇄'가 됐습니다.

30년 넘는 결혼생활 동안 남편의 폭력과 무관심을 견뎌야 했고, 딸을 낳은 뒤에는 또 묵묵히 홀로 양육을 떠맡았습니다.

딸이 결혼한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쌍둥이를 낳고 산후 우울증이 생긴 딸을 위해 손자들까지 돌봐주게 됐기 때문인데요.


■ 평범한 주부에서 인터넷 스타 되기까지

평생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나 자신'을 내려놓고 살았던 쑤 할머니에게 2년 전 불현듯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쑤 할머니는 그러다 한 블로거의 영상을 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되는데요.

"한 번은 어떻게 찾았는지 혼자 자동차 여행을 하는 영상이 나왔어요. 나중에는 틈만 나면 여행 영상을 보기 시작했어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 중에서)

'손자들이 유치원에 입학하는 순간, 나도 자동차 여행을 떠나자!'

딸은 처음부터 완강히 반대했고 남편은 그녀의 계획을 비웃었습니다. 혼자서 자동차를 몰고 여행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할머니는 1년 가까이 묵묵히 자동차 여행을 준비합니다. 자동차 지붕에 설치할 텐트, 사물함과 작은 냉장고, 요리 도구와 쌀, 태양광 배터리까지.

(왼쪽) 할머니  트렁크에 실린 각종 생필품  (오른쪽) 텐트 내부의 모습 (출처 :  블로그 작가 인셩린)
2020년 9월 24일 아침, 쑤 할머니는 '돌아오지 말라'는 남편의 막말을 뒤로하고 정저우 집을 떠납니다.

쑤 할머니는 병마용이 있는 역사의 도시 시안부터 옛 마을이 운집해 있는 리장 등 중국 대륙을 가로 질렀습니다. 밤에는 무료 캠프장을 찾아 차 지붕에 텐트를 쳤고, 아침이면 세탁한 옷가지 등을 뒷좌석에 널고 또 그렇게 길을 달렸습니다.

쑤 할머니가 운전하는 모습 (출처 : 펑파이)
그렇게 여행길에 오른 지 한 달여 뒤,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올라온 쑤 할머니의 한 영상이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내가 왜 자동차 여행을 하려고 할까요? ……남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스트레스입니다, 바로 스트레스. 정말 스트레스에요. 나는 스트레스가 쌓여가요." (지난해 10월 올린 영상 중에서)

수백만 명의 네티즌들을 사로잡은 건 멋진 풍경 영상이 아니라 왜 집을 떠나게 됐는지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녀의 마음이었습니다.


■ 수백만이 함께 울고 웃다…이제는 '주체적인 여성'의 상징

지금은 쑤 할머니가 올리는 영상마다 동시대 태어나 비슷한 삶을 살아온 중국 여성들 뿐만 아니라 딸 나이의 여성들까지 부러움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거나 같은 아픔을 털어놓고 있는데요.


특히 나이가 비슷한 여성들은 쑤 할머니에게 그녀의 이야기가 얼마나 자신의 삶과 비슷한지 메시지를 보내거나 과일이나 집에서 만든 식사를 갖고 쑤 할머니가 여행하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기도 합니다.

젊은 여성들은 쑤 할머니에게 결혼에 대해 문의하거나 육아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영상을 올릴 수 있는 인터넷 환경과 중국 여성들의 바뀐 시각이 쑤 할머니라는 스타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중국 여성들이 그녀와 같은 삶을 갈망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해외 유명 인터넷 업체가 기획한 ‘세계 여성의 날’ 공익 광고
실제 수많은 여성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쑤 할머니는 지난달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 기업이 기획한 공익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집을 떠난 지 6개월여, 그 사이 계절은 3번 바뀌었고 주행 거리는 13,000킬로미터가 됐습니다. 각종 사고로 교통 벌점이 제법 쌓였고 가져온 경비도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할머니는 몇 년 만에 가장 많이 웃었다고 말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쑤 할머니는 아직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습니다. 딸이 남편을 부양하게 될까 봐 이혼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쑤민 할머니가 쓰촨성 이빈시 관광 지역을 여행하는 모습 (출처 : 블로그 작가 인셩린)
그저 자신이 새로 누리게 된 자유를 마음껏 영상으로 제작해 올리고 많은 여성과 울고 웃으며, 그렇게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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