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원픽 1호’ 국가무형문화재는 ‘막걸리 빚기 문화’

입력 2021.04.13 (10:5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거칠게 빨리 걸러진 술'이라는 뜻의 막걸리. 순우리말입니다. 이름에서부터 술을 만드는 방식과 특징을 알 수 있죠.

최근 몇 년 새 막걸리 열풍 속에 수십만 원짜리 고급 막걸리까지 나오고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막걸리는 서민들의 피, 땀, 눈물이 서린 '국민 술'입니다.

막걸리는 물과 쌀, 누룩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요.

배우 김태리 주연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도 평범한 20대가 직접 막걸리를 빚어 마시는 장면이 나왔죠. 제조 과정이 간단한 만큼 값이 저렴해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농사꾼들 사이에서는 "같은 품삯을 받더라도 새참으로 나오는 막걸리가 맛있는 집으로 일하러 간다"라고 할 정도로 농번기에는 농민의 땀과 갈증을 해소하는 농주(農酒)였습니다.

막걸리를 거르는 모습막걸리를 거르는 모습

많은 국민이 사랑하는 막걸리, 언제부터 마셨을까요? 멥쌀, 찹쌀, 보리쌀 등 곡류로 빚기 때문에 삼국 시대 이전 농경이 이뤄진 시기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미온(美醞)', '지주(旨酒)', '로예(醪醴)' 등 막걸리로 추정할 수 있는 내용들이 확인되고요. 고려 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등 당대 문인들의 문집에도 막걸리로 추측되는 '백주(白酒)' 등의 용어가 나옵니다.

조선 시대에는 <춘향전>, <광재물보(廣才物譜)>에서 '목걸리', '막걸니' 등 한글로 표기된 막걸리를 찾아볼 수 있고, 《규합총서》, 《음식디미방》을 비롯한 각종 조리서에서도 막걸리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주막’ (출처: 국립중앙박물관)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주막’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그림에서도 막걸리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먼저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 중 '주막'에는 주모가 큰 항아리에 든 막걸리를 사발에 담으려는 장면이 묘사돼 있습니다.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점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점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또 《풍속도첩》 중 '점심'에는 막걸리가 담긴 큰 병을 든 사람, 사발에 담긴 막걸리는 마시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여름 농삿일을 하던 일꾼들이 점심을 먹으며 막걸리로 반주를 하는 모습이 생생히 담겼습니다.

〈대쾌도〉 중 일부 술을 따르는 모습 (출처: 국립중앙박물관)〈대쾌도〉 중 일부 술을 따르는 모습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흥겨운 씨름 경기장에서도 막걸리가 빠질 수 없겠죠. 조선 말기의 화가 유숙(劉淑)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풍속화 <대쾌도>는 씨름 경기가 펼쳐진 곳의 풍경을 담고 있는데요.

한쪽 귀퉁이에서 막걸리를 파는 사람과 씨름 구경 중에 한 잔 하려는 구경꾼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막걸리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에 깊이 파고든 대중적인 술이었고, 예로부터 마을 공동체의 생업·의례·경조사에서도 빠지지 않는 요소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막걸리는 신주(神酒)로서 건축물의 준공식, 자동차 고사, 개업식 등 여러 행사에 제물로 올릴 정도로 관련 문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진설한 제물 막걸리 (국가무형문화재 밀양백중놀이)진설한 제물 막걸리 (국가무형문화재 밀양백중놀이)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 된 '막걸리 빚기'가 문화재로 지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재청이 '막걸리 빚기 문화'를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했습니다.

이번 지정 예고의 대상은 막걸리를 빚는 작업은 물론이고, 다양한 생업과 의례, 경조사 활동 등에서 나누는 전통 생활관습까지를 포괄한 것입니다.

특히 '막걸리 빚기 문화'는 2019년 '숨은 무형유산 찾기'와 '국민신문고 국민제안'을 통해 국민이 직접 국가무형문화재를 제안해 지정 예고되는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남다릅니다.

▲ 오랜 역사를 가지고 한반도 전역에서 전승·향유되고 있다는 점, ▲ 삼국 시대부터 각종 고문헌에서 막걸리 제조방법과 관련된 기록이 확인되는 점, ▲ 식품영양학, 민속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학술연구 자료로서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 ▲ 농요·속담·문학작품 등 막걸리 관련 문화를 통해 한국문화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
▲ 전국에 분포한 양조장을 중심으로 막걸리의 각 지역별 특색이 뚜렷한 점, ▲ 현재에도 생산 주체, 연구 기관, 일반 가정 등 다양한 전승 공동체를 통하여 막걸리를 빚는 전통지식이 전승·유지되고 있는 점에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다만, 막걸리 빚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온 국민이 전승·향유하고 있는 문화라는 점에서 이미 지정된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 등과 같이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재청은 4월 13일부터 5월 12일까지 30일 간 '막걸리 빚기 문화'를 지정 예고하고, 각계의 의견 수렴 이후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무형문화재의 지정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국민 ‘원픽 1호’ 국가무형문화재는 ‘막걸리 빚기 문화’
    • 입력 2021-04-13 10:53:34
    취재K
'거칠게 빨리 걸러진 술'이라는 뜻의 막걸리. 순우리말입니다. 이름에서부터 술을 만드는 방식과 특징을 알 수 있죠.

최근 몇 년 새 막걸리 열풍 속에 수십만 원짜리 고급 막걸리까지 나오고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막걸리는 서민들의 피, 땀, 눈물이 서린 '국민 술'입니다.

막걸리는 물과 쌀, 누룩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요.

배우 김태리 주연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도 평범한 20대가 직접 막걸리를 빚어 마시는 장면이 나왔죠. 제조 과정이 간단한 만큼 값이 저렴해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농사꾼들 사이에서는 "같은 품삯을 받더라도 새참으로 나오는 막걸리가 맛있는 집으로 일하러 간다"라고 할 정도로 농번기에는 농민의 땀과 갈증을 해소하는 농주(農酒)였습니다.

막걸리를 거르는 모습
많은 국민이 사랑하는 막걸리, 언제부터 마셨을까요? 멥쌀, 찹쌀, 보리쌀 등 곡류로 빚기 때문에 삼국 시대 이전 농경이 이뤄진 시기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미온(美醞)', '지주(旨酒)', '로예(醪醴)' 등 막걸리로 추정할 수 있는 내용들이 확인되고요. 고려 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등 당대 문인들의 문집에도 막걸리로 추측되는 '백주(白酒)' 등의 용어가 나옵니다.

조선 시대에는 <춘향전>, <광재물보(廣才物譜)>에서 '목걸리', '막걸니' 등 한글로 표기된 막걸리를 찾아볼 수 있고, 《규합총서》, 《음식디미방》을 비롯한 각종 조리서에서도 막걸리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주막’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그림에서도 막걸리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먼저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 중 '주막'에는 주모가 큰 항아리에 든 막걸리를 사발에 담으려는 장면이 묘사돼 있습니다.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점심’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또 《풍속도첩》 중 '점심'에는 막걸리가 담긴 큰 병을 든 사람, 사발에 담긴 막걸리는 마시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여름 농삿일을 하던 일꾼들이 점심을 먹으며 막걸리로 반주를 하는 모습이 생생히 담겼습니다.

〈대쾌도〉 중 일부 술을 따르는 모습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흥겨운 씨름 경기장에서도 막걸리가 빠질 수 없겠죠. 조선 말기의 화가 유숙(劉淑)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풍속화 <대쾌도>는 씨름 경기가 펼쳐진 곳의 풍경을 담고 있는데요.

한쪽 귀퉁이에서 막걸리를 파는 사람과 씨름 구경 중에 한 잔 하려는 구경꾼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막걸리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에 깊이 파고든 대중적인 술이었고, 예로부터 마을 공동체의 생업·의례·경조사에서도 빠지지 않는 요소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막걸리는 신주(神酒)로서 건축물의 준공식, 자동차 고사, 개업식 등 여러 행사에 제물로 올릴 정도로 관련 문화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진설한 제물 막걸리 (국가무형문화재 밀양백중놀이)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의 소중한 문화 자산이 된 '막걸리 빚기'가 문화재로 지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재청이 '막걸리 빚기 문화'를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했습니다.

이번 지정 예고의 대상은 막걸리를 빚는 작업은 물론이고, 다양한 생업과 의례, 경조사 활동 등에서 나누는 전통 생활관습까지를 포괄한 것입니다.

특히 '막걸리 빚기 문화'는 2019년 '숨은 무형유산 찾기'와 '국민신문고 국민제안'을 통해 국민이 직접 국가무형문화재를 제안해 지정 예고되는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남다릅니다.

▲ 오랜 역사를 가지고 한반도 전역에서 전승·향유되고 있다는 점, ▲ 삼국 시대부터 각종 고문헌에서 막걸리 제조방법과 관련된 기록이 확인되는 점, ▲ 식품영양학, 민속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학술연구 자료로서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 ▲ 농요·속담·문학작품 등 막걸리 관련 문화를 통해 한국문화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
▲ 전국에 분포한 양조장을 중심으로 막걸리의 각 지역별 특색이 뚜렷한 점, ▲ 현재에도 생산 주체, 연구 기관, 일반 가정 등 다양한 전승 공동체를 통하여 막걸리를 빚는 전통지식이 전승·유지되고 있는 점에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다만, 막걸리 빚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온 국민이 전승·향유하고 있는 문화라는 점에서 이미 지정된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 등과 같이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문화재청은 4월 13일부터 5월 12일까지 30일 간 '막걸리 빚기 문화'를 지정 예고하고, 각계의 의견 수렴 이후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무형문화재의 지정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