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경비원 박 씨가 7년 동안 갑질을 견딘 이유

입력 2021.04.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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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박정철(가명) 씨는 아직도 지난 2월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경비초소로 걸려온 전화. 15층에 사는 아파트 주민 김 모 씨의 연락이었다. 김 씨는 대뜸 자신의 집으로 올라오라며 박 씨를 불렀고 집 앞에 도착하자 갑자기 폭행이 이어졌다.

"150X호에서 지금 올라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올라갔더니 문을 열자마자 홍두깨 방망이로 막 때리더라고요, 갑자기. 방망이로 직접 맞으면 큰일나잖아요. 그래서 막았는데 한 10분 정도를 계속 그러더라고요. 저는 때리는 대로 맞고 ...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어요."- 경비원 박정철(가명)

서둘러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피했지만 김 씨의 폭행은 끝나지 않았다. 건물 밖에서도 이어지던 폭행은 주민들의 만류로 겨우 끝났다. 박 씨는 결국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더 큰 것은 마음의 상처였다.

박 씨는 김 씨의 폭행과 괴롭힘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괴롭히는 걸 사시사철로 그동안 7년 동안 그렇게 당해 왔으니 얼마나 그동안 마음적으로, 심적으로 괴로웠겠어요. 말로 다 못해요." - 경비원 박정철(가명)

7년 동안 이어졌다는 괴롭힘. 박정철 씨에게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취재진과 만난 경비원 박정철(가명)씨취재진과 만난 경비원 박정철(가명)씨

경비원 갑질 뒤 존재하는 '고용 불안…"신고하면 일 못 해"

술, 담배 심부름에서부터 시작한 갑질은 점점 심해졌고, 심부름을 해주지 않으면 폭행으로 이어졌다.

박 씨 곁에 있는 가족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아들은 아버지가 경비원 일을 잘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고 말했다.

"저는 진짜 아버지가 일을 잘하는 줄 알고 그러고 있었는데 상상을 못 할 정도로 이런 일이 생겨버리니까...맞은 날도 처음에 집에 와서는 애기가 넘어지려고 하는걸 막다가 다쳤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게 딱 봐도 그렇게 생긴 상처가 아니잖아요. 그때서야 알게 된거죠." - 경비원 박정철(가명) 씨 아들

입주민 김 씨는 경비원 박 씨를 폭행하고 괴롭히다 2년 전 다른 경비원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박 씨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가 커지면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경비원들이라면 조금이라도, 한 달이라도 이렇게 더 일하고 싶어 하는 마음들을 다 갖고 있죠. 그러니까 문제가 커지는걸 원하지 않는거야. 경비원들끼리 갑질하는 사람이 좀 있다, 이렇게 얘기도 하고 그러는데 다들 서로 하는 얘기가 그런 건 피해, 될 수 있으면 피해, 이렇게 얘기해요. 그리고 갑잘이 있어도 참고 다 하는거에요, 웬만하면. 이제 다들 나이도 있고 어디 갈 데도 없고 그렇잖아. " - 경비원 박정철(가명)

함께 일하던 박 씨의 동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들은 입주민과의 다툼이 생기면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토로했다.

취재진과 만난 박정철(가명)씨 동료 경비원들취재진과 만난 박정철(가명)씨 동료 경비원들

"만약 주민들이 갑질을 했다고 내가 고소를 해. 합의를 봐가지고 경비원이 합의금을 받아냈어. 그러면 그 사람은 다음에 취업하려 해도 그게 남아. 소문이 다 나는 거야. 지금 벌써 여기 상계에 단지가 몇 개야? 18개야. 18단지까지 있다고. 의외로 좁아요." - 동료 경비원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운 사람…임시 계약직 노인장. 이른바 임계장으로 불리는 경비원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인터뷰하는 임득균 노무사인터뷰하는 임득균 노무사

취재진은 경비원의 열악한 고용 조건에 주목했다. 대부분 1년 미만, 짧게는 3개월 단위로 근로 계약을 맺고 있었다. 박 씨 역시 3개월 단위로 근로 계약을 매번 갱신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단기 계약이 경비원들이 갑질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3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다 보니까 계약서를 1년에 4번 정도 작성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계약서를 쓸 때마다 경비원들은 계약이 갱신될까 안 될까,하는 생각을 하는거에요. 이러한 상황에서 예를 들면 휴게 시간에 누가 와서 어떤 서비스를 요구한다? 그랬을 때 경비원은 혹시나 입주민이 회사한테 잘못 얘기해서 본인의 계약이 거절될까 봐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거죠. 결국 부당한 지시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고, 그렇게 해서 본인의 당연한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거에요 ."
- 임득균 노무사

경비원은 한 명, 사용자는 여럿 … 경비원 괴롭히는 다중 사용 구조

경비원 갑질이 잦은 또 다른 이유는 경비원의 고용주가 사실상 여러 명인 다중 사용자 구조다. 감시하고 일을 요구하는 사람은 많지만, 경비원은 한사람이다.

인터뷰 하는 용혜인 의원인터뷰 하는 용혜인 의원

을은 경비 노동자 한 명인데 이 한 명의 경비 노동자에게 갑이 되는 사용자가 엄청나게 많은 거죠. 용역업체가 있을 것이고 관리사무소가 있을 것이고 입주자 대표회의가 있을 것이고...심지어는 개별 입주민들이 모두가 다 사용자가 되는 다중사용자 구조가 경비원에 대한 갑질 문제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구조적인 원인이라고 봅니다.
-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입주민들은 근로계약서 상 경비원의 사용자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관리비로 경비원의 월급을 준다고 생각해 사용자 의식을 갖게 된다. 다만 함께 갖춰야 할 사용자로서 책임 의식은 갖추지 못하면서 책임과 권한이 불균형한 상황에서 갑질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입주민들의 갑질은 이렇게 모호한 법적 지위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으로 처벌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근로계약상 사용자는 경비 용역회사 사장만이 근로계약상 사용자에요. 하지만 경비 용역회사는 아파트 단지에 와 볼 일이 거의 없습니다. 형식적인 역할만 하고 있는 건데 실제로 갑질의 원인 제공자인 입주민들은 근로계약상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금지 조항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 남우근 노무사

KBS는 오늘(17일) <뉴스9>를 통해 경비원에 대한 갑질 문제는 왜 근절되지 않는지, 사회적 약자로서 고용 안정과 근로자 권익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경비원들의 현실은 어떠한지 살펴본다.

내일 18일(일) 저녁 9시 40분 <시사기획 창 - 그림자 과로사, 경비원 74명의 죽음>에서는 좁은 경비 초소에서 24시간 교대제 근무를 하는 경비원들의 실상과 경비원 과로사 실태를 집중 분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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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경비원 박 씨가 7년 동안 갑질을 견딘 이유
    • 입력 2021-04-17 07:00:25
    탐사K

서울 노원구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박정철(가명) 씨는 아직도 지난 2월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경비초소로 걸려온 전화. 15층에 사는 아파트 주민 김 모 씨의 연락이었다. 김 씨는 대뜸 자신의 집으로 올라오라며 박 씨를 불렀고 집 앞에 도착하자 갑자기 폭행이 이어졌다.

"150X호에서 지금 올라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올라갔더니 문을 열자마자 홍두깨 방망이로 막 때리더라고요, 갑자기. 방망이로 직접 맞으면 큰일나잖아요. 그래서 막았는데 한 10분 정도를 계속 그러더라고요. 저는 때리는 대로 맞고 ...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어요."- 경비원 박정철(가명)

서둘러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피했지만 김 씨의 폭행은 끝나지 않았다. 건물 밖에서도 이어지던 폭행은 주민들의 만류로 겨우 끝났다. 박 씨는 결국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더 큰 것은 마음의 상처였다.

박 씨는 김 씨의 폭행과 괴롭힘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괴롭히는 걸 사시사철로 그동안 7년 동안 그렇게 당해 왔으니 얼마나 그동안 마음적으로, 심적으로 괴로웠겠어요. 말로 다 못해요." - 경비원 박정철(가명)

7년 동안 이어졌다는 괴롭힘. 박정철 씨에게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취재진과 만난 경비원 박정철(가명)씨
경비원 갑질 뒤 존재하는 '고용 불안…"신고하면 일 못 해"

술, 담배 심부름에서부터 시작한 갑질은 점점 심해졌고, 심부름을 해주지 않으면 폭행으로 이어졌다.

박 씨 곁에 있는 가족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아들은 아버지가 경비원 일을 잘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고 말했다.

"저는 진짜 아버지가 일을 잘하는 줄 알고 그러고 있었는데 상상을 못 할 정도로 이런 일이 생겨버리니까...맞은 날도 처음에 집에 와서는 애기가 넘어지려고 하는걸 막다가 다쳤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게 딱 봐도 그렇게 생긴 상처가 아니잖아요. 그때서야 알게 된거죠." - 경비원 박정철(가명) 씨 아들

입주민 김 씨는 경비원 박 씨를 폭행하고 괴롭히다 2년 전 다른 경비원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박 씨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가 커지면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경비원들이라면 조금이라도, 한 달이라도 이렇게 더 일하고 싶어 하는 마음들을 다 갖고 있죠. 그러니까 문제가 커지는걸 원하지 않는거야. 경비원들끼리 갑질하는 사람이 좀 있다, 이렇게 얘기도 하고 그러는데 다들 서로 하는 얘기가 그런 건 피해, 될 수 있으면 피해, 이렇게 얘기해요. 그리고 갑잘이 있어도 참고 다 하는거에요, 웬만하면. 이제 다들 나이도 있고 어디 갈 데도 없고 그렇잖아. " - 경비원 박정철(가명)

함께 일하던 박 씨의 동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들은 입주민과의 다툼이 생기면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토로했다.

취재진과 만난 박정철(가명)씨 동료 경비원들
"만약 주민들이 갑질을 했다고 내가 고소를 해. 합의를 봐가지고 경비원이 합의금을 받아냈어. 그러면 그 사람은 다음에 취업하려 해도 그게 남아. 소문이 다 나는 거야. 지금 벌써 여기 상계에 단지가 몇 개야? 18개야. 18단지까지 있다고. 의외로 좁아요." - 동료 경비원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쉬운 사람…임시 계약직 노인장. 이른바 임계장으로 불리는 경비원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인터뷰하는 임득균 노무사
취재진은 경비원의 열악한 고용 조건에 주목했다. 대부분 1년 미만, 짧게는 3개월 단위로 근로 계약을 맺고 있었다. 박 씨 역시 3개월 단위로 근로 계약을 매번 갱신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단기 계약이 경비원들이 갑질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3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다 보니까 계약서를 1년에 4번 정도 작성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계약서를 쓸 때마다 경비원들은 계약이 갱신될까 안 될까,하는 생각을 하는거에요. 이러한 상황에서 예를 들면 휴게 시간에 누가 와서 어떤 서비스를 요구한다? 그랬을 때 경비원은 혹시나 입주민이 회사한테 잘못 얘기해서 본인의 계약이 거절될까 봐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거죠. 결국 부당한 지시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고, 그렇게 해서 본인의 당연한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거에요 ."
- 임득균 노무사

경비원은 한 명, 사용자는 여럿 … 경비원 괴롭히는 다중 사용 구조

경비원 갑질이 잦은 또 다른 이유는 경비원의 고용주가 사실상 여러 명인 다중 사용자 구조다. 감시하고 일을 요구하는 사람은 많지만, 경비원은 한사람이다.

인터뷰 하는 용혜인 의원
을은 경비 노동자 한 명인데 이 한 명의 경비 노동자에게 갑이 되는 사용자가 엄청나게 많은 거죠. 용역업체가 있을 것이고 관리사무소가 있을 것이고 입주자 대표회의가 있을 것이고...심지어는 개별 입주민들이 모두가 다 사용자가 되는 다중사용자 구조가 경비원에 대한 갑질 문제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구조적인 원인이라고 봅니다.
-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입주민들은 근로계약서 상 경비원의 사용자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관리비로 경비원의 월급을 준다고 생각해 사용자 의식을 갖게 된다. 다만 함께 갖춰야 할 사용자로서 책임 의식은 갖추지 못하면서 책임과 권한이 불균형한 상황에서 갑질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입주민들의 갑질은 이렇게 모호한 법적 지위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으로 처벌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근로계약상 사용자는 경비 용역회사 사장만이 근로계약상 사용자에요. 하지만 경비 용역회사는 아파트 단지에 와 볼 일이 거의 없습니다. 형식적인 역할만 하고 있는 건데 실제로 갑질의 원인 제공자인 입주민들은 근로계약상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금지 조항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 남우근 노무사

KBS는 오늘(17일) <뉴스9>를 통해 경비원에 대한 갑질 문제는 왜 근절되지 않는지, 사회적 약자로서 고용 안정과 근로자 권익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경비원들의 현실은 어떠한지 살펴본다.

내일 18일(일) 저녁 9시 40분 <시사기획 창 - 그림자 과로사, 경비원 74명의 죽음>에서는 좁은 경비 초소에서 24시간 교대제 근무를 하는 경비원들의 실상과 경비원 과로사 실태를 집중 분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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