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을 ‘디스’한 정약용? 시대를 앞서 간 두 천재 이야기

입력 2021.04.18 (08:01) 수정 2021.04.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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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 中영화 ‘자산어보’ 中

조선시대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 최고의 사상가 다산( 茶山) 정약용을 '천재'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 정약용이 "나 못지 않은 대학자"라고 인정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둘째 형 손암(巽庵) 정약전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용보다 대중들에게 덜 알려진, 비운의 천재 정약전의 생애를 담은 작품이죠.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다 아는, 내로라하는 천재 정약용이 인정한 정약전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고, 그가 1814년에 쓴 책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어떤 의미와 성과를 지닌 저서일까요?

'다산학의 일인자'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과 30년간 바닷물고기를 연구해온 '물고기 박사' 황선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을 직접 만나 물어봤습니다.

■ 정약용 "나 못지 않은 대학자, 세상에 둘도 없는 지기(知己) 정약전"

정약용은 자신의 둘째 형 정약전에 대해 "동포 형제이고, 지기(知己)이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이면서 세상에 둘도 없는 내 지기(知己)가 우리 정약전 손암 선생이다."라고 표현했다고 하죠.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정약용이 형 정약전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형 정약전은) 우선 지식이 너무 높고 너무 많은 책을 봐 갖고 가슴 속, 마음 속에 온갖 지식이 다 들어있다. 특히 일반 사람이 모르는 수학의 천재야. 기하학 이런 것. 기하학 천재. 이미 그 때 서양에서 들어온 기하학 이런 것을 습득을 했어. 그러면 누구를 통해서 배웠다가 다 나와요."

"(정약용은) 이 두 책의 서문을 자기 중형에게 썼어요. 그러니까 당대에 내 책을 평가하고 서문을 쓸 사람은 우리 형님(정약전)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야. 정약전에 대한 학문의 높이를 평가해 준 사람이 자기 동생이다... 그러니까 그 두 글을 보면 정약전은 학문 수준이 다산보다 더 높다면서. (형이) '이것은 참 잘못됐다. 이건 고쳐라. ' 하면 다산이 나중에 다 고쳤어요."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이 똑똑한 형제가 각각 20살, 16살이던 어느 눈 오는 날, 잠을 못 이루고 밤새 토론을 했는데,

그 주제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요순시대'를 맞을 수 있을까. 우리 둘이 힘을 합해 깨끗하고 정직하고 만민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요순시대'를 한번 만듭시다."였다고 하니, 뭐랄까 그냥 책만 많이 읽은 양반들이 아니라 아주 멋진 천재들이었죠.

■ 부지런한 노력파 정약용 vs "술 좋아하고 게을렀던" 정약전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요즘 말로 표현하면, 둘도 없는 '베프'이자 철학적 합의를 본 '동지'였는데 왜 한 명은 5백여 권의 저서를 남기고, 다른 한 명은 서너 권 정도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까요?

박석무 이사장은 이 둘의 성품의 차이로 설명합니다.

"다산은 천재이고도 세상에 둘도 없는 부지런한 사람이야. 18년 동안 귀양 살면서 어느 하루 늦잠 자보거나 초저녁에 일찍 잠자는 수가 없어. 기록에 나와요. 밤 늦도록 책 보고 눈 뜨자마자 일어나서 책 보고 글 쓰고, 일생을 그렇게 부지런을 피워서 500여 권의 실학 관계 저서를 남겼어요."

"그런데 (다산의 기록을 보면) 우리 형님(정약전)은 다 좋은데 게을러서, 이렇게 나와. 게을러서 저술을 많이 안 남겼다. 게을러서 그르쳤다. 또 그리고 우리 형은 술을 좋아했다."


"우리 형은 술 좋아하고 게을렀다"고 쓰다니, 그렇게 사이좋은 형제라면서 정약용이 자신의 형에 대해 흉을 본 걸까요?

박석무 이사장의 설명을 더 들어보면 그게 아니라, 정약용은 형이 지닌 재능을 진심으로 아까워하며 애정 어린 걱정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언뜻 보면 '디스'인 것 같지만 들어보면 자기 형 '자랑' 인 셈이죠.

"(정약전이 동생 정약용에게 말하기를) 너는 모 상서, 모 판서, 모 참판 만나고 다니면서 출세하려고 지금 떠들고 돌아다니는데, 나는 술꾼 친구들 몇 하고 놀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한번 보자. 정말 세상이 뒤집혀질 때 누가 너를 진짜로 위해 줄 사람들인지."

동생 정약용이 이름난 관료들과 어울려 다닐 때 형 정약전은 그냥 술꾼들이랑 어울려 다녔는데 막상 세상이 뒤집혀 두 사람이 어려움을 겪게 되니, 정약용이 어울리던 고관대작들은 정약용을 모함했는데, 형 정약전이 어울리던 술꾼들은 진심 어린 위로를 전했습니다.

정약용은 이 일화를 기록하며 "우리 형님은 인품이 나보다 훨씬 좋다." 라고 했다죠.

영화 ‘자산어보’ 中영화 ‘자산어보’ 中

■ '목민심서'의 길 vs '자산어보'의 길

이렇게 두 형제의 다른 성품은 책으로도 이어집니다.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1801년 정약용은 전남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는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5백여 권을 집필했고, 정약전은 바다 생물에 대한 책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썼습니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창대'란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해양생물 155종의 이름, 분포, 형태, 습성 등을 꼼꼼하게 조사해 기록한 책인데, '물고기 박사' 황선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은 이 책을 "조선 최고의 해양 종합 과학 서적"이라고 평했습니다.

황선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황선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석수어라는 이름이 올라옵니다. 이걸 지금 제가 쭉 읽어보고서 이게 현대의 어떤 어종인가라고 보니까 조기류예요.

근데 석수어가 어떤 의미인가라고 봤더니 '머리에 돌이 있다'라는 뜻이에요. 제가 이제 그 이석을 가지고 공부하는 생태학자인데, 그 입장에서 보면 이미 그 당시에 얼마나 관찰을 많이 했으면 물고기의 머리에 이석이 있다라는 것을 발견해서 그 이름을 석수어라고 붙였을까, 매우 흥미로운 일이죠."

-황선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


지금에서야 과학자들이 이 책의 진짜 가치를 알아보고 귀하게 여기지만, 당시엔 '사학죄인' 출신 양반이 비린내 나는 물고기를 만지고 해부하고 공부한다는 건 손가락질 받을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일을 전혀 불편 없이 했던 사람이 바로 정약전이었습니다.

"(정약전은) 과거에 고관이었고 귀족 집안 태생이고 딱 버려버리고 정말로 무지렁이들과 어울려서 술 먹고 노래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한 세월을 보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내려놓고 무지렁이가 되어버린 거야. 그러니까 그런 비린내 나고 천민들이 하는 일도 하나도 불편없이 할 수가 있었던 거죠."

동생 정약용만큼 대학자였지만, 자신의 신분을 내려놓고 흑산도 주민들과 진짜 친구가 되고, 아예 흑산도 동네 사람이 돼버린 정약전은 어부들에게 실익이 되는 책 '자산어보'를 남기고, 1816년 59세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던 동생 정약용과도 귀양길에서 헤어진 뒤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죠.


그가 남긴 책 '자산어보'는 우리나라 해양 생물 연구의 뿌리가 돼 과학자들에게도, 문화 예술 작품에도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이렇게 시대를 앞선 두 천재가 귀양 가지 않고, 그 뜻을 제대로 펼 수 있었더라면 우리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영화 '자산어보'의 빼어난 영상미에 감탄하며 재미있게 보고 극장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깊은 고민이 시작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관련 기사: 200년 전 ‘자산어보’, 창작의 원천이 되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5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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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을 ‘디스’한 정약용? 시대를 앞서 간 두 천재 이야기
    • 입력 2021-04-18 08:01:09
    • 수정2021-04-18 15:26:40
    취재K
영화 ‘자산어보’ 中
조선시대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 최고의 사상가 다산( 茶山) 정약용을 '천재'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 정약용이 "나 못지 않은 대학자"라고 인정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둘째 형 손암(巽庵) 정약전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용보다 대중들에게 덜 알려진, 비운의 천재 정약전의 생애를 담은 작품이죠.

대한민국 사람 누구나 다 아는, 내로라하는 천재 정약용이 인정한 정약전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고, 그가 1814년에 쓴 책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어떤 의미와 성과를 지닌 저서일까요?

'다산학의 일인자'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과 30년간 바닷물고기를 연구해온 '물고기 박사' 황선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을 직접 만나 물어봤습니다.

■ 정약용 "나 못지 않은 대학자, 세상에 둘도 없는 지기(知己) 정약전"

정약용은 자신의 둘째 형 정약전에 대해 "동포 형제이고, 지기(知己)이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이면서 세상에 둘도 없는 내 지기(知己)가 우리 정약전 손암 선생이다."라고 표현했다고 하죠.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정약용이 형 정약전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형 정약전은) 우선 지식이 너무 높고 너무 많은 책을 봐 갖고 가슴 속, 마음 속에 온갖 지식이 다 들어있다. 특히 일반 사람이 모르는 수학의 천재야. 기하학 이런 것. 기하학 천재. 이미 그 때 서양에서 들어온 기하학 이런 것을 습득을 했어. 그러면 누구를 통해서 배웠다가 다 나와요."

"(정약용은) 이 두 책의 서문을 자기 중형에게 썼어요. 그러니까 당대에 내 책을 평가하고 서문을 쓸 사람은 우리 형님(정약전)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야. 정약전에 대한 학문의 높이를 평가해 준 사람이 자기 동생이다... 그러니까 그 두 글을 보면 정약전은 학문 수준이 다산보다 더 높다면서. (형이) '이것은 참 잘못됐다. 이건 고쳐라. ' 하면 다산이 나중에 다 고쳤어요."

-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이 똑똑한 형제가 각각 20살, 16살이던 어느 눈 오는 날, 잠을 못 이루고 밤새 토론을 했는데,

그 주제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요순시대'를 맞을 수 있을까. 우리 둘이 힘을 합해 깨끗하고 정직하고 만민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요순시대'를 한번 만듭시다."였다고 하니, 뭐랄까 그냥 책만 많이 읽은 양반들이 아니라 아주 멋진 천재들이었죠.

■ 부지런한 노력파 정약용 vs "술 좋아하고 게을렀던" 정약전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요즘 말로 표현하면, 둘도 없는 '베프'이자 철학적 합의를 본 '동지'였는데 왜 한 명은 5백여 권의 저서를 남기고, 다른 한 명은 서너 권 정도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까요?

박석무 이사장은 이 둘의 성품의 차이로 설명합니다.

"다산은 천재이고도 세상에 둘도 없는 부지런한 사람이야. 18년 동안 귀양 살면서 어느 하루 늦잠 자보거나 초저녁에 일찍 잠자는 수가 없어. 기록에 나와요. 밤 늦도록 책 보고 눈 뜨자마자 일어나서 책 보고 글 쓰고, 일생을 그렇게 부지런을 피워서 500여 권의 실학 관계 저서를 남겼어요."

"그런데 (다산의 기록을 보면) 우리 형님(정약전)은 다 좋은데 게을러서, 이렇게 나와. 게을러서 저술을 많이 안 남겼다. 게을러서 그르쳤다. 또 그리고 우리 형은 술을 좋아했다."


"우리 형은 술 좋아하고 게을렀다"고 쓰다니, 그렇게 사이좋은 형제라면서 정약용이 자신의 형에 대해 흉을 본 걸까요?

박석무 이사장의 설명을 더 들어보면 그게 아니라, 정약용은 형이 지닌 재능을 진심으로 아까워하며 애정 어린 걱정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언뜻 보면 '디스'인 것 같지만 들어보면 자기 형 '자랑' 인 셈이죠.

"(정약전이 동생 정약용에게 말하기를) 너는 모 상서, 모 판서, 모 참판 만나고 다니면서 출세하려고 지금 떠들고 돌아다니는데, 나는 술꾼 친구들 몇 하고 놀고 있다. 그러나 나중에 한번 보자. 정말 세상이 뒤집혀질 때 누가 너를 진짜로 위해 줄 사람들인지."

동생 정약용이 이름난 관료들과 어울려 다닐 때 형 정약전은 그냥 술꾼들이랑 어울려 다녔는데 막상 세상이 뒤집혀 두 사람이 어려움을 겪게 되니, 정약용이 어울리던 고관대작들은 정약용을 모함했는데, 형 정약전이 어울리던 술꾼들은 진심 어린 위로를 전했습니다.

정약용은 이 일화를 기록하며 "우리 형님은 인품이 나보다 훨씬 좋다." 라고 했다죠.

영화 ‘자산어보’ 中
■ '목민심서'의 길 vs '자산어보'의 길

이렇게 두 형제의 다른 성품은 책으로도 이어집니다.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1801년 정약용은 전남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는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목민심서(牧民心書) 등 5백여 권을 집필했고, 정약전은 바다 생물에 대한 책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썼습니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창대'란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해양생물 155종의 이름, 분포, 형태, 습성 등을 꼼꼼하게 조사해 기록한 책인데, '물고기 박사' 황선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은 이 책을 "조선 최고의 해양 종합 과학 서적"이라고 평했습니다.

황선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석수어라는 이름이 올라옵니다. 이걸 지금 제가 쭉 읽어보고서 이게 현대의 어떤 어종인가라고 보니까 조기류예요.

근데 석수어가 어떤 의미인가라고 봤더니 '머리에 돌이 있다'라는 뜻이에요. 제가 이제 그 이석을 가지고 공부하는 생태학자인데, 그 입장에서 보면 이미 그 당시에 얼마나 관찰을 많이 했으면 물고기의 머리에 이석이 있다라는 것을 발견해서 그 이름을 석수어라고 붙였을까, 매우 흥미로운 일이죠."

-황선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


지금에서야 과학자들이 이 책의 진짜 가치를 알아보고 귀하게 여기지만, 당시엔 '사학죄인' 출신 양반이 비린내 나는 물고기를 만지고 해부하고 공부한다는 건 손가락질 받을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일을 전혀 불편 없이 했던 사람이 바로 정약전이었습니다.

"(정약전은) 과거에 고관이었고 귀족 집안 태생이고 딱 버려버리고 정말로 무지렁이들과 어울려서 술 먹고 노래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한 세월을 보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내려놓고 무지렁이가 되어버린 거야. 그러니까 그런 비린내 나고 천민들이 하는 일도 하나도 불편없이 할 수가 있었던 거죠."

동생 정약용만큼 대학자였지만, 자신의 신분을 내려놓고 흑산도 주민들과 진짜 친구가 되고, 아예 흑산도 동네 사람이 돼버린 정약전은 어부들에게 실익이 되는 책 '자산어보'를 남기고, 1816년 59세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던 동생 정약용과도 귀양길에서 헤어진 뒤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죠.


그가 남긴 책 '자산어보'는 우리나라 해양 생물 연구의 뿌리가 돼 과학자들에게도, 문화 예술 작품에도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이렇게 시대를 앞선 두 천재가 귀양 가지 않고, 그 뜻을 제대로 펼 수 있었더라면 우리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영화 '자산어보'의 빼어난 영상미에 감탄하며 재미있게 보고 극장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깊은 고민이 시작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관련 기사: 200년 전 ‘자산어보’, 창작의 원천이 되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5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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