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2개 넓이의 ‘양파껍질’ 쓰레기밭…대체 왜?

입력 2021.04.19 (15:16) 수정 2021.04.1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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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경기도 여주시 흥천면에 폐기물을 버리는 모습이 포착됐다.지난 13일, 경기도 여주시 흥천면에 폐기물을 버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흥천면에 트럭 한 대가 도착했습니다. 남성 두 명이 트럭에서 상자를 내리더니, 안에 든 내용물을 땅에 그대로 부었습니다. 이 남성들은 35분 동안 상자 50개 가까이 뒤집어, 안에 담겨 있던 무언가를 버렸습니다.

상자 안에는 어떤 게 들어 있던 걸까요. 확인해 보니, 대파 껍질이었습니다.

땅에 버려진 대파 껍질땅에 버려진 대파 껍질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축구장 2개 크기의 이 땅 대부분은 양파 껍질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곳곳에서는 양파껍질이 쌓인 채 썩어가고 있었고 썩은 물(침출수)이 악취를 풍기며 고여 있기도 했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오랫동안 상습적으로 이뤄져 온 쓰레기 투기인 겁니다.

악취를 풍기며 고여 있는 식물성 쓰레기 썩은 물(침출수)악취를 풍기며 고여 있는 식물성 쓰레기 썩은 물(침출수)

■소각·가공돼야 할 식물성 쓰레기…그대로 땅에 버려

이 땅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은 이 모 씨입니다. 2017년부터 이 땅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취재팀과 만난 관리인 이 씨는 2019년부터 식자재 업체에서 나온 양파나 대파 껍질을 가져와 이곳에 버린다고 실토했습니다.

취재팀과 만난 땅 관리인 이 모 씨취재팀과 만난 땅 관리인 이 모 씨

이 씨는 업체 3곳에서 돈을 받고 직접 폐기물 운반 트럭을 운전해 양파껍질 등 쓰레기를 가져오거나, 그들이 직접 가져와 이곳에 버리도록 했습니다.

현행법상 업체에서 발생한 양파껍질 등 식물성 잔재물은 사업장 폐기물로 분류돼 지정된 처리 시설에서 소각되거나 가공 과정을 거친 뒤 퇴비 등으로 재활용해야 합니다. 또 업체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허가받은 운반 업체로 전달하고, 또 지정된 곳에서 처리하는 모든 과정은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폐기물 관리 시스템 '올바로 시스템'에 입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씨는 이 같은 절차를 무시한 채 식물성 쓰레기를 불법 투기해 왔습니다. 처음이 아닙니다. 이 씨는 지난 2015년에도 같은 일로 폐기물 운반 면허를 취소당한 적이 있었지만, 폐기물 투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뭉쳐 썩어가고 있는 양파껍질 등 식물성 쓰레기뭉쳐 썩어가고 있는 양파껍질 등 식물성 쓰레기

■"밭농사 퇴비로 쓰려고 가져온 것" 해명했지만...

이 씨는 식물성 쓰레기들이 썩어도 문제가 없고, 심지어 퇴비로 사용하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은 다릅니다.

정명희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은 "양파껍질 등을 농사에 활용하려 한다면 이 씨처럼 버려두는 게 아니라 발효 통과 같은 장비에서 발효시킨 뒤 거름으로 쓰는 게 맞다"라며 "양파가 썩으면서 악취가 발생할 뿐 아니라 그 썩은 물이 지하수와 섞이는 등 침출수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식물성 잔재물을 가져다 그대로 농사에 쓰기 위해서는 지자체에 신고해야 합니다. 땅을 오염시키지 않는 수준으로 적절한 양의 식물성 잔재물이 활용되는지 등을 관리·감독하기 위한 것인데, A 씨는 지자체 신고 없이 불법 투기를 강행했습니다.

그럼 이 씨는 왜 이런 일을 했던 걸까요. 결국, 돈 문제입니다.

이 씨는 식자재 업체 세 곳의 폐기물을 옮기면서 기름값 정도의 경비만 받고 있어 월 백만 원 정도 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밭농사는 핑계일 뿐이고, 이 씨가 불법으로 폐기물을 갖다 버리면서 적지 않은 수입을 거뒀을 거로 추정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이 씨의 투기 장소 인근에서 발견된 5톤 트럭으로 폐기물을 옮길 때마다 통상 130만 원 정도를 받아 처리 시설에 90만 ~ 10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라며 "이 씨는 처리 시설에 처리비를 주지 않고 그대로 다 가져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통상 열흘에 한 번씩 5톤 트럭 분량의 식물성 쓰레기가 발생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폐기물 불법 투기 현장폐기물 불법 투기 현장

■ 여주시 원상복구 명령도 무시…경찰에 수사 의뢰

지난달 29일 이 씨의 폐기물 불법 투기 현장을 적발한 여주시청은 양파껍질 등을 모두 꺼내는 등 토지를 원상 복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이 같은 지자체의 행정명령을 무시하고, 여전히 폐기물을 갖다 버리고 있습니다.

여주시청은 이 씨를 폐기물 불법 투기 혐의로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에 수사 의뢰했습니다. 이와 함께 하남시청, 송파구청 등은 정해진 절차에 따르지 않고 쓰레기를 이 씨에게 넘긴 식자재 업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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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장 2개 넓이의 ‘양파껍질’ 쓰레기밭…대체 왜?
    • 입력 2021-04-19 15:16:41
    • 수정2021-04-19 22:32:35
    취재K
지난 13일, 경기도 여주시 흥천면에 폐기물을 버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흥천면에 트럭 한 대가 도착했습니다. 남성 두 명이 트럭에서 상자를 내리더니, 안에 든 내용물을 땅에 그대로 부었습니다. 이 남성들은 35분 동안 상자 50개 가까이 뒤집어, 안에 담겨 있던 무언가를 버렸습니다.

상자 안에는 어떤 게 들어 있던 걸까요. 확인해 보니, 대파 껍질이었습니다.

땅에 버려진 대파 껍질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축구장 2개 크기의 이 땅 대부분은 양파 껍질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곳곳에서는 양파껍질이 쌓인 채 썩어가고 있었고 썩은 물(침출수)이 악취를 풍기며 고여 있기도 했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오랫동안 상습적으로 이뤄져 온 쓰레기 투기인 겁니다.

악취를 풍기며 고여 있는 식물성 쓰레기 썩은 물(침출수)
■소각·가공돼야 할 식물성 쓰레기…그대로 땅에 버려

이 땅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은 이 모 씨입니다. 2017년부터 이 땅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취재팀과 만난 관리인 이 씨는 2019년부터 식자재 업체에서 나온 양파나 대파 껍질을 가져와 이곳에 버린다고 실토했습니다.

취재팀과 만난 땅 관리인 이 모 씨
이 씨는 업체 3곳에서 돈을 받고 직접 폐기물 운반 트럭을 운전해 양파껍질 등 쓰레기를 가져오거나, 그들이 직접 가져와 이곳에 버리도록 했습니다.

현행법상 업체에서 발생한 양파껍질 등 식물성 잔재물은 사업장 폐기물로 분류돼 지정된 처리 시설에서 소각되거나 가공 과정을 거친 뒤 퇴비 등으로 재활용해야 합니다. 또 업체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허가받은 운반 업체로 전달하고, 또 지정된 곳에서 처리하는 모든 과정은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폐기물 관리 시스템 '올바로 시스템'에 입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씨는 이 같은 절차를 무시한 채 식물성 쓰레기를 불법 투기해 왔습니다. 처음이 아닙니다. 이 씨는 지난 2015년에도 같은 일로 폐기물 운반 면허를 취소당한 적이 있었지만, 폐기물 투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뭉쳐 썩어가고 있는 양파껍질 등 식물성 쓰레기
■"밭농사 퇴비로 쓰려고 가져온 것" 해명했지만...

이 씨는 식물성 쓰레기들이 썩어도 문제가 없고, 심지어 퇴비로 사용하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말은 다릅니다.

정명희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은 "양파껍질 등을 농사에 활용하려 한다면 이 씨처럼 버려두는 게 아니라 발효 통과 같은 장비에서 발효시킨 뒤 거름으로 쓰는 게 맞다"라며 "양파가 썩으면서 악취가 발생할 뿐 아니라 그 썩은 물이 지하수와 섞이는 등 침출수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식물성 잔재물을 가져다 그대로 농사에 쓰기 위해서는 지자체에 신고해야 합니다. 땅을 오염시키지 않는 수준으로 적절한 양의 식물성 잔재물이 활용되는지 등을 관리·감독하기 위한 것인데, A 씨는 지자체 신고 없이 불법 투기를 강행했습니다.

그럼 이 씨는 왜 이런 일을 했던 걸까요. 결국, 돈 문제입니다.

이 씨는 식자재 업체 세 곳의 폐기물을 옮기면서 기름값 정도의 경비만 받고 있어 월 백만 원 정도 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밭농사는 핑계일 뿐이고, 이 씨가 불법으로 폐기물을 갖다 버리면서 적지 않은 수입을 거뒀을 거로 추정했습니다.

한 관계자는 "이 씨의 투기 장소 인근에서 발견된 5톤 트럭으로 폐기물을 옮길 때마다 통상 130만 원 정도를 받아 처리 시설에 90만 ~ 10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라며 "이 씨는 처리 시설에 처리비를 주지 않고 그대로 다 가져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통상 열흘에 한 번씩 5톤 트럭 분량의 식물성 쓰레기가 발생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폐기물 불법 투기 현장
■ 여주시 원상복구 명령도 무시…경찰에 수사 의뢰

지난달 29일 이 씨의 폐기물 불법 투기 현장을 적발한 여주시청은 양파껍질 등을 모두 꺼내는 등 토지를 원상 복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이 같은 지자체의 행정명령을 무시하고, 여전히 폐기물을 갖다 버리고 있습니다.

여주시청은 이 씨를 폐기물 불법 투기 혐의로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에 수사 의뢰했습니다. 이와 함께 하남시청, 송파구청 등은 정해진 절차에 따르지 않고 쓰레기를 이 씨에게 넘긴 식자재 업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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