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는 말하고 공동성명엔 제외…CVID가 뭐길래?

입력 2021.04.21 (08: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 미일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는 한때 많이 사용됐던 단어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바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언급한 'CVID'인데, 이런 공식 석상에는 꽤 오랜만에 등장한 용어라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미일공동성명에는 이 단어가 빠져 여러 해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 日스가 총리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CVID에 합의"

스가 총리는 16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열린 미일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에 대해 CVID를 이루자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지시간 16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일본 총리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출처: 교도=연합뉴스현지시간 16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일본 총리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출처: 교도=연합뉴스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라는 뜻의 이 용어는 2002년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이후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정의해 제시한 비핵화 원칙입니다.

그런데 스가 총리의 언급과 달리 정작 이번 미일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CVID라는 표현은 없었습니다. 대신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위험성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할 것이다" 라는 문구가 있으니, 내용적으로는 스가 총리의 발언과 대동소이하다 볼 수 있지만, 'CVID'라는 표현 만큼은 등장하지 않은 겁니다.

■ 미일공동성명엔 없는 'CVID'... "北 질색하는 단어"

CVID라는 용어는 2003년 8월 1차 6자회담 당시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북한에 '선 핵폐기'를 요구하며, CVID 원칙에 따라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이후 경제적 지원과 북미관계 개선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요.

하지만 북한은 이런 '선 핵폐기, 후 보상'의 방식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반발합니다. 특히 CVID라는 용어 자체에도 강한 거부감을 보였는데, 협상 상대가 아닌 '패전국에나 쓸 수 있는 표현'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거죠.

이러한 북한의 반발이 북핵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미국은 이후 다소 유연하고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2004년 6월 제3차 6자회담에서는 CVID 대신 '포괄적 비핵화(comprehensive denuclearization)'라고도 했고, 2005년 제4차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에는 CVID 원칙을 다소 완화한 느낌의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verifiabl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나 2009년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미국은 다시 CVID 원칙을 표명하고, 이후 트럼프 행정부 초반까지도 북한에 대한 미국의 비핵화 원칙은 사실상 줄곧 CVID 였습니다.

■ 'CVID'와 'FFVD', 그리고 'CD(완전한 비핵화)'

미국의 용어 사용에 뚜렷한 변화가 생긴 건 2018년 6월 북미정상회담 즈음이었습니다. 그해 4월 미일정상회담 때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비핵화를 달성할 경우, 북한에 밝은 길이 있을 것"이라며 사실상 CVID 원칙을 다시 천명했습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 언론과 전문가 등은 이 무렵 기존의 'dismantlement' 대신 'denuclearization'이라는 단어로 대체하거나 혼용해 쓰기도 했는데, 물질적·물리적인 '핵시설 폐기'를 의미하는 'dismantlement'보다는 좀더 포괄적이고 정치적 개념인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용어를 선호한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하지만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북미공동성명에는 CVID 대신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라는 용어가 쓰였습니다. 당시 북미정상회담 전날까지도 미국은 북한에 CVID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작 공동성명에는 다소 완화된 표현으로 합의해 준 겁니다. 협상을 진행중인 상황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조지 부시 행정부가 만든 용어를, 그것도 북한이 극도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협상 상대를 어느정도 배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 강경파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공동성명을 도출하기 위해 지나치게 양보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러자 이후 등장한 개념이 바로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즉 '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입니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후속 논의를 위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세번째로 평양을 방문하기 직전인 2018년 7월 미 국무부가 제시한 개념으로, 이후 사실상 CVID를 대체한 미국의 비핵화 원칙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의미상으로는 CVID와 사실상 같지만 용어는 바꾼 겁니다.

19일(현지시간) 미 국무부가 공개한 '2021 군비통제·비확산·군축 이행보고서'에도 "북한과 건설적인 협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북한의 FFVD가 이뤄질 때까지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명시된 데서 보듯, 미국의 공식적인 비핵화 원칙은 FFVD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 日 CVID 언급 왜... "국내정치적 목적 컸을 것"

그렇다면, 미일정상회담에서 스가 총리가 다시 굳이 CVID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든 이유, 그리고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사실 미국과 일본 사이 이처럼 용어를 두고 간극이 드러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애초 FFVD 개념이 등장했던 2018년 7월,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평양 방문 직후 도쿄를 방문해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을 했는데요. 당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번 회담에서 CVID를 재확인했다"고 했고, 폼페이오 장관은 "FFVD가 이루어질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7월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모습. 사진출처: 연합뉴스2018년 7월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모습. 사진출처: 연합뉴스

당시에도 미국이 FFVD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걸 모를 리 없는 고노 외무상이 굳이 CVID를 강조한 것을 두고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원칙에서 미국이 후퇴하는 듯한 태도에 대한 불만 표시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었는데요.

이번에도 스가 총리는 CVID라는 원칙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동기자회견 자리에서 천명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반면, 미일 공동성명에는 넣지 않음으로써 바이든 정부가 협상을 염두에 두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일본으로서는 북한이 최근 대일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데다 도쿄올림픽 불참까지 선언한 마당에 "할말을 하자"는 입장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공동기자회견이긴 하지만 일본으로서는 자신들의 입장, 요구는 분명히 드러내고자 한 것"이라며 "특히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천명해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국내정치적 목적도 컸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 "일본 앞세워 北 압박?"... 미국의 의도는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고만 언급하고 공동성명에도 CVID를 넣지 않은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바이든 정부가 기존의 비핵화 원칙을 유지하는 느낌도 있고 인권 등을 거론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핵무기의 무조건 완전 제거를 요구하는 듯한 단어가 상대(북한)를 협상에 나오게 하는 용어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CVID는 미국이 리비아에 적용했던 방식이자, 북한이 끔찍히 싫어하는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상징 같은 용어"라며 "앞으로 북한과의 협상, 외교적 접근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일각에선 미국이 은근히 일본의 CVID 언급을 방조했다, 일본을 앞세워 CVID를 다시 꺼내들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한 외교소식통은 "사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협상하려는 입장에서, 적어도 공동성명에 넣는 것만은 미국이 절대 안된다고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민주당이 2019년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며 CVID를 언급했지만, 대선 과정과 당선 이후에는 그 말을 쓴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북한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북한도 누구보다 이런 맥락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의미상으로는 CVID든, FFVD든, 그리고 '완전한 비핵화'든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굳이 어떤 용어를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말입니다. 물론 북한은 '미국의 근본적 태도 변화'가 없는 한 협상은 없다고 선을 그은 상황이긴 합니다. 하지만 협상도 하기 전에 '근본적 태도 변화'를 한쪽이 일방적으로 밝힐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내세우며 미국의 대북정책을 주시하고 있는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해 보겠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스가는 말하고 공동성명엔 제외…CVID가 뭐길래?
    • 입력 2021-04-21 08:00:49
    취재K
지난 주말 미일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는 한때 많이 사용됐던 단어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바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언급한 'CVID'인데, 이런 공식 석상에는 꽤 오랜만에 등장한 용어라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미일공동성명에는 이 단어가 빠져 여러 해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 日스가 총리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CVID에 합의"

스가 총리는 16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열린 미일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에 대해 CVID를 이루자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지시간 16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스가 일본 총리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출처: 교도=연합뉴스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라는 뜻의 이 용어는 2002년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이후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정의해 제시한 비핵화 원칙입니다.

그런데 스가 총리의 언급과 달리 정작 이번 미일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CVID라는 표현은 없었습니다. 대신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위험성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할 것이다" 라는 문구가 있으니, 내용적으로는 스가 총리의 발언과 대동소이하다 볼 수 있지만, 'CVID'라는 표현 만큼은 등장하지 않은 겁니다.

■ 미일공동성명엔 없는 'CVID'... "北 질색하는 단어"

CVID라는 용어는 2003년 8월 1차 6자회담 당시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북한에 '선 핵폐기'를 요구하며, CVID 원칙에 따라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이후 경제적 지원과 북미관계 개선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요.

하지만 북한은 이런 '선 핵폐기, 후 보상'의 방식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반발합니다. 특히 CVID라는 용어 자체에도 강한 거부감을 보였는데, 협상 상대가 아닌 '패전국에나 쓸 수 있는 표현'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거죠.

이러한 북한의 반발이 북핵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 미국은 이후 다소 유연하고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2004년 6월 제3차 6자회담에서는 CVID 대신 '포괄적 비핵화(comprehensive denuclearization)'라고도 했고, 2005년 제4차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에는 CVID 원칙을 다소 완화한 느낌의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verifiabl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나 2009년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미국은 다시 CVID 원칙을 표명하고, 이후 트럼프 행정부 초반까지도 북한에 대한 미국의 비핵화 원칙은 사실상 줄곧 CVID 였습니다.

■ 'CVID'와 'FFVD', 그리고 'CD(완전한 비핵화)'

미국의 용어 사용에 뚜렷한 변화가 생긴 건 2018년 6월 북미정상회담 즈음이었습니다. 그해 4월 미일정상회담 때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비핵화를 달성할 경우, 북한에 밝은 길이 있을 것"이라며 사실상 CVID 원칙을 다시 천명했습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미 언론과 전문가 등은 이 무렵 기존의 'dismantlement' 대신 'denuclearization'이라는 단어로 대체하거나 혼용해 쓰기도 했는데, 물질적·물리적인 '핵시설 폐기'를 의미하는 'dismantlement'보다는 좀더 포괄적이고 정치적 개념인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용어를 선호한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하지만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북미공동성명에는 CVID 대신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라는 용어가 쓰였습니다. 당시 북미정상회담 전날까지도 미국은 북한에 CVID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작 공동성명에는 다소 완화된 표현으로 합의해 준 겁니다. 협상을 진행중인 상황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조지 부시 행정부가 만든 용어를, 그것도 북한이 극도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협상 상대를 어느정도 배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 강경파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공동성명을 도출하기 위해 지나치게 양보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러자 이후 등장한 개념이 바로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즉 '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입니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후속 논의를 위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세번째로 평양을 방문하기 직전인 2018년 7월 미 국무부가 제시한 개념으로, 이후 사실상 CVID를 대체한 미국의 비핵화 원칙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의미상으로는 CVID와 사실상 같지만 용어는 바꾼 겁니다.

19일(현지시간) 미 국무부가 공개한 '2021 군비통제·비확산·군축 이행보고서'에도 "북한과 건설적인 협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북한의 FFVD가 이뤄질 때까지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명시된 데서 보듯, 미국의 공식적인 비핵화 원칙은 FFVD라고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 日 CVID 언급 왜... "국내정치적 목적 컸을 것"

그렇다면, 미일정상회담에서 스가 총리가 다시 굳이 CVID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든 이유, 그리고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사실 미국과 일본 사이 이처럼 용어를 두고 간극이 드러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애초 FFVD 개념이 등장했던 2018년 7월,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평양 방문 직후 도쿄를 방문해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을 했는데요. 당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이번 회담에서 CVID를 재확인했다"고 했고, 폼페이오 장관은 "FFVD가 이루어질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8년 7월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모습. 사진출처: 연합뉴스
당시에도 미국이 FFVD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걸 모를 리 없는 고노 외무상이 굳이 CVID를 강조한 것을 두고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라는 원칙에서 미국이 후퇴하는 듯한 태도에 대한 불만 표시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었는데요.

이번에도 스가 총리는 CVID라는 원칙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동기자회견 자리에서 천명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반면, 미일 공동성명에는 넣지 않음으로써 바이든 정부가 협상을 염두에 두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일본으로서는 북한이 최근 대일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데다 도쿄올림픽 불참까지 선언한 마당에 "할말을 하자"는 입장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공동기자회견이긴 하지만 일본으로서는 자신들의 입장, 요구는 분명히 드러내고자 한 것"이라며 "특히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천명해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국내정치적 목적도 컸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 "일본 앞세워 北 압박?"... 미국의 의도는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고만 언급하고 공동성명에도 CVID를 넣지 않은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바이든 정부가 기존의 비핵화 원칙을 유지하는 느낌도 있고 인권 등을 거론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핵무기의 무조건 완전 제거를 요구하는 듯한 단어가 상대(북한)를 협상에 나오게 하는 용어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CVID는 미국이 리비아에 적용했던 방식이자, 북한이 끔찍히 싫어하는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상징 같은 용어"라며 "앞으로 북한과의 협상, 외교적 접근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일각에선 미국이 은근히 일본의 CVID 언급을 방조했다, 일본을 앞세워 CVID를 다시 꺼내들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한 외교소식통은 "사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협상하려는 입장에서, 적어도 공동성명에 넣는 것만은 미국이 절대 안된다고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민주당이 2019년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며 CVID를 언급했지만, 대선 과정과 당선 이후에는 그 말을 쓴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북한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북한도 누구보다 이런 맥락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의미상으로는 CVID든, FFVD든, 그리고 '완전한 비핵화'든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굳이 어떤 용어를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말입니다. 물론 북한은 '미국의 근본적 태도 변화'가 없는 한 협상은 없다고 선을 그은 상황이긴 합니다. 하지만 협상도 하기 전에 '근본적 태도 변화'를 한쪽이 일방적으로 밝힐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내세우며 미국의 대북정책을 주시하고 있는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해 보겠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