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 장애인 이재윤 화가, 그의 그림이 즐거운 이유

입력 2021.04.21 (09:00) 수정 2021.04.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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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세상, 20개의 나라(이재윤 작품)즐거운 세상, 20개의 나라(이재윤 작품)

■ 38살 발달장애인 화가..그가 그린 세상은?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먼저 파스텔톤을 배경으로 선명한 색상들이 눈에 들어왔고, 천천히 살펴보니 더 디테일한 부분들에 놀라며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어릴 적 저도 참 좋아하던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빨간 장화신은 고양이와 그 옆에 왕관을 쓴 벌거벗은 임금님, 라이언 킹도 있구요. 또 호두까기 인형, 알라딘의 램프까지..마치 숨은그림 찾기 하듯 즐길 수 있는 그림입니다. 무려 20편의 동화나 뮤지컬 작품이 담겼다는 이 그림, 언뜻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기도 하죠?

천진함이 가득 배어있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38살 화가 이재윤 씨입니다. 재윤 씨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발달장애인이기도 합니다.

그림 그리고 있는 이재윤 씨.그림 그리고 있는 이재윤 씨.

전시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에서 만난 이재윤 씨. 사실 늘 재윤 씨와 함께 있는 어머니를 통하지 않고는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쉽지는 않았었습니다.

재윤 씨가 하는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으시는 어머니, 정말 존경스러웠는데요.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재윤 씨가 어떻게 화가가 될 수 있었나 하는 궁금증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금세 풀렸습니다.

■ 그림으로 표현된 경험들

재윤 씨의 어머니는 큐레이터처럼 그림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면서 그와 얽힌 에피소드나 추억도 함께 들려주셨는데요. 그림마다 재윤 씨가 즐겨보거나 들은 동화와 영화, 드라마, 뮤지컬, 성경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사람한테는 IQ 뿐만 아니라, EQ라는 게 있어요. 우리 재윤이 같이 발달 장애를 앓는 아이들일수록 문화를 접해보면 또 다른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재윤 씨가 화가로 활동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이런 남다른 관점을 지닌 어머니와 가족들의 뒷받침이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연초만 되면 연간 회원권을 구입해 각종 공연을 즐기고 있고, 연말마다 공연되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는 20번 넘게 관람하기도 했다는데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재윤 씨의 그림의 소재가 되고 배경이 됐습니다. 재윤 씨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길이 된 것이죠.

재윤 씨 스스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특히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들은 성경 이야기나 동화는 더 잘 이해하고, 자신이 이해한 대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아주 즐겁게 하고 있었습니다.

광야에서(이재윤 작품)광야에서(이재윤 작품)

10대 초반 우연히 알게 된 동네 미술학원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20년 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이재윤 씨.

처음엔 선을 긋는 것조차 어려워 했지만, 선에서 원으로, 원에서 구체적인 모양으로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면서 지금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창적인 화법까지 얻게 됐습니다.

특히 제도권 미술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로움과 순수한 표현은 그 어떤 걸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재윤 씨 만의 작품성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장애인이 그린 그림이라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대전기독미술인협회에 가입해 정기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개인전은 물론 기획전에도 초청되는, 인정받는 화가입니다.

수태고지(이재윤 작품)수태고지(이재윤 작품)

작가의 이력을 알게 된 관람객들은 더 자세히, 그리고 신중히 작품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그냥 만났다면 대화하기 조차 힘든 상황이지만, 그림을 통해서는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또 어떤 내용을 전하고 싶은 건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감상할 때도 부담 없이, 그냥 작가의 재치있는 표현을 따라가다 보면 울림은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됩니다.

재윤 씨의 작품을 만난 분들이 한결같이 순수함을 선물받은 것 같다며 미소 짓게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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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달 장애인 이재윤 화가, 그의 그림이 즐거운 이유
    • 입력 2021-04-21 09:00:41
    • 수정2021-04-21 10:30:57
    취재K
즐거운 세상, 20개의 나라(이재윤 작품)
■ 38살 발달장애인 화가..그가 그린 세상은?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먼저 파스텔톤을 배경으로 선명한 색상들이 눈에 들어왔고, 천천히 살펴보니 더 디테일한 부분들에 놀라며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어릴 적 저도 참 좋아하던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빨간 장화신은 고양이와 그 옆에 왕관을 쓴 벌거벗은 임금님, 라이언 킹도 있구요. 또 호두까기 인형, 알라딘의 램프까지..마치 숨은그림 찾기 하듯 즐길 수 있는 그림입니다. 무려 20편의 동화나 뮤지컬 작품이 담겼다는 이 그림, 언뜻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기도 하죠?

천진함이 가득 배어있는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38살 화가 이재윤 씨입니다. 재윤 씨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발달장애인이기도 합니다.

그림 그리고 있는 이재윤 씨.
전시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에서 만난 이재윤 씨. 사실 늘 재윤 씨와 함께 있는 어머니를 통하지 않고는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쉽지는 않았었습니다.

재윤 씨가 하는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으시는 어머니, 정말 존경스러웠는데요.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재윤 씨가 어떻게 화가가 될 수 있었나 하는 궁금증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금세 풀렸습니다.

■ 그림으로 표현된 경험들

재윤 씨의 어머니는 큐레이터처럼 그림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면서 그와 얽힌 에피소드나 추억도 함께 들려주셨는데요. 그림마다 재윤 씨가 즐겨보거나 들은 동화와 영화, 드라마, 뮤지컬, 성경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사람한테는 IQ 뿐만 아니라, EQ라는 게 있어요. 우리 재윤이 같이 발달 장애를 앓는 아이들일수록 문화를 접해보면 또 다른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재윤 씨가 화가로 활동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이런 남다른 관점을 지닌 어머니와 가족들의 뒷받침이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연초만 되면 연간 회원권을 구입해 각종 공연을 즐기고 있고, 연말마다 공연되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는 20번 넘게 관람하기도 했다는데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재윤 씨의 그림의 소재가 되고 배경이 됐습니다. 재윤 씨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길이 된 것이죠.

재윤 씨 스스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특히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들은 성경 이야기나 동화는 더 잘 이해하고, 자신이 이해한 대로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아주 즐겁게 하고 있었습니다.

광야에서(이재윤 작품)
10대 초반 우연히 알게 된 동네 미술학원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20년 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이재윤 씨.

처음엔 선을 긋는 것조차 어려워 했지만, 선에서 원으로, 원에서 구체적인 모양으로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면서 지금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창적인 화법까지 얻게 됐습니다.

특히 제도권 미술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로움과 순수한 표현은 그 어떤 걸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재윤 씨 만의 작품성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장애인이 그린 그림이라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대전기독미술인협회에 가입해 정기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개인전은 물론 기획전에도 초청되는, 인정받는 화가입니다.

수태고지(이재윤 작품)
작가의 이력을 알게 된 관람객들은 더 자세히, 그리고 신중히 작품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그냥 만났다면 대화하기 조차 힘든 상황이지만, 그림을 통해서는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또 어떤 내용을 전하고 싶은 건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감상할 때도 부담 없이, 그냥 작가의 재치있는 표현을 따라가다 보면 울림은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됩니다.

재윤 씨의 작품을 만난 분들이 한결같이 순수함을 선물받은 것 같다며 미소 짓게 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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