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속 ‘내복 차림’으로 아이 방치한 엄마가 처벌 피한 이유

입력 2021.04.2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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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온이 영하 18.6도까지 떨어져 20년 만에 가장 추웠던 지난 1월 8일.

강북구의 한 주택가에서 내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던 4살짜리 아이 한 명이 행인에게 발견됐습니다. 아이는 겁에 질려있었습니다.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상황.

경찰은 아이를 즉시 분리 조치해 친척 집으로 보냈습니다. 아이의 친모는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언론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아이가 방치된 경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주변인 진술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강력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수사 끝에 오늘 이 아이 엄마를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엄마가 아이에게 50여 차례 전화"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건 전말은 이렇습니다.

아이의 친모는 이혼한 뒤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복지관에서 함께 생활하다 복지관에서 마련해준 거처로 나와 같이 지냈습니다.

엄마는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해 일을 해야 했습니다. 복지관에서 카페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보통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갔는데, 이날따라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음식을 준비한 뒤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엄마는 출근했습니다.

출근해서도 친모의 마음은 집에 있었습니다. 9시간가량 집을 비웠는데, 그동안 50차례 넘게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50여 차례 중 37번 정도는 아이가 전화를 받았고, 엄마는 아이가 잘 있는지 계속 확인했습니다.


■ 집에 잘 있던 아이는 왜 밖에서 발견됐을까?

아이는 8시간 넘게 집에 혼자 있었습니다. 아직 어린 이 아이는 그러다 방에 대변을 봤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찾아 나선 건데요.

검찰은 아이가 엄마를 찾아 밖으로 나간 시각이 오후 5시 40분이고, 신고 시각이 오후 5시 46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친모는 오후 5시 58분에 집에 도착해 아이가 없다는 걸 알고 밖으로 찾아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 "아이 위해서 재판 안 넘겨"

사건을 수사한 서울북부지검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아이 친모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죄는 있어 보이지만 여러 상황을 종합할 때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겁니다.

검찰은 이번 결정에 아동보호 전문기관 등의 탄원서도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는데요. 해당 기관은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면 불안해하고, 아이 엄마가 딸을 양육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검찰에 선처를 요청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50여 차례 전화를 시도한 점, 처음 아이를 홀로 내버려뒀다는 점, 신체검사 결과 다른 아동학대 정황도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라며 "아이를 위해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 아동의 국선 변호인, 아동 전문기관 관계자, 구청 직원 등이 참여한 '아동학대 사건관리회의'도 열어 처분 결정에 도움을 보탰다고 덧붙였습니다.


■ 처벌이 능사일까?

앞서 설명했듯이 검찰은 단순한 법리 적용을 통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회의를 여는 등 기소 여부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전문가들 역시, 아동학대 의심 사건은 단순 처벌 강화로만 결론지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강현아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양형 기준을 높이는 등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높은데, 처벌 강화에만 시선이 쏠리면 안 된다."라며 "부모에 대한 치료와 지원이 동시에 뒷받침돼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아동을 무조건 부모와 분리한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다."라며 "아이가 안전하고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최대한 느낄 수 있는 치료도 병행되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부모에 대한 교육 등을 통해 아이가 언젠가는 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 등이 전제돼야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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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파 속 ‘내복 차림’으로 아이 방치한 엄마가 처벌 피한 이유
    • 입력 2021-04-21 16:21:32
    취재K

서울 기온이 영하 18.6도까지 떨어져 20년 만에 가장 추웠던 지난 1월 8일.

강북구의 한 주택가에서 내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던 4살짜리 아이 한 명이 행인에게 발견됐습니다. 아이는 겁에 질려있었습니다.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상황.

경찰은 아이를 즉시 분리 조치해 친척 집으로 보냈습니다. 아이의 친모는 아동학대 혐의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언론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아이가 방치된 경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주변인 진술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강력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수사 끝에 오늘 이 아이 엄마를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엄마가 아이에게 50여 차례 전화"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건 전말은 이렇습니다.

아이의 친모는 이혼한 뒤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복지관에서 함께 생활하다 복지관에서 마련해준 거처로 나와 같이 지냈습니다.

엄마는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해 일을 해야 했습니다. 복지관에서 카페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보통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갔는데, 이날따라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음식을 준비한 뒤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엄마는 출근했습니다.

출근해서도 친모의 마음은 집에 있었습니다. 9시간가량 집을 비웠는데, 그동안 50차례 넘게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50여 차례 중 37번 정도는 아이가 전화를 받았고, 엄마는 아이가 잘 있는지 계속 확인했습니다.


■ 집에 잘 있던 아이는 왜 밖에서 발견됐을까?

아이는 8시간 넘게 집에 혼자 있었습니다. 아직 어린 이 아이는 그러다 방에 대변을 봤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찾아 나선 건데요.

검찰은 아이가 엄마를 찾아 밖으로 나간 시각이 오후 5시 40분이고, 신고 시각이 오후 5시 46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친모는 오후 5시 58분에 집에 도착해 아이가 없다는 걸 알고 밖으로 찾아 나섰다고 밝혔습니다.


■ "아이 위해서 재판 안 넘겨"

사건을 수사한 서울북부지검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아이 친모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죄는 있어 보이지만 여러 상황을 종합할 때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겁니다.

검찰은 이번 결정에 아동보호 전문기관 등의 탄원서도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는데요. 해당 기관은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면 불안해하고, 아이 엄마가 딸을 양육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검찰에 선처를 요청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50여 차례 전화를 시도한 점, 처음 아이를 홀로 내버려뒀다는 점, 신체검사 결과 다른 아동학대 정황도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라며 "아이를 위해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 아동의 국선 변호인, 아동 전문기관 관계자, 구청 직원 등이 참여한 '아동학대 사건관리회의'도 열어 처분 결정에 도움을 보탰다고 덧붙였습니다.


■ 처벌이 능사일까?

앞서 설명했듯이 검찰은 단순한 법리 적용을 통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회의를 여는 등 기소 여부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전문가들 역시, 아동학대 의심 사건은 단순 처벌 강화로만 결론지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강현아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양형 기준을 높이는 등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높은데, 처벌 강화에만 시선이 쏠리면 안 된다."라며 "부모에 대한 치료와 지원이 동시에 뒷받침돼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아동을 무조건 부모와 분리한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다."라며 "아이가 안전하고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최대한 느낄 수 있는 치료도 병행되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부모에 대한 교육 등을 통해 아이가 언젠가는 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 등이 전제돼야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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