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8일, 폭우에 전북 용담댐 방류가 시작된 뒤 물에 잠긴 충북 영동군 양산면.
■ 1초에 최대 '2,900톤' 물 쏟아낸 댐… 하류 지역 농경지·주택 날벼락
기록적인 집중 호우가 이어졌던 지난해 8월 8일 낮 12시.
전북 진안군에 있는 용담댐에서 초당 최대 2,900톤의 물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전인 8월 7일부터 이틀 동안 전북 진안에 최대 400㎜가량의 비가 쏟아져 홍수기 제한 수위를 넘어 댐의 안전을 위해 물을 담을 수 있는 최대 용량, '계획 홍수위' 직전까지 물이 차올랐기 때문입니다.
댐에서 방류한 물은 하류 지역 하천으로 흘러왔고, 근처 농경지와 주택 등의 침수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피해를 본 지역만 충북 영동과 옥천, 충남 금산, 전북 무주 등 4개 군에 달합니다. 자치단체에 신고된 피해는 주택 190여 채, 농경지 700여 ha로 집계됐습니다.
피해를 본 충북 옥천 지역에는 당시 70㎜ 안팎의 비가 내렸지만, 댐 방류로 갑자기 하천이 불어나 큰 수해를 입었습니다.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1년 농사를 망쳤고, 수십 년 지켜온 삶의 터전은 물바다로 변했습니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던 이상택 씨는 8개월이 지난 지금도 당시 침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한참 크던 나무, 다시 옮겨 심을 묘목까지 다 고사했다"면서 "블루베리 농사는 접고, 이제 고추 등 새로운 작물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습니다.
몇 년 동안 땀 흘려 키운 작물마저 포기한 농민들.
하지만 해를 넘겨 8개월이 지나도록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8일, 전북 용담댐 방류 이후 물에 잠겨 망가진 비닐하우스.
■ 피해 조사·보상 지지부진… 법 개정으로 '작은 희망'
침수 피해가 난 직후부터 주민들은 용담댐의 갑작스러운 방류가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환경부나 한국수자원공사 등 관계기관은 기록적인 비가 내렸기 때문이라면서, 인재(人災)가 아니라고 맞섰습니다.
수개월 갈등이 이어진 끝에, 지난 1월에야 수해 원인을 찾기 위한 연구용역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국회에서 '환경분쟁조정법'이 개정되면서 침수 피해가 난 지 220여 일 만에 보상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개정된 법에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소관 사무에 '하천시설이나 수자원시설로 인한 수위 변화와 관련된 분쟁'을 추가했습니다. 또 개정된 규정은 ' 2020년 5월 15일 이후 하천시설 또는 수자원시설로 인한 하천수위의 변화로 발생한 환경피해부터 적용한다'는 부칙을 뒀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여름 댐 방류로 하천 수위가 불어나 피해를 본 지역은 환경분쟁조정을 통해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해 8월 8일 전북 용담댐 방류 이후 물에 잠겼던 충북 옥천군 동이면의 한 비닐하우스.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방치된 블루베리 묘목.
■ 8개월 만에 피해현장 조사?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분통
법이 개정됨에 따라 피해 지역 자치단체는 정확한 현장 조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부 지역은 이미 조사가 진행 중이고, 충북 옥천과 영동 등 다른 지역에서는 손해사정업체와 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피해 보상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됐지만, 정작 취재진이 만난 주민들은 걱정을 토로했습니다. 이미 피해가 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대부분 현장은 임시 복구를 마쳤고, 정확한 피해 증명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농촌 지역의 경우 고령의 주민이 많아, 사진이나 동영상 등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 경우 주민 기억과 진술에 의존해 피해 내역을 산정해야 하는데, 정확한 조사가 이뤄질지 의문이라는 게 주민들의 걱정입니다.
이런 우려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 섬진강댐 유역에서 피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정양수 조사단장은 "피해가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지 않고, 피해 입증 자료도 많이 부족하다"면서 어려움을 털어놨습니다. 또 "피해 주민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일부 주민들은 연로하다 보니 이장·통장이나 자치단체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댐 방류와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주민들.
정확한 피해 조사와 보상으로 하루빨리 일상을 되찾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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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댐 방류 수해, 이제야 조사…“어떻게 증명하나?”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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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4-22 07:00:26
■ 1초에 최대 '2,900톤' 물 쏟아낸 댐… 하류 지역 농경지·주택 날벼락
기록적인 집중 호우가 이어졌던 지난해 8월 8일 낮 12시.
전북 진안군에 있는 용담댐에서 초당 최대 2,900톤의 물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전인 8월 7일부터 이틀 동안 전북 진안에 최대 400㎜가량의 비가 쏟아져 홍수기 제한 수위를 넘어 댐의 안전을 위해 물을 담을 수 있는 최대 용량, '계획 홍수위' 직전까지 물이 차올랐기 때문입니다.
댐에서 방류한 물은 하류 지역 하천으로 흘러왔고, 근처 농경지와 주택 등의 침수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피해를 본 지역만 충북 영동과 옥천, 충남 금산, 전북 무주 등 4개 군에 달합니다. 자치단체에 신고된 피해는 주택 190여 채, 농경지 700여 ha로 집계됐습니다.
피해를 본 충북 옥천 지역에는 당시 70㎜ 안팎의 비가 내렸지만, 댐 방류로 갑자기 하천이 불어나 큰 수해를 입었습니다.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1년 농사를 망쳤고, 수십 년 지켜온 삶의 터전은 물바다로 변했습니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던 이상택 씨는 8개월이 지난 지금도 당시 침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한참 크던 나무, 다시 옮겨 심을 묘목까지 다 고사했다"면서 "블루베리 농사는 접고, 이제 고추 등 새로운 작물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습니다.
몇 년 동안 땀 흘려 키운 작물마저 포기한 농민들.
하지만 해를 넘겨 8개월이 지나도록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피해 조사·보상 지지부진… 법 개정으로 '작은 희망'
침수 피해가 난 직후부터 주민들은 용담댐의 갑작스러운 방류가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환경부나 한국수자원공사 등 관계기관은 기록적인 비가 내렸기 때문이라면서, 인재(人災)가 아니라고 맞섰습니다.
수개월 갈등이 이어진 끝에, 지난 1월에야 수해 원인을 찾기 위한 연구용역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국회에서 '환경분쟁조정법'이 개정되면서 침수 피해가 난 지 220여 일 만에 보상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개정된 법에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소관 사무에 '하천시설이나 수자원시설로 인한 수위 변화와 관련된 분쟁'을 추가했습니다. 또 개정된 규정은 ' 2020년 5월 15일 이후 하천시설 또는 수자원시설로 인한 하천수위의 변화로 발생한 환경피해부터 적용한다'는 부칙을 뒀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여름 댐 방류로 하천 수위가 불어나 피해를 본 지역은 환경분쟁조정을 통해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 8개월 만에 피해현장 조사?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분통
법이 개정됨에 따라 피해 지역 자치단체는 정확한 현장 조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부 지역은 이미 조사가 진행 중이고, 충북 옥천과 영동 등 다른 지역에서는 손해사정업체와 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피해 보상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됐지만, 정작 취재진이 만난 주민들은 걱정을 토로했습니다. 이미 피해가 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대부분 현장은 임시 복구를 마쳤고, 정확한 피해 증명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농촌 지역의 경우 고령의 주민이 많아, 사진이나 동영상 등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 경우 주민 기억과 진술에 의존해 피해 내역을 산정해야 하는데, 정확한 조사가 이뤄질지 의문이라는 게 주민들의 걱정입니다.
이런 우려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 섬진강댐 유역에서 피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정양수 조사단장은 "피해가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지 않고, 피해 입증 자료도 많이 부족하다"면서 어려움을 털어놨습니다. 또 "피해 주민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일부 주민들은 연로하다 보니 이장·통장이나 자치단체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댐 방류와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주민들.
정확한 피해 조사와 보상으로 하루빨리 일상을 되찾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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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근섭 기자 sks8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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