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 방류 수해, 이제야 조사…“어떻게 증명하나?” 분통

입력 2021.04.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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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8일, 폭우에 전북 용담댐 방류가 시작된 뒤 물에 잠긴 충북 영동군 양산면.지난해 8월 8일, 폭우에 전북 용담댐 방류가 시작된 뒤 물에 잠긴 충북 영동군 양산면.

■ 1초에 최대 '2,900톤' 물 쏟아낸 댐… 하류 지역 농경지·주택 날벼락

기록적인 집중 호우가 이어졌던 지난해 8월 8일 낮 12시.

전북 진안군에 있는 용담댐에서 초당 최대 2,900톤의 물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전인 8월 7일부터 이틀 동안 전북 진안에 최대 400㎜가량의 비가 쏟아져 홍수기 제한 수위를 넘어 댐의 안전을 위해 물을 담을 수 있는 최대 용량, '계획 홍수위' 직전까지 물이 차올랐기 때문입니다.

댐에서 방류한 물은 하류 지역 하천으로 흘러왔고, 근처 농경지와 주택 등의 침수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피해를 본 지역만 충북 영동과 옥천, 충남 금산, 전북 무주 등 4개 군에 달합니다. 자치단체에 신고된 피해는 주택 190여 채, 농경지 700여 ha로 집계됐습니다.

피해를 본 충북 옥천 지역에는 당시 70㎜ 안팎의 비가 내렸지만, 댐 방류로 갑자기 하천이 불어나 큰 수해를 입었습니다.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1년 농사를 망쳤고, 수십 년 지켜온 삶의 터전은 물바다로 변했습니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던 이상택 씨는 8개월이 지난 지금도 당시 침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한참 크던 나무, 다시 옮겨 심을 묘목까지 다 고사했다"면서 "블루베리 농사는 접고, 이제 고추 등 새로운 작물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습니다.

몇 년 동안 땀 흘려 키운 작물마저 포기한 농민들.

하지만 해를 넘겨 8개월이 지나도록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8일, 전북 용담댐 방류 이후 물에 잠겨 망가진 비닐하우스.지난해 8월 8일, 전북 용담댐 방류 이후 물에 잠겨 망가진 비닐하우스.

■ 피해 조사·보상 지지부진… 법 개정으로 '작은 희망'

침수 피해가 난 직후부터 주민들은 용담댐의 갑작스러운 방류가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환경부나 한국수자원공사 등 관계기관은 기록적인 비가 내렸기 때문이라면서, 인재(人災)가 아니라고 맞섰습니다.

수개월 갈등이 이어진 끝에, 지난 1월에야 수해 원인을 찾기 위한 연구용역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국회에서 '환경분쟁조정법'이 개정되면서 침수 피해가 난 지 220여 일 만에 보상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개정된 법에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소관 사무에 '하천시설이나 수자원시설로 인한 수위 변화와 관련된 분쟁'을 추가했습니다. 또 개정된 규정은 ' 2020년 5월 15일 이후 하천시설 또는 수자원시설로 인한 하천수위의 변화로 발생한 환경피해부터 적용한다'는 부칙을 뒀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여름 댐 방류로 하천 수위가 불어나 피해를 본 지역은 환경분쟁조정을 통해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해 8월 8일 전북 용담댐 방류 이후 물에 잠겼던 충북 옥천군 동이면의 한 비닐하우스.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방치된 블루베리 묘목.지난해 8월 8일 전북 용담댐 방류 이후 물에 잠겼던 충북 옥천군 동이면의 한 비닐하우스.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방치된 블루베리 묘목.

■ 8개월 만에 피해현장 조사?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분통

법이 개정됨에 따라 피해 지역 자치단체는 정확한 현장 조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부 지역은 이미 조사가 진행 중이고, 충북 옥천과 영동 등 다른 지역에서는 손해사정업체와 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피해 보상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됐지만, 정작 취재진이 만난 주민들은 걱정을 토로했습니다. 이미 피해가 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대부분 현장은 임시 복구를 마쳤고, 정확한 피해 증명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농촌 지역의 경우 고령의 주민이 많아, 사진이나 동영상 등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 경우 주민 기억과 진술에 의존해 피해 내역을 산정해야 하는데, 정확한 조사가 이뤄질지 의문이라는 게 주민들의 걱정입니다.

이런 우려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 섬진강댐 유역에서 피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정양수 조사단장은 "피해가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지 않고, 피해 입증 자료도 많이 부족하다"면서 어려움을 털어놨습니다. 또 "피해 주민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일부 주민들은 연로하다 보니 이장·통장이나 자치단체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댐 방류와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주민들.
정확한 피해 조사와 보상으로 하루빨리 일상을 되찾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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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댐 방류 수해, 이제야 조사…“어떻게 증명하나?” 분통
    • 입력 2021-04-22 07:00:26
    취재K
지난해 8월 8일, 폭우에 전북 용담댐 방류가 시작된 뒤 물에 잠긴 충북 영동군 양산면.
■ 1초에 최대 '2,900톤' 물 쏟아낸 댐… 하류 지역 농경지·주택 날벼락

기록적인 집중 호우가 이어졌던 지난해 8월 8일 낮 12시.

전북 진안군에 있는 용담댐에서 초당 최대 2,900톤의 물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전인 8월 7일부터 이틀 동안 전북 진안에 최대 400㎜가량의 비가 쏟아져 홍수기 제한 수위를 넘어 댐의 안전을 위해 물을 담을 수 있는 최대 용량, '계획 홍수위' 직전까지 물이 차올랐기 때문입니다.

댐에서 방류한 물은 하류 지역 하천으로 흘러왔고, 근처 농경지와 주택 등의 침수 피해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피해를 본 지역만 충북 영동과 옥천, 충남 금산, 전북 무주 등 4개 군에 달합니다. 자치단체에 신고된 피해는 주택 190여 채, 농경지 700여 ha로 집계됐습니다.

피해를 본 충북 옥천 지역에는 당시 70㎜ 안팎의 비가 내렸지만, 댐 방류로 갑자기 하천이 불어나 큰 수해를 입었습니다.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1년 농사를 망쳤고, 수십 년 지켜온 삶의 터전은 물바다로 변했습니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던 이상택 씨는 8개월이 지난 지금도 당시 침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씨는 "한참 크던 나무, 다시 옮겨 심을 묘목까지 다 고사했다"면서 "블루베리 농사는 접고, 이제 고추 등 새로운 작물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습니다.

몇 년 동안 땀 흘려 키운 작물마저 포기한 농민들.

하지만 해를 넘겨 8개월이 지나도록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8일, 전북 용담댐 방류 이후 물에 잠겨 망가진 비닐하우스.
■ 피해 조사·보상 지지부진… 법 개정으로 '작은 희망'

침수 피해가 난 직후부터 주민들은 용담댐의 갑작스러운 방류가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환경부나 한국수자원공사 등 관계기관은 기록적인 비가 내렸기 때문이라면서, 인재(人災)가 아니라고 맞섰습니다.

수개월 갈등이 이어진 끝에, 지난 1월에야 수해 원인을 찾기 위한 연구용역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국회에서 '환경분쟁조정법'이 개정되면서 침수 피해가 난 지 220여 일 만에 보상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개정된 법에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소관 사무에 '하천시설이나 수자원시설로 인한 수위 변화와 관련된 분쟁'을 추가했습니다. 또 개정된 규정은 ' 2020년 5월 15일 이후 하천시설 또는 수자원시설로 인한 하천수위의 변화로 발생한 환경피해부터 적용한다'는 부칙을 뒀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여름 댐 방류로 하천 수위가 불어나 피해를 본 지역은 환경분쟁조정을 통해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해 8월 8일 전북 용담댐 방류 이후 물에 잠겼던 충북 옥천군 동이면의 한 비닐하우스.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방치된 블루베리 묘목.
■ 8개월 만에 피해현장 조사?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분통

법이 개정됨에 따라 피해 지역 자치단체는 정확한 현장 조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부 지역은 이미 조사가 진행 중이고, 충북 옥천과 영동 등 다른 지역에서는 손해사정업체와 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피해 보상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됐지만, 정작 취재진이 만난 주민들은 걱정을 토로했습니다. 이미 피해가 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대부분 현장은 임시 복구를 마쳤고, 정확한 피해 증명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농촌 지역의 경우 고령의 주민이 많아, 사진이나 동영상 등 피해를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 경우 주민 기억과 진술에 의존해 피해 내역을 산정해야 하는데, 정확한 조사가 이뤄질지 의문이라는 게 주민들의 걱정입니다.

이런 우려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 섬진강댐 유역에서 피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정양수 조사단장은 "피해가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지 않고, 피해 입증 자료도 많이 부족하다"면서 어려움을 털어놨습니다. 또 "피해 주민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일부 주민들은 연로하다 보니 이장·통장이나 자치단체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댐 방류와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주민들.
정확한 피해 조사와 보상으로 하루빨리 일상을 되찾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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