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얀마인들이 한대성 씨에게…

입력 2021.04.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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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미얀마 양곤의 한 시위 현장, 한 청년이 총격에 대비해 냄비를 뒤집어쓰고 망원경으로 군경의 진영을 살펴보고 있다. 묘하게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이 사진은 순식간에 미얀마 전역에 퍼졌다. 그가 누구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아직 살아있는지...

한 미얀마인의 페이스북에서 사진의 주인공을 ‘대성’이라고 소개하고 있다한 미얀마인의 페이스북에서 사진의 주인공을 ‘대성’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SNS에는 이 사진의 주인공을 다룬 수많은 캐릭터들이 만들어졌다.(20대 젊은 청년들이 주도하는 시위여서 그런지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에는 수많은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어느 미얀마인의 페이스북에 그 사진의 주인공 이름이 '대성' 이라고 한글로 적혀 있었다. 다른 페이스북엔 그의 이름이 '한대성'이란다. 설마 이 사람이 한국사람?

양곤의 미얀마인들에게 물어봤다.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미얀마 말로 냄비를 '대'로 발음한다. 냄비등을 쓰다는 'SAUNG'으로 발음하는데 우리말 '성'처럼 들린다. 그래서 냄비를 쓰다는 '대성'으로 발음된다. 그런데 미얀마인들에게 한국 사람 '대성'의 이름이 익숙하다보니, 한국사람 대성이라고 해서 그냥 '한대성'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미얀마 청년들이 한국과 한류에 얼마나 친숙한지 가늠이 됐다.



미얀마 젊은이들은 수많은 캐릭터로 시위를 표현한다. 1) 가족들이 냄비등을 두드리며 시위하는 이미지 2) 3월 24일 침묵의 날 시위 포스터 3) 시위를 주도하는 젊은 여성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등미얀마 젊은이들은 수많은 캐릭터로 시위를 표현한다. 1) 가족들이 냄비등을 두드리며 시위하는 이미지 2) 3월 24일 침묵의 날 시위 포스터 3) 시위를 주도하는 젊은 여성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등

2. 미얀마인들의 페이스북을 보다가, 우연히 한글을 발견했다. '한국 미세먼지' 이건 또 뭘까? 번역기를 돌려보니 중국으로부터 불어오는 황사에 한국인들이 안전하길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가뜩이나 '중국'에 대해 분노하던 참에 '중국으로 부터' 불어오는 황사라서 더 그랬나 싶었다. 이 글을 내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한국사람들이 이 글을 타고 들어가 미얀마인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댓글을 계속 남기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한 공간에 있다.



한 미얀마시민이  한국에 불어온 ‘중국’발 황사를 걱정하는 글을 남겼다.  그러자 한국 시민들이 이 글을 타고 들어가 미얀마의 민주화를 응원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한 미얀마시민이 한국에 불어온 ‘중국’발 황사를 걱정하는 글을 남겼다. 그러자 한국 시민들이 이 글을 타고 들어가 미얀마의 민주화를 응원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

미얀마의 시민혁명은 갈수록 위태롭고 위험해진다. 시민 몇 명이 함께 거리에 나서기도 어렵다. 언제든 누구든 발포한다. 휴대폰도 수시로 검문한다. SNS에 올라오는 동영상과 사진이 눈에 띄게 줄었다. 어제 한 교민은 1시간 거리의 귀갓길에 8번 검문을 받았다는 글을 올렸다. 군부는 '사회가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고 표현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인들의 지지와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들은 미얀마 사람들이 자꾸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페이스북이나 심지어 거리시위에서도 '한국에 감사하다'는 글을 자주 만난다. 오래전에 그 민주화의 고비를 겪은 한국인들의 '측은지심'은 그렇게 '이심전심'이 돼 미얀마인들에게 전해진다. '냄비를 둘러쓴 한대성'은 그 작은 사례다.




한국에선 어린 학생들이 ‘미얀마를 응원한다’는 표어를 들고 있다. 미얀마에선 청년들이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다’는 표어를 들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한국에선 어린 학생들이 ‘미얀마를 응원한다’는 표어를 들고 있다. 미얀마에선 청년들이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다’는 표어를 들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하나만 더,
그런데 익명의 '대성'군은 왜 냄비를 왜 머리에 뒤집어 썼을까. 사망자가 700명을 육박하는 상황에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미얀마 정치범 지원협회 AAPP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사망자의 신원과 총을 맞은 신체부위까지 다 정리돼 있다) . 시민들은 군경이 조준사격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 상황에서 거리의 시민을 지켜줄 핼맷은 그나마 양철 냄비 밖에 없다.

실제 유혈진압 현장에는 '엎드려쏴' 자세의 군인들이 많다. 시위를 해산시키는 군인들이 '엎드려쏴'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큰 시위도 없는데 거의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요즘 미얀마인들의 페이스북을 보면 유독 'ရင်ကွဲရတယ် (예인 꽤 야 대)'라는 표현이 많다. 우리말로 '가슴이 찢어진다'는 뜻이다.


시위현장에서 총격을 입은 시민을 이송하는 의료인들이 군의 조준사격을  피해 엎드려있다. 사망자의 상당수가 유독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시위현장에서 총격을 입은 시민을 이송하는 의료인들이 군의 조준사격을 피해 엎드려있다. 사망자의 상당수가 유독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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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미얀마인들이 한대성 씨에게…
    • 입력 2021-04-22 07:00:27
    특파원 리포트




1.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미얀마 양곤의 한 시위 현장, 한 청년이 총격에 대비해 냄비를 뒤집어쓰고 망원경으로 군경의 진영을 살펴보고 있다. 묘하게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이 사진은 순식간에 미얀마 전역에 퍼졌다. 그가 누구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아직 살아있는지...

한 미얀마인의 페이스북에서 사진의 주인공을 ‘대성’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SNS에는 이 사진의 주인공을 다룬 수많은 캐릭터들이 만들어졌다.(20대 젊은 청년들이 주도하는 시위여서 그런지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에는 수많은 만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어느 미얀마인의 페이스북에 그 사진의 주인공 이름이 '대성' 이라고 한글로 적혀 있었다. 다른 페이스북엔 그의 이름이 '한대성'이란다. 설마 이 사람이 한국사람?

양곤의 미얀마인들에게 물어봤다.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미얀마 말로 냄비를 '대'로 발음한다. 냄비등을 쓰다는 'SAUNG'으로 발음하는데 우리말 '성'처럼 들린다. 그래서 냄비를 쓰다는 '대성'으로 발음된다. 그런데 미얀마인들에게 한국 사람 '대성'의 이름이 익숙하다보니, 한국사람 대성이라고 해서 그냥 '한대성'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미얀마 청년들이 한국과 한류에 얼마나 친숙한지 가늠이 됐다.



미얀마 젊은이들은 수많은 캐릭터로 시위를 표현한다. 1) 가족들이 냄비등을 두드리며 시위하는 이미지 2) 3월 24일 침묵의 날 시위 포스터 3) 시위를 주도하는 젊은 여성들을 상징하는 캐릭터등
2. 미얀마인들의 페이스북을 보다가, 우연히 한글을 발견했다. '한국 미세먼지' 이건 또 뭘까? 번역기를 돌려보니 중국으로부터 불어오는 황사에 한국인들이 안전하길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가뜩이나 '중국'에 대해 분노하던 참에 '중국으로 부터' 불어오는 황사라서 더 그랬나 싶었다. 이 글을 내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한국사람들이 이 글을 타고 들어가 미얀마인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댓글을 계속 남기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한 공간에 있다.



한 미얀마시민이  한국에 불어온 ‘중국’발 황사를 걱정하는 글을 남겼다.  그러자 한국 시민들이 이 글을 타고 들어가 미얀마의 민주화를 응원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
미얀마의 시민혁명은 갈수록 위태롭고 위험해진다. 시민 몇 명이 함께 거리에 나서기도 어렵다. 언제든 누구든 발포한다. 휴대폰도 수시로 검문한다. SNS에 올라오는 동영상과 사진이 눈에 띄게 줄었다. 어제 한 교민은 1시간 거리의 귀갓길에 8번 검문을 받았다는 글을 올렸다. 군부는 '사회가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고 표현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인들의 지지와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들은 미얀마 사람들이 자꾸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페이스북이나 심지어 거리시위에서도 '한국에 감사하다'는 글을 자주 만난다. 오래전에 그 민주화의 고비를 겪은 한국인들의 '측은지심'은 그렇게 '이심전심'이 돼 미얀마인들에게 전해진다. '냄비를 둘러쓴 한대성'은 그 작은 사례다.




한국에선 어린 학생들이 ‘미얀마를 응원한다’는 표어를 들고 있다. 미얀마에선 청년들이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다’는 표어를 들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하나만 더,
그런데 익명의 '대성'군은 왜 냄비를 왜 머리에 뒤집어 썼을까. 사망자가 700명을 육박하는 상황에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미얀마 정치범 지원협회 AAPP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사망자의 신원과 총을 맞은 신체부위까지 다 정리돼 있다) . 시민들은 군경이 조준사격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 상황에서 거리의 시민을 지켜줄 핼맷은 그나마 양철 냄비 밖에 없다.

실제 유혈진압 현장에는 '엎드려쏴' 자세의 군인들이 많다. 시위를 해산시키는 군인들이 '엎드려쏴'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큰 시위도 없는데 거의 매일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요즘 미얀마인들의 페이스북을 보면 유독 'ရင်ကွဲရတယ် (예인 꽤 야 대)'라는 표현이 많다. 우리말로 '가슴이 찢어진다'는 뜻이다.


시위현장에서 총격을 입은 시민을 이송하는 의료인들이 군의 조준사격을  피해 엎드려있다. 사망자의 상당수가 유독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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