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간 1000배’·‘거래소 줄폐쇄 우려’…암호화폐 시장 ‘조마조마’

입력 2021.04.22 (08: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정부 ‘대대적 단속’ 경고 ‘약발’도 안 통해
‘특금법’ 시행…문 닫는 거래소 속출할까?
‘믿음’이 없는 화폐…거래 수단까지 발전 미지수


지난주 목요일 오전 11시쯤 서울 강남역 인근 한 카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투자자들 4~5명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고,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누군가 앞에 모였습니다. 강의였습니다.

30대 강사는 50대 투자자들에게 '암호화폐 투자 계정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그 카페로 왔다는 투자자들은 30대 강사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주고 '지갑 계정 생성 방법'을 배워갔습니다. 단순히 암호화폐를 모바일로 투자하는 방법 자체를 배워간 겁니다.

그 강사가 받아간 돈은 수강생으로부터 각각 현금 20만 원이었습니다. 수강생들은 이제 암호화폐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싱글벙글 웃으며 카페를 빠져나갔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암호화폐 투자 열풍의 현실을 설명하기엔 충분할 것 같습니다.


■ 이게 맞나?...30분간 1,000배 오른 코인

심상치 않던 암호화폐 시장이 합리적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 같은 '코린이'(코인+어린이)는 입만 벌리고 쳐다만 봅니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어제(20일) 상장한 아로와나토큰(ARW)이 어제 오후 2시 30분 5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가 30분 만에 5만 3,800원까지 올랐습니다.

가격이 무려 1,075배(10만 7,600%)가 폭등한 건데요. '광풍'이라는 단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수준입니다.

아로와나토큰이 상장된 뒤로 관련 코스닥 상장사의 주가까지 상승세입니다. 암호화폐 시장의 움직임이 자본시장까지 뒤흔드는 양상입니다.


■ '범정부 특별 단속' 한다지만 시장 반응은 '글쎄'

정부가 암호화폐 특별단속을 벌이겠다고 나섰습니다. 석 달간 금융위, 금감원, 기재부, 경찰, 공정위 등 범부처가 나섭니다.

특히, 암호화폐와 관련한 불법행위를 '샅샅이' 찾아내겠다는 게 당국의 의지였습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의심될만한 거래를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수사당국과 과세당국이 추적한다는 시나리오였습니다.

그런데 암호화폐 시장에 참여하던 사람들은 '콧방귀'를 뀐 걸로 보입니다. 암호화폐 시장 관련 게시판에는 "코인 규제가 아니라 불법행위 단속 수준이다", "단속하는 거 맞냐", "규제할 거면 2018년에 했다"는 식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2014년에 장난삼아 만든 암호화폐인 '도지코인' 가격을 보면 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업비트에 따르면, 도지코인 시세는 단속 대책 발표날 0시에 408원이던 게 그날 19시쯤엔 549원까지 올랐습니다. 2018년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까지 검토"라며 엄포를 놓자 과열 양상이 수그러들었던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암호화폐 분야를 연구하는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에 대해 정부 안에서 주무부처도 제대로 정하지 못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관계자는 "어쩌면 암호화폐 시장에 큰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누구도 나서고 싶지 않다는 방증"이라고도 했습니다.


■ "고래 놀이터"...암호화폐 규제나 이용자 보호 없어

문제는 이 시장에 대해 별다른 규제가 없고, 당분간 없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용자 보호 제도까지 기대하는 것도 지금은 무리입니다.

제도권에 편입된 자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노동으로 십여 년간 모은 전 재산을 탕진해도 '라임 사태', '옵티머스 사태', 'DLF 사태'처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선 이른바 '고래(Whale)'라고 불리는 암호화폐 대량 보유자들의 공공연한 시장 조작을 문제 삼습니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자문위원은 "눈앞에서 50%가 급락했다 급등하는 시장의 중심엔 고래 투자자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이들을 어떻게 솎아낼지에 대한 거래소별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다 '공시규정'이 전혀 없는 암호화폐 시장 특성상 "큰 투자를 받게 됐다"는 식으로 투자자들에게 허위 공시하는 경우까지 비일비재해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 '특금법' 시작...거래소 '줄 폐쇄' 사태 불러올까?

지난달 개정돼 시행된 법이 있습니다. 이른바 '특금법'이라고 불리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입니다.

핵심은 암호화폐 거래소가 반드시 은행에서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 계좌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벌집 계좌'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법인의 은행 계좌로 개인들이 입출금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게 오는 9월 24일부터 금지됩니다.

시중 은행 입장에서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 '수수료 이익' 조금 보려고 실명계좌를 터주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거라는 게 업계의 전망입니다. 특히, 은행들이 '사모펀드 사태' 이후 위험을 소홀하게 관리했다며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아온 걸 고려하면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시중 은행들과 실명 계좌를 개설해서 영업하는 곳은 업비트(케이뱅크), 빗썸과 코인원(NH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 등 4곳뿐입니다.

여기서 추가로 실명 계정이 발급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는 100여 곳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100여 곳 중에서 90여 곳 거래소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이들이 고객 예치금을 돌려주지 않고 '나 몰라 폐업'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암호화폐, 자산 넘어 '사용가치' 가지려면?

국내서 암호화폐 시장 과열 양상이 보이는 이유는 주식시장이 횡보했던 영향에다 금에 대한 자산투자 대체수요까지 있다는 게 김세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의 분석입니다.

그래도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안정적인 시장으로 남으려면 김 교수는 결국 '사용가치'가 확보돼야 할 거라고 봅니다.

첫째 요건은 '공인'입니다. 당국이나 한국은행 등이 암호화폐의 가치를 보증해야 할 거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트코인을 투자하는 소수의 거래자만 그 가치를 믿게 될 겁니다.

둘째 요건은 가치의 변동이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오늘 비트코인 1개로 살 수 있는 물건과 내일 비트코인 1개로 살 수 있는 물건이 큰 차이가 있어선 거래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두 요건 모두, 현재 암호화폐 시장을 볼 때 마땅히 충족시키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현재 암호화폐엔 '믿음'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사면 그저 오를 거란 '믿음'만으로 움직이는 시장에 뛰어드는 투자자를 보면서 걱정이 드는 이유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30분간 1000배’·‘거래소 줄폐쇄 우려’…암호화폐 시장 ‘조마조마’
    • 입력 2021-04-22 08:00:59
    취재K
정부 ‘대대적 단속’ 경고 ‘약발’도 안 통해<br />‘특금법’ 시행…문 닫는 거래소 속출할까?<br />‘믿음’이 없는 화폐…거래 수단까지 발전 미지수

지난주 목요일 오전 11시쯤 서울 강남역 인근 한 카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투자자들 4~5명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고,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누군가 앞에 모였습니다. 강의였습니다.

30대 강사는 50대 투자자들에게 '암호화폐 투자 계정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지역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그 카페로 왔다는 투자자들은 30대 강사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주고 '지갑 계정 생성 방법'을 배워갔습니다. 단순히 암호화폐를 모바일로 투자하는 방법 자체를 배워간 겁니다.

그 강사가 받아간 돈은 수강생으로부터 각각 현금 20만 원이었습니다. 수강생들은 이제 암호화폐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싱글벙글 웃으며 카페를 빠져나갔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암호화폐 투자 열풍의 현실을 설명하기엔 충분할 것 같습니다.


■ 이게 맞나?...30분간 1,000배 오른 코인

심상치 않던 암호화폐 시장이 합리적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 같은 '코린이'(코인+어린이)는 입만 벌리고 쳐다만 봅니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따르면 어제(20일) 상장한 아로와나토큰(ARW)이 어제 오후 2시 30분 5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가 30분 만에 5만 3,800원까지 올랐습니다.

가격이 무려 1,075배(10만 7,600%)가 폭등한 건데요. '광풍'이라는 단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수준입니다.

아로와나토큰이 상장된 뒤로 관련 코스닥 상장사의 주가까지 상승세입니다. 암호화폐 시장의 움직임이 자본시장까지 뒤흔드는 양상입니다.


■ '범정부 특별 단속' 한다지만 시장 반응은 '글쎄'

정부가 암호화폐 특별단속을 벌이겠다고 나섰습니다. 석 달간 금융위, 금감원, 기재부, 경찰, 공정위 등 범부처가 나섭니다.

특히, 암호화폐와 관련한 불법행위를 '샅샅이' 찾아내겠다는 게 당국의 의지였습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의심될만한 거래를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수사당국과 과세당국이 추적한다는 시나리오였습니다.

그런데 암호화폐 시장에 참여하던 사람들은 '콧방귀'를 뀐 걸로 보입니다. 암호화폐 시장 관련 게시판에는 "코인 규제가 아니라 불법행위 단속 수준이다", "단속하는 거 맞냐", "규제할 거면 2018년에 했다"는 식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2014년에 장난삼아 만든 암호화폐인 '도지코인' 가격을 보면 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업비트에 따르면, 도지코인 시세는 단속 대책 발표날 0시에 408원이던 게 그날 19시쯤엔 549원까지 올랐습니다. 2018년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까지 검토"라며 엄포를 놓자 과열 양상이 수그러들었던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암호화폐 분야를 연구하는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에 대해 정부 안에서 주무부처도 제대로 정하지 못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관계자는 "어쩌면 암호화폐 시장에 큰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누구도 나서고 싶지 않다는 방증"이라고도 했습니다.


■ "고래 놀이터"...암호화폐 규제나 이용자 보호 없어

문제는 이 시장에 대해 별다른 규제가 없고, 당분간 없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용자 보호 제도까지 기대하는 것도 지금은 무리입니다.

제도권에 편입된 자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노동으로 십여 년간 모은 전 재산을 탕진해도 '라임 사태', '옵티머스 사태', 'DLF 사태'처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선 이른바 '고래(Whale)'라고 불리는 암호화폐 대량 보유자들의 공공연한 시장 조작을 문제 삼습니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자문위원은 "눈앞에서 50%가 급락했다 급등하는 시장의 중심엔 고래 투자자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이들을 어떻게 솎아낼지에 대한 거래소별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다 '공시규정'이 전혀 없는 암호화폐 시장 특성상 "큰 투자를 받게 됐다"는 식으로 투자자들에게 허위 공시하는 경우까지 비일비재해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 '특금법' 시작...거래소 '줄 폐쇄' 사태 불러올까?

지난달 개정돼 시행된 법이 있습니다. 이른바 '특금법'이라고 불리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입니다.

핵심은 암호화폐 거래소가 반드시 은행에서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 계좌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벌집 계좌'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법인의 은행 계좌로 개인들이 입출금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게 오는 9월 24일부터 금지됩니다.

시중 은행 입장에서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 '수수료 이익' 조금 보려고 실명계좌를 터주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거라는 게 업계의 전망입니다. 특히, 은행들이 '사모펀드 사태' 이후 위험을 소홀하게 관리했다며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아온 걸 고려하면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시중 은행들과 실명 계좌를 개설해서 영업하는 곳은 업비트(케이뱅크), 빗썸과 코인원(NH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 등 4곳뿐입니다.

여기서 추가로 실명 계정이 발급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는 100여 곳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100여 곳 중에서 90여 곳 거래소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이들이 고객 예치금을 돌려주지 않고 '나 몰라 폐업'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암호화폐, 자산 넘어 '사용가치' 가지려면?

국내서 암호화폐 시장 과열 양상이 보이는 이유는 주식시장이 횡보했던 영향에다 금에 대한 자산투자 대체수요까지 있다는 게 김세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의 분석입니다.

그래도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안정적인 시장으로 남으려면 김 교수는 결국 '사용가치'가 확보돼야 할 거라고 봅니다.

첫째 요건은 '공인'입니다. 당국이나 한국은행 등이 암호화폐의 가치를 보증해야 할 거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트코인을 투자하는 소수의 거래자만 그 가치를 믿게 될 겁니다.

둘째 요건은 가치의 변동이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오늘 비트코인 1개로 살 수 있는 물건과 내일 비트코인 1개로 살 수 있는 물건이 큰 차이가 있어선 거래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두 요건 모두, 현재 암호화폐 시장을 볼 때 마땅히 충족시키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현재 암호화폐엔 '믿음'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사면 그저 오를 거란 '믿음'만으로 움직이는 시장에 뛰어드는 투자자를 보면서 걱정이 드는 이유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