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자카르타회담을 바라보는 3개의 눈

입력 2021.04.2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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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코 위도도의 눈

이번 아세안(ASENA)회담을 제안하고 주최하는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이슬람 국가로는 매우 보기드물게 민주화를 성공한 이 나라의 대통령은 이번 회담으로 인도네시아가 분명한 동남아의 맹주임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 신의 한수는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아세안 10개국 중 민주화가 제대로 자리잡은 나라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정도다.

인구 2억 5천만의 이 동남아 경제 대국(워낙 나라가 커서 GDP가 세계 16위다. 한국과도 별 차이가 안난다)은 지난 98년, 수하르토의 32년 집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정착시켰다. 수하르토 역시 육군참모총장 출신이였다.

'조코 위도도' 현 대통령은 2014년 집권한 뒤 재선에 성공했다. 이번 자카르타 아세안 정상회담을 제안한 장본인이다. 미얀마 사태의 중재를 통해, 아세안이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논의할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실제 해묵은 관행인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깨고 회원 국가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문제는 당사자이면서 가해자인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을 초청하면서 불거졌다. 아세안 정상들은 구체적인 합의를 위해서 당사자의 참석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의 참석만으로 민 아웅 흘라잉은 외교무대에서 '정상적인 국가 수반'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가 다른 정상들과 인도네시아 전통의상(바틱, batik)을 입고 함께 무대에 서는 순간, 그는 이미 미얀마의 국가 정상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리고 회담이 어떤 합의도 도출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이 회담을 준비한 조코 위도도 대통령에게 쏠릴 것이다. "도대체 이 회담으로 가장 득을 본 사람이 누구인가?"


아세안 정상회담에 다른 정상들과 나란히 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을 비난하는 만평들이 이어진다. 누가 피묻은 손과 악수를 할 것인가? 아세안 정상회담에 다른 정상들과 나란히 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을 비난하는 만평들이 이어진다. 누가 피묻은 손과 악수를 할 것인가?

2. 민 아웅 훌라잉의 눈

그가 자카르타의 회담장에 도착하는 것부터 뉴스가 될 것이다. 일찍이 쿠데타를 진행중인 어느 군인이 이렇게 버젓이 정상회담에 참석한 적이 있는가? 어느 정상이 그와 반갑게 손을 잡을 것인가? 그의 (피묻은) 손을 거부하는 정상이 있을까.

이미 700명 이상의 자국민을 학살한 책임자는 회담장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이번 회담에서 가장 현실적인 중재안은 쿠데타 군부를 추인해주는 대신 1)폭력 진압의 즉각적인 중단과 2)아웅 산 수 치의 석방이다.

2007년 군부가 만든 헌법을 기초로 문민정부에게 권력의 일부를 떼주는 방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대한 흘라잉 사령관의 입장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회담에 참석만으로 얻는 것이 많다. 그는 회담의 어떤 '결과'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회담장에는 흘라잉 사령관 편에 설 지도자가 많다. 미얀마와 국경을 마주한 태국은 쿠데타의 나라다. 13번이나 쿠데타가 발생했고(성공한 쿠데타만 13번이다), 지금 총리도 육군 참모총장 출신이다.

캄보디아 훈센총리는 36년째 집권중이고, 베트남과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다.

누가 이 회담장에서 민주화를 논하겠는가.

이번 자카르타 회담은 그러니 '민주화가 안된 나라들의 민주화 논의의 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흘라잉 사령관은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외신들은 조 민 툰 군정 대변인의 입을 빌려 그가 이번 회담에 직접 참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3.미얀마 시민의 눈

이번 회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칫 미얀마 시민들이 될 수 있다.

흘라잉 사령관이 어떤 중재안도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미얀마 시민들 역시 어떤 중재안도 받아 들일 수 없다. 일단 흘라잉 사령관은 아웅 산 수치를 풀어주기 어렵다. 수 치 고문은 이미 7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다 합치면 40년 형이 가능하다.

수 치 고문을 풀어주면 NLD(민주주의민족동맹)를 문닫게 하려는 계획도 어려워진다.

아웅 산 수치의 NLD가 다음 총선에 또 등판하면 승리는 불보듯 뻔하다(지난해 총선에서도 NLD는 83%의 지지를 받았다) 군정이 변호사 조차 쉽게 만나지 못하고 있는 수 치 고문을 풀어주는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런데 시민들 입장에서도 아웅 산 수 치의 석방 없이 어떤 합의도 어렵다. 그러니 이번 자카르타 회담이 어떤 합의를 도출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렵다.

흘라잉 사령관은 첫번째 해외순방을 무난히 마치고 돌아와 다시 유혈진압을 재개할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시민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 때문이다.

반 쿠데타 진영을 대표하는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는 아세안이 최고사령관이 아닌 최고살인자를 초청했다고 강력 비난했다. CRPH는 소수민족과 연합해 '국민통합정부(NUG)'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아직 국민통합정부를 공식 인정하는 정부는 없다.

자카르타 회담을 앞두고 거리에는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의 수배 전단이 붙었다. 수배 전단에는 흘라잉 최고 사령관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집단 학살과 전쟁 범죄, 그리고 반인륜 범죄로 인해 수배 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시민들은 이틀뒤 쿠데타의 주역이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것을 TV로 봐야 한다. 법정에 세우고 싶었던 그 학살자는 정상회담의 주인공으로 TV에 등장할 것이다.

민 아웅 흘라잉,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그리고 반인륜범죄로 수배중민 아웅 흘라잉,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그리고 반인륜범죄로 수배중

#그밖에 다른 참가국들의 속내

태국 쁘라윳 총리는 코로나 상황을 이유로 이번 회담에 화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태국은 미얀마의 민주화 열기가 자국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한다. 800km가 넘는 미얀마 국경을 통해 난민이 쏟아져 들어올까봐 걱정이다.

베트남은 미얀마 민주주의에 별 관심이 없다. 미얀마보다 먼저 개방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 나라는 이번 사태로 미얀마의 투자 경쟁력이 곤두박질 치기를 내심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미얀마의 투자 경쟁력은 급전직하하고 있다. 앞으로 수년간 누가 이 나라에 투자하겠는가?

필리핀은 (지도자 이미지가 과격해서 그렇지)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한다. 일찌기 지난 1986년 피플파워로 마르코스 독재를 무너뜨린 나라다.

싱가포르는 복잡하다. 중국보다 미얀마에 더 많이 투자한 나라다(무려 240억 달러나 투자했다). 그저 빨리 안정되기를 바란다.

아세안 의장국은 브루나이다. 브루나이는 왕정국가다. 21세기에 국왕이 지배한다. 하사날 볼키아 국왕은 22살에 즉위해 48년째 집권중이다. 참, 그도 육사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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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자카르타회담을 바라보는 3개의 눈
    • 입력 2021-04-22 14:59:49
    특파원 리포트
1.조코 위도도의 눈

이번 아세안(ASENA)회담을 제안하고 주최하는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이슬람 국가로는 매우 보기드물게 민주화를 성공한 이 나라의 대통령은 이번 회담으로 인도네시아가 분명한 동남아의 맹주임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 신의 한수는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아세안 10개국 중 민주화가 제대로 자리잡은 나라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정도다.

인구 2억 5천만의 이 동남아 경제 대국(워낙 나라가 커서 GDP가 세계 16위다. 한국과도 별 차이가 안난다)은 지난 98년, 수하르토의 32년 집권을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정착시켰다. 수하르토 역시 육군참모총장 출신이였다.

'조코 위도도' 현 대통령은 2014년 집권한 뒤 재선에 성공했다. 이번 자카르타 아세안 정상회담을 제안한 장본인이다. 미얀마 사태의 중재를 통해, 아세안이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논의할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실제 해묵은 관행인 '내정불간섭'의 원칙을 깨고 회원 국가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문제는 당사자이면서 가해자인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을 초청하면서 불거졌다. 아세안 정상들은 구체적인 합의를 위해서 당사자의 참석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의 참석만으로 민 아웅 흘라잉은 외교무대에서 '정상적인 국가 수반'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가 다른 정상들과 인도네시아 전통의상(바틱, batik)을 입고 함께 무대에 서는 순간, 그는 이미 미얀마의 국가 정상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리고 회담이 어떤 합의도 도출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이 회담을 준비한 조코 위도도 대통령에게 쏠릴 것이다. "도대체 이 회담으로 가장 득을 본 사람이 누구인가?"


아세안 정상회담에 다른 정상들과 나란히 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을 비난하는 만평들이 이어진다. 누가 피묻은 손과 악수를 할 것인가?
2. 민 아웅 훌라잉의 눈

그가 자카르타의 회담장에 도착하는 것부터 뉴스가 될 것이다. 일찍이 쿠데타를 진행중인 어느 군인이 이렇게 버젓이 정상회담에 참석한 적이 있는가? 어느 정상이 그와 반갑게 손을 잡을 것인가? 그의 (피묻은) 손을 거부하는 정상이 있을까.

이미 700명 이상의 자국민을 학살한 책임자는 회담장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이번 회담에서 가장 현실적인 중재안은 쿠데타 군부를 추인해주는 대신 1)폭력 진압의 즉각적인 중단과 2)아웅 산 수 치의 석방이다.

2007년 군부가 만든 헌법을 기초로 문민정부에게 권력의 일부를 떼주는 방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대한 흘라잉 사령관의 입장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회담에 참석만으로 얻는 것이 많다. 그는 회담의 어떤 '결과'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회담장에는 흘라잉 사령관 편에 설 지도자가 많다. 미얀마와 국경을 마주한 태국은 쿠데타의 나라다. 13번이나 쿠데타가 발생했고(성공한 쿠데타만 13번이다), 지금 총리도 육군 참모총장 출신이다.

캄보디아 훈센총리는 36년째 집권중이고, 베트남과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다.

누가 이 회담장에서 민주화를 논하겠는가.

이번 자카르타 회담은 그러니 '민주화가 안된 나라들의 민주화 논의의 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흘라잉 사령관은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외신들은 조 민 툰 군정 대변인의 입을 빌려 그가 이번 회담에 직접 참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3.미얀마 시민의 눈

이번 회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칫 미얀마 시민들이 될 수 있다.

흘라잉 사령관이 어떤 중재안도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미얀마 시민들 역시 어떤 중재안도 받아 들일 수 없다. 일단 흘라잉 사령관은 아웅 산 수치를 풀어주기 어렵다. 수 치 고문은 이미 7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다 합치면 40년 형이 가능하다.

수 치 고문을 풀어주면 NLD(민주주의민족동맹)를 문닫게 하려는 계획도 어려워진다.

아웅 산 수치의 NLD가 다음 총선에 또 등판하면 승리는 불보듯 뻔하다(지난해 총선에서도 NLD는 83%의 지지를 받았다) 군정이 변호사 조차 쉽게 만나지 못하고 있는 수 치 고문을 풀어주는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런데 시민들 입장에서도 아웅 산 수 치의 석방 없이 어떤 합의도 어렵다. 그러니 이번 자카르타 회담이 어떤 합의를 도출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렵다.

흘라잉 사령관은 첫번째 해외순방을 무난히 마치고 돌아와 다시 유혈진압을 재개할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시민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 때문이다.

반 쿠데타 진영을 대표하는 연방의회대표위원회(CRPH)는 아세안이 최고사령관이 아닌 최고살인자를 초청했다고 강력 비난했다. CRPH는 소수민족과 연합해 '국민통합정부(NUG)'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아직 국민통합정부를 공식 인정하는 정부는 없다.

자카르타 회담을 앞두고 거리에는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의 수배 전단이 붙었다. 수배 전단에는 흘라잉 최고 사령관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집단 학살과 전쟁 범죄, 그리고 반인륜 범죄로 인해 수배 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시민들은 이틀뒤 쿠데타의 주역이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것을 TV로 봐야 한다. 법정에 세우고 싶었던 그 학살자는 정상회담의 주인공으로 TV에 등장할 것이다.

민 아웅 흘라잉, 집단학살과 전쟁범죄 그리고 반인륜범죄로 수배중
#그밖에 다른 참가국들의 속내

태국 쁘라윳 총리는 코로나 상황을 이유로 이번 회담에 화상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태국은 미얀마의 민주화 열기가 자국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한다. 800km가 넘는 미얀마 국경을 통해 난민이 쏟아져 들어올까봐 걱정이다.

베트남은 미얀마 민주주의에 별 관심이 없다. 미얀마보다 먼저 개방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 나라는 이번 사태로 미얀마의 투자 경쟁력이 곤두박질 치기를 내심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미얀마의 투자 경쟁력은 급전직하하고 있다. 앞으로 수년간 누가 이 나라에 투자하겠는가?

필리핀은 (지도자 이미지가 과격해서 그렇지)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지한다. 일찌기 지난 1986년 피플파워로 마르코스 독재를 무너뜨린 나라다.

싱가포르는 복잡하다. 중국보다 미얀마에 더 많이 투자한 나라다(무려 240억 달러나 투자했다). 그저 빨리 안정되기를 바란다.

아세안 의장국은 브루나이다. 브루나이는 왕정국가다. 21세기에 국왕이 지배한다. 하사날 볼키아 국왕은 22살에 즉위해 48년째 집권중이다. 참, 그도 육사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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