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 엄마의 절실했던 ‘육아휴직’ 그러나…

입력 2021.04.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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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180여 명을 둔 광주축산농협. A씨는 이곳에서 16년간 일해왔습니다.

젊음을 바쳐 애정을 갖고 일해온 직장이었지만, 지난해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A씨가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하자 축협 측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A씨는 육아휴직을 써야만 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이가 폐렴을 앓는 등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수차례 받곤 했습니다. 전화기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됐습니다. 아이에게도, 자신에게도 육아휴직이 절실했습니다.

하지만 광주축협은 '안 된다'며 말리기 바빴습니다. 대체 무슨 이유였을까요?


■ "자녀가 '24개월 미만'인 경우에만 가능"… 과연? 현행법에 어긋나

육아휴직을 희망했다 신청조차 못하고 퇴사한 A씨.육아휴직을 희망했다 신청조차 못하고 퇴사한 A씨.
광주축협은 자녀가 '24개월 미만'인 경우에만 육아휴직이 가능하다며 A씨의 자녀는 초등학교 2학년이라 휴직이 어렵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행법상 만 8세 이하 자녀를 두거나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둔 경우 육아휴직을 쓸 수 있습니다. '24개월 미만' 자녀를 둔 경우에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는 축협의 주장은 법에 어긋납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육아휴직) ① 사업주는 근로자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입양한 자녀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를 양육하기 위하여 휴직(이하 “육아휴직”이라 한다)을 신청하는 경우에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축협은 A씨를 포함해 육아휴직 희망자 가운데 '24개월 이상' 자녀를 둔 여직원들을 본점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축협 간부는 이들에게 "도대체 왜 육아휴직을 쓰려고 하느냐?", "이기적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결국, 동료 여직원 2명은 육아휴직을 신청조차 못했고, A씨는 회사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수년간 1시간 일찍 출근시켜놓고…. "시간 외 수당 포기해라"

지난 2018년 광주축산농협이 오전 '8시'까지 출근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담겨있는 문서.지난 2018년 광주축산농협이 오전 '8시'까지 출근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담겨있는 문서.

축협이 시간 외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축협에서 일하는 직원 B 씨는 입사 이래 줄곧 아침 8시에 출근해왔습니다. 정규 출근 시간인 9시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라는 회사의 지시에 따른 겁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수당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공짜 노동'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A씨 등 전·현직 직원 20명이 노동청에 임금체불 신고를 했습니다.

광주축산농협이 직원들에게 서명하게 했다는 ‘임금채권 청구 포기 동의서’.광주축산농협이 직원들에게 서명하게 했다는 ‘임금채권 청구 포기 동의서’.
B씨는 축협이 임금체불이 문제가 되자 직원들에게 수당을 포기하라는 각서를 쓰게 했다고 주장합니다.

동의서는 '자유의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한 사실이 있지만 수당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광주 노동청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과 임금체불 혐의에 더해 노조설립을 방해했다는 신고를 추가로 접수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광주축협은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노동청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 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노동청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되는 가운데, 일한 만큼 돈을 받고 법에 보장된 권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노동존중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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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픈 아이 엄마의 절실했던 ‘육아휴직’ 그러나…
    • 입력 2021-04-23 06:00:41
    취재K

직원 180여 명을 둔 광주축산농협. A씨는 이곳에서 16년간 일해왔습니다.

젊음을 바쳐 애정을 갖고 일해온 직장이었지만, 지난해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A씨가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하자 축협 측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A씨는 육아휴직을 써야만 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이가 폐렴을 앓는 등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을 수차례 받곤 했습니다. 전화기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됐습니다. 아이에게도, 자신에게도 육아휴직이 절실했습니다.

하지만 광주축협은 '안 된다'며 말리기 바빴습니다. 대체 무슨 이유였을까요?


■ "자녀가 '24개월 미만'인 경우에만 가능"… 과연? 현행법에 어긋나

육아휴직을 희망했다 신청조차 못하고 퇴사한 A씨.광주축협은 자녀가 '24개월 미만'인 경우에만 육아휴직이 가능하다며 A씨의 자녀는 초등학교 2학년이라 휴직이 어렵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행법상 만 8세 이하 자녀를 두거나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둔 경우 육아휴직을 쓸 수 있습니다. '24개월 미만' 자녀를 둔 경우에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는 축협의 주장은 법에 어긋납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육아휴직) ① 사업주는 근로자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입양한 자녀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를 양육하기 위하여 휴직(이하 “육아휴직”이라 한다)을 신청하는 경우에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축협은 A씨를 포함해 육아휴직 희망자 가운데 '24개월 이상' 자녀를 둔 여직원들을 본점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축협 간부는 이들에게 "도대체 왜 육아휴직을 쓰려고 하느냐?", "이기적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결국, 동료 여직원 2명은 육아휴직을 신청조차 못했고, A씨는 회사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수년간 1시간 일찍 출근시켜놓고…. "시간 외 수당 포기해라"

지난 2018년 광주축산농협이 오전 '8시'까지 출근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담겨있는 문서.
축협이 시간 외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축협에서 일하는 직원 B 씨는 입사 이래 줄곧 아침 8시에 출근해왔습니다. 정규 출근 시간인 9시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라는 회사의 지시에 따른 겁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수당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공짜 노동'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A씨 등 전·현직 직원 20명이 노동청에 임금체불 신고를 했습니다.

광주축산농협이 직원들에게 서명하게 했다는 ‘임금채권 청구 포기 동의서’.B씨는 축협이 임금체불이 문제가 되자 직원들에게 수당을 포기하라는 각서를 쓰게 했다고 주장합니다.

동의서는 '자유의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한 사실이 있지만 수당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광주 노동청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과 임금체불 혐의에 더해 노조설립을 방해했다는 신고를 추가로 접수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광주축협은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노동청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 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노동청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주목되는 가운데, 일한 만큼 돈을 받고 법에 보장된 권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노동존중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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