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게 빼앗기는 일자리…노동하는 몸의 가치는?

입력 2021.04.2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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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영화 시대의 가장 위대한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1977)이 웃음으로 버무린, 그러나 산업화 시대에 생산 경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현실을 통렬하게 꼬집은 영화 《모던 타임즈》(1936). 그 뒤로 85년이란 긴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선구적인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전혀 퇴색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일은 당혹스럽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1936)의 한 장면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1936)의 한 장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영화가 그려낸 시대와 현재가 놀랍도록 닮았다고. 흔히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채플린이 연기한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가 거대한 생산 시스템의 부속품 = 기계로 전락했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는 이제 그 일자리마저 박탈당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기계화 = 자동화가 일자리 상실로 이어지는 현실.

그렇다면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비숙련 노동자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로봇이 반복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

 〈Zeros: 오류의 동작〉, 2채널 HD비디오, 13분 20초, 2020 〈Zeros: 오류의 동작〉, 2채널 HD비디오, 13분 20초, 2020

이 두 화면에서 보게 되는 장면은 표정없는 사람들의 딱딱하고 반복적인 움직임입니다.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가동되는 로봇 팔의 움직임을 따라 곡선 드로잉, 직선 드로잉, 텍스트 형식으로 일종의 무보(score)를 만들어 무용수 네 명에게 건넸습니다. 그리고 무용수들은 자기 신체적 역량과 해석에 따라 저마다 개별적인 동작을 만들어내며 주어진 로봇 팔의 단순한 움직임을 점차 복잡한 동작으로 변화시켜가죠.

〈Zeros: 스코어 #1 #2 #3 #4〉, 종이, 펜, 알루미늄, 각 60×80cm, 2020 〈Zeros: 스코어 #1 #2 #3 #4〉, 종이, 펜, 알루미늄, 각 60×80cm, 2020

로봇 작동 설명서와도 같은 '지침'을 받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결코 '설명서'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로봇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동하는 로봇에도 '오류'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오류'는 로봇의 그것과는 다르죠. 그래서 이 영상의 마지막은…


시계 초침 또는 메트로놈을 연상시키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소리가 영상을 보는 내내 긴장감을 높입니다. 한때 인간은 가장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신체를 적응시키는 방법을 연구했고, 최소의 시간에 최대의 생산을 위해 정해진 규칙을 노동하는 인간에게 지키도록 하기도 했죠. 인간인가, 로봇인가. 영상이 던지는 질문은 묵직합니다.

〈I Swear, I Am Not a Robot〉, 4채널 HD 비디오, 23분 53초, 2021〈I Swear, I Am Not a Robot〉, 4채널 HD 비디오, 23분 53초, 2021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이 작품을 뒤로하고 한 층 아래로 내려가면 네 화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무용수들의 또 다른 움직임을 보게 됩니다. 위층에서 본 <오류의 동작>의 연장선 상에 놓인 작품이죠. 로봇의 움직임을 화살표로 단순화한 무보(score)에 따라 이번에도 네 무용수가 저마다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같은 규칙, 다른 움직임. 로봇은 같은 동작을 수행하도록 명령받은 대로만 작동하지만, 무용수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의 신체적 능력에 따라, 동작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사인 사색의 움직임을 만들어내죠. 미세한 시차를 두고 네 화면에 반복해서 표출되는 움직임들은 무용(無用 = 쓸모없음)을 무용(舞踊 = 춤, 몸짓, 움직임)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하는 몸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자리입니다. 전보경 작가는 이렇게 말하죠. 인간의 비효율적 움직임이야말로 로봇의 그것과는 상반되는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위 작품의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맹세해요! 저는 로봇이 아니라고요!"

■전시 정보
제목: <전보경 개인전: 로봇이 아닙니다>
기간: 2021년 5월 16일(일)까지
장소: 서울시 마포구 대안공간 루프
작품: 영상, 설치 등 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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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봇에게 빼앗기는 일자리…노동하는 몸의 가치는?
    • 입력 2021-04-24 08:02:11
    취재K
무성영화 시대의 가장 위대한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1977)이 웃음으로 버무린, 그러나 산업화 시대에 생산 경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현실을 통렬하게 꼬집은 영화 《모던 타임즈》(1936). 그 뒤로 85년이란 긴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선구적인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전혀 퇴색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일은 당혹스럽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1936)의 한 장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영화가 그려낸 시대와 현재가 놀랍도록 닮았다고. 흔히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채플린이 연기한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가 거대한 생산 시스템의 부속품 = 기계로 전락했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는 이제 그 일자리마저 박탈당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기계화 = 자동화가 일자리 상실로 이어지는 현실.

그렇다면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비숙련 노동자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로봇이 반복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

 〈Zeros: 오류의 동작〉, 2채널 HD비디오, 13분 20초, 2020
이 두 화면에서 보게 되는 장면은 표정없는 사람들의 딱딱하고 반복적인 움직임입니다.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가동되는 로봇 팔의 움직임을 따라 곡선 드로잉, 직선 드로잉, 텍스트 형식으로 일종의 무보(score)를 만들어 무용수 네 명에게 건넸습니다. 그리고 무용수들은 자기 신체적 역량과 해석에 따라 저마다 개별적인 동작을 만들어내며 주어진 로봇 팔의 단순한 움직임을 점차 복잡한 동작으로 변화시켜가죠.

〈Zeros: 스코어 #1 #2 #3 #4〉, 종이, 펜, 알루미늄, 각 60×80cm, 2020
로봇 작동 설명서와도 같은 '지침'을 받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결코 '설명서'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로봇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동하는 로봇에도 '오류'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오류'는 로봇의 그것과는 다르죠. 그래서 이 영상의 마지막은…


시계 초침 또는 메트로놈을 연상시키는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소리가 영상을 보는 내내 긴장감을 높입니다. 한때 인간은 가장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신체를 적응시키는 방법을 연구했고, 최소의 시간에 최대의 생산을 위해 정해진 규칙을 노동하는 인간에게 지키도록 하기도 했죠. 인간인가, 로봇인가. 영상이 던지는 질문은 묵직합니다.

〈I Swear, I Am Not a Robot〉, 4채널 HD 비디오, 23분 53초, 2021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이 작품을 뒤로하고 한 층 아래로 내려가면 네 화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무용수들의 또 다른 움직임을 보게 됩니다. 위층에서 본 <오류의 동작>의 연장선 상에 놓인 작품이죠. 로봇의 움직임을 화살표로 단순화한 무보(score)에 따라 이번에도 네 무용수가 저마다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같은 규칙, 다른 움직임. 로봇은 같은 동작을 수행하도록 명령받은 대로만 작동하지만, 무용수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의 신체적 능력에 따라, 동작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사인 사색의 움직임을 만들어내죠. 미세한 시차를 두고 네 화면에 반복해서 표출되는 움직임들은 무용(無用 = 쓸모없음)을 무용(舞踊 = 춤, 몸짓, 움직임)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하는 몸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자리입니다. 전보경 작가는 이렇게 말하죠. 인간의 비효율적 움직임이야말로 로봇의 그것과는 상반되는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위 작품의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맹세해요! 저는 로봇이 아니라고요!"

■전시 정보
제목: <전보경 개인전: 로봇이 아닙니다>
기간: 2021년 5월 16일(일)까지
장소: 서울시 마포구 대안공간 루프
작품: 영상, 설치 등 7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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