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학대 여부’ 물었는데 알레르기 이야기?…“셋째로 다시 와줘”

입력 2021.04.24 (08:02) 수정 2021.04.2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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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치사’ 혐의를 받는 원장이 아이를 누르는 모습(CCTV 화면)‘아동학대치사’ 혐의를 받는 원장이 아이를 누르는 모습(CCTV 화면)

■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숨졌다

아이가 숨졌습니다. 생후 21개월 된 여자아이였습니다. 지난달 30일 대전의 한 어린이집에서입니다. 경찰은 어린이집 원장이 '아이를 재우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수사 중이라고 했습니다. 학대가 있을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취재팀은 일단 아이가 숨진 어린이집으로 갔습니다.

어린이집은 아파트 1층에 있었습니다. 여느 어린이집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작정 문부터 두드렸습니다. 원장이 나왔습니다. 먼저 아이를 재우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물어봤습니다.

원장은 몸짓으로 설명했습니다. 아이가 잘 자도록 옆에 누워 안고 두드려줬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원장이 아이를 재우는 과정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다른 설명을 듣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를 안아줬는데 어떻게 아이가 죽을 수 있냐'고 물었지만 답은 자신도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학대 여부 물었는데…'토마토 알레르기' 이야기

그런 원장이 기자에게 먼저 꺼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숨진 아이에게 토마토 알레르기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아이가 숨진 날 점심시간에 토마토케첩이 들어간 미트볼 요리가 나왔는데, 아이가 유독 많이 먹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이의 부모가 어린이집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마치 중요한 논점은 '학대'가 아니라 '알레르기'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경찰 설명은 달랐습니다. 원장이 아이에게 다리를 올리고 눌렀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숨진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만이 아니라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다리를 올리고 눌렀다'는 설명만으로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리기는 어려웠습니다.

때리거나 가두는 등 그동안 들어온 다른 아동학대 사건과는 양상이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


■ CCTV 공개…학대 정황 뚜렷

아이가 숨지기 전 상황이 담긴 CCTV가 결국 공개됐습니다. 짐작만 했던 학대 정황이 뚜렷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CCTV 영상을 보면 낮잠을 자는 원생들 사이로 어린이집 원장이 누워있습니다. 이불로 꽁꽁 싸맨 무언가에 팔과 다리를 올린 채 몸을 기울여 누르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는 10분 넘게 계속됐습니다. 이불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움직임이 잦아듭니다. 이불 속에 있던 건 생후 21개월 된 여아 A 양이었습니다.

CCTV에는 원장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A 양은 1시간쯤 뒤 숨을 쉬지 않는 상태로 발견돼 결국 숨졌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인은 '질식사'였습니다. 원장은 이런 행위를 하고도 '아이를 재우려던 것'이라고 주장해온 겁니다. A양 부모는 하루아침에 딸을 잃었습니다.


■ 유가족 측 "아동학대살해 혐의 적용해야"

경찰은 원장에 대해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습니다. 앞서 같은 혐의로 신청했던 영장은 검찰이 반려했습니다. 결정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보완수사를 진행해온 경찰은 국과수 부검 결과를 추가해 같은 혐의로 영장을 다시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유족 측은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족 측 변호인은 "아기의 얼굴을 바닥으로 눕히고 이불을 덮게 한 뒤 자신의 체중을 다 실었다는 것은 경험칙상 위험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에게 위험하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그 위험한 행동을 계속했다는 겁니다.

또, '아이들을 재우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해온 원장의 행동은 사실 숨을 쉬지 못하게 압박해 기절을 시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근거로 유족은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적용하는 게 맞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전의 어린이집에서 숨진 A양의 생전 모습대전의 어린이집에서 숨진 A양의 생전 모습

■ "셋째로 다시 와줘"

숨진 A 양은 나무 아래 묻혔습니다. A양의 부모는 애초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아이를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매일 영안실에 찾아가 죽은 아이를 봤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위해 일단 남은 장례 절차는 진행했습니다.

'셋째로 다시 와달라'는 게 첫째였던 A 양을 떠나보낸 부모의 소망입니다. 부모는 A 양이 숨지던 날 어린이집 CCTV를 보며 "셋째로 와달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떠나간 A양이 "다시 자신의 자식으로 다시 와준다면 이번에는 정말 지켜주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에 거꾸로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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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학대 여부’ 물었는데 알레르기 이야기?…“셋째로 다시 와줘”
    • 입력 2021-04-24 08:02:28
    • 수정2021-04-24 08:02:37
    취재후·사건후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받는 원장이 아이를 누르는 모습(CCTV 화면)
■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숨졌다

아이가 숨졌습니다. 생후 21개월 된 여자아이였습니다. 지난달 30일 대전의 한 어린이집에서입니다. 경찰은 어린이집 원장이 '아이를 재우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수사 중이라고 했습니다. 학대가 있을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취재팀은 일단 아이가 숨진 어린이집으로 갔습니다.

어린이집은 아파트 1층에 있었습니다. 여느 어린이집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작정 문부터 두드렸습니다. 원장이 나왔습니다. 먼저 아이를 재우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물어봤습니다.

원장은 몸짓으로 설명했습니다. 아이가 잘 자도록 옆에 누워 안고 두드려줬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원장이 아이를 재우는 과정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다른 설명을 듣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를 안아줬는데 어떻게 아이가 죽을 수 있냐'고 물었지만 답은 자신도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학대 여부 물었는데…'토마토 알레르기' 이야기

그런 원장이 기자에게 먼저 꺼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숨진 아이에게 토마토 알레르기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아이가 숨진 날 점심시간에 토마토케첩이 들어간 미트볼 요리가 나왔는데, 아이가 유독 많이 먹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이의 부모가 어린이집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마치 중요한 논점은 '학대'가 아니라 '알레르기'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경찰 설명은 달랐습니다. 원장이 아이에게 다리를 올리고 눌렀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숨진 것으로 보고 '아동학대'만이 아니라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다리를 올리고 눌렀다'는 설명만으로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리기는 어려웠습니다.

때리거나 가두는 등 그동안 들어온 다른 아동학대 사건과는 양상이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


■ CCTV 공개…학대 정황 뚜렷

아이가 숨지기 전 상황이 담긴 CCTV가 결국 공개됐습니다. 짐작만 했던 학대 정황이 뚜렷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CCTV 영상을 보면 낮잠을 자는 원생들 사이로 어린이집 원장이 누워있습니다. 이불로 꽁꽁 싸맨 무언가에 팔과 다리를 올린 채 몸을 기울여 누르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는 10분 넘게 계속됐습니다. 이불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움직임이 잦아듭니다. 이불 속에 있던 건 생후 21개월 된 여아 A 양이었습니다.

CCTV에는 원장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A 양은 1시간쯤 뒤 숨을 쉬지 않는 상태로 발견돼 결국 숨졌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인은 '질식사'였습니다. 원장은 이런 행위를 하고도 '아이를 재우려던 것'이라고 주장해온 겁니다. A양 부모는 하루아침에 딸을 잃었습니다.


■ 유가족 측 "아동학대살해 혐의 적용해야"

경찰은 원장에 대해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습니다. 앞서 같은 혐의로 신청했던 영장은 검찰이 반려했습니다. 결정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보완수사를 진행해온 경찰은 국과수 부검 결과를 추가해 같은 혐의로 영장을 다시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유족 측은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족 측 변호인은 "아기의 얼굴을 바닥으로 눕히고 이불을 덮게 한 뒤 자신의 체중을 다 실었다는 것은 경험칙상 위험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에게 위험하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그 위험한 행동을 계속했다는 겁니다.

또, '아이들을 재우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해온 원장의 행동은 사실 숨을 쉬지 못하게 압박해 기절을 시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근거로 유족은 '아동학대살해' 혐의를 적용하는 게 맞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전의 어린이집에서 숨진 A양의 생전 모습
■ "셋째로 다시 와줘"

숨진 A 양은 나무 아래 묻혔습니다. A양의 부모는 애초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아이를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매일 영안실에 찾아가 죽은 아이를 봤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위해 일단 남은 장례 절차는 진행했습니다.

'셋째로 다시 와달라'는 게 첫째였던 A 양을 떠나보낸 부모의 소망입니다. 부모는 A 양이 숨지던 날 어린이집 CCTV를 보며 "셋째로 와달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떠나간 A양이 "다시 자신의 자식으로 다시 와준다면 이번에는 정말 지켜주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에 거꾸로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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