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서방, 가상화폐 ‘김프’ 누리고 ‘서울아파트’도 사고

입력 2021.04.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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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서방의 똑똑한 '서울 아파트' 투자

지난 2018년, 중국인 왕 서방(가명)은 '서울의 아파트'가 사고 싶었다. 하지만 중국인은 해외로 연간 5만 달러 이상을 가지고 나갈 수 없다. 방법을 궁리하던 왕서방은 이런 일을 대행해주는 '환치기' 조직으로부터 '신박한' 신종 환치기 수단을 접했다.

우선 아파트 구매 자금을 중국 환치기 조직으로 위안화로 입금했다. 조직원 A의 계좌로 입금된 자금은 중국 안에서 비트코인을 사는 데 쓰였다. 이제는 이 코인을 한국으로 운반할 차례.

한국 운반은 간단하다. 준비물은 하나. 한국 가상화폐 거래소의 계좌다. 당연히 차명계좌다. 한국에 있는 200여 가상화폐 거래소 가운데 실명이 의무인 곳은 4곳에 불과하다. 금융의 세계에선 차명계좌를 만들려면 '실명인 누군가'의 명의로 대포 통장을 만들어야 하지만, 코인의 세계에서 차명계좌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최소한 올 9월까지는 그렇다)

자 이제 중국의 A 계좌에서 한국의 B계좌로 전자지갑상에서 코인을 '전송'만 하면 끝이다. 이 돈을 다시 원화로 바꾸면 계산은 끝. 이후 왕서방은 이 돈을 자기 계좌로 입금하거나 현금으로 지급하는 수법으로 2018년 4억 5천만 원을 국내로 불법 반입했다.

이후 국내 은행 대출도 받아서 결국 시가 11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매수한다.


■ 비트코인으로 '김치 프리미엄' 누리고 '서울 아파트 프리미엄'도 누린다

2018년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은 급등했다. 그만큼 시세 차익을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왕서방이 누렸을 차익은 그뿐만이 아니다.

'김치 프리미엄'도 누렸다. 한국의 비트코인 가격은 다른 나라들보다 10~20% 비쌌다. 따라서 중국에서 산 비트코인을 한국에서 팔았다면 그만큼의 '차익'이 발생했을 것이다.

중국 당국 감시의 눈도 따돌리고, 두 번의 시세 차익을 누리는 이런 거래, 그동안 '가능하다'는 소문은 돌았지만, 실제 적발하기는 쉽지 않았다. 가상화폐 계좌를 털어봐야 차명이 대다수라 실효성이 없었다.

■ 세관 수사팀, 아파트에서 출발해 왕서방의 은밀한 거래 잡았다

관세청 서울 본부세관은 그래서 부동산에서 시작했다.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국내에 정당하게 신고된 부동산은 많지 않다는 점을 주목했다. (외국환거래법 18조 상 비거주자가 국내 부동산을 취득할 경우에는 외국환 은행장 또는 한국은행장에게 자본거래 신고를 해야 한다)

외국인이 국내에서 부동산을 사려면 '국내 소득'이 있거나 '해외 자금 반입'이 있었어야 한다. 서울 세관은 우선 국토부와 함께 서울의 부동산을 산 외국인 가운데, 이 두 '공식적인 경로'로 자금 거래가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사망을 좁혀갔다.

최근 3년간 서울지역의 시가 5억 원 초과 아파트 매수자 가운데 매수자금 출처가 불명확한 500명이 1차 표적이었다.

그렇게 밝힌 사례가 위 '왕서방(가명)'등 61명이다. 서울의 아파트 55채를 샀다. 시가 850억 원에 달한다. 한 채 평균 가격이 15억 5천만 원에 달하는 것만 봐도 알겠지만 대부분 서울 노른자위 땅의 아파트다. 강남이 13건(취득금액 315억 원), 서초가 5건(102억 원), 송파 4건(57억원)으로 취득가액 기준 474억 원에 달한다.

물론 이들이 중국과 한국에서 돈을 빼돌린 방식에는 가상화폐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환치기 수법도 있었다. 또 국내에서 물류업체를 운영하면서 사업소득을 속이는 방식으로 소득을 탈루한 중국인도 있었다.


■ 이게 다가 아니다... 10개 환치기 조직 포착,
가상화폐 등 이용 신종 환치기 1조 4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

관세당국은 상당수 환치기가 '중국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실제로 아파트 불법 매수 외국인 61명 가운데 34명이 중국 국적이다. 같은 혐의로 아직 추가 수사 중인 외국인도 37명이다. 그런데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서울세관은 수사 과정에서 자금의 불법 반입통로 역할을 한 환치기 조직 10개를 포착했다. 환치기의 '몸통'이라 할 이 조직들 역시 추적 중에 있는데, 이들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이용한 신종 환치기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 됐다. 불법 이전 자금의 규모는 무려 1조 4천억 원에 달한다. (모두 가상화폐를 이용했을지는 추가 수사를 통해 밝힐 부분이다)

■ 지난주 총리실 일제 단속... 핵심은 '불법 송금' 등 자금 출처
시장 과열 앞에 '불법 송금' 꺼내 든 건 왕서방 때문?

지난주 총리실의 가상화폐 특별 일제 단속 계획.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불법 송금 단속이 맨 앞에 있었다. 다단계 사기나 리딩방 등의 대책과 함께였다.

약간은 어색한 느낌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시장 과열이 이상 수준으로 진단되어 나온 대책인데, 집중 단속 대상은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외환 불법 송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왕서방'의 '서울 부동산' 쇼핑에서 드러난 '환치기 내막'을 보니 의문이 다소 해소된다. 그리고 아직 전모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1조 4천억 원대의 불법 환치기 조직 열 개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자금과, 이 환치기 조직은 '서울 아파트 500개'가 최종 기착점일 경우를 전제로 잡은 단서다. 거꾸로 말하면 '서울의 다른 아파트나 재개발 빌라', '지역의 부동산'을 구입한 외국인, 또 구매에 차명을 쓴 외국인, 그리고 부동산이 아닌 다른 자산의 형태로 국내 자금을 은닉한 외국인은 지금도 여전히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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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서방, 가상화폐 ‘김프’ 누리고 ‘서울아파트’도 사고
    • 입력 2021-04-27 17:57:37
    취재K

■ 왕서방의 똑똑한 '서울 아파트' 투자

지난 2018년, 중국인 왕 서방(가명)은 '서울의 아파트'가 사고 싶었다. 하지만 중국인은 해외로 연간 5만 달러 이상을 가지고 나갈 수 없다. 방법을 궁리하던 왕서방은 이런 일을 대행해주는 '환치기' 조직으로부터 '신박한' 신종 환치기 수단을 접했다.

우선 아파트 구매 자금을 중국 환치기 조직으로 위안화로 입금했다. 조직원 A의 계좌로 입금된 자금은 중국 안에서 비트코인을 사는 데 쓰였다. 이제는 이 코인을 한국으로 운반할 차례.

한국 운반은 간단하다. 준비물은 하나. 한국 가상화폐 거래소의 계좌다. 당연히 차명계좌다. 한국에 있는 200여 가상화폐 거래소 가운데 실명이 의무인 곳은 4곳에 불과하다. 금융의 세계에선 차명계좌를 만들려면 '실명인 누군가'의 명의로 대포 통장을 만들어야 하지만, 코인의 세계에서 차명계좌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최소한 올 9월까지는 그렇다)

자 이제 중국의 A 계좌에서 한국의 B계좌로 전자지갑상에서 코인을 '전송'만 하면 끝이다. 이 돈을 다시 원화로 바꾸면 계산은 끝. 이후 왕서방은 이 돈을 자기 계좌로 입금하거나 현금으로 지급하는 수법으로 2018년 4억 5천만 원을 국내로 불법 반입했다.

이후 국내 은행 대출도 받아서 결국 시가 11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매수한다.


■ 비트코인으로 '김치 프리미엄' 누리고 '서울 아파트 프리미엄'도 누린다

2018년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은 급등했다. 그만큼 시세 차익을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왕서방이 누렸을 차익은 그뿐만이 아니다.

'김치 프리미엄'도 누렸다. 한국의 비트코인 가격은 다른 나라들보다 10~20% 비쌌다. 따라서 중국에서 산 비트코인을 한국에서 팔았다면 그만큼의 '차익'이 발생했을 것이다.

중국 당국 감시의 눈도 따돌리고, 두 번의 시세 차익을 누리는 이런 거래, 그동안 '가능하다'는 소문은 돌았지만, 실제 적발하기는 쉽지 않았다. 가상화폐 계좌를 털어봐야 차명이 대다수라 실효성이 없었다.

■ 세관 수사팀, 아파트에서 출발해 왕서방의 은밀한 거래 잡았다

관세청 서울 본부세관은 그래서 부동산에서 시작했다.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국내에 정당하게 신고된 부동산은 많지 않다는 점을 주목했다. (외국환거래법 18조 상 비거주자가 국내 부동산을 취득할 경우에는 외국환 은행장 또는 한국은행장에게 자본거래 신고를 해야 한다)

외국인이 국내에서 부동산을 사려면 '국내 소득'이 있거나 '해외 자금 반입'이 있었어야 한다. 서울 세관은 우선 국토부와 함께 서울의 부동산을 산 외국인 가운데, 이 두 '공식적인 경로'로 자금 거래가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사망을 좁혀갔다.

최근 3년간 서울지역의 시가 5억 원 초과 아파트 매수자 가운데 매수자금 출처가 불명확한 500명이 1차 표적이었다.

그렇게 밝힌 사례가 위 '왕서방(가명)'등 61명이다. 서울의 아파트 55채를 샀다. 시가 850억 원에 달한다. 한 채 평균 가격이 15억 5천만 원에 달하는 것만 봐도 알겠지만 대부분 서울 노른자위 땅의 아파트다. 강남이 13건(취득금액 315억 원), 서초가 5건(102억 원), 송파 4건(57억원)으로 취득가액 기준 474억 원에 달한다.

물론 이들이 중국과 한국에서 돈을 빼돌린 방식에는 가상화폐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환치기 수법도 있었다. 또 국내에서 물류업체를 운영하면서 사업소득을 속이는 방식으로 소득을 탈루한 중국인도 있었다.


■ 이게 다가 아니다... 10개 환치기 조직 포착,
가상화폐 등 이용 신종 환치기 1조 4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

관세당국은 상당수 환치기가 '중국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실제로 아파트 불법 매수 외국인 61명 가운데 34명이 중국 국적이다. 같은 혐의로 아직 추가 수사 중인 외국인도 37명이다. 그런데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서울세관은 수사 과정에서 자금의 불법 반입통로 역할을 한 환치기 조직 10개를 포착했다. 환치기의 '몸통'이라 할 이 조직들 역시 추적 중에 있는데, 이들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이용한 신종 환치기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 됐다. 불법 이전 자금의 규모는 무려 1조 4천억 원에 달한다. (모두 가상화폐를 이용했을지는 추가 수사를 통해 밝힐 부분이다)

■ 지난주 총리실 일제 단속... 핵심은 '불법 송금' 등 자금 출처
시장 과열 앞에 '불법 송금' 꺼내 든 건 왕서방 때문?

지난주 총리실의 가상화폐 특별 일제 단속 계획.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불법 송금 단속이 맨 앞에 있었다. 다단계 사기나 리딩방 등의 대책과 함께였다.

약간은 어색한 느낌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시장 과열이 이상 수준으로 진단되어 나온 대책인데, 집중 단속 대상은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외환 불법 송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왕서방'의 '서울 부동산' 쇼핑에서 드러난 '환치기 내막'을 보니 의문이 다소 해소된다. 그리고 아직 전모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1조 4천억 원대의 불법 환치기 조직 열 개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자금과, 이 환치기 조직은 '서울 아파트 500개'가 최종 기착점일 경우를 전제로 잡은 단서다. 거꾸로 말하면 '서울의 다른 아파트나 재개발 빌라', '지역의 부동산'을 구입한 외국인, 또 구매에 차명을 쓴 외국인, 그리고 부동산이 아닌 다른 자산의 형태로 국내 자금을 은닉한 외국인은 지금도 여전히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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