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수술’ 언제까지…또 미뤄진 수술실 CCTV법

입력 2021.04.29 (07:00) 수정 2021.04.29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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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수술'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 마취된 환자가 잠든 사이, 환자 동의 없이 전혀 모르는 다른 의사가 와서 대신 수술을 하는 행위입니다. 폐쇄된 수술실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행위라 의료사고 위험도 큽니다.

이나금씨도 지난 2016년 아들 권대희 씨를 유령 수술로 잃었습니다. 권 씨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유일한 증거는 수술실 CCTV였습니다. CCTV에는 권 씨가 누워있는 수술대 밑의 흥건한 피와 그 피를 아무렇지 않게 밀대로 미는 모습, 간호조무사들이 화장하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 등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이 씨는 수술실에 CCTV가 없었다면 숨진 아들의 진상을 밝힐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씨가 이른바 '권대희 법'으로 불리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제정을 요구하게 된 이유입니다. 실제로 전국에 전신마취 수술실을 갖춘 병원은 1,800여 곳에 이르지만, 수술실 안에 CCTV를 갖춘 병원은 14%에 불과합니다.

국회도 이 씨와 같은 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료인 면허 관리 강화법 ▲의료인 행청처분 이력 공개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법 등을 이른바 '환자보호 3법'이라고 말하며 처리 의지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 소위원회를 통과한 건 의료인 면허 관리 강화법뿐입니다.


■ 수술실 CCTV 어디에 설치해야 하나?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법'은 21대 국회 개원 이후 연이어 발의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수술실 CCTV 설치·운영과 촬영한 영상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같은 당 안규백 의원은 수술실 CCTV 영상 촬영과 함께 음성 녹음까지 포함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민주당 신현영 의원도 수술실 등에 CCTV 설치 근거를 마련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지난해부터 복지위 소위에선 이들 법안을 논의했지만, 여·야 그리고 정부까지 서로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습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환자 권익 보호와 의료 사고 방지를 내세웠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CCTV가 설치되면 의사들이 방어적 진료를 하게 돼 오히려 환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2월 18일 열린 회의에서 '수술실 입구-의무 설치, 수술실 내부-자율 설치'로 여야의 중론이 모였지만,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다시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당시 회의록에서 이런 정황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정부는 기본적인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괄적으로 모든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면 갈등이 커질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기본적으로 법안 취지에 공감하고 최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해야 된다 그런 입장입니다. 다만 한꺼번에 의무화했을 때 부작용이나 갈등이 있고 또 이게 대상자가 워낙 많습니다. … 총괄적인 의견은 '의료계, 환자단체 등과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서' 거기에 저희 대안이 '공공의료기관 설치의무화, 민간의료기관의 수술실 CCTV 자율설치 법적 근거 마련, 입구 설치' 이런 방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 강도태/보건복지부 제 2차관

실제로 많은 의원이 정부 입장과 비슷한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강병원 의원의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강 의원의 발언을 살펴볼까요.

저희가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해서 뭔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려고 한다 그러면, 자율로 맡기자는 얘기는 우리가 법 처리할 필요가 없고 논의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자율로 하는데 왜 우리가 여기서 논의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자율로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고요.… 수술실 내부를 어떻게 할 거냐 이게 지금 쟁점 아니겠습니까? 이게 쟁점인데 이 의무를 공공기관이라고 해서 먼저 한다? 저는 그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좀 더 시스템이 잘되어 있고 또 책임 있게 의료를 하고 더 많은 국민들의 중요한 필수의료들을 담당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 정도를 먼저 실시하는 것이 의미 있는 족적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 강병원/더불어민주당의원

의원들 사이의 이견으로 당시 법안은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고, 결국 어제(28일) 복지위 소위가 다시 열렸습니다.

쟁점은 ▲수술실 CCTV 설치 위치와 ▲민간병원까지 CCTV 설치를 의무화할지 여부 등 이었습니다. 하지만 별 진전은 없었습니다. 오후 늦게 법안이 상정됐고, 채 10분도 안 돼 논의는 끝났습니다. 다음 달 공청회를 열어 찬반양론 의견을 듣자는 결론만 낸 겁니다.

소위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국민 여론은 있지만, 당사자 간 이견이 너무 첨예하다 보니 전문가들과 이해관계자들을 다 모신 뒤 5월 안에 국회에서 공청회를 하고, 국민들께서도 이를 지켜볼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며 "지난번 소위에서 출입구 쪽에만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중론이 모인 뒤에도 국민 여론과 환자 단체 등 반대가 많다 보니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을 필요성이 커졌다"고 논의 내용을 전했습니다.


■ 기약없는 피해자들의 기다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법의 통과를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19대 국회와 20대 국회에서는 의료계의 강한 반대와 국회 상임위원회의 소극적인 태도로 '수술실 CCTV 법'은 심의 한번 되지 않고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면서 "수술실에서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는 '수술실 CCTV법'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CCTV는 수술실 '입구'가 아닌 '내부'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40일 넘게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나금씨도 국회에서 법안 심사가 열리기 전 KBS와의 통화에서 "시위를 계속해 지쳤지만, 오늘은 조금 덜 초조하다"며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달리 다시 국회만 바라보며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 시작한 싸움, 언제쯤이면 어머니의 이 싸움은 끝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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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령수술’ 언제까지…또 미뤄진 수술실 CCTV법
    • 입력 2021-04-29 07:00:12
    • 수정2021-04-29 08:16:14
    취재K

'유령 수술'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 마취된 환자가 잠든 사이, 환자 동의 없이 전혀 모르는 다른 의사가 와서 대신 수술을 하는 행위입니다. 폐쇄된 수술실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행위라 의료사고 위험도 큽니다.

이나금씨도 지난 2016년 아들 권대희 씨를 유령 수술로 잃었습니다. 권 씨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유일한 증거는 수술실 CCTV였습니다. CCTV에는 권 씨가 누워있는 수술대 밑의 흥건한 피와 그 피를 아무렇지 않게 밀대로 미는 모습, 간호조무사들이 화장하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 등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이 씨는 수술실에 CCTV가 없었다면 숨진 아들의 진상을 밝힐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씨가 이른바 '권대희 법'으로 불리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 제정을 요구하게 된 이유입니다. 실제로 전국에 전신마취 수술실을 갖춘 병원은 1,800여 곳에 이르지만, 수술실 안에 CCTV를 갖춘 병원은 14%에 불과합니다.

국회도 이 씨와 같은 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료인 면허 관리 강화법 ▲의료인 행청처분 이력 공개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법 등을 이른바 '환자보호 3법'이라고 말하며 처리 의지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 소위원회를 통과한 건 의료인 면허 관리 강화법뿐입니다.


■ 수술실 CCTV 어디에 설치해야 하나?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법'은 21대 국회 개원 이후 연이어 발의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수술실 CCTV 설치·운영과 촬영한 영상 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같은 당 안규백 의원은 수술실 CCTV 영상 촬영과 함께 음성 녹음까지 포함한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민주당 신현영 의원도 수술실 등에 CCTV 설치 근거를 마련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지난해부터 복지위 소위에선 이들 법안을 논의했지만, 여·야 그리고 정부까지 서로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습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환자 권익 보호와 의료 사고 방지를 내세웠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CCTV가 설치되면 의사들이 방어적 진료를 하게 돼 오히려 환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2월 18일 열린 회의에서 '수술실 입구-의무 설치, 수술실 내부-자율 설치'로 여야의 중론이 모였지만,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다시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당시 회의록에서 이런 정황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정부는 기본적인 법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괄적으로 모든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면 갈등이 커질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기본적으로 법안 취지에 공감하고 최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해야 된다 그런 입장입니다. 다만 한꺼번에 의무화했을 때 부작용이나 갈등이 있고 또 이게 대상자가 워낙 많습니다. … 총괄적인 의견은 '의료계, 환자단체 등과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서' 거기에 저희 대안이 '공공의료기관 설치의무화, 민간의료기관의 수술실 CCTV 자율설치 법적 근거 마련, 입구 설치' 이런 방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 강도태/보건복지부 제 2차관

실제로 많은 의원이 정부 입장과 비슷한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강병원 의원의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강 의원의 발언을 살펴볼까요.

저희가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해서 뭔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려고 한다 그러면, 자율로 맡기자는 얘기는 우리가 법 처리할 필요가 없고 논의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자율로 하는데 왜 우리가 여기서 논의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자율로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고요.… 수술실 내부를 어떻게 할 거냐 이게 지금 쟁점 아니겠습니까? 이게 쟁점인데 이 의무를 공공기관이라고 해서 먼저 한다? 저는 그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좀 더 시스템이 잘되어 있고 또 책임 있게 의료를 하고 더 많은 국민들의 중요한 필수의료들을 담당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 정도를 먼저 실시하는 것이 의미 있는 족적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 강병원/더불어민주당의원

의원들 사이의 이견으로 당시 법안은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고, 결국 어제(28일) 복지위 소위가 다시 열렸습니다.

쟁점은 ▲수술실 CCTV 설치 위치와 ▲민간병원까지 CCTV 설치를 의무화할지 여부 등 이었습니다. 하지만 별 진전은 없었습니다. 오후 늦게 법안이 상정됐고, 채 10분도 안 돼 논의는 끝났습니다. 다음 달 공청회를 열어 찬반양론 의견을 듣자는 결론만 낸 겁니다.

소위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국민 여론은 있지만, 당사자 간 이견이 너무 첨예하다 보니 전문가들과 이해관계자들을 다 모신 뒤 5월 안에 국회에서 공청회를 하고, 국민들께서도 이를 지켜볼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며 "지난번 소위에서 출입구 쪽에만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중론이 모인 뒤에도 국민 여론과 환자 단체 등 반대가 많다 보니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을 필요성이 커졌다"고 논의 내용을 전했습니다.


■ 기약없는 피해자들의 기다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은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법의 통과를 요구했습니다.

이들은 "19대 국회와 20대 국회에서는 의료계의 강한 반대와 국회 상임위원회의 소극적인 태도로 '수술실 CCTV 법'은 심의 한번 되지 않고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면서 "수술실에서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는 '수술실 CCTV법'의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CCTV는 수술실 '입구'가 아닌 '내부'에 설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40일 넘게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나금씨도 국회에서 법안 심사가 열리기 전 KBS와의 통화에서 "시위를 계속해 지쳤지만, 오늘은 조금 덜 초조하다"며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달리 다시 국회만 바라보며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 시작한 싸움, 언제쯤이면 어머니의 이 싸움은 끝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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