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노모 만나러 가다 타이어 날벼락…앞유리 ‘와장창’
입력 2021.04.29 (07:00)
수정 2021.04.2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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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인천 남동구에 거주하는 60대 여성 고 모 씨는 충남 홍성군에 사시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어머니가 올해로 100세가 됐지만, 직장 근무 때문에 다음 달 어버이날에 찾아갈 수 없어 미리 인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평택시흥 고속도로를 달리던 고 씨. 그런데 중앙분리대 너머 반대편 차선에서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물체를 피하려고 고 씨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운전대에 갖다 붙였습니다.
고 씨는 "고속도로 주행 중에 날아온 타이어와 충돌해 사고가 나는 영상을 TV에서 봤던 게 순간적으로 생각이 났다"라며 "머리에 맞으면 죽을 것 같아 몸을 숨겼다"라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지난 22일 고 씨의 고속도로 낙하물 사고 장면
잠시 후 '퍽' 소리와 함께 차량 앞유리가 깨졌고 유리 파편은 차량 내부에 흩어졌습니다.
고 씨는 서둘러 비상등을 켠 채 천천히 차를 몰고 백여 미터 앞에 있던 휴게소로 피했습니다. 이 일을 경찰에 신고한 고 씨는 결국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견인차에 끌려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물체가 조수석 쪽과 충돌하면서 파편에 맞지 않아 다친 곳은 없었지만, 차량 유리를 교체하고 블랙박스를 수리하면서 2백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습니다.
타이어 파편과 충돌한 피해 차량
■ 검은 물체의 정체는? 블랙박스 확인해보니…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해 보니, 고속도로 중앙 분리대를 넘어와 고 씨 차량과 부딪친 물체는 찢어진 타이어의 파편이었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대형 트럭이 지나가면서 타이어 조각이 날아오는 장면이 영상에 담겨 있었습니다.
고속도로 낙하물 사고를 당한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지만, 고 씨는 여전히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가해 차량을 찾아야 하지만 수사에 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를 조사하고 있는 인천경찰청 고속도로 순찰대는 정확한 사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블랙박스 영상만 아니라 고속도로 CCTV 영상 자료도 확보하려고 했지만, 사고 상황을 찍은 CCTV가 없어 애를 먹고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떨어진 타이어 파편을 트럭이 밟고 가면서 날아와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장소를 비추는 CCTV가 없어 파편을 떨어뜨린 차량이나 밟고 지나간 차량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 사망으로 이어지는 도로 낙하물 사고
경찰청은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낙하물 사고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총 135건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사고로 4명이 숨졌고, 294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는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고속도로 구간에만 한정된 것입니다. 민간자본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고를 고려하면 실제 낙하물 사고와 그로 인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낙하물 사고는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국도, 시도, 지방도 등 다른 도로에서도 빈번합니다.
2015년부터 5년간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 등에서 발생한 낙하물 사고는 모두 1천7백28건으로, 25명이 목숨을 잃었고 2천6백74명이 다쳤습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고속도로 낙하물(화물차 판스프링) 사고 사진
■ 가해자 찾기 어려워 배상은 막막, 지원법이 발의는 됐지만…
심각한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도로 낙하물 사고지만 피해자가 배상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가해 차량을 특정해야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8년 2월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에 화물차 판스프링(차량 바퀴 충격을 줄여주는 장치)이 날아와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한 버스가 도로에 떨어진 판스프링을 차량 바퀴로 밟아 튕겨 사망 사고를 유발한 것이었는데, 해당 운전자를 찾는 데 75일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가해자를 찾는다면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생기지만,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아예 찾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고속도로 순찰대 관계자는 " CCTV에 찍히지 않는 고속도로 구간도 많고 CCTV의 주목적이 통행 흐름을 확인하는 데 있어 가해 차량을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며 “자료 수집이 어려워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사고도 절반 정도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도로 낙하물 사고를 두고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는 없는 사고'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가해자를 찾지 못한 피해자들은 도로 관리 주체인 한국도로공사의 책임을 묻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배상받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낙하물 관련 소송은 612건이었지만, 도로공사가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인정돼 배상 명령이 결정된 건 7건에 그쳤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 모습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해자를 찾지 못한 도로 낙하물 사고 피해자를 돕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2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개정안이 상정됐습니다. 뺑소니 사고나 무보험 차량에 피해를 본 경우처럼 도로 낙하물 사고 피해를 입었지만 가해자를 찾지 못해 배상을 못 받는 피해자(사망·부상)를 자동차손해배상 보장사업으로 지원하자는 내용의 법안입니다.
하지만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됐다가 별다른 논의 없이 11개월 동안 계류하다 폐기됐습니다. 때문에 이번 국회에서 가해자를 못 찾아도, 도로 낙하물로 인한 인명 피해를 배상받을 길이 열릴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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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4-29 07:00:12
- 수정2021-04-29 18:16:42
지난 22일 인천 남동구에 거주하는 60대 여성 고 모 씨는 충남 홍성군에 사시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어머니가 올해로 100세가 됐지만, 직장 근무 때문에 다음 달 어버이날에 찾아갈 수 없어 미리 인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평택시흥 고속도로를 달리던 고 씨. 그런데 중앙분리대 너머 반대편 차선에서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물체를 피하려고 고 씨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운전대에 갖다 붙였습니다.
고 씨는 "고속도로 주행 중에 날아온 타이어와 충돌해 사고가 나는 영상을 TV에서 봤던 게 순간적으로 생각이 났다"라며 "머리에 맞으면 죽을 것 같아 몸을 숨겼다"라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잠시 후 '퍽' 소리와 함께 차량 앞유리가 깨졌고 유리 파편은 차량 내부에 흩어졌습니다.
고 씨는 서둘러 비상등을 켠 채 천천히 차를 몰고 백여 미터 앞에 있던 휴게소로 피했습니다. 이 일을 경찰에 신고한 고 씨는 결국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고 견인차에 끌려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물체가 조수석 쪽과 충돌하면서 파편에 맞지 않아 다친 곳은 없었지만, 차량 유리를 교체하고 블랙박스를 수리하면서 2백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습니다.
■ 검은 물체의 정체는? 블랙박스 확인해보니…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해 보니, 고속도로 중앙 분리대를 넘어와 고 씨 차량과 부딪친 물체는 찢어진 타이어의 파편이었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대형 트럭이 지나가면서 타이어 조각이 날아오는 장면이 영상에 담겨 있었습니다.
고속도로 낙하물 사고를 당한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났지만, 고 씨는 여전히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가해 차량을 찾아야 하지만 수사에 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를 조사하고 있는 인천경찰청 고속도로 순찰대는 정확한 사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블랙박스 영상만 아니라 고속도로 CCTV 영상 자료도 확보하려고 했지만, 사고 상황을 찍은 CCTV가 없어 애를 먹고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떨어진 타이어 파편을 트럭이 밟고 가면서 날아와 사고가 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장소를 비추는 CCTV가 없어 파편을 떨어뜨린 차량이나 밟고 지나간 차량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 사망으로 이어지는 도로 낙하물 사고
경찰청은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낙하물 사고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총 135건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사고로 4명이 숨졌고, 294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는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고속도로 구간에만 한정된 것입니다. 민간자본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고를 고려하면 실제 낙하물 사고와 그로 인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낙하물 사고는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국도, 시도, 지방도 등 다른 도로에서도 빈번합니다.
2015년부터 5년간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 등에서 발생한 낙하물 사고는 모두 1천7백28건으로, 25명이 목숨을 잃었고 2천6백74명이 다쳤습니다.
■ 가해자 찾기 어려워 배상은 막막, 지원법이 발의는 됐지만…
심각한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도로 낙하물 사고지만 피해자가 배상을 받기는 어렵습니다. 가해 차량을 특정해야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8년 2월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에 화물차 판스프링(차량 바퀴 충격을 줄여주는 장치)이 날아와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한 버스가 도로에 떨어진 판스프링을 차량 바퀴로 밟아 튕겨 사망 사고를 유발한 것이었는데, 해당 운전자를 찾는 데 75일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가해자를 찾는다면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생기지만,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아예 찾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고속도로 순찰대 관계자는 " CCTV에 찍히지 않는 고속도로 구간도 많고 CCTV의 주목적이 통행 흐름을 확인하는 데 있어 가해 차량을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며 “자료 수집이 어려워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사고도 절반 정도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도로 낙하물 사고를 두고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는 없는 사고'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가해자를 찾지 못한 피해자들은 도로 관리 주체인 한국도로공사의 책임을 묻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배상받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낙하물 관련 소송은 612건이었지만, 도로공사가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인정돼 배상 명령이 결정된 건 7건에 그쳤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해자를 찾지 못한 도로 낙하물 사고 피해자를 돕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2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는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개정안이 상정됐습니다. 뺑소니 사고나 무보험 차량에 피해를 본 경우처럼 도로 낙하물 사고 피해를 입었지만 가해자를 찾지 못해 배상을 못 받는 피해자(사망·부상)를 자동차손해배상 보장사업으로 지원하자는 내용의 법안입니다.
하지만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됐다가 별다른 논의 없이 11개월 동안 계류하다 폐기됐습니다. 때문에 이번 국회에서 가해자를 못 찾아도, 도로 낙하물로 인한 인명 피해를 배상받을 길이 열릴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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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기자 hono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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