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의 ‘전류 전쟁’을 다룬 영화 ‘커런트 워’
■ 100년 만의 '전류 전쟁'...전남 에너지신산업 규제자유특구
영화 '커런트 워(전류 전쟁)'는 19세기 후반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가 전기 송전 방식을 놓고 벌인 전쟁을 그린 영화입니다.
에디슨은 직류(DC) 송전 방식을, 테슬라는 교류(AC)를 주장했죠. 100년 전엔 테슬라의 교류가 승리합니다. 변압기로 전압을 높일 수 있고, 먼 곳까지 송전이 유리했던 겁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대부분 이 교류 방식입니다. 그런데 '직류'가 다시 뜨고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재생에너지는 대부분 직류를 이용하는데요. 직류로 생산된 전기를 바로 보내는 기술이 필요해진 겁니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한 '전남 에너지신산업 규제자유특구'는 바로 이러한 전기의 직류송전을 실험하는 사업입니다. '중전압 직류송전(MVDC)' 실증인데요. 적은 규모의 직류송전 실증은 많이 이뤄졌지만, 중규모 전압으로 실험해보는건 처음 시도해보는 일이었습니다.
전남 에너지신산업 규제자유특구 '중전압 직류송전(MVDC)' 실증사업 도식도
■ 330억원대 사업 시작부터 '흔들'...'무자격' 사업자가 참여
기대와 달리 사업은 시작부터 흔들렸습니다. 전남 특구사업에는 14개 사업자가 참여하고 있는데, 발전사업을 맡았던 5개 사업자가 중도 하차한 겁니다.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발전사업을 하려면 발전사업과 개발행위 허가가 둘 다 있어야 하는데, 둘 중 하나가 없었던 겁니다.
영산강 발전이 그 사업자인데요. 선박 관련 회사가 발전사업을 해보겠다며 만든 주식 1주짜리 특수목적법인인데, 애초부터 허가를 받기란 불가능했습니다.
사업 부지도 없이 국토부 소유 영산강저류지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려 했는데, 국토부에서 특혜 소지가 있다며 10년째 점용허가를 내주지 않은 거죠(실제 저류지는 지난해 여름 영산강이 범람했을때 물그릇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특구사업인 '직류송전'을 실증하려면 전력이 필요한데, 이렇게 발전원이 무산되자 사업은 계속 지연되고 계획도 수정해야 했습니다.
결국 전남 나주 인근 170개 소규모 태양광 업체로부터 전력을 받기로 했는데요. 추가 선로 비용도 들고, 전력을 빌리니 전기세도 내야 합니다.
나주 혁신산업단지 완충녹지를 불법 점용한 ‘인도형 태양광’ 시설
■ '무면허' 업체가 태양광 '불법 시공'...주관기관 前 원장이 재취업
문제는 또 있습니다. 전라남도는 지난해 정부 3차 추경예산을 받아 100억원대 '인도형 태양광' 사업을 추가했는데요.
나주 혁신산업단지 1㎞ 구간 인도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여기서 생산한 전력을 2㎞ 떨어진 복합형 주차타워까지 '직류'로 연결해서 전기차 충전도 하고 직접 이용해보는 소규모 직류송전 실증입니다.
특구사업자로 지정된 나주의 한 태양광 업체가 공사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완공을 앞둔 지난달, 나주시가 공사 중지를 통보합니다.
'공원녹지법' 위반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태양광 패널이 녹지를 불법 점용한 면적은 1,800㎡, 경미한 위반이 아니죠. 나주시는 녹지 '원상회복'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실상 시설 철거 명령입니다.
지금까지 20억 원이 투입됐는데, 철거에 재설치 예산이 추가로 들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업체, 사업자로 선정되던 지난해 8월 당시 전기공사에 꼭 필요한 '전기공사업' 면허도 없었습니다.
특구사업을 총괄하던 전 녹색에너지연구원장은 직무와 관련이 있는 이 업체에 지난 2월 고문으로 재취업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재는 태양광에 문제가 생기자 퇴사한 상탭니다.
전남 에너지신산업 규제자유특구 주관기관인 ‘녹색에너지연구원’
■ 평가 과정 '비공개'…'석연치 않은' 사업자 선정 과정
허가 없는 발전사업자, 면허 없는 전기공사업자, 도대체 어떻게 특구사업에 참여하게 된 걸까요?
사업을 주관한 녹색에너지연구원은 특구 지정을 준비하던 지난 2019년, 사업자들을 이렇게 모았습니다.
사업자 수요조사를 공고하지 않고, 특구사업 설명회에는 아는 20여개 업체만 골라 참석 요청 공문을 보냅니다.
나주 혁신산단에 입주한 대다수 에너지 업체들은 공문을 받지 못했죠. 사업 참여 신청서를 제출한 업체는 모두 10곳인데, 이 중 두 곳이 탈락합니다. 탈락한 업체들은 어떤 평가 과정에 의해 탈락했는지 이유를 듣지 못했습니다.
반면, '허가도 없고, 면허도 없는' 사업자들은 특구사업자로 지정됐습니다.
취재팀이 사업자 선정 과정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지만, 녹색에너지연구원은 "내부 회의를 거쳐 선정했고, 평가 과정에 대한 공식 자료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 감사 착수…연구원 "사업자 선정 과정 개편"
'불법'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특구사업 주관기관은 전라남도 산하 출연기관인 녹색에너지연구원입니다.
시공과 설계는 각각 다른 사업자가 맡았고, 지금까지 구조물 공사는 자재를 납품한 제3의 업체가 진행했습니다.
녹지 침범 가능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인도 점용허가를 내준 나주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겁니다. 책임을 가리기 위해 경찰 수사와 법적 소송도 불가피해 보입니다.
감사도 시작됐습니다. 태양광 시설의 설계와 발주, 감리에 대한 회계감사와 전 녹색에너지연구원장의 특구사업체 재취업 적법성에 대한 감사가 진행 중입니다.
주관기관인 녹색에너지연구원은 사업자 심사 방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소관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도 허술한 사업자 선정 방식을 다시 검토하고 있습니다.
규제자유특구 자체가 규제 완화를 통해 혁신 기술을 개발하도록 고안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본적인 법령을 위반하면서까지 사업을 진행하라고 허용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공정한 감사가 이뤄질지, 불법이 제대로 시정될지 앞으로도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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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자격·무면허·불법까지 ‘전남 규제자유특구’…결국 감사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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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4-29 09:13:20
■ 100년 만의 '전류 전쟁'...전남 에너지신산업 규제자유특구
영화 '커런트 워(전류 전쟁)'는 19세기 후반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가 전기 송전 방식을 놓고 벌인 전쟁을 그린 영화입니다.
에디슨은 직류(DC) 송전 방식을, 테슬라는 교류(AC)를 주장했죠. 100년 전엔 테슬라의 교류가 승리합니다. 변압기로 전압을 높일 수 있고, 먼 곳까지 송전이 유리했던 겁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대부분 이 교류 방식입니다. 그런데 '직류'가 다시 뜨고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재생에너지는 대부분 직류를 이용하는데요. 직류로 생산된 전기를 바로 보내는 기술이 필요해진 겁니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한 '전남 에너지신산업 규제자유특구'는 바로 이러한 전기의 직류송전을 실험하는 사업입니다. '중전압 직류송전(MVDC)' 실증인데요. 적은 규모의 직류송전 실증은 많이 이뤄졌지만, 중규모 전압으로 실험해보는건 처음 시도해보는 일이었습니다.
■ 330억원대 사업 시작부터 '흔들'...'무자격' 사업자가 참여
기대와 달리 사업은 시작부터 흔들렸습니다. 전남 특구사업에는 14개 사업자가 참여하고 있는데, 발전사업을 맡았던 5개 사업자가 중도 하차한 겁니다.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발전사업을 하려면 발전사업과 개발행위 허가가 둘 다 있어야 하는데, 둘 중 하나가 없었던 겁니다.
영산강 발전이 그 사업자인데요. 선박 관련 회사가 발전사업을 해보겠다며 만든 주식 1주짜리 특수목적법인인데, 애초부터 허가를 받기란 불가능했습니다.
사업 부지도 없이 국토부 소유 영산강저류지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려 했는데, 국토부에서 특혜 소지가 있다며 10년째 점용허가를 내주지 않은 거죠(실제 저류지는 지난해 여름 영산강이 범람했을때 물그릇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특구사업인 '직류송전'을 실증하려면 전력이 필요한데, 이렇게 발전원이 무산되자 사업은 계속 지연되고 계획도 수정해야 했습니다.
결국 전남 나주 인근 170개 소규모 태양광 업체로부터 전력을 받기로 했는데요. 추가 선로 비용도 들고, 전력을 빌리니 전기세도 내야 합니다.
■ '무면허' 업체가 태양광 '불법 시공'...주관기관 前 원장이 재취업
문제는 또 있습니다. 전라남도는 지난해 정부 3차 추경예산을 받아 100억원대 '인도형 태양광' 사업을 추가했는데요.
나주 혁신산업단지 1㎞ 구간 인도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여기서 생산한 전력을 2㎞ 떨어진 복합형 주차타워까지 '직류'로 연결해서 전기차 충전도 하고 직접 이용해보는 소규모 직류송전 실증입니다.
특구사업자로 지정된 나주의 한 태양광 업체가 공사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완공을 앞둔 지난달, 나주시가 공사 중지를 통보합니다.
'공원녹지법' 위반 사실이 확인된 겁니다. 태양광 패널이 녹지를 불법 점용한 면적은 1,800㎡, 경미한 위반이 아니죠. 나주시는 녹지 '원상회복'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실상 시설 철거 명령입니다.
지금까지 20억 원이 투입됐는데, 철거에 재설치 예산이 추가로 들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업체, 사업자로 선정되던 지난해 8월 당시 전기공사에 꼭 필요한 '전기공사업' 면허도 없었습니다.
특구사업을 총괄하던 전 녹색에너지연구원장은 직무와 관련이 있는 이 업체에 지난 2월 고문으로 재취업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재는 태양광에 문제가 생기자 퇴사한 상탭니다.
■ 평가 과정 '비공개'…'석연치 않은' 사업자 선정 과정
허가 없는 발전사업자, 면허 없는 전기공사업자, 도대체 어떻게 특구사업에 참여하게 된 걸까요?
사업을 주관한 녹색에너지연구원은 특구 지정을 준비하던 지난 2019년, 사업자들을 이렇게 모았습니다.
사업자 수요조사를 공고하지 않고, 특구사업 설명회에는 아는 20여개 업체만 골라 참석 요청 공문을 보냅니다.
나주 혁신산단에 입주한 대다수 에너지 업체들은 공문을 받지 못했죠. 사업 참여 신청서를 제출한 업체는 모두 10곳인데, 이 중 두 곳이 탈락합니다. 탈락한 업체들은 어떤 평가 과정에 의해 탈락했는지 이유를 듣지 못했습니다.
반면, '허가도 없고, 면허도 없는' 사업자들은 특구사업자로 지정됐습니다.
취재팀이 사업자 선정 과정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지만, 녹색에너지연구원은 "내부 회의를 거쳐 선정했고, 평가 과정에 대한 공식 자료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 감사 착수…연구원 "사업자 선정 과정 개편"
'불법'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특구사업 주관기관은 전라남도 산하 출연기관인 녹색에너지연구원입니다.
시공과 설계는 각각 다른 사업자가 맡았고, 지금까지 구조물 공사는 자재를 납품한 제3의 업체가 진행했습니다.
녹지 침범 가능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인도 점용허가를 내준 나주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겁니다. 책임을 가리기 위해 경찰 수사와 법적 소송도 불가피해 보입니다.
감사도 시작됐습니다. 태양광 시설의 설계와 발주, 감리에 대한 회계감사와 전 녹색에너지연구원장의 특구사업체 재취업 적법성에 대한 감사가 진행 중입니다.
주관기관인 녹색에너지연구원은 사업자 심사 방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소관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도 허술한 사업자 선정 방식을 다시 검토하고 있습니다.
규제자유특구 자체가 규제 완화를 통해 혁신 기술을 개발하도록 고안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본적인 법령을 위반하면서까지 사업을 진행하라고 허용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공정한 감사가 이뤄질지, 불법이 제대로 시정될지 앞으로도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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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아 기자 sah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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