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K] “권성동 ‘국회 패싱 방지법’ 박근혜 땐 찬성, 지금은 반대?”

입력 2022.06.14 (17:21) 수정 2022.06.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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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도에 이것과 거의 유사한 유승민 국회법 개정 파동 그때, 권성동 의원께서는 이 법 찬성하셨고 또 의총에서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지지하셨고 옹호하셨습니다."
-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2022.06.13.)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어제(13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한 말입니다. 조 의원은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개정안 추진을 '국정 발목 꺾기'로 비판하고 있다는 진행자의 지적에 이같이 답했습니다. 조 의원은 정부 시행령이 법 취지에 어긋나면 바꿀 수 있도록 국회가 요청하는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조 의원은 권 원내대표가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자 권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부 때 찬성했던 법을 지금 와서 반대하고 있다는 취지로 주장한 건데요. 조 의원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해봤습니다. 조 의원은 오늘(14일) 오후 해당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시행령 정치 방지" vs "정부완박, 행정부 통제"

조 의원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이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런 반응이 나온 걸까요? 우선, 개정안 내용과 쟁점은 이렇습니다.

개정안 내용에 따르면 부 시행령이 상위 법령인 법률의 취지와 내용에 합치되지 않을 경우 국회 상임위원회가 소관 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 요청을 받은 정부는 시행령 내용을 수정·변경한 뒤 국회 상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국회가 시행령의 위법성 여부를 검토·통보하는 선에 그친 현행법에서 더 적극적인 통제가 가능한 방식으로 한발 더 나아간 안입니다.

법 제정 후 행정부가 세부적인 지침을 시행령·시행규칙으로 정하는 과정에서 법 취지와 다른 내용을 넣어 법을 무력화시키는 이른바 '국회 패싱', '입법 패싱'을 방지하겠다는 겁니다. 그간 여야를 막론하고 행정부 시행규칙을 통해 법률의 취지를 우회하는 '시행령 정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 왔습니다.

조 의원이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권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어제(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야당이 되자마자 행정부를 통제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면서 "거대 의석으로 사사건건 새 정부의 발목을 잡겠다는 다수당의 폭거"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전날(12일) 페이스북에선 '정부완박'(정부 권한 완전 박탈)이라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현재 다수당인 민주당이 "의회 독재와 입법폭주를 조장해 삼권분립의 본질을 침해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권성동 원내대표 지난 12일 페이스북 글 갈무리권성동 원내대표 지난 12일 페이스북 글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도 어제 출근길에서 기자들에게 "위헌 소지가 많다고 본다"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시행령 수정이 아닌 법률 개정으로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겁니다.

■ 2015년 '국회법 개정 파동' 때 권 의원 행보는?

다시 조 의원 주장으로 돌아가 볼까요? 권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에는 유사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주장입니다.

당시 법안을 뜯어보면, 현재 조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과 사실상 같습니다. 2015년 5월 말,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5건을 통합·조정해 만든 국회운영위원장(유승민 위원장·새누리당) 명의의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당시 여당은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이었고 제1야당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었습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야당이 반대하던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하기 위해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 함께 처리했습니다.

국회법 개정안 주요 내용 비교국회법 개정안 주요 내용 비교

2015년 5월 29일 본회의에서 이처럼 '국회 패싱 방지'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은 재석 244인 중 찬성 211인, 반대 11인, 기권 22인으로 여유 있게 통과됐습니다. 권성동 의원도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국회 본회의 회의록에 명시된 찬성 의원 명단국회 본회의 회의록에 명시된 찬성 의원 명단

하지만 여야 합의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실제 시행되지는 못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 업무를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할 것"이라며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비판 이후 여권 내에서 마찰이 빚어졌고 결국 유 원내대표는 그해 7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권성동 의원은 그 과정에서 유 원내대표에 대한 당내 사퇴 압박을 중단하라는 성명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조 의원 주장대로 당시 권 의원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지지하고 옹호했다"라기보다는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절차적 문제를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권 원내대표는 KBS와의 통화에서 당시 국회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과 관련해 "당시엔 여야 간 합의에 따른 당론이어서 찬성표를 던졌지만 이후 위헌 소지 등 여러 논란이 제기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논란 제기 후 다수의 전문가들과 토론해보니 제기될 수 있는 여러 부작용에 대해 알게 됐다는 겁니다. 권 원내대표는 오늘(14일) 조 의원의 법안이 국회 의사결정 원칙과 삼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난다면서 당 차원에서 반대한다고 재차 밝혔습니다.

오늘(14일)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출처 : 연합뉴스)오늘(14일)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출처 : 연합뉴스)

■ '공수' 교대에 따라 달라지는 여야 입장

사실, 여야가 처한 정치적 환경에 따라 '시행령 정치'를 막기 위한 각자의 입장이 바뀌어 온 측면이 있습니다.

2015년 사례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야당의 강렬한 반대에 부닥친 공무원연금개혁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주면서 가능했습니다.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개혁 법안 처리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면 그와 같은 야당과의 '정치적 합의'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국회는 새누리당 160석, 새정치민주연합 130석으로 '여대야소'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야당이 국회법 개정안을 여럿 발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정부가 마련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세월호 사건 특별조사위원회의에서 진상 규명을 맡은 핵심 보직에 검찰 서기관을 파견하도록 하자 야당이 독립적인 조사를 보장한다는 세월호 특별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강력하게 반발하며 국회법 개정을 통해 시행령을 고치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 '배신의 정치', '국회법 파동'이라는 말을 남긴 2015년 국회법 개정안은 여야가 뒤바뀐 2019년에 다시 발의됐습니다. 이번엔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이 사실상 같은 내용의 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 의원 9명이 발의에 동참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여당이던 새누리당 시절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법안을 야당이 돼 다시 추진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2019년 당시 법무부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방지 강화를 위한 공보준칙 개정을 추진하자 야당이 강하게 반발한 겁니다. 수사 내용을 유포한 검사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감찰을 지시할 수 있게 한 것이 공보준칙 개정의 핵심 내용입니다.

김 의원은 발의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의 가족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법무부가 '꼼수'를 부린다."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정권의 입맛대로 행정입법이 악용되지 못하도록 정당한 국회의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김 의원의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국회운영위원회(이인영 위원장·더불어민주당)는 발의된 관련 법안 10건을 병합·심사해 위원회 대안을 본회의로 올려 처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정부의 행정입법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국회가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핵심 내용은 모두 빠졌습니다.

그로부터 3년 가까이 지나 이번에는 야당이 된 민주당의 조응천 의원이 같은 내용을 또다시 발의하려고 하자 다시 여당이 된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최근에는 정부가 법무부에 고위공직 후보자를 검증할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하기 위해 정부조직법은 놔둔 채 시행령을 개정한 것을 두고 야당의 비판이 거셌습니다.

여야 간 '공수(攻守)'가 바뀔 때마다 입장이 달라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어제(13일) YTN 라디오 에 출연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출처: YTN라디오 유튜브 채널 캡처)어제(13일) YTN 라디오 에 출연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출처: YTN라디오 유튜브 채널 캡처)

■ "여야 간 합의·협치 문화 선행돼야"

물론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에는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침해, 삼권분립 원칙의 훼손 가능성 등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 만큼 여야가 머리를 맞대 해법을 찾아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가 시행령 등 행정입법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미 1990년대부터 제기된 해묵은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간 제기된 '반짝 화두'가 아닙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려면 여야 간 협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사)한국정당학회에 의뢰해 작성한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통제 방안>보고서는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실효성 있는 통제가 요구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행정 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 방안은 행정부 대 입법부의 관계상에서 다루어질 법리적인 성질이 아니라, 행정부·여당 대 야당의 실질적인 관계상에서 논의돼야 할 정치적인 문제"라며 "소모적인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여야 간 합의와 협치를 중시하는 정치 문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취재지원: 최유리 팩트체크 인턴기자 ilyouc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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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트체크K] “권성동 ‘국회 패싱 방지법’ 박근혜 땐 찬성, 지금은 반대?”
    • 입력 2022-06-14 17:21:58
    • 수정2022-06-14 18:03:07
    팩트체크K

"2015년도에 이것과 거의 유사한 유승민 국회법 개정 파동 그때, 권성동 의원께서는 이 법 찬성하셨고 또 의총에서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지지하셨고 옹호하셨습니다."
-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2022.06.13.)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어제(13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한 말입니다. 조 의원은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개정안 추진을 '국정 발목 꺾기'로 비판하고 있다는 진행자의 지적에 이같이 답했습니다. 조 의원은 정부 시행령이 법 취지에 어긋나면 바꿀 수 있도록 국회가 요청하는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조 의원은 권 원내대표가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자 권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부 때 찬성했던 법을 지금 와서 반대하고 있다는 취지로 주장한 건데요. 조 의원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해봤습니다. 조 의원은 오늘(14일) 오후 해당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시행령 정치 방지" vs "정부완박, 행정부 통제"

조 의원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이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런 반응이 나온 걸까요? 우선, 개정안 내용과 쟁점은 이렇습니다.

개정안 내용에 따르면 부 시행령이 상위 법령인 법률의 취지와 내용에 합치되지 않을 경우 국회 상임위원회가 소관 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 요청을 받은 정부는 시행령 내용을 수정·변경한 뒤 국회 상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국회가 시행령의 위법성 여부를 검토·통보하는 선에 그친 현행법에서 더 적극적인 통제가 가능한 방식으로 한발 더 나아간 안입니다.

법 제정 후 행정부가 세부적인 지침을 시행령·시행규칙으로 정하는 과정에서 법 취지와 다른 내용을 넣어 법을 무력화시키는 이른바 '국회 패싱', '입법 패싱'을 방지하겠다는 겁니다. 그간 여야를 막론하고 행정부 시행규칙을 통해 법률의 취지를 우회하는 '시행령 정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 왔습니다.

조 의원이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권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어제(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야당이 되자마자 행정부를 통제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면서 "거대 의석으로 사사건건 새 정부의 발목을 잡겠다는 다수당의 폭거"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전날(12일) 페이스북에선 '정부완박'(정부 권한 완전 박탈)이라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현재 다수당인 민주당이 "의회 독재와 입법폭주를 조장해 삼권분립의 본질을 침해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권성동 원내대표 지난 12일 페이스북 글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도 어제 출근길에서 기자들에게 "위헌 소지가 많다고 본다"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시행령 수정이 아닌 법률 개정으로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겁니다.

■ 2015년 '국회법 개정 파동' 때 권 의원 행보는?

다시 조 의원 주장으로 돌아가 볼까요? 권 원내대표가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에는 유사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주장입니다.

당시 법안을 뜯어보면, 현재 조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과 사실상 같습니다. 2015년 5월 말,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5건을 통합·조정해 만든 국회운영위원장(유승민 위원장·새누리당) 명의의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당시 여당은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이었고 제1야당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었습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야당이 반대하던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하기 위해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 함께 처리했습니다.

국회법 개정안 주요 내용 비교
2015년 5월 29일 본회의에서 이처럼 '국회 패싱 방지'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은 재석 244인 중 찬성 211인, 반대 11인, 기권 22인으로 여유 있게 통과됐습니다. 권성동 의원도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국회 본회의 회의록에 명시된 찬성 의원 명단
하지만 여야 합의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실제 시행되지는 못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 업무를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할 것"이라며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비판 이후 여권 내에서 마찰이 빚어졌고 결국 유 원내대표는 그해 7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권성동 의원은 그 과정에서 유 원내대표에 대한 당내 사퇴 압박을 중단하라는 성명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조 의원 주장대로 당시 권 의원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지지하고 옹호했다"라기보다는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절차적 문제를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권 원내대표는 KBS와의 통화에서 당시 국회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과 관련해 "당시엔 여야 간 합의에 따른 당론이어서 찬성표를 던졌지만 이후 위헌 소지 등 여러 논란이 제기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논란 제기 후 다수의 전문가들과 토론해보니 제기될 수 있는 여러 부작용에 대해 알게 됐다는 겁니다. 권 원내대표는 오늘(14일) 조 의원의 법안이 국회 의사결정 원칙과 삼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난다면서 당 차원에서 반대한다고 재차 밝혔습니다.

오늘(14일)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출처 : 연합뉴스)
■ '공수' 교대에 따라 달라지는 여야 입장

사실, 여야가 처한 정치적 환경에 따라 '시행령 정치'를 막기 위한 각자의 입장이 바뀌어 온 측면이 있습니다.

2015년 사례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야당의 강렬한 반대에 부닥친 공무원연금개혁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주면서 가능했습니다.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개혁 법안 처리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면 그와 같은 야당과의 '정치적 합의'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국회는 새누리당 160석, 새정치민주연합 130석으로 '여대야소'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야당이 국회법 개정안을 여럿 발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정부가 마련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세월호 사건 특별조사위원회의에서 진상 규명을 맡은 핵심 보직에 검찰 서기관을 파견하도록 하자 야당이 독립적인 조사를 보장한다는 세월호 특별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강력하게 반발하며 국회법 개정을 통해 시행령을 고치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 '배신의 정치', '국회법 파동'이라는 말을 남긴 2015년 국회법 개정안은 여야가 뒤바뀐 2019년에 다시 발의됐습니다. 이번엔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이 사실상 같은 내용의 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 의원 9명이 발의에 동참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여당이던 새누리당 시절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법안을 야당이 돼 다시 추진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2019년 당시 법무부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방지 강화를 위한 공보준칙 개정을 추진하자 야당이 강하게 반발한 겁니다. 수사 내용을 유포한 검사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감찰을 지시할 수 있게 한 것이 공보준칙 개정의 핵심 내용입니다.

김 의원은 발의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의 가족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법무부가 '꼼수'를 부린다."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을 통해 정권의 입맛대로 행정입법이 악용되지 못하도록 정당한 국회의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김 의원의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국회운영위원회(이인영 위원장·더불어민주당)는 발의된 관련 법안 10건을 병합·심사해 위원회 대안을 본회의로 올려 처리했는데, 그 과정에서 정부의 행정입법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국회가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핵심 내용은 모두 빠졌습니다.

그로부터 3년 가까이 지나 이번에는 야당이 된 민주당의 조응천 의원이 같은 내용을 또다시 발의하려고 하자 다시 여당이 된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최근에는 정부가 법무부에 고위공직 후보자를 검증할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하기 위해 정부조직법은 놔둔 채 시행령을 개정한 것을 두고 야당의 비판이 거셌습니다.

여야 간 '공수(攻守)'가 바뀔 때마다 입장이 달라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어제(13일) YTN 라디오 에 출연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출처: YTN라디오 유튜브 채널 캡처)
■ "여야 간 합의·협치 문화 선행돼야"

물론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에는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침해, 삼권분립 원칙의 훼손 가능성 등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 만큼 여야가 머리를 맞대 해법을 찾아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가 시행령 등 행정입법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미 1990년대부터 제기된 해묵은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간 제기된 '반짝 화두'가 아닙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려면 여야 간 협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사)한국정당학회에 의뢰해 작성한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통제 방안>보고서는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실효성 있는 통제가 요구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행정 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 방안은 행정부 대 입법부의 관계상에서 다루어질 법리적인 성질이 아니라, 행정부·여당 대 야당의 실질적인 관계상에서 논의돼야 할 정치적인 문제"라며 "소모적인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여야 간 합의와 협치를 중시하는 정치 문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취재지원: 최유리 팩트체크 인턴기자 ilyouc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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