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역’에 ‘욕설’까지”…“못 믿을 난민심사”

입력 2023.02.21 (07:31) 수정 2023.02.2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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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징집을 피해 한국에 온 러시아 청년들, 난민 인정은 둘째 치고, '심사 자격'부터 얻기 위해 복잡한 소송을 거친 일 보도해드렸죠.

2014년에서 2018년 사이엔, 우리나라에서 난민 면접이 엉터리로 진행돼, 여러 신청자가, 난민 인정을 못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정부도 55명을 피해자로 규정했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아직 난민으로 인정받진 못했습니다.

이유가 뭔지, 김성수 기자입니다.

[리포트]

2014년 말 우리나라에 와서 난민 신청을 한 이집트인 A 씨.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종교를 이유로 아버지를 살해하자, 불가피하게 고향을 떠났습니다.

[A 씨/이집트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이집트에) 무슬림 사람 너무 많아요. 기독교 사람은 얼마 없어요. 아빠 죽었고 집이 헐렸어요. 엄마하고 동생하고 도망갔어요."]

그런데 '난민 면접' 당시 배정된 아랍어 통역사는 이런 중요한 신청 사유를 누락했고, '아버지'의 사망을 다른 가족의 사망으로 바꾸는 등 오역까지 범했습니다.

결국 "고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을 근거가 부족하다"며, 난민 인정은 거부됐습니다.

5년이 지나서야, 한국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심사 기회를 줬는데, 엉터리였던 1차 조서 내용이 꼬리표처럼 또 따라 붙었습니다.

[A 씨/이집트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아빠 죽었어요. 엄마가 (사망한 게) 아니에요.' 그럼 통역 말이랑 안 맞아요. (그러니까) 무조건 법원 들어가서 말해도 (내 말을) 안 믿어요."]

이 혼란 속에서 A 씨는 끝내 난민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역시 종교적인 이유로 11년 전 입국한 예멘인 B 씨.

5년을 기다린 끝에야 첫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면접은 단 30분 만에 끝났고, 그 과정은 폭압적이었다고 회고합니다.

[B 씨/예멘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면접관은 나에게 저주를 하면서 안 좋은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는 제가 '예' '아니오'라고만 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날의 이 면접은 관련 규정이 없단 이유로, 녹화조차 되지 않았고...

'의무 녹화' 규정이 생긴 뒤에 진행된 면접 영상도 당사자에게 확인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B 씨/예멘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인터뷰 영상은 제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인터뷰 영상을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류로 인해 없어졌다고 하는데 비상식적입니다."]

[김연주/난민인권센터 변호사 : " 한국의 난민 신청 시스템 자체를 믿고 내 심사가 진행된다라고 신뢰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난민 신청자들은) 어떤 이유로 내가 거절됐는지도 서류만 보고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유례없는 '난민 면접 조작' 문제가 불거지면서, 법무부가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한 55명 가운데, 현재까지 난민 자격을 얻은 건 단 7명뿐입니다.

나머지 대다수는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수 년째 '신청자'로만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김성숩니다.

촬영기자:송혜성/영상편집:이현모/그래픽:노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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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역’에 ‘욕설’까지”…“못 믿을 난민심사”
    • 입력 2023-02-21 07:31:24
    • 수정2023-02-21 07: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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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징집을 피해 한국에 온 러시아 청년들, 난민 인정은 둘째 치고, '심사 자격'부터 얻기 위해 복잡한 소송을 거친 일 보도해드렸죠.

2014년에서 2018년 사이엔, 우리나라에서 난민 면접이 엉터리로 진행돼, 여러 신청자가, 난민 인정을 못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정부도 55명을 피해자로 규정했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아직 난민으로 인정받진 못했습니다.

이유가 뭔지, 김성수 기자입니다.

[리포트]

2014년 말 우리나라에 와서 난민 신청을 한 이집트인 A 씨.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종교를 이유로 아버지를 살해하자, 불가피하게 고향을 떠났습니다.

[A 씨/이집트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이집트에) 무슬림 사람 너무 많아요. 기독교 사람은 얼마 없어요. 아빠 죽었고 집이 헐렸어요. 엄마하고 동생하고 도망갔어요."]

그런데 '난민 면접' 당시 배정된 아랍어 통역사는 이런 중요한 신청 사유를 누락했고, '아버지'의 사망을 다른 가족의 사망으로 바꾸는 등 오역까지 범했습니다.

결국 "고국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을 근거가 부족하다"며, 난민 인정은 거부됐습니다.

5년이 지나서야, 한국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심사 기회를 줬는데, 엉터리였던 1차 조서 내용이 꼬리표처럼 또 따라 붙었습니다.

[A 씨/이집트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아빠 죽었어요. 엄마가 (사망한 게) 아니에요.' 그럼 통역 말이랑 안 맞아요. (그러니까) 무조건 법원 들어가서 말해도 (내 말을) 안 믿어요."]

이 혼란 속에서 A 씨는 끝내 난민 인정을 못 받았습니다.

역시 종교적인 이유로 11년 전 입국한 예멘인 B 씨.

5년을 기다린 끝에야 첫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면접은 단 30분 만에 끝났고, 그 과정은 폭압적이었다고 회고합니다.

[B 씨/예멘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면접관은 나에게 저주를 하면서 안 좋은 말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는 제가 '예' '아니오'라고만 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날의 이 면접은 관련 규정이 없단 이유로, 녹화조차 되지 않았고...

'의무 녹화' 규정이 생긴 뒤에 진행된 면접 영상도 당사자에게 확인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B 씨/예멘인 난민 신청자/음성변조 : "인터뷰 영상은 제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인터뷰 영상을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류로 인해 없어졌다고 하는데 비상식적입니다."]

[김연주/난민인권센터 변호사 : " 한국의 난민 신청 시스템 자체를 믿고 내 심사가 진행된다라고 신뢰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난민 신청자들은) 어떤 이유로 내가 거절됐는지도 서류만 보고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유례없는 '난민 면접 조작' 문제가 불거지면서, 법무부가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한 55명 가운데, 현재까지 난민 자격을 얻은 건 단 7명뿐입니다.

나머지 대다수는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수 년째 '신청자'로만 남아 있습니다.

KBS 뉴스 김성숩니다.

촬영기자:송혜성/영상편집:이현모/그래픽:노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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