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과 절망에 ‘터널 시야’”…어느 택시기사의 죽음 [친절한 뉴스K]

입력 2024.04.19 (12:40) 수정 2024.04.19 (13: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지난해 9월 택시기사 고 방영환 씨는 임금 체불 등에 항의하며 분신을 시도한 뒤 사망했습니다.

가족과 동료들은 진상 파악을 위해 144일 동안 장례를 미루며 사측의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방 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됐습니다.

친절한 뉴스에서 김세희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200일 넘게 1인 시위를 이어왔던 택시기사 고 방영환 씨.

방 씨는 지난해 9월 분신을 시도했고 열흘 만에 숨졌습니다.

지난 8일, 방 씨의 죽음은 반년 만에 산업재해로 인정됐는데요.

전문가들은 고인에게 우울증 등 치료 병력이 없는데도 적극적으로 산재 판단이 이뤄진 흔치 않은 사례로 평가했습니다.

방 씨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2020년 2월 방 씨는 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기간제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해 회사와 갈등을 빚다가 해고됐습니다.

이후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복직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해고 무효 기간의 임금 지급을 거부해 방 씨는 상당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회사는 월 100만 원 남짓의 급여만 지급했고 방 씨는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민원과 소송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회사 대표인 정 모 씨는 1인 시위를 하던 방 씨를 폭행했고 폭언과 욕설을 하며 집회를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정 씨는 지난달 1심에서 폭행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1심 재판부는 정 씨가 범죄 사실 대부분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엄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방 씨가 생전에 임금체불과 관련해 제기한 구제 신청 등이 인용되지 않은 점을 볼 때 사망의 책임이 전적으로 정 씨에게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선고 이후 방 씨의 유족은 정 씨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방희원/고 방영환 씨 유족 : "1년 6개월은 너무 가벼운 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 앞에 꼭 반성하고 사과하는 날이 올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업무상 질병 판정 위원회는 방 씨의 상황을 '터널 시야'로 표현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마치 어두운 터널을 운전할 때처럼 주변을 이해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저하됐다는 겁니다.

위원회는 사업주의 폭력적 행위 등으로 발생한 장기간의 스트레스로 방 씨가 급격한 무력감과 모욕감, 두려움, 고립감에 시달렸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또 제소한 사건들이 기각되며 방 씨가 느꼈을 좌절과 절망이 사망 위험을 높였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위원회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오랜 갈등이 방 씨의 결정적인 스트레스 요인이었고, 이런 상황이 방 씨의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위원회는 방 씨의 사망과 업무와의 상당한 인과 관계를 인정했습니다.

직장 내 정신적·신체적 폭력은 결국, 한 사람의 노동자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습니다.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 마련은 물론, 사회적 인식 개선이 절실해 보입니다.

KBS 뉴스 김세희입니다.

영상편집:강지은/그래픽:민세홍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모욕과 절망에 ‘터널 시야’”…어느 택시기사의 죽음 [친절한 뉴스K]
    • 입력 2024-04-19 12:40:42
    • 수정2024-04-19 13:01:52
    뉴스 12
[앵커]

지난해 9월 택시기사 고 방영환 씨는 임금 체불 등에 항의하며 분신을 시도한 뒤 사망했습니다.

가족과 동료들은 진상 파악을 위해 144일 동안 장례를 미루며 사측의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방 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됐습니다.

친절한 뉴스에서 김세희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200일 넘게 1인 시위를 이어왔던 택시기사 고 방영환 씨.

방 씨는 지난해 9월 분신을 시도했고 열흘 만에 숨졌습니다.

지난 8일, 방 씨의 죽음은 반년 만에 산업재해로 인정됐는데요.

전문가들은 고인에게 우울증 등 치료 병력이 없는데도 적극적으로 산재 판단이 이뤄진 흔치 않은 사례로 평가했습니다.

방 씨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2020년 2월 방 씨는 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기간제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해 회사와 갈등을 빚다가 해고됐습니다.

이후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복직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해고 무효 기간의 임금 지급을 거부해 방 씨는 상당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회사는 월 100만 원 남짓의 급여만 지급했고 방 씨는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민원과 소송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회사 대표인 정 모 씨는 1인 시위를 하던 방 씨를 폭행했고 폭언과 욕설을 하며 집회를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정 씨는 지난달 1심에서 폭행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1심 재판부는 정 씨가 범죄 사실 대부분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엄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방 씨가 생전에 임금체불과 관련해 제기한 구제 신청 등이 인용되지 않은 점을 볼 때 사망의 책임이 전적으로 정 씨에게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선고 이후 방 씨의 유족은 정 씨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방희원/고 방영환 씨 유족 : "1년 6개월은 너무 가벼운 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 앞에 꼭 반성하고 사과하는 날이 올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업무상 질병 판정 위원회는 방 씨의 상황을 '터널 시야'로 표현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마치 어두운 터널을 운전할 때처럼 주변을 이해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저하됐다는 겁니다.

위원회는 사업주의 폭력적 행위 등으로 발생한 장기간의 스트레스로 방 씨가 급격한 무력감과 모욕감, 두려움, 고립감에 시달렸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또 제소한 사건들이 기각되며 방 씨가 느꼈을 좌절과 절망이 사망 위험을 높였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위원회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오랜 갈등이 방 씨의 결정적인 스트레스 요인이었고, 이런 상황이 방 씨의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위원회는 방 씨의 사망과 업무와의 상당한 인과 관계를 인정했습니다.

직장 내 정신적·신체적 폭력은 결국, 한 사람의 노동자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습니다.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 마련은 물론, 사회적 인식 개선이 절실해 보입니다.

KBS 뉴스 김세희입니다.

영상편집:강지은/그래픽:민세홍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