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식(食) 고문’을 아시나요…

입력 2014.08.14 (13:38) 수정 2014.08.1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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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은 1달 여간 매일 구타와 폭행으로 결국 숨지게 됐습니다.

군내 가혹행위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초점은 구타 등 엽기적인 가혹행위에 맞춰져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KBS에 들어온 제보들을 쭈욱 살펴보면, 엽기적인 가혹행위보다는 일상적인, 어찌보면 생활화된 가혹행위가 더욱 견디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식(食) 고문'입니다.

글자 그대로 먹을 것으로 고문을 하는 건데요.

시청자 제보에 올라오는 글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훈련을 나가면, 부대원들이 같이 식사를 한다. 그런데 고참들이 밥을 먹고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모아서 먹게 한다.

국, 김치 이런 것을 모아놓고 일.이등병들 보고 모두 먹게 하는데, 먹고나서 토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남이 먹다 남긴 음식물, 거기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무조건 다 먹어 치워야하는 정도라면, 정말 고문에 다름 없지요.

그런데 제보나 댓글을 보면, 군 내에서는 이 '식 고문'이라는 말이 거의 '은어'로 정착화 되서 쓰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전후방 가리지 않고, '식고문'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식고문의 형태는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밥을 정해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나게 빨이 먹어치워야 하는 전형적인 형태부터, 과자를 엄청나게 쌓아놓고 무조건 다 먹어치워야하는 새로운 형태까지 말입니다.

과자 먹는 게 왜 고문일까요?

엄청난 양의 과자를 억지로 정해진 시간 안에 다 먹으려면, 입 안이 엄청 패인다는 군요. 이 정도면 가혹행위가 분명해 보입니다.

동생을 군대에 보냈다는 한 여성분은 "동생이 군에 가서 살도 찌고 해서, 군이 좋아졌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대 후 과자를 쌓아놓고 억지로 먹게 하는 등 먹기 싫은 음식도 의지와 관계없이 먹어서 살이 쪘다는 말을 털어놓아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라는 취지의 글을 남겼습니다.



왜 식고문이 유행하는 걸까요?

사실 구타는 공식적으로는 군에서 금지된 행위입니다. 음성적으로 행해지는 것이고, 잘못하면 멍이나 자국이 남고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죠.

그래서 은밀한 방법으로 후임병을 괴롭히는 겁니다. 주변에서 알지 못하게,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를 줄여가며 더 교묘하게 괴롭히는 거지요.

군에서는 장교나 부사관들이, 선임병들에 의한 후임병 '군기잡기'를 은연중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강한데, '식고문'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 하는 거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체벌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해병대에서 행해졌다던 변기 핥기, 소변 묻은 손을 입에 넣었다는 제보, 풍뎅이를 입에 넣었다 적발된 사례들도 어찌 보면 이 '식고문'의 연장 선상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죽자, 군은 또 떠들썩하게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런 대책 속에는 '식고문'처럼 생활화된 가혹행위에 대한 해결책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구타나 엽기적인 가혹행위만 너무 부각돼서 잘못인줄도 모르고 군 내에 녹아 내리고 있는 '식고문' 같은 생활 가혹 행위들이 간과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문제는 병영 문화를 어떻게 바로 잡는냐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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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식(食) 고문’을 아시나요…
    • 입력 2014-08-14 13:38:36
    • 수정2014-08-14 13:52:37
    취재후·사건후
윤 일병은 1달 여간 매일 구타와 폭행으로 결국 숨지게 됐습니다. 군내 가혹행위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초점은 구타 등 엽기적인 가혹행위에 맞춰져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KBS에 들어온 제보들을 쭈욱 살펴보면, 엽기적인 가혹행위보다는 일상적인, 어찌보면 생활화된 가혹행위가 더욱 견디기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식(食) 고문'입니다. 글자 그대로 먹을 것으로 고문을 하는 건데요. 시청자 제보에 올라오는 글을 옮기면 이렇습니다. "훈련을 나가면, 부대원들이 같이 식사를 한다. 그런데 고참들이 밥을 먹고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모아서 먹게 한다. 국, 김치 이런 것을 모아놓고 일.이등병들 보고 모두 먹게 하는데, 먹고나서 토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남이 먹다 남긴 음식물, 거기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무조건 다 먹어 치워야하는 정도라면, 정말 고문에 다름 없지요. 그런데 제보나 댓글을 보면, 군 내에서는 이 '식 고문'이라는 말이 거의 '은어'로 정착화 되서 쓰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전후방 가리지 않고, '식고문'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식고문의 형태는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밥을 정해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나게 빨이 먹어치워야 하는 전형적인 형태부터, 과자를 엄청나게 쌓아놓고 무조건 다 먹어치워야하는 새로운 형태까지 말입니다. 과자 먹는 게 왜 고문일까요? 엄청난 양의 과자를 억지로 정해진 시간 안에 다 먹으려면, 입 안이 엄청 패인다는 군요. 이 정도면 가혹행위가 분명해 보입니다. 동생을 군대에 보냈다는 한 여성분은 "동생이 군에 가서 살도 찌고 해서, 군이 좋아졌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대 후 과자를 쌓아놓고 억지로 먹게 하는 등 먹기 싫은 음식도 의지와 관계없이 먹어서 살이 쪘다는 말을 털어놓아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라는 취지의 글을 남겼습니다. 왜 식고문이 유행하는 걸까요? 사실 구타는 공식적으로는 군에서 금지된 행위입니다. 음성적으로 행해지는 것이고, 잘못하면 멍이나 자국이 남고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죠. 그래서 은밀한 방법으로 후임병을 괴롭히는 겁니다. 주변에서 알지 못하게,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를 줄여가며 더 교묘하게 괴롭히는 거지요. 군에서는 장교나 부사관들이, 선임병들에 의한 후임병 '군기잡기'를 은연중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강한데, '식고문'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 하는 거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체벌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해병대에서 행해졌다던 변기 핥기, 소변 묻은 손을 입에 넣었다는 제보, 풍뎅이를 입에 넣었다 적발된 사례들도 어찌 보면 이 '식고문'의 연장 선상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이 죽자, 군은 또 떠들썩하게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런 대책 속에는 '식고문'처럼 생활화된 가혹행위에 대한 해결책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구타나 엽기적인 가혹행위만 너무 부각돼서 잘못인줄도 모르고 군 내에 녹아 내리고 있는 '식고문' 같은 생활 가혹 행위들이 간과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문제는 병영 문화를 어떻게 바로 잡는냐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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